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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MZ세대 일중독자” 또는 “애플워치 찬 일잘러”에 관한 명상 (<불쉿 잡>에서)인용 2021. 11. 26. 07:00
“지금은 게으른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런 자들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게으름이 찬양받지 않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 기간 동안 가난해진 관객들은 플레이보이 백만장자들의 연애 행각을 그린 상류사회 영화를 좋아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영웅적인 CEO와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하는 그들의 일중독 스케줄을 그린 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낀다.* 영국의 신문과 잡지들은 알고 보니 매주 의례적 역할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써야 해서 사생활을 누릴 여유가 거의 없는 왕실 가족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써 댄다.
(* 저자 주- 내가 아직 자유방임론자들과 논쟁을 하던 1990년대에, 그들이 거의 예외 없이 노동에서의 불평등성을 정당화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사회적 부의 어떤 불균형적인 몫이 상위층에 분배되고 있음을 보게 될 때, 그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은 “내 눈에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일하거나 더 영리하게 일한다는 것을 보여 줄 뿐” 이라는 노선을 따라갈 것이다. 바로 이 공식이 그 전설적인 매끄러운 혀 덕분에 내 머릿속에 언제나 박혀 있다. 물론 기업체 회장이 버스 운전수보다 1000배는 더 힘들게 일한다고 진심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니 ‘더 영리한’이라는 말을 끼워 넣는 것이다. 이 말은 ‘더 생산적인’이라는 의미를 함축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당신이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는 방식’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철저하게 무의미한 순환성(‘그들은 영리하기 때문에 부자이기 때문에 영리하다.’ 등)에서 이 문장을 구해 주는 것은 최고위층 부자들이 (거의 모두) 직업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스스로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에 두라는 압박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 내가 볼 때는 주위 공기에 이런 태도가 만연해 있다. 우리는 잡담할 때 드러나는 사교적 반응처럼 그것을 코로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그것은 여기 나오는 사회적 관계의 지도 원리 가운데 하나다. 유급 노동을 통해 자신의 심신을 파괴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올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아이들 또는 다른 어떤 것을 위해, 빌어먹게도 종일 일하느라 만나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가?” (352~353쪽)
“우리가 더 힘들게 일하는 것은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들고 서로에게 스시를 대접하는 데 시간을 전부 쓰기 때문이 아니다. 산업은 갈수록 더 로봇화되어 가고, 진정한 서비스 부문은 전체 고용의 대략 20퍼센트 정도에서 변동이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일터에서 겪는 고통이 은밀한 소비자적 쾌락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괴상한 사도마조히즘적 변증법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동시에 깨어있는 시간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직업이 차지한다는 사실은 우리가(케이시 웍스가 그토록 압축적으로 표현한) ‘삶’이라는 사치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누릴 시간이 있는 유일한 쾌락은 결국 은밀한 소비자적 쾌락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종일 카페에 앉아서 정치 토론을 하거나 친구들의 여러 다리에 걸친 복잡한 연애사에 대해 떠들어 대는 것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사실은 종일 걸린다.) 반대로 보디빌딩을 하거나 요가 수업을 듣는 것, 배달 음식 주문하기, <왕좌의 게임> 몇 편 보기, 핸드크림이나 가전제품 쇼핑하기 등은 모두 일하는 사이사이나 일한 뒤 휴식 시간으로 주어지는 독립적이고 예측 가능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예를 모두 ‘보상적 소비자주의(compensatory consumerism)’라 부르고 싶다. 그것은 당신에게 삶이 없다는, 혹은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보상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403쪽)불쉿 잡 :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 지은이: 데이비드 그레이버 ; 옮긴이: 김병화 / 서울 : 민음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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