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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조노 스스무 <교양으로서의 신토神道, 살아남은 신들> 서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6. 30. 23:55
시마조노 선생이 쓴 신토론 책에 대한 평론을 의뢰받았다. 도요경제신보사 사이트에 게재된 글임.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필자의 개인사를 짧게 이야기하기로 하자. 필자가 어떤 식으로 신토(神道)에 접근했었던 인간인지를 밝혀두고자 한다. 필자는 신토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 아니다. 그 편향성을 밝히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아이키도라는 무도(武道)를 20대 때부터 수행하여, 대학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문하생도 두고 있다. 긴 시간동안 공립 체육관의 무도장을 빌려 수련하였는데, 뭔지 모르게 성에 차지 않는 것이었다. 가미다나神棚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립 시설은 ‘정교 분리’가 원칙이므로, 모든 종교적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없으면 불안하다. 꼭 가미다나가 아니어도 좋다. 화두를 써놓은 편액도 좋다. 십자가도 좋다. 도장(道場)인 이상, 초월적 경지에 이르는 회로가 없으면 장(場)으로써 성립할 수 없다.
‘도장’이라는 것은, 본디 불교 수행의 장을 일컫는다. 그리고 무도라는 것도 원리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통제에 쉽게 길들지 않는 거대한 에너지를 우리 몸 속에 도입하는 것인 즉, 갈고 닦은 신체를 경유시켜 그것을 발동하는 기술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간과는 익숙지 않은 것’에 관계된 기술이다.
따라서, 무도 수련 공간 내부에 신령과 교통하기 위한 기구가 없으면 초조하다는 말은 그런 의미다. 공립시설에서 행하는 무도 시합이나 교습회에 참가할 때마다, 불경스럽게도 ‘비상구’라든지 ‘화기 엄금’ 같은 간판을 앞에 두고서 ‘종교적 의례’를 강요당하는 꼴인 셈이다. ‘일장기’가 내걸린 앞에서 거기에 경례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국민국가의 국기는 세속적인 정치적 상징물이 될 수는 있어도, 초월적 경지에 이를 수 있는 회로는 되지 못한다. 그런 사항들이 줄곧 불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 자신의 도장을 원했다.
10년 전쯤에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져, 자기 자신의 도장을 가질 수 있었다. 도장 정면에는 아이키도 창시자인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의 초상이, 가모이*위에는 가미다나(이곳 스미요시의 옛 지신地神과 야마가타 수험도**의 제신을 모셔두고 있다)와 2대 아이키도 도주(道主) 우에시바 기치조마루 선생의 휘호 ‘아이키合氣’ 편액, 입구 위에는 필자의 사범인 다다 히로시 선생이 쓰신 ‘풍운자재風雲自在’ 편액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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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鴨居; 상인방.
** 데와산잔出羽三山.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은 오모토 교大本教 신자였으며, 그곳에서 데구치 오니사부로에게 무도가로 떨칠 것을 천거받아, 교토 부 아야베 시에 위치한 오모토 교 본부 내에 ‘우에시바 주쿠塾’를 열면서 무도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다. 오늘날 아이키도에는 오모토 교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우에시바 선생이 가려 넣으신, 고(古)신토에서 유래한 ‘아마노토리후네天の鳥船’를 행하는 사람은 지금도 많으며, 필자의 도장에서도 행하고 있다.
이노우에 마사가네가 창시한 미소기 교禊教의 흐름을 이어받은 이치쿠카이一九会라는 수행 단체가 도쿄에 있는데, 필자는 이 단체의 회원이고, 정기적으로 참가한다. 이치쿠카이는 야마오카 뎃슈의 기일인 동시에, 이 모임의 최초 지도자인 오구라 데츠키小倉鉄樹 선생이 뎃슈 최후의 제자였던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미소기하라에(禊祓; 신토에서 사람들의 죄나 허물을 제거하는 의식 - 옮긴이)와 좌선을 병행하는 전형적인 신불 습합神佛習合의 종교단체다.
여름이 되면 효고 현 아시야 시에 위치한 폭포로 가 수행에 나선다. 우리들이 가는 폭포는 부동명왕당不動明王堂과 두 개의 조그마한 야시로(社; 신이 내임来臨하는 가설仮設의 작은 건물이나 제단 등 - 옮긴이)를 갖는 전형적인 수행장소이다. 상당히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던 이 폭포를 지난해 가노 지세이河野智聖 선생이 재발굴하여, 수행의 장으로 소생시켰다. 여름에 행하는 폭포 수행은 정말로 기분이 좋다.
이상이 필자가 신토와 관련해 경험해온 사연이 되겠다. 시마조노 선생은 이 책의 말미에 “넓은 의미에서의 신토적인 것에 대한 인기, 그리고 수험도 혹은 음양도에 대한 인기”(344쪽)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필자는 정말로 그러한 ‘인기’에 한몫 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래서 필자는 신토를 ‘교양’으로 다루기 이전에 (의미는 잘 모르는 채로) ‘실천’해 온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의 ‘독자’이기 이전에 이 책의 분석 ‘대상’인 것이다. 당해 분석 ‘대상’이 분석을 평론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 자신은 시마조노 선생의 설명을 읽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상당히 깊은 이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선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신토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논하고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점은, 신토의 역사는 단선적으로 발달해온 것이 아니라, 불교나 유교와 연관된 가운데 다양한 변용이 가해져 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토의 기층”(82쪽)이라고 할 만한 것을 유지하려 하는 바, 변이를 통해 모종의 동일성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동일성이라는 것은 ‘이것이 그것이다’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신토는 쌀 경작 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쌀, 떡, 술 같은 미곡 제품을 ‘신찬神饌’으로 여겨 타자(他者)를 환대하는 것은 쌀 경작 문화권 고유의 풍습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이세 신궁에서부터 골골마다 있는 자그마한 신사까지, 그 제례의 형식이 ‘거의 바뀌지 않’는다 한다. “쌀과 관련된 신찬을 중시하는 점은,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일관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17쪽) 라고 함은, 신토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거의 바뀌지 않은’ 본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황실과 이세 신궁의 제례야말로 ‘신토 본래의 모습’이라는 신토 이해는 이를 근거로 한다.
하지만, 시마조노 선생은 쌀 경작 이전에도 근원적 신토로 불리는 것이 존재하였다는 학설 역시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인정한다. 쌀 경작이 확산되기 이전의 일본 열도는 울창한 삼림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곳이 생명 활동의 중심이었다. 숲은 ‘신이 강림하는 장소, 신과 만날 수 있는 장소’라는 감각이 추측건대 지금도 살아있다. ‘숲의 문화’ 속에서 일본적 종교성의 원류 중 하나를 엿볼 수 있다는 이 입장에 시마조노 선생은 친화적이다. 이는 신토가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문화를 기원으로 가진, 다기원적인 개념이라는 상정 없이는, 신토의 그 경탄할 만한 변이를 설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간에, 사물에는 ‘본래의 모습’이 있고, 역사적인 변이는 그 ‘본래의 모습’이 외래 이물질의 혼입에 의해 ‘오염’된 탓에 일어나는 것이므로, 외각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치워 없애 원래의 모습을 되찾음으로써, 사물은 본래 갖고 있던 힘과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다… 는 사고방식은 전 세계에 존재한다. 종교 뿐만이 아니고, 정치체제나 종족 문화에 관해서도 똑같은 말하기 방식을 편애하는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많다. 아마 어떤 나라든, 국민의 과반수는 이 ‘본래의 모습’ 가설에 친화적일 것이다. 실제로 ‘신불 분리’도, 아리아 인종 우위설도, Make America great again도 구조적으로는 썩 닮아있다. 물론, 이 말하기 방식이 지지받는 이유는, 그만큼 매혹적인 서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기본적으로 이런 유형의 사회이론에 강한 회의감을 갖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단순화’는 거의 항상 폭력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잡하고도 폭력적인 가설적 이론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을 계속 끌어당기는 것은, 간단히 말해 그것이 가장 지적 부담이 덜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시마조노 선생은 필자만큼 명확하게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아마 내심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아니라면 미안합니다).
따라서 간단하게 설명 가능한 ‘신토의 본래 모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신토의 본래 모습’이란 게 향후 (시마조노 선생 자신의 연구를 포함하여) 역사학이나 고고학의 성과로서 검출된다면, 그때 비로소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토에 대해 ‘말이 되’게끔 하는 계기는 아마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필자는 본다. 그렇다 함은, 고대의 ‘근원적 신토에 해당하는 제례와 신앙’에서 시작해 현대의 신사 본청(本廳), 일본회의(日本會議)와 같이 정치적으로 과잉된 신토, 필자가 지금 닦고 있는 것처럼 좀 더 생생한 ‘애니미즘적인 것’에의 호감, 이 모두를 포함하는 ‘신토’는 항상 열린 결말이자 생성 과정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마조노 선생이 신토에 대해 ‘교양’이라는 입장을 채택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양’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한 가지의 학설을 선포하는 일과는 다르다. 단일 학설을 서술하는 작업이었다면, 자기 가설에 적합한 사례만 열거해놓는 한편, 자기 가설에 합치하지 아니하는 사례는 중요성이 없으므로 물리친다. 하지만, 그것은 ‘교양’이라는 교과목의 취지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교양으로서의 신토론’은 도리어 신토의 역사적 변이종들을, 극단까지 일탈한 것을 포함해, 될 수 있는 한 다양하게 망라하려 한다.
확실히 그러한 망라적인 기술(記述)은 ‘신토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단일 해석을 재빨리 터득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권장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신토 문제를 매듭지어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 싶’을 것이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마조노 선생은 종교학자 호리 이치로의 다음과 같은 어록을 서두 근처에 인용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그대로 시마조노 선생의 신토 이해와 일맥상통한다고 봐도 좋다.
“<신토>라는 이름의 근저가 포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일본적 잠재 의식은, 필자의 지견으로는, 주로 일본 사회의 구조와 가치체계, 이들과 표리를 이루는 신에 관한 관념과 의례를 포함하는 종교 구조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19쪽)
과연 그 말대로라면, 그 ‘일본적 잠재 의식’은 21세기 일본인의 내면에도 역시 심층 차원에서의 접합이 이루어져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신토에 대한 깊고 넓은 지식을 얻기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이상의 비중으로 우리 일본인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책인 것이다.
(2022-06-15 17:33)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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