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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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원통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6. 13. 14:12
5월에는 하구로에 찾아가서, 호시노 후미히로 센다쓰[先達]를 중심으로 우치야마 다카시 씨, 후지타 잇쇼 법사와 필자 이렇게 넷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6년째다. 야마부시[山伏]와 철학자, 운수승(雲水僧), 그리고 무도가가 한패를 이루니만큼, 언제나 엄청나게 이상한 이야기가 나온다. 올해 역시 이상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우리의 심포지엄에 앞서 태고의 달인[和太鼓] 하라다 요시코 씨의 신내림 의식이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큰북의 리듬과 호흡의 리듬이 딱 들어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필자가 맨 처음으로 발언하게 된 참이니만큼, 우선 이 큰북에 관하여 서두를 떼었다. 인간은 이런저런 도구를 자기 신체와 닮은 꼴로 창조해 낸다. 그렇지 않으면 다룰 수조차 없다. 팔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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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에서의 한가운데와 칼끝이 그리는 반원형에 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5. 21. 15:52
‘무도의 현대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어떤 시에 위치한 체육협회에서 강연했다. 청중의 대다수는 각종 경기종목 단체의 임원분들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힘차게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말씀하신 내용 가운데 등장했던 「정중선」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물었다. 자기 나름의 해답을 이미 알고 있어서 필자의 지견이 옳은지 그른지를 음미한답시고 심사하는 듯한 물음이 아니었다. 정말로 알고 싶다는 태도를 그 진지한 시선에서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분은 수련을 통해 ‘정중선(正中線)’에 관한 실감나는 신체 감각을 갖고는 있지만, 지도에 임하면서는 그 실감을 어지간해서 말로 전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정중선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신과 상대의 중심[中心]을 맺는 공간적인 자리매김을 이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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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각오가 아니 선다면 공부를 하지 말라인용 2024. 4. 28. 19:17
메이지 시대의 책을 읽다 보니 메이지인의 ‘날카롭고 위세 좋은 말’의 기세에 신체가 익숙해졌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기질이 굳센 사람으로 불합리한 것을 싫어하고 잘난 체하는 녀석을 싫어하고 근성이 비열한 자를 싫어해서 버럭 화만 내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깔보고 자신을 높이지 않는 점이 멋지다. 내전으로 에도 전체가 난리가 났을 때도 충성을 뽐내거나 시류에 편승하려 하지 않고 세속에 구애됨 없이 훌훌 유연하게 지냈다. 유키치는 에도가 불바다가 될 위기에도 자신이 운영하는 학당 게이오의숙이 비좁다며 보수 공사를 했다. 에도 어디에도 이런 시국에 보수 공사를 하는 집은 없었다. 목수도 미장이도 일이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노임은 헐값이었지만 아주 기뻐하였다. 친구가 찾아와서 이럴 때 공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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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쓸 수 없는 학생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4. 5. 16:24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학생들이 글자 쓰기를 버거워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교과서를 노트에 필사만 해 오라는 숙제를 매번 내고 있건만, 해 오는 학생은 절반 이하다. 수업 중에 칠판에 적힌 내용을 노트에 베끼도록 하는 지시에도 학생들은 따르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저 ‘게으름 피우느라 이러나’ 싶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반드시 그렇다고만은 할 수는 없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소설 『코』를 쓴 저자를 묻는 시험 문제에 ‘니콜라이 고골(ゴーゴリ)’이라고 답을 쓴 학생이 있었다. 고골도 똑같은 이름의 단편을 썼기는 했지만, 교과서에서 읽었던 글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것이었다. 어째서 일부러 고골이라고 썼느냐고 학생에게 물었더니, ‘한자로 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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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해의 우치다 타츠루 뉴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 26. 15:30
2023년 마지막 날을 맞았으므로, 상례로 행하는 ‘올해의 중대 소식 발표’를 하겠다. (1) 오른쪽 무릎에 인공 관절 수술을 받았다. 이에 티타늄 무릎이 되었다. 2019년 11월, 지독한 감기가 들고 나서, 오래전 다친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을 견디기 어려워졌다. 스프레이형 진통제를 도포하고, 보호대를 칭칭 감고서 수련을 계속했으나, 점차 참을 수 없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키도를 할 수 있기는커녕 일상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모리오카에 갔을 때 비행기에서 발을 질질 끌면서 내리려니까 승무원분이 ‘휠체어를 준비해 드릴까요?”라고 물었을 정도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미야케 접골원 원장인 미야케 마사키 선생의 조언에 따라 외과적 수술을 받기로 했다.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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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적 사고」에 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 20. 19:36
박동섭 선생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도서출판 유유’에서 낼 책에 실을 질의응답 가운데 하나다. ー 우치다 선생님이 쓰셨던 『무도적 사고(지쿠마 문고)』 『무도론: 이제부터 갖춰나갈 심신의 자세(가와데 쇼보)』 『내 신체는 머리가 좋다(문춘문고)』 같은 책들을 참말로 흥미롭게, 삼가 읽었사옵니다. 이렇게나 기막힌 논고를 저 혼자만 읽기가 아까운 나머지,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무도적 사고의 참모습’을 한국 독자들에게도 꼭 선보이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출판사에 번역 출간 제안을 해봤습니다. 근데 상대측은 ‘「무도적 사고」요?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라며 단번에 거절해 버리더군요. 아무래도 한국인들한테는 ‘무도적 사고’라는 개념이 익숙지 않아서 그랬을 겁니다. 이 일화를 기화(奇貨)*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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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의 본질이란 무엇인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 5. 20:12
도서출판 유유라는 곳에서 필자의 책을 내주기로 하였다. 일본인인 나에게 한국 출판사가 찾아와 기획 단계서부터 그들이 오리지널하게 제안해서 내는 책이다. 유유출판사 편집자가 보내온 질문에 답하는 구성이다. 이제까지 스무 문항에 답했다. 다음 글은 19번째 질문이다. 어지간해서는 일본 독자가 물으러 오지 않는 스트레이트한 질문이다. ー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수많은 저서를 통해 ‘학술’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또한 그것을 다음 세대에 ‘패스’ 혹은 ‘선물(present)’할 필요성을 역설하십니다. 이번에 저희와 기획하신 이 저서 역시 일종의 중요한 ‘학술’ 활동의 일환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학술’의 본질이란 무엇인지를 여쭙고자 합니다. 조금 아까 제가 생각하고 있다는 ‘문무 양도(文武兩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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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를 어떻게 발견해낼 수 있을까요?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26. 12:29
한국의 모 출판사와 함께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는 일본인 저자 우치다 타츠루 책’을 내기로 했다. 상대 측에서 질문을 보내주면 거기에 필자가 답하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낸다는 취지이다. 그중에 흥미로운 질문이 있었다. ‘멘토는 어떻게 찾아내면 좋을까요?’ 라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온라인 상에서의 의사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덕에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을 멘토로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라인 선배’ ‘온라인 멘토’같은 말도 있습니다. 좋은 멘토와 멘티, 혹은 바람직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란 어떠한 모습이겠습니까? 아래 내용은 이 질문에 대해 필자가 보내는 답장이다. 멘토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생애 스승으로 우러러보면서, 계속 그 뒤를 따라갈 사람도 있고, 일시적으로 A지점부터 B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