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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한 곤도 세이쿄権藤成卿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6. 23:54

    <월간 일본>이라는 우파 잡지가 있다. 현정권을 기탄 없이 비판한다는 점에서 ‘어용 우익’ 잡지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재정 상황은 좋지 않아, 원고료를 대신하여 가을이 되면 햅쌀을 보내준다*. 그렇기는 하지만,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게 해주는 매체가 드물기에, 필자는 곧잘 이곳에 기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시라이 사토시, 사이토 고헤이, 사타카 마코토, 나카지마 다케시, 아오키 오사무, 미즈노 가즈오, 데라시마 지츠로, 이시바 시게루, 스즈키 무네오** 등의 저자들도 또한 기고하고 있다.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달까, 국량이 넓다고나 할까, 건전한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 햅쌀을 보내준다: 일본 전통의 “미곡 신앙”, “미곡 숭배” 즉 “미즈호노 쿠니瑞穂の国”. - 옮긴이

    ** 시라이 사토시, 사이토 고헤이: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자
    사타카 마코토, 나카지마 다케시: 학자
    아오키 오사무: 기자 / 미즈노 가즈오, 데라시마 지츠로: 교수
    이시바 시게루, 스즈키 무네오: 자민당계 정치가 - 옮긴이


    바로 그 출판사가 필자에게 이르기를, 이번에 곤도 세이쿄의 <군민 공치론君民共治論>을 재발간하고자 하는 참이고, 그 ‘해설’을 써주십사 한다는 건데, 참으로 미스터리한 편집 기획을 수락한 셈이다.

    곤도 세이쿄(1868~1937)는 농본주의, 대(大)아시아주의를 주창한 대표적 사상가다. 국가주의, 관치주의, 자본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한편, 향촌을 기반으로 한 ‘사직社稷’ 공동체에 의한 자치를 이상적 사회로 삼았다.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의 흑룡회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한국의 이용구나 중국의 쑨원(孫文), 황싱(黃興) 등과 연대하여 아시아 혁명을 위해 분주히 일한 사람이다. 곤도가 구상했던 ‘봉황의 나라鳳の国’ 계획은, 가난한 한국인들을 만주에 집단 이주시키는 동시에, 반도에서 연해주, 몽고에 이르는 자치 공화의 이상향을 조성하고자 했던 원대한 구상이었다. 일중한(日中韓)에 적지 않은 동조자를 확보하였으나, 그 계획은 한일합방에 의해 좌초되었다. 그 이후에도 곤도의 농본주의와 대아시아주의는 일본의 과격한 청년들 사이에 적지 않은 추종자를 끊임없이 배출해냈다.

    농본(農本) 파시즘이나 대(大)아시아주의를 좌익적 입장에서 비판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동기 자체는 지극한 선의에서 비롯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과격파 군인(황도파皇道派 - 옮긴이)에 의한 테러리즘과 대일본제국의 아시아 장악을 초래하였으므로, 역사적으로 단죄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도와 그 동조자들을 구동하였던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진솔한 공감과, 이웃 나라 사람들을 ‘동포’로 환대하는 관대함에 필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농본주의와 대아시아주의라는 일본인 자신의 토착적 사상에 정면 대치하지 않는 한, 일본인은 ‘오리지널 정치 사상’을 가질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뾰족한 근거는 없지만, 느낌이 그랬다.

    별안간 <월간 일본>이 현대에 와서 곤도 세이쿄의 책을 재발간할 의도가 생겼는데, 그 해설을 왜 필자에게 맡겼는지에 대해서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필자의 집에 관계자가 방문하였을 때, 서가에 도야마 미츠루***오오카와 슈메이****, 기타 잇키*****의 책이 꽂혀 있었던 게 눈에 밟혀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 도야마 미츠루(1855~1944): 위에서 언급된 흑룡회와 깊은 관계가 있는 현양사의 중심 인물임. - 옮긴이

    **** 오오카와 슈메이(1886~1957): 사상가. 만철 정보부서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음. 후에 A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당시 도조 히데키의 머리를 가격한 해프닝의 당사자로도 유명하다. - 옮긴이

    ***** 기타 잇키(1883~1937): 사상가. 과격파 청년 장교들의 이론적 지도자로 지목되어, 이들의 쿠데타 실패 이후 군법회의에 의해 사형이 언도되었다. - 옮긴이


    필자는 불문학 연구 경력의 전반 10년 정도를 ‘근대 프랑스 극우사상’ 연구에 쏟아부었다. 다 낡아 누래진 정치 팸플릿이나 프로파간다류를 수집해놓고서, 과격 사상가들의 머릿속을 점령했던 망상적 혁명의 이미지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전간기 프랑스의 과격 왕당파와 극좌 모험주의자들이 형성해낸 ‘국민 혁명’의 꿈은, 동시기 일본의 ‘쇼와 유신’의 꿈과 뭔지 모르게 통하는 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국가주의, 반자본주의, 반도시문화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테러리즘이 그렇다. 허나, 프롤레타리아가 가진 토착적 에너지의 응집을 당초의 목표로 했었던 이 특유한 과격파 정치 사상가들은 결국, 나치 부역과 비시정권 반유대주의에 이르는 영역까지 추락했다. 그 모든 과정 중 어느 순간 ‘버튼이 잘못 눌린’ 것이다.

    자본주의와 포퓰리즘 정치, 도시 일극 자원 집중 모두 21세기 일본의 가까운 미래에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망가질 것이다. 그때, 또다시 농본 파시즘과 대아시아주의의 ‘화신avatar’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감이 필자에게는 든다.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는 필자도 아직 모르겠다. 지금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이번만큼은 ‘버튼 오작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수많은 움직임이 있을 거라는 점이다.

    (2022년 5월 2일)


    (2022-06-25 12:2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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