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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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성행위’ 와 자기결정론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30. 11:10
20년 전쯤에 성에 대한 윤리를 주제로 한 논집 아래 ‘성노동’에 대한 기고를 요청받았다. 정말로 문외한인 분야의 논건이었지만, 고심하여 썼다. 어떤 책이었는지는 잊어버렸다. 분명히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나온 논집이었기는 한데, 지금까지 갖고 있지는 않다. 그때 했던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쓰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들어가며 초장부터 솔직하게 말씀드리는데, 필자 자신은 성노동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한 것도 아니고, 온 힘을 다해 주장하고 싶은 개인적 의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종종 성노동을 다룬 문장을 읽곤 하지만, 몇 쪽(때에 따라서는 몇 줄) 읽기만 해도 기분이 축 처져 책을 덮어버리게 된다. 참 난감하기는 한데, 필자를 좀먹는 이 피로감이 반드시 개인적인 것이라고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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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클럽 활동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9. 17:26
에 동아리 활동의 지역 이관에 대해 썼다. 문부성과 스포츠 청(廳)의 주도로, 공립 중학교에서 행해지는 동아리 활동에 대한 ‘지역 이관’이 추진되고 있다. 우선 내년도부터 운동부의 지역 이관이 시작되고, 인문계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도 다음 달께 제언이 다 마무리지어질 것이라 한다. 승리 지상주의에 중독된 지도자가 학생의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을 내뱉는다든가, 몸이 망가질 정도의 장시간 속박을 강요하는 ‘혹사형 동아리 활동’은 사라지는 편이 좋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교원 입장에서도 과도한 부담이 되고 있다. 동아리 활동 고문교사가 되고 나서 휴일을 반납하고 학생을 지도하던 교원의 심신에 무리가 왔다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학생도 힘들고, 교원도 힘드니, 그런 동아리 활동은 아웃소싱하면 된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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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 총격 사건 보도를 접하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8. 21:34
시나노 마이니치 신문에 기고했던 글의 긴 버전이다. 이곳 시나노 마이니치 신문의 ‘오늘의 시점’ 코너에 싣고 있는 필자의 연재분은 금요일 정오가 마감인데, 참의원 선거 결과를 모르는 단계에 있다 할지라도, ‘참의원 선거의 역사적 의미’라는 타이틀 아래, 조금 긴 시간 간격에 입각한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생각한 점을 썼다. 원고를 다 쓴 직후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총격 받아 심폐 정지’라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조금 마감을 늦추어 줄 것을 요청하며, 1보 보도가 나온 시점에서 이 사건에 대한 필자의 코멘트를 쓰고자 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다행히도, 신문사는 마감이 늦춰져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아량에 사의를 표한다. 아베 씨의 용태에 대해서도,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동기로 그런 테러를 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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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선거 예측을 논함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7. 22:53
매주 기고하고 있는 시나노 마이니치 신문에 이번에는 참의원 선거에 대해 썼다. 어느 신문의 취재에 응하면서 참의원 선거의 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쟁점 없음’ ‘투표율 낮음’ ‘야당의 패배’가 언론 대부분의 예상이었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항상 말하는 거지만, 그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한 구체적인 미래 예측을 하고자 한다. 예측이 빗나갔을 경우, 어떤 정보를 놓쳤었는가, 어떤 추론상의 과오를 범했는가를 자가 점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해석할 수 있는 애매모호한 미래예측을 함으로써, ‘이렇게 될 줄 예상했었습니다’ 하는 후지혜(後知恵)로 얼버무리고 나버리면, 본인의 추리력 개발에 보탬이 안된다. 그렇다면 확신이 없더라도 구체적인 예측을 말하는 게 낫다. ‘빗나간 예측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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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부쳐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7. 20:27
창당 100주년을 맞은 일본공산당이 코멘트를 요청해와서, 아래와 같이 써보냈다. 일본공산당 창건 100주년은 하나의 ‘위업’이다. 똑같은 정당이 100년 역사의 풍설을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봐도 손에 꼽을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째서 가능했을까. 공산당에 대해 갖고 있는 개인적인 호오를 떠나, 그 의문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 공산당이라는 당명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의논이 있다. 필자는 당명 변경에 반대한다. 딱히 ‘원조’라는 개념에 가치를 두려는 게 아니다. 공산당을 자칭하는 정당은 20세기에 전세계적으로 존재했다. 그 흥망과 변천사를 관찰하는 ‘비교 공산당사’가 근대 정치사에 중요한 연구 분야라고 필자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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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곤도 세이쿄権藤成卿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6. 23:54
이라는 우파 잡지가 있다. 현정권을 기탄 없이 비판한다는 점에서 ‘어용 우익’ 잡지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재정 상황은 좋지 않아, 원고료를 대신하여 가을이 되면 햅쌀을 보내준다*. 그렇기는 하지만,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게 해주는 매체가 드물기에, 필자는 곧잘 이곳에 기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시라이 사토시, 사이토 고헤이, 사타카 마코토, 나카지마 다케시, 아오키 오사무, 미즈노 가즈오, 데라시마 지츠로, 이시바 시게루, 스즈키 무네오** 등의 저자들도 또한 기고하고 있다.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달까, 국량이 넓다고나 할까, 건전한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 * 햅쌀을 보내준다: 일본 전통의 “미곡 신앙”, “미곡 숭배” 즉 “미즈호노 쿠니瑞穂の国”. - 옮긴이 ** 시라이 사토시, 사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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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공약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4. 21:33
에 6월 8일 기고한 글. 위정자가 자신들에게 명백한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정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그러한 사람들이 ‘정보 비대칭 상태’라든가 ‘왜곡된 정보 노출’에 처해 있는 탓에, 그들을 ‘계몽’시키면 정치적 태도는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한다. 허나, 정말로 그럴까. 필자는 최근 점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정당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마 (무의식적으로라도)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 어떤 정책이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지, 어떤 정책이 불이익을 가져다줄지 정도는 알 것이다. 외교, 안보, 경제정책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판단내릴 수는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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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는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3. 19:03
주니치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시점[視座]’ 코너로 송고한 원고를 재수록. 참의원 선거가 가까워진 까닭에 주위가 들썩이고 있다. 후보자들 몇 명으로부터 ‘추천인’ 혹은 ‘응원’을 요청받는다. 필자는 그게 누구라도 ‘할게요’라고 답한다. 이 말을 듣고서 ‘절조가 없군’ 하며 눈썹을 찌푸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라는 것은 그렇게까지 엄밀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당선되길 바란다. 설령 동일한 선거구에서 경합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필자는 아무 후보자에게도 필자의 정치적 의견과의 완전한 일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상당히 달라도 상관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줄지에 대한 여부’를 기준으로 필자는 선거에 임하고 있다. 극단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