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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태규 <오사카총영사의 1000일>
    인용 2022. 3. 10. 23:28

    2018. 10. 2 자연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계속 배출하는 일본의

     

    노벨상 발표 시기가 시작되면서, 1 저녁 가장 먼저 발표된 노벨 의학생리학상 공동 수상자에 일본학자가 포함됐다. 세포의 면역체계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길을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인으로서 노벨상을 타는 것이 24번째-물리 9명, 화학 7명, 의학생리 5명, 문학 2명, 평화 1명-여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일본 전체가 환영 분위기로 들썩이고 있다. 노벨상의 권위가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간사이지역의 열기는 더욱 뜨겁다. 수상자가 교토대 교수이고, 혼조 교수의 연구 성과를 치료약-항암제 옵디보-으로 만들어 생산하고 있는 회사가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오노약품공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혼조 교수의 면역을 이용한 암 치료 방법 개발은, 감염증에 대한 페니실린의 발명에 필적한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그동안 암은 수술, 방사선, 항암제의 세 가지로 치료를 해왔는데, 면역치료 방법이라는 새 치료법이 더해졌을 뿐 아니라 암 정복의 가능성까지 열었다는 것이다.

     

    이런 훌륭한 성과도 성과이지만, 나의 관심은 줄기차게 노벨상, 그것도 자연과학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하는 일본의 저력이다. 혼조 교수는 수상자로 발표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이란 상을 주는 단체가 독자의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 상을 받으려고 오래 기다렸다든가 그런 생각은 없다.” “호기심과 간단히 믿지 않는 것, 확신할 때까지 한다. 내가 머리로 생각해 납득할 때까지 한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싶다는 것,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 교과서에 나오는 것을 의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혼조 교수의 이 말들에 답이 있다고 본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이런 탐구심이 발휘되도록 오랜 기간 기다리면서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기본적인 토대의 차이는 보지 않고 압축 성장을 이룬 것처럼 핵심 분야 몇 곳을 선정해 돈을 집중 투자하면 바로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이곳 대학에 찾아와 “일본은 한국보다 영어 실력도 약한데 어떻게 노벨상을 많이 타느냐”고 묻기도 한다. 어이가 없다.

     

    그런데 부임 이후 이곳 대학들을 방문해 학자들을 만나 보니 “이제 몇 년 뒤부터는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푸념을 해댄다. 일본 대학에도 최근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풍조가 강해지면서 시간이 들고 성과가 불확실한 기초분야를 경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어떤가.


    2020. 3. 3 신종 코로나 이전과 이후

     

    코로나 19’ 감염 확산 문제가 세계를 흔들어 놓고 있다. 일본도, 오사카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 19를 막는 것을 전투에 비유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강적과의 싸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항 무기가 없는 적이라는 점에서 새롭고, 잘 죽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하다. 더욱이 이 놈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난적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체가 파악된다면, 그동안 해온 것처럼 인간의 지혜로 퇴치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동안 최소의 피해로 억제되길 바란다.

     

    코로나 19는 일본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아마 나중에 되돌아보면 세상이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코로나 사태를 대하는 일본사회를 보고 놀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베 신조 총리가 2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돌연 전국 초중고의 휴교를 요청한 것이다. 말이 요청이지 사실상 휴교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조치의 효과 여부를 떠나 관련 부처와 아무런 사전조율도 없이 총리 독단으로 이런 조치를 내리는 것은 일본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사전에 촘촘하게 매뉴얼을 짜놓은 뒤에도 허점이 없는지 따져보고 또 따져본 뒤 일을 하는 것이 일본식, 또는 일본의 장점으로 알려져 왔었는데, 이번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번 일이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기’식의 전통적인 일본의 의사결정방식을 바꾸는 전기가 될지, 개인적으로 흥미가 크다.

     

    또 한 가지는 일본 시민들의 휴지 사재기다. 마스크를 만드느라 휴지 만들 재료가 없다는 가짜뉴스가 계기가 되어 사재기 소동이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지진과 해일 같은 대재난에도 정연하게 질서를 지키며 대응해 온 일본시민들을 지켜봐온 나로서는 충격이 크다. 실제 동네의 슈퍼를 몇 군데 돌아봤는데 진열대에 휴지가 남아 있는 곳이 없었다. 이 또한 이번 사태가 일본시민들의 의식을 공공우선에서 각자도생으로 바꾼 것인지, 개인적으로 관심이 크다. 적어도 코로나 여파로 사회의 신뢰가 상당히 깨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전철 안에서 기침을 했다고 비상정지 벨을 눌렀다거나 서로 큰소리로 언쟁을 벌였다는 뉴스도 심상치 않다. (하략)


    2019. 1. 21 문제의 연속 풀이 과정이 인생이고 역사

     

    최근의 어려운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고 복잡하다. 어떤 전문가는 사상 최악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문제에서 최상급 표현을 쓰는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지적인 게으름의 반영, 또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쉽게 동원되는 것이 최상급 표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세광 사건과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있었던 1970년대 중반보다 지금의 한일관계가 더 나쁜가 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과연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지금의 한일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일관계는 분명히 나쁘다. 그런데 나쁜 것의 내용, 질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일본 학자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한일 사이에 있었던 역사인식의 갈등은 정치적 수준-나의 생각으로는 ‘수사적 수준’-에서 진행되었었는데,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 노동 판결을 계기로 법률적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나는 이 학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한일 갈등이 이전처럼 정치적인 타협으로 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본다. 왜 한일 갈등이 법적 갈등까지 왔는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그러나 최근의 한일 갈등은 예전과 양태가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웃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다’는 말처럼 정부 사이의 관계가 나빠지면, 일반 국민의 관계도 나빠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최근은 정부 관계자와 매스컴이 갈등의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민간 차원에선 별로 그런 모습을 느낄 수 없다. 주위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감촉도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이런 현상을 ‘관랭민열官冷民熱’로 정의한다. 관이나 매스컴은 치열하게 치고받는데, 일반 시민은 담담하거나 오히려 교류가 더욱 활발하다. 실제 한일은 지난해 정부 사이의 갈등 속에서도, 1050만 명 이상이 서로 양국을 오가는 1천만 명 교류 시대를 열었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날까. 여기부터는 나의 가설이다. 첫째,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의 인식 차이다. 둘째, 상대국을 직접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이다. 셋째, 전문가 집단과 보통 시민 사이의 차이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위의 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1월 28일 자로 발행된 일본 주간지 <아에라>에 이런 현상을 다룬 기사가 났다. 기사 내용이 나의 가설을 모두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일 갈등의 새 모습을 파악하는 데 유용했다. 문제를 잘 알아야 해답도 잘 구할 수 있다.

     

    어디서든 문제는 항상 나타난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문제의 연속적인 풀이 과정이 우리의 삶이고 역사라면, 우리는 좀 더 냉정하고 겸허하게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고 본다.


    2018. 6. 30 ‘밥을 같이 먹는다는 중요성

     

    어제 저녁 오사카부 공립학교에서, 한국 뿌리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우리 것’을 가르치는 민족학급 강사들을 만났다.

     

    행사 제목은 거창하게 ‘총영사와 민족강사들의 대화’라고 되어 있으나, 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민족강사들과 밥 한 끼 나누자는 생각으로 만든 자리다. 내가 그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밥을 같이 먹는 것이 힘이 된다면 좋겠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과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를 잘 몰랐는데, 최근 부임 인사를 하면서 만난 야마기와 주이치 교토대 총장으로부터 받은 책을 읽고, 같이 밥 먹기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바 있다. 고릴라 연구의 일인자인 야마기와 총장에 따르면, 고릴라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같이 밥을 먹는 것은 밥을 함께 먹는 사람끼리의 ‘평화선언’ 같은 것이란다. 그는 1992년(2002년의 착오인 듯함-인용자 주)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는 했지만 같이 식사를 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만약 그때 같이 두 사람이 식사를 같이 했으면 두 나라는 완전히 화해하지 않았을까 라고 말했다.

     

    나도 뒤돌아보면, 밥을 먹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먹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역시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하는 것은 서로 이해하고 서로 힘을 주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이번 행사를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또한 같이 밥 먹기에 버금가는 중요한 일은 현장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2시간 반 정도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내가 머리로만 알던 민족교육의 실상과 중요성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책상에서는 1년이 가도 알 수 없는 것을, 현장은 몇 시간 안에 알려주기도 하는 것 같다.

     

    “점점 쇠퇴하고 왜소화하는 재일동포 사회를 부활시킬 막중한 책임을 진 민족강사 여러분, 우리의 작은 소찬이, 그리고 몇 시간 동석이 큰 힘으로 전화하길 빕니다.”


    2018. 6. 26 아프리카 출신 우스비 사코 교토세이카대 학장의 매력

     

    오늘 지인의 소개로 교토세이카대를 방문했다. 학부과정에 만화, 디자인, 대중문화, 예술, 인문의 5 학부, 대학원에 만화, 디자인, 예술, 인문의 4개 연구과를 두고 있는 독특한 대학이다. 모두 4천여 명이 재학 중인데, 외국 유학생 비율이 20%를 넘고 그 중 한국 학생이 가장 많다고 한다.

     

    교토시와 함께 일본 최대 규모의 ‘교토국제만화박물관’을 운영하는 등, 만화학부가 유명하다. 이곳의 만화학부 졸업생들이 한국에서 교수 등으로 많이 활약하고 있고, 만화학부에 입학하려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곳의 학장-총장 격-이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우스비 사코 교수-올 4월 취임-라는 점이다. 거의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사코 학장은 한국 사정에도 매우 밝은 지한, 친한파로, 한국과 교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교토대에서 건축학으로 석사, 박사과정을 이수한 사코 학장은 지성과 긍정의 이미지를 발신하는 호인이었다. 만남 자체가 즐거운 사람이랄까. 앞으로 한국의 학술, 문화교류에 좋은 동반자가 될 것 같다.

     

    (인용자 주: 졸역 2020.08.03 - [번역] - 우스비 사코(Oussouby SACKO) 선생에 부쳐 참조)


    2020. 5. 13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우치다 다쓰루 선생과 만남

     

    요즘처럼 외교 활동이 전면적으로 멈춰선 적이 언제 또 있었을까. 물론, 전쟁 때도 작동한다는 외교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범인은 ‘코로나 19’다.

     

    (…) 이런 상황 속에서 13일 귀한 손님을 만났다. 한국에도 최근에 많이 알려진, 일본의 비판적인 지식인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다.

     

    최근 <원숭이화하는 세계>를 읽고 공감하는 바가 많았는데, 얼마 전에 그가 주도해 엮은 <길거리의 일한론>이란 책이 나왔다. 그를 포함해 11명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쓴 글을 모은 것이다.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라 생동감이 있고 구체적인 게 특색이다. 마침 필자 중에 알고 지내는 이지치 노리코 오사카시립대 교수 등 몇 사람이 있고, 우치다 선생이 사는 곳이 고베여서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지치 교수한테 부탁을 했더니 곧바로 13일로 약속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가이후칸-개풍관-이라는 합기도 도장-우치다 선생은 합기도 7단의 무술인이다- 겸 자택으로 가서 만난 뒤 점심까지 포함해 3시간 동안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최근의 코로나 사태를 비롯해, 간사이지역의 재일동포 문제, 한국정치, 한일관계 등 자유롭게 화제를 옮겨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더 못 나눈 얘기는 코로나가 좀 잠잠해진 뒤 다시 만나 나누기로 하고 헤어졌다.

     

    우치다 선생은 프랑스 사상이 주 전공인데, 거의 모든 사회 현안에 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활발하게 발신을 하고 있다. 저술만 해도 단독 및 공저를 포함해 수십 권이나 된다. 한국에도 벌써 10여 권이 번역됐다. 우치다 선생은 무술로 다져졌기 때문인지 70살인데도 젊은 청년 못지않은 다부진 체격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깊숙한 눈매에는 지성미가 넘쳐흐른다.


    2021. 3. 28 두껍고 깊어진 한일 양국 시민교류

     

    벚꽃의 만개와 함께 오사카의 3월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나의 오사카 생활도 부임 3 다가오면서 결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3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27일에는 좀 바빴다. 우선 고시엔구장에서 오전 11시 40분부터 열린 교토국제고와 도카이다이스가오고의 센바츠 2차전-16강전- 경기를 응원하러 갔다. (…) 운동장을 총총히 빠져나와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도가이자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 운영하는 합기도 도장 가이후칸-개풍관-으로 갔다. 이날 오후 3시부터 가이후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직 코로나 감염 사태가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강연은 대면과 비대면의 혼합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가이후칸에 직접 온 사람이 40명 정도, 웹으로 참석한 사람이 100명 정도였다.

     

    강연은 1부에 내가 오사카총영사로 일하면서 느낀 점을 말한 뒤, 2부는 우치다 선생과 대담, 3부는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강연이 모두 끝난 뒤 우치다 선생의 집에서 일부 참석자들과 함께한 뒤풀이까지 포함하면 5시간여에 걸친 ‘마라톤 풀뿌리 교류’였다.

     

    가이후칸에 들어가자마자 참석자들 가운데 여성이 많다는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강연을 하면서는 참석자들의 집중력과 한일 풀뿌리 교류에 관한 뜨거운 관심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날 강연을 통해 한일 사이의 정치관계는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와 우호는 이전 어느 때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어졌다는 걸 생생하게 체감했다. 이렇게 두껍고 깊어진 한일 양국 시민교류를 어떻게 나라 사이의 우호로까지 연결시켜 나갈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해 한일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놓여 있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2021. 6. 9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우치다 다쓰루 선생의 과찬

     

    오사카총영사로서 3 1개월 여의 근무를 마치고 6 2 귀국했다. 지금 2주간의 격리생활을 하며 문화 격차 조정도 함께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귀국은 번잡하고 낯설었지만, 물샐틈없는 대한민국의 코로나 방역태세를 실감하는 기회였다.

     

    (…) 격리기간 중 우연히 트위터를 살펴보다가 총영사 재직 중 알게 된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 나에 관한 칼럼을 <시나노마이니치신문>에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프랑스 문학, 철학을 전공한 우치다 선생은 지금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다. 그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기보다 그의 저서 가운데 20여 권이 이미 우리나라에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쉬울 것 같다. 시나노마이니치신문은 나가노현에 본거지를 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신문-1881년 창간- 중 하나이다. 일본에서도 진보 성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문이다.

     

    8일자 석간에 실린 칼럼을 지인을 통해 어렵게 구해봤다. 제목부터 본문까지 너무 과분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재직하는 기간이 아니라 내가 귀국한 뒤 이런 칼럼을 써 주어서 기뻤다. 우치다 선생이 또 다른 출발선에 선 나에게 보내는 ‘최고의 격려’로 받아들인다. (하략)

     

    *

     

    2021. 10 <오사카총영사의 1000일> 한국어판 서문

     

    (…) 현지에서 책을 낸 뒤 나온 여러 가지 반응 중에서도 두 가지가 특히 마음 속 깊이 남는다. (…)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 내가 귀국한 뒤 <시나노마이니치신문>-2021년 6월 8일자- 석간 1면에 쓴 ‘오태규 총영사에 관해’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우치다 선생은 이 칼럼에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불릴 만큼 어려운 시기에 나와 같은 사람이 한일 가교 역할을 맡아주어 일본에도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두 글 모두 나에게 앞으로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해 달라는 부탁을 담은 ‘애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략)

     

     

    오사카총영사의 1000일 : 기자출신 외교관의 한일우호 분투기 / 오태규 지음 / 서울 : 논형,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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