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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위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5. 5. 22:24
라는 잡지가 예전에 있었다. 어느새인가 극우적인 논조로 바뀌고 질 나쁜 기사를 게재하게 되더니 그새 폐간되었다. 아직 멀쩡한 잡지였던 시절에는 곧잘 긴 글을 써줬다. 아래 글도 그중 하나다. 2012년 2월에 쓴 것인데, 10년 전 얘기다. 박동섭 선생이 ‘읽고 싶습니다’ 하여 하드디스크를 샅샅이 뒤져 찾아냈다. 10년이 지나도 읽을 만하다는Readable 느낌이 들어서, 다시금 남겨둔다. 요전번에 철학자 와시다 기요카즈 선생과 ‘3.11 이래 일본의 위기적 상황’에 관해 대담을 가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자를 맡아 와시다 선생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취지의 모임이었으므로, 초반에 저는 “우리는 지금 포스트 글로벌화 세계라는, 전대 미문의 역사적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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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신앙과 수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5. 1. 20:03
한국의 박동섭 선생이 ‘우치다 다쓰루 연구’를 위해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있다. 열람코자 하는 주제가 있는데, 한국의 도서관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하기에 서랍을 한참 뒤적거리다 보니 나왔다. 2013년 4월에 썼던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상당히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박 선생에게 보내는 김에 블로그에도 올리기로 한다. 23년간 고베 여학원 대학이라는 미션스쿨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때까지 기독교와의 접촉은 거의 없었지만, 근무하면서 교목과 대화하고, 예배를 보며, 때로는 권유받아 성경을 논했다. 유대교 철학이 전문인지라 비 기독교인이지만, 은 학생 시절부터 계속 읽었다. 필자가 연구했던 것은 에마뉘엘 레비나스라는 프랑스의 유대계 철학자이다.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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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The Godfather>와 <북쪽 나라에서北の国か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4. 20. 22:34
‘KOTOBA’라는 잡지가 공개 50주년을 기념하여 특집호를 냈다. 거기서 기고를 의뢰받아 아래와 같이 썼다. 이상한 제목을 붙여버렸다. 허나 이 두 드라마를 서로 비교해 보면 시리즈의 예상치 못한 층위에 가닿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이 두 드라마를 함께 논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술자리에 동석한 젊은 벗의 불평을 듣고서부터였다. “직장 상사가 라는 드라마를 보라고 권하여 봐봤더니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밝혔더니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라는 힐난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유감이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 어째서 남들은 이런 이야기에 감동하는 것인지요?” 하고 그가 물어서, 잠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답했다. “로 말할라치면, 가족이라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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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요일에는 학교 수업이 없을 예정입니다." (<에센셜리즘>)인용 2022. 4. 17. 15:23
(...) 심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학교의 교장선생님 케네스 피터스는 모든 교직원에게 다음 주 목요일 세크라멘토에서 있을 교수법 세미나에 참석하라고 말했다. 세미나 강사들로는 인류학자 마거릿 메드, 대학총장 로버트 메이너드 허친스 박사, 캘리포니아 주지사 에드먼드 브라운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학생들은 심스가 말하는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정신없이 타자기를 쳐댔다. 그리고 모든 학생이 저마다 작성한 기사 첫머리를 제출했다. 학생들은 '누가, 언제, 무엇을, 왜' 등의 요소들을 넣으려고 애를 썼다. (...) 심스는 학생들이 제출한 것들을 훑어본 다음, 그것들을 옆으로 밀쳐놓았다. 그러고선 학생들 모두 잘못된 기사 첫머리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될 기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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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기와 ‘반항’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4. 13. 22:01
어느 농업지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위기와 식량 안보에 대해 써달라고 부탁받았는데, 완전히 딴소리를 써버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여러 매체에서 의견을 물어왔다. 이리하여 농업신문으로부터도 원고 청탁이 왔다. 이는 심상찮은 일이다. 필자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전문가가 아니다(물론 농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2014년 크림 반도 합병 때도, 그 이후의 친러파와 분리파의 동부 분쟁 때도 누구 하나 의견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 둘 다 푸틴이 행한 ‘특수한 군사 작전’이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위기였지만, 당시 필자 주위에서 ‘우크라이나 정세의 향방’이 화젯거리가 되었던 적은 없었고, 물론 원고 청탁도 없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정말로 돌아가는 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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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치유의 이야기 ー <귀멸의 칼날>에 대한 구조분석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4. 11. 22:13
트위터에도 썼는데, 어느 대학 입시 문제에 아래 글이 쓰였다 하여, 기출문제집에 수록하고자 한다는 연락이 있었다. 대체 뭘 썼었는지 생각해보니 ‘주간 금요일’에 기고한 론이었다. 상당히 진귀한 글감을 찾아내 작문하였던 것이다. 2020년 12월에 썼던 글인데, 내용을 깨끗이 잊어버린 탓에 컴퓨터를 샅샅이 뒤져 찾아내 읽어보니 이게 꽤 재밌는 내용이기에 블로그에 올려둔다.만화를 논하는 건 오랜만이다. 수 년 전에 집영사集英社가 원피스 스트롱 워즈>란 책을 내게 되어가지고 당시 론을 쓴 게 마지막이었다. 오다 에이치로 씨의 는 세계 누적 발행부수 4억 7천만 부라는 천문학적 히트를 친 작품이었기에, 집영사 측에서 ‘왜 이리 잘 팔리는가?’ 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해서 썼다. 아마 ‘그저 엄청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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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오사카총영사의 1000일>인용 2022. 3. 10. 23:28
2018. 10. 2 자연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계속 배출하는 일본의 힘 노벨상 발표 시기가 시작되면서, 1일 저녁 가장 먼저 발표된 노벨 의학생리학상 공동 수상자에 일본학자가 포함됐다. 세포의 면역체계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길을 연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인으로서 노벨상을 타는 것이 24번째-물리 9명, 화학 7명, 의학생리 5명, 문학 2명, 평화 1명-여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일본 전체가 환영 분위기로 들썩이고 있다. 노벨상의 권위가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간사이지역의 열기는 더욱 뜨겁다. 수상자가 교토대 교수이고, 혼조 교수의 연구 성과를 치료약-항암제 옵디보-으로 만들어 생산하고 있는 회사가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오노약품공업이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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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3. 10. 23:14
미국에서의 자유와 통제 미국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자유를 논하는 마당에 어쩌자고 미국 얘기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 일본인에게는 ‘자유는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다’라는 실감(實感)이 희박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독립전쟁이나 시민 혁명을 경유하여 시민적 자유를 획득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자유를 얻고자 싸우고,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 자유를 손에 넣은 뒤, 자유가 극히 다루기 어렵다는 사실을, 까딱 잘못하다가는 얻은 것 이상으로 크게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섬뜩해지는 경험을 우리들은 집단적으로는 해본 적이 없다. ‘자유’는 freedom/Liberté/Freiheit를 번역한 것인데, 패키지화된 개념으로써 근대 일본에 수입되었다. 순수 일본어에는 ‘자유’에 상응하는 어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