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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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각오가 아니 선다면 공부를 하지 말라인용 2024. 4. 28. 19:17
메이지 시대의 책을 읽다 보니 메이지인의 ‘날카롭고 위세 좋은 말’의 기세에 신체가 익숙해졌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기질이 굳센 사람으로 불합리한 것을 싫어하고 잘난 체하는 녀석을 싫어하고 근성이 비열한 자를 싫어해서 버럭 화만 내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깔보고 자신을 높이지 않는 점이 멋지다. 내전으로 에도 전체가 난리가 났을 때도 충성을 뽐내거나 시류에 편승하려 하지 않고 세속에 구애됨 없이 훌훌 유연하게 지냈다. 유키치는 에도가 불바다가 될 위기에도 자신이 운영하는 학당 게이오의숙이 비좁다며 보수 공사를 했다. 에도 어디에도 이런 시국에 보수 공사를 하는 집은 없었다. 목수도 미장이도 일이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노임은 헐값이었지만 아주 기뻐하였다. 친구가 찾아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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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베르테르에게 에뜨랑제가인용 2024. 4. 27. 19:44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허석과 만날 일이 기쁘면 기쁠수록 내색을 하지 말자.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구의 삶에서든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처럼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은 이만큼의 슬픈 일이 있다는 뜻임을 상기하자.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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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ree-Body Problem인용 2024. 4. 21. 11:46
빛과 어둠이 하나가 됩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 구르지예프가 쓴 《삶이란 오직 ‘내가 나’일 때만 진정한 것이 된다》에는 고비 사막의 남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옝기사르(Yangihissar) 현 근처에서 요양하던 중에 그에게 찾아온 계시(epiphany)의 순간이 묘사되어 있다. 그가 머물던 곳은 한 방향으로는 비옥하고, 다른 방향으로는 생명을 앗아가는 완전한 불모지인 독특한 장소였다. 구르지예프는 이 장소에 관해 “천국과 지옥이 정말로 존재해서 각기 어떤 힘을 방사(放射)한다면, 그 두 원천 사이의 공간을 채운 공기는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구르지예프에 의하면 공기는 ‘두 번째 양식’(second food)이었고, 그가 가 있던 장소의 공기는 ‘천국과 지옥의 두 힘 사이에서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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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자.인용 2024. 4. 20. 19:16
Hic Rhodus, hic salta! 인간이 누군가를 교육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교육이란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educate)'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자는 아이들의 잠재적인 재능을 '끌어내는 사람'이지 죽은 지식을 '처넣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교육자(educator)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아이들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거의 신의 영역이 아닌가요.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교육자의 양성과정이 대단히 엄격합니다. 독일에서는 교사의 양성과정이 의사의 양성과정과 거의 유사합니다. 의사가 인간의 육체를 다루는 직업이라면, 교사는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이지요. 교육은 인간의 심리와 정서, 감수성과 인지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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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ity에 관하여인용 2024. 4. 13. 10:52
시타가와 선생과 '가르치는 방법'의 핵심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나도 합기도를 가르치기 때문에 잘 아는 일인데 신체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의미로 '간단'하다. 이해력이 나쁜 사람이건 움직임이 둔한 사람이건 어떻게 하면 좋아지는지 가르치는 쪽에서는 이치가 잘 보이기 때문이다(시타가와 선생은 딱 잘라서 "내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잘할 수 있다"고 단언하신다). 말씀하신대로 신체 운용은 누구나 스승의 지도를 따르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잘하게 된다.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이런 수련을 하면 반드시 잘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쪽은 딱 잘라 단언할 수 있고 가르침을 받는 쪽도 그 말을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신체 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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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만 죽어라 파고든 너도 결국 실업자니까.” (소설가 김진명)인용 2024. 4. 11. 22:00
“인문학만 죽어라 파고든 너도 결국 실업자니까.” 형연은 은하수의 날 선 비난에도 신경 하나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대신 인문학 공부는 돈이나 지위 같은 다른 힘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져다 줘. 바로 내면의 힘이지.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가지면 가질수록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이 차오르며 삶이 떳떳하고 행복해져. 나는 돈을 많이 안 벌겠다, 조금 벌고 그 대신 검소하게 살겠다, 그리고 남는 시간과 열정을 더 의미 있는 일에 쏟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좋게 들리기는 한다만 그게 그리 쉽게 될까?” “불안하지. 하지만 인문학이 깊어지면 불안이 인간의 존재조건임을 알게 돼. 인간이란 어차피 불안에 시달리며 살게 되어 있다는 말이야. 그래서 당황하거나 극단적으로 반응하지 않아. 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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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는 ... 즐거운 표정으로 아니라고 말한다.인용 2024. 4. 11. 21:28
방황을 하다 보니 그는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군대는 그를 한국으로 보냈다. 그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거기에는 단편적 영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배의 뱃머리에서 보았던 성벽의 영상이다. 안개 낀 항구를 가로질러 보이던 성벽,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문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던 그 성벽의 영상이 그의 기억에 단편으로 남아 있다. 이 영상을 그는 소중하게 여기고 수도 없이 되풀이해서 머리에 떠올리곤 했던 것이 틀림없다. 비록 다른 어떤 것과도 연결이 되어 있지 않지만, 그 영상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어서 나 자신도 수없이 이를 머릿속에 떠올리곤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전환점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 보낸 그의 편지들을 보면,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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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손톱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답더라고요. (오카자키 교코)인용 2024. 4. 4. 20:53
note 이것은 도쿄라는 지루한 거리에서 나고 자라 평범하게 망가지고 만 여자(젤다 피츠제럴드처럼?)의 사랑과 자본주의를 둘러싼 모험과 일상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가 "모든 일은 매춘이다."라고 말한 적 있죠. 동감합니다. 옳은 말이에요. 그걸 알고 하는 사람, 모르고 하는 사람,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사람… 기타 등등이 있지만 다시 말하겠습니다. "모든 일은 매춘이다." 그리고 모든 일은 사랑이기도 합니다. 네, 사랑이요. 사랑은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안락하고 따뜻한 것이 아니에요. 그건 분명합니다. 사랑은 힘겹고 매섭고 두려운 잔혹한 괴물입니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헤엄을 못 치는 아이가 수영장 앞에서 겁을 집어먹듯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면 꼴사납겠죠. 두려워하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