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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멘토를 어떻게 발견해낼 수 있을까요?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26. 12:29

    한국의 모 출판사와 함께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는 일본인 저자 우치다 타츠루 책’을 내기로 했다. 상대 측에서 질문을 보내주면 거기에 필자가 답하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낸다는 취지이다.

     

    그중에 흥미로운 질문이 있었다. ‘멘토는 어떻게 찾아내면 좋을까요?’ 라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온라인 상에서의 의사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덕에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을 멘토로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라인 선배’ ‘온라인 멘토’같은 말도 있습니다. 좋은 멘토와 멘티, 혹은 바람직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란 어떠한 모습이겠습니까?

     

    아래 내용은 이 질문에 대해 필자가 보내는 답장이다.

     

     

    멘토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생애 스승으로 우러러보면서, 계속 그 뒤를 따라갈 사람도 있고, 일시적으로 A지점부터 B지점까지 길안내를 해 주기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큰 강 앞에 이르렀을 때, 나룻배가 와서 사공 양반이 ‘여기 탈래?’ 하고 권하여서 거기에 따르고, 보통은 건너편에 이른 뒤에 서로 헤어지기 마련입니다만, 그 사공 양반이 없었다면 ‘건너편’에는 다다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공 양반도 멘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도관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가 유술을 배우고자 결심한 것은 메이지 10(1877) 그가 18세 때의 일입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 직후*여서, 대부분의 전통 무도는 이제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없어서, 전국시대 이래의 도통은 소멸해 있었습니다.

    (* 넓은 의미에서의 폐도령廃刀令을 이름. 단발령과 유사한 맥락 - 옮긴이)

     

    당시 실직하게 된 유술 사범들은 접골 의사로 생계를 이어갔으므로, 지고로는 이러한 접골의들을 이곳저곳 수소문해 ‘유술을 지도해주지 않겠습니까’ 하고 부탁했습니다만, 어딜 가나 ‘이제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야기 사다노스케라는 접골의를 만나 ‘나는 예전에 천신진양류라는 유술을 수련하였으나 지금은 가르치지 않는다. 허나 도반인 후쿠다 하치노스케는 아직 제자를 두고 있는 모양이니 소개해주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지고로는 그렇게 후쿠다에게 천신진양류를 사사하고, 후쿠다가 사망한 후에는 동류인 이소 마사토모, 기도류의 이이쿠보 쓰네토시에게 사사하여, 메이지 15년에 스스로 유파를 세우는데 이를 강도관 유도라고 칭했습니다.

     

    후쿠다, 이소, 이이쿠보 이렇게 세 명은 실제로 가노 지고로에게 유술을 가르쳐주었으므로 당연히 그의 ‘멘토’라고 불려도 좋을 것입니다만, 저는 야기 또한 ‘멘토’로 꼽아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 사람이 주선해주지 않았다면 ‘앞길’로 나아갈 수 없었다는 의미에서는, 그 역시 훌륭한 멘토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시로 따지자면 ‘나룻배 뱃사공 양반’입니다.

     

    ‘멘토’라는 개념을 그렇게까지 호들갑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의 밑으로 들어가 사사하게 된 이상 ‘생애에 걸쳐 계속 존경받을 수 있는 스승’이 아니고서는 멘토로 삼지 않는다면, 그 멘토의 허들이 너무 높아지고, ‘이 사람도 불합격, 저 사람도 불합격’ 하는 식으로 차례차례 배제하다 보면 최종적으로는 ‘결국 죽을 때까지 누구의 밑에서도 배우지 못하고 말았다’ 는 결말에 이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멘토라는 말을 좀 더 넓은 의미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는 ‘일생 동안의 스승’ 뿐만 아니라, ‘나룻배 뱃사공 양반’도 포함됩니다. 배우는 측 역시 ‘오픈 마인디드’가 아니고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세운 엄격한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을 것을 결의했던 사람’과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저마다가 갖고 있던 지견을 배울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놓고서 과연 둘 중에 누가 지적 성숙에 이를 찬스가 많을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요.

     

     

    애초에 어째서 ‘배움’을 행할 적에, 그렇게 어깨가 잔뜩 굳어 긴장을 하는 것인지요. 실은 요전에 한국 청년들과 환담을 했을 때 일인데, ‘우치다 선생께 질문할 사람 있나요?’ 하고 사회를 맡아 준 박 선생이 묻자, ‘여쭈고 싶은 것은 있는데요, 여기서 선생님께 대답을 들어버리면, 자력으로 그 물음과 마주할 찬스를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라고 발언했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하이고 참말로 너무나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그러지 말고 쉴 새 없이 물어보면 될 것을. 질문을 하고 대답을 얻었으되, 딱히 그 대답에 집착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근데 이 대답 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흘려듣고 말면 됩니다. ‘옳다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머릿 속 데스크탑* 어딘가에 옮겨 두면 됩니다. 나중에 뭔가 쓸모가 있을지도, 전혀 쓸모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나중이 되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 책상 위 작업대, 혹은 컴퓨터 바탕화면이라는 뜻도 포함 – 옮긴이)

     

    혹시나 해서 말인데, ‘남에게 뭔갈 묻는다’는 것을 ‘빚을 진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컨설턴트’라든가 ‘매니저’ 같이,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돈을 챙기는 사람들이 지금 어마어마하게 있으니까요. 눈 뜨고 코 베이는 거죠. 꼭 돈이라고 할 것도 없이 ‘존경’ 이라든가 ‘경모’ 같이 나중에 상환해야 할 ‘부채’가 생깁니다. 그러면 성가시므로 묻지 않기로 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틀린 겁니다. ‘답을 내는 것’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상대가 누구든 질문이 항상 같기만 하면, 이에 같은 답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멘토는 이와 다릅니다. 같은 질문이라도 상대에 따라 답이 바뀝니다.

     

    저는 이전날 합기도 스승인 다다 히로시 선생과 장시간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20년도 더 된 일입니다. 그때 선생님의 도장 내부에 위치한 단칸방에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짓고서, 두 사람이 나란히 도장의 현관까지 나왔을 때, 문득 제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라서, ‘선생님, 무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눈 앞에 있던 ‘각하조고(脚下照顧)’라는 현판을 슥 가리키시더니, ‘우치다 군, 이걸세. 『발 밑을 주의하라』 야.’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짜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정말 제 질문을 꿰뚫어 보는 것마냥, 선생님께서는 순식간에 딱 하고 맞아떨어지는 대답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달인이라는 존재는 엄청나다고 생각했고, 이때의 일화를 여러 군데에 기고했으며, 저희 합기도 문인들에게도 이 얘기를 곧잘 들려주고는 했습니다.

     

    다다 선생님의 대답은 컨설턴트나 매니저가 기계적으로 출력하는 ‘이미 정해진 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마주하고 있는 찰나의 상대에 대해, 그 자리에서밖에는 나오지 않는 ‘유일 무이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뭔가를 묻는다는 것은, 본래 이러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남에게 무심코 질문을 해서 대답을 떡하니 얻어버리면, 자칫 자신의 성장이 멈추어 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은 일절 하지 않아도 되는 거거든요. 알겠습니까?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조삼모사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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