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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월간일본 인터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1. 24. 14:23
ーー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충돌을 반복해 왔습니다만, 이번에는 폭력성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슬람 조직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구 가자에서 공격을 감행했고, 이에 이스라엘은 ‘전시 상황’을 선언한 이래, 철저한 보복 공격을 행하고 있습니다. 서구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고 있지만, ‘자위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비판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저도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태는 근대적인 국민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포스트모던적인 비국가 집단에 의해 벌어진 테러도 아니거니와, 단순한 민족전쟁이나 종교전쟁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어느 것도 아니면서, 이 모든 것과도 같은, 복합적인 다툼입니다. 이러한 사태를 적절히 표현할 어휘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선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잘 설명할 수 없는, 해결 방법을 알 수 없는’ 스스로의 무지와 무능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측의 인식에는 전근대적인 종교 전쟁, ‘성전’ 사상에 경도된 면이 있습니다. 이번 하마스는 비전투원을 포함하는 이스라엘 국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를 ‘신 나치’라고 부르는데 연설에서 ‘우리는 광명 민족이고 그들은 암흑의 민족이다’라는 선악 이원론적인 이해를 내비쳤습니다.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human animals)과 싸우고 있다”고 못박았습니다. 이스라엘에 의하면 이번 하마스와의 전투는 두 나라가 각자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행하는 ‘보통 전쟁’이 아니라, 인간이 악마와 투쟁하는 ‘신화적인 전쟁’이 됩니다. 이러니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상대가 인간이 아니니까요.
전시 국제법에서는 공격 가능 대상이 적 전투원과 군사 기지 등에 한정됩니다. 투항자, 부상자, 환자 등 비전투원은 공격 목표로 해서는 아니 되며, 의료시설이나 교육시설, 종교시설 등도 군사적 공격 목표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물론 실제 전투에서는 시민이나 비 군사적 시설에 ‘불똥이 튀는’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교전시에는 ‘불티가 피해로 비화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그치게 할 책임이 모든 군대에게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空襲)은 적국의 구성원이 원리적으로 모두 잠재적인 전투원이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전투원과 비전투원 사이에 선을 긋는다는 것은 분명히 곤란한 일입니다만, 교전에 임할 때에는 그 선긋기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합니다. 자신이 죽이려는 상대가 전투원인지 비전투원인지를 알 수 없을 때에는,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주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의 실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만, 범하지 않아도 되는 죄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윤리적 명령입니다. 매사는 원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이스라엘은 적국의 구성원인 이상 어린이라도 자라서 병사가 될지 모르며 의료시설에서 치료 받은 인간은 다 나으면 전선에서 싸울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어린이도 죽이고 병원도 폭격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노사이드’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입니다.
일련의 사태는 근대 국가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절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사태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이 순간에도 속속 살해당하고 있는 가자 사람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정전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이건 어휘 문제가 아니고 시간 문제입니다.” 이 말은 원래 감염의 확산을 앞에 두고 이 증상이 페스트냐 아니냐를 한없이 따지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의사 리외가 소설 <페스트>에서 했던 대사입니다. 이번 가자 사태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격언입니다.
ーー 우크라이나 전쟁도 성전으로 간주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러시아도 전근대적 패러다임으로 퇴행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푸틴은 ‘탈 나치화’ 명분을 내세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나치화하고 있다는 것은 완전한 난센스이자 망상입니다. 하지만 망상에조차도 충분한 현실 변성력(變成力)이 있습니다.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에 의해 실제로 도시가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국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국민 국가의 방위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투에 국제법적인 합리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러시아의 행위를 부인했으며 우크라이나의 자위에는 이유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군사적 지원은 NATO 국가들만으로 한정되었지만, 도덕적 지지는 전 세계가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전쟁 발발 직후에 젤렌스키가 이스라엘 전면 지지라는 악수를 둠으로써, 우크라이나를 향한 도덕적 지지는 한순간에 사그라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가졌던 최대의 전력은 러시아에 대한 윤리적 우위성이었지만, 가자 시민을 학살하는 이스라엘을 지지함으로써 그 윤리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찌기 우크라이나를 지지했던 똑같은 시민들이 이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피로’가 퍼지고 있는 이런 시점에 젤렌스키의 ‘실언’은 혹여 그의 정치적 구심력에 치명상을 안겨줄지도 모릅니다.
ーー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며 근대적인 국제 질서가 동요하는 한편, 전근대적 패러다임이 부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한 자리에 놓고 논할 수는 없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독립해 있는 국민 국가간의 전쟁입니다. 반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의해 오랫동안 분단되고, 억압받고, 국가 기능을 빼앗겼으며, 아직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로서의 정치적 자립에 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문화적으로도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동일한 슬라브 민족 ‘형제국’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종교가 다른 완전한 ‘이방인과도 같은 남남’입니다. 그러므로 가령 향후 화평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두 전쟁 사이에는 결과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ーー 팔레스타인에서의 전쟁은 ‘21세기의 중동은 누가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겨누고 있습니다.
‘중동의 관리자’는 역사적으로 보면 13세기부터 1922년 까지는 오스만 제국, 전간기에는 영국,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으로 대략 이전되고 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약체화시키기 위해 아랍에는 후세인-맥마흔 서한으로 독립을 약속하고, 유대에는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National home)’을 약속하는 ‘양다리 외교’를 행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의 원인입니다.
대전간기에 ‘중동의 관리자’를 맡았던 영국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력이 쇠퇴하면서 ‘세계 제국’으로부터 대서양에 위치한 일개 섬나라로 ‘축소’ 하는 전략 전환을 했습니다. 이때 ‘중동의 관리자’ 지위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아갑니다.
하지만 미국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결국 중동의 관리에 실패합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모든 나라에서 미국은 ‘서구적 민주주의’를 이식할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미국이 중동에 강한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석유 자원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동 전역을 팍스아메리카나 질서 하에 두면서 그곳에서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하는 데 드는 ‘통치 비용’보다, 미국 내부에서 자원을 조달하는 데 드는 ‘기술개발 비용’이 더 저렴하다고 인식한 시점에서 미국에게는 중동을 고집할 필연성이 사라졌습니다.
그러한 연고로 오바마는 2013년에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리트리트(대 후퇴)’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중동을 통제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중동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상회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2021년에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이라크 주둔 미군의 전투 임무를 종료했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의 관계 계선을 주도하여 2020년에는 이스라엘과 바레인, UAE 사이의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와의 국교 정상화 협상을 추진했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은 힘이 많이 드는 ‘중동 관리’라는 일을 이스라엘에게 대신 맡기고, 자신들은 슬쩍 물러나겠다는 판을 짰습니다. 하지만 ‘후퇴’의 대가로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중동 역내에서의 자유방임권’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이 조치가 역효과를 낸 것이 이번 가자 침공이라고 봐도 좋겠죠.
미국은 혹을 떼어내고 싶었겠지만, 도리어 우크라이나 문제에 겹쳐 이스라엘 이라는 문제를 떠안게 되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전선을 2개 만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지원 때에는 발걸음을 맞춰 주었던 유럽 국가들의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원’에 기우는 형국이라,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을 은밀히 지원하는 미국에게 도덕적 지지를 보내지 않습니다.
미국은 상당히 속수무책 상태입니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의욕적인 까닭은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 판국에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된다면 마침내 전선이 3개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마 중국은 지금 궁지에 몰린 미국에게 ‘생색’을 내는 동시에 대중국 포위망을 완화시키기 위한 협상을 끄집어 내려고 할 겁니다. 이때는 미국이 양보할 수밖에 없겠지요.
ーー 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남으로써 미국과 중국은 거리를 좁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물론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옛날에 영국이 미국에 패권을 양도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과 미국은 민족적으로 앵글로색슨 ‘형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갈 시 예전만큼 원활하게 실현되지는 않을 겁니다. 상당히 복잡하고 삐걱거리는 ‘미-중 협조’가 되겠지요.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이런 선택지밖에는 없습니다. 앞으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도, 중동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외교력과 경제력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에서는 중국을 이용하고 싶겠지만, 국제 사회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을 더 이상 확대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 미-중 이외에 복수의 키 플레이어를 관여시켜 문제 해결에 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감쇄시키는 전술을 채택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중동의 경우를 놓고 보면 튀르키예가 이 상황에서의 키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쟁과 관련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전쟁 범죄 국가’로 정죄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에 대해서도 ‘십자가와 초승달 사이의 전쟁을 일으킬 셈인가’ 하고 엄하게 비판합니다. 이슬람 세계의 리더로서는 당연한 발언이겠습니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중국과도 미국과도 러시아와도 ‘등거리 외교’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스만 제국에는 600년에 걸쳐 안정적으로 중동을 통치해 왔던 실적이 있습니다. 그 역사적 경험을 발판 삼아, 이제 새로이 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된 튀르키예가 중동 정세 안정에 적극적으로 관여다는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 어느 나라의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닙니다. 일단 미국에게 있어 튀르키예는 NATO 동맹국이며 자국 내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튀르키예와 중국은 둘 다 ‘제국의 강역 문제(원문 邊境 제국의 변두리 획정 - 옮긴이)’와 관련해 반드시 충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서역에서 중앙 아시아를 거쳐 흑해에 이르는 현대판 실크로드입니다. 동시에 이 지역은 그대로 튀르키예의 시선에서 보면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 신장 위구르에 이르는 ‘수니 파 튀르크 족 벨트’이기도 합니다. 둘 중 누가 이 지역의 ‘종주국’이 될지, 그 패권을 둘러싸고 언젠가는 반드시 충돌합니다. 이러한 잠재적인 긴장 관계를 이용하면 미국은 튀르키예와 중국 사이에서 ‘지하공작’을 기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미국 국무부는 그렇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겁니다.
ーー 이스라엘 쪽에서 정전이 되고, 신 중동질서가 실현된다 할지라도,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은 지난한 과업입니다.
팔레스타인만큼은 이렇다 할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1948년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원주민이었던 아랍인들은 그들의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이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아랍의 대의’를 내걸고 1948년부터 73년까지 4차례의 중동전쟁이 일어났는데,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는 아랍 세계를 압도했습니다. 이 전쟁을 끝마치기 위해 1978년에 지미 카터 대통령이 나서서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 사이에 캠프데이비드 합의가 맺어졌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자리에 전쟁의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대표가 빠져 있었고, 베긴은 이집트와의 화합을 이룩한 뒤 1982년에 레바논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거점을 공격하고자 레바논 침공을 실행했고, 사다트는 이스라엘과 합의했다는 죄목 즉 ‘아랍인 동포의 배신자’로 비판받았으며 훗날 암살당하고 맙니다.
1993년에는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페레스 외무장관, 그리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아라파트 의장이 ‘양국 공존’을 목표로 하는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들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만, 라빈 총리는 역시 자국의 과격파에게 암살당하고, 아라파트 의장 사후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분열했습니다. 그렇게 주류파인 파타가 요르단 서안을 지배하고, 비주류파인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지배하여 오늘날과 같은 분단국가에 이르게 됩니다.
두 차례에 걸쳐 평화 조약이 체결되고, 당사자 다섯 명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면서도 결국, 평화는 달성되지 못했습니다. 이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리 합리적인 평화 협상이라 할지라도, 각 당사자 나라의 국민으로부터 ‘감정의 비준’을 얻지 않으면 사문(死文)이 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국민 감정이 평화 조약 그 자체의 합리성보다 문제시됩니다. 사람을 가장 강력하게 충동질하는 것은 분노, 증오, 굴욕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따라서 포퓰리스트 정치가는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정치 자원으로써 이용하여 권력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감정은 그리 간단히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포퓰리스트는 국민의 분노, 증오, 굴욕감을 수단으로 하여 정치 목표를 달성합니다만 점차 폭주하는 그 감정들의 고삐를 다룰 수가 없게 되면서 자기 자신이 정치 생명을 잃게 됩니다. 아마 이스라엘은 그렇게 될 겁니다. 네타냐후 정권은 ‘역사상 가장 우파에 선’ 정권으로 일컬어지는데 이는 이스라엘 국민의 분노와 증오를 정치 자원으로 ‘활용’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해 왔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10월 7일에 하마스가 일으킨 테러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했던 것은 정보 기관의 실책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 실책 탓에 1200명의 사망자가 나오면서 이스라엘 국민의 분노에 불이 붙었습니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심하고 있던 네타냐후로서는 이것을 정치적 추진력으로 삼았습니다. 분노와 증오를 자신의 정치적 구심력을 위해 이용한 결과, 앞으로 가령 네타냐후 정권이 정전에 합의하려고 해도 국민 감정이 그것을 허락치 않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두 번의 합의와 마찬가지로, 화해에 합의한 자가 아군으로부터 ‘배신자’라고 매도당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ーー 국제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부정적인 감정’을 누그러뜨려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은 이를 진혼하고, 살아남았지만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해야만 합니다. 추도(원문 供養; 불교 용어이자 일본어인 ‘供養’에는 구체적인 어떤 것을 바친다는 함의가 있음 – 옮긴이)란, 죽은 이들과 관련하여, 그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가, 그것을 될 수 있는 한 정밀하게 구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적인 감정’에 불을 댕기기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분노와 증오를 달래기 위한 활동입니다. 그렇게 죽은 이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한번 태어나면 이제 죽은 이들이 ‘유령이 되어 나타나는(원문 祟る; 원령에 의해 화를 입음 - 옮긴이)’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활동입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10년 간, 구한말부터 일제 시대, 군사 독재 시대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속속 발표되어 왔습니다. 자국에 트라우마적 경험, 역사의 어두운 면이 있음에도 그것을 무릅쓰고 엔터테인먼트화해왔습니다. 저는 이것을 국민적 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진혼’ 의례라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조선인 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이 이례적인 흥행작으로 떠올랐습니다. 모리 다쓰야 감독이 ‘역사의 어두운 면’인 후쿠다무라 사건*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터테인먼트로써 재구성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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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대지진 직후 치바 현 등지의 자경단 200여 명이 관동을 통과하던 약행상 15명 가운데 연소자 등 포함 9명을 살해하고 또한 린치한 사건. 약행상들이 다른 지방 억양을 쓰고 있다는 이유 즉 조선인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자행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피해자들의 신원은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 옮긴이)
이야기가 엔터테인먼트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등장인물들에게 ‘깊이’가 있어야만 합니다. 얄팍한, 기호적인 ‘착한 사람’ 이나 ‘나쁜 사람’이 줄줄이 등장해 보았자 감동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단순한 ‘권선징악 서사’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한 사정을 안고서 운명에 끌려다니는 데 있다는 겁니다. 어느날 어떤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역할을 맡게 되는, 저항하기 어려운 숙명 앞에 인간이 놓여지는 모습에서 감흥이 일어납니다. <후쿠다무라 사건>은 그러한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죽은 이들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공양합니다’. 죽은 이들에게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끝내버리는 게 아닌, 말 한 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는 인간의 ‘깊이’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현재 한일 관계는 개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만, 그 배경에는 이러한 문화적인 노력의 집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죽은 이의 진혼과 산 자의 위로를 통해서 부정적 국민 감정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민족 사이에 일어나는 증오의 연쇄라는 ‘저주’는 풀리지 않습니다.
ーー ‘세상에는 목숨이나 평화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고 방식이 있습니다. 그러한 초월적인 가치관에 기반해 싸우고 있는 당사자에게 ‘목숨과 평화를 지킵시다’라고 호소해도 과연 설득이 가능할까요?
십자군이나 지하드, 조국 방위 전쟁(본래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즉 독소 2차 대전에서 원용 - 옮긴이) 등, 어느 시대든 현세의 행복은 부정되더라도 ‘성전’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세의 행복을 갈망하게 되는 이유는 현세가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테러리즘은 지금 여기서의 물질적, 정신적인 ‘굶주림’이 낳는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다양한 사람들의 의식주 욕구가 채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이나 집단에 대한 귀속감을 얻을 수 없다면 ‘굶주림’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민(移民)의 의식주 해결에 관해서는 어떻게든 제도적으로 갖추어져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이민에 의한 테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열등감이나 굴욕감을 맛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러리스트가 됨으로써 자존 감정과 집단에 대한 귀속감을 회복하려고 하는 이유는 지금 속한 사회에서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테러리즘과 싸운다’는 것은 ‘테러리스트를 근절’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리즘을 낳게 되는 분노와 증오, 굴욕감을 누구에게도 선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우원한 목표이기는 합니다만, 테러리즘을 근절하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ーー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하여 ‘양국 공존’이라는 정치적 해결이 제시되고 있습니다만, 참된 해결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원은 유럽의 반유대주의입니다. 근대 반유대주의는 에두아르 드뤼몽의 <유대인의 프랑스>(1886년)로부터 시작됩니다. 드뤼몽은 프랑스가 정치, 경제, 언론, 학문 등 전 영역에서 유대인의 지배 하에 있다는 ‘음모론’을 전개했는데 이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그 와중에 일어났습니다.
유대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은 <유대 국가>(1896년)를 집필하면서 근대 시오니즘 운동의 주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유대인을 위한 나라’의 건설 필요성에 뜻을 굳히게 된 것은 취재차 찾은 파리에서 드레퓌스 대위의 군적 박탈식에 몰려든 군중들이 보인 격앙된 반유대 감정을 접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유대인은 유럽에서 나가라’ 하는 프랑스 반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헤르츨은 ‘유대 국가’의 건설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애초에 이 아이디어를 낸 것은 ‘반유대주의의 아버지’ 드뤼몽입니다. 그는 유대인에게 ‘유대인은 유럽을 나와 자기들만의 나라를 건국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거기서 긍지를 갖고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충고’ 했습니다.
헤르츨이 ‘유대 국가’의 건설 예정지로 검토한 땅 중에는 우간다, 아르헨티나, 시베리아 등이 있었습니다. 다시말해 ‘어디든 상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어이 근대 시오니즘은 이전부터 여겨져 왔던 종교적 고토를 향한 개척(원문 入植 - 옮긴이) 활동으로서 알게 모르게 그리고 꼼꼼하게 움직였던 종교적 시오니즘과 합류하는 형식으로 ‘시온의 땅’ 인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국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근대 국가가 만들어진 까닭은 애초에 유럽이 유대인과의 공존을 거부했던 것이 간접적 원인입니다. 문제의 근원은 ‘타자와 공생’할 수 없는 인간의 비관용적 성격입니다. 그것이 근대 반유대주의를 낳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낳고, 오늘날의 가자 학살을 낳으며, 더 나아가 새로운 반유대주의까지 낳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해법입니다. 반유대주의와 팔레스타인 문제는 뿌리가 같으니까요. 이것들을 낳은 것은 모두 ‘타자와의 공생을 거부한 마음’입니다. 그렇게 함락당하기 쉬운 심정에 사람이 굴복하는 한 똑같은 종류의 문제는 무한하게 재생산됩니다.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는 타자와도 공생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 그 이외의 해결책은 없습니다. (11월 4일 인터뷰어 구성 杉原悠人)
(2023-11-16-09:2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조삼모사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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