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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령 성월의 계절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18. 19:48

    필자가 주재하고 있는 무예 도장 및 인문학 학당 ‘가이후칸’ 사람들은, 의외의 얘기이지만, 매년 ‘성묘’를 다니고 있다. 가이후칸에서 수련하는 문인들을 위해 2019년에 합동 묘비를 세웠던 것이다. 묘를 찾아서는, 언젠가 거기에 묘를 쓸 예정인 사람들이 모여서 불교식 제사를 지내고, 다같이 음복한다. 이게 올해로 5년 째에 접어든다.

     

    발단은 가이후칸에서 사회인 대상으로 열렸던 연구강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여성 수강생이 이런 물음을 던졌던 것이다. ‘부모님의 묘까지는 제가 책임을 지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도대체 누가 제 후사를 맡아줄 수 있을까요?’ 문인 가운데에는 비혼을 비롯한 독신인 분, 자녀가 없는 분이 적지 않다.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사후에 ‘누가 내 묘를 제사 지내줄 것인가?’ 하는 질문이 절실한 영적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한 고로 ‘그럼 이참에 가이후칸에서 묘를 만들어드리자’고 필자가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추도해 주는 사람’을 그들은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무도의 도장이라는 것은 필자 자신이 스승으로부터 배운 바 있는 신체 기법이나 세계관을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계승하기 위한 장소이다. 문인들 또한 그들의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전수한다. 그런 식으로 도통(道統)이 계승되는 한, 수행자의 면면은 바뀌어도, 수행을 꾸려나간다 하는 그 자체는 바뀌지 않고 지속된다. 이렇듯 우리 도장에서 묘를 세우게 되면, 도장이 계속되는 한, 추모객이 끊길 일은 없다(그럴 것이다).

     

    ‘누가 나의 후사를 돌보아 줄 것인가?’라는 질문은 심각한 영적 화두이다. 일본에는 ‘노()’라는 고전극이 있다. 이 노()에는 복식 몽환 노라는 게 있는데, 여기서는 막간 뒤에 죽은 이의 영혼을 맡은 배역이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간다. 그들은 산 자를 향해 “자신의 사후 공양을 부탁한다*”며 간청한다. 그것에 대한 확약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은 성불할 수 있는 법이다.

    (원문은 고전 일본어로 跡(あと)弔いて賜()び給へ. 옮긴이)

     

    거창하게 ‘봉영(원문 跡(あと) - 옮긴이)’이라고는 말해도, 그렇게까지 긴 기간동안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잠시동안만,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해주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렇게 해주던 벗이나 지인들도 언젠가는 염라국에 간다. 그렇게 된 판국이고 보면, 이제 필자 같은 건 잊어주어도 상관 없다. 따라서 십삼 회기 쯤에서 법사를 마무리지어도, 죽은 이는 과히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고유명을 가진 개체로서 행해지는 법사는 그 정도로 충분하고, 이후에는 총체적으로 ‘선조’ 대열에 끼어도 나쁠 건 없다.

     

    대체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물학적인 죽음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죽음에 이르기 시작하는 법이다. 눈이 어두워지고 이가 빠지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등의 모습으로 신체 부위가 조금씩 그 기능을 정지해 간다. 필자도 일부 치아를 임플란트로 대신했으며, 한 쪽 무릎에는 인공 관절을 삽입했으므로(20234- 편집주), 거지반 사이보그인 셈이다. 수렵 채집 시절이었다면 사냥을 할 수도 없거니와, 고기를 씹어 삼킬 수도 없으므로 엊저녁에 죽은 목숨이다. 다행히 의료 기술의 진보 덕분에 헛되이 나이나 먹고 있으되, ‘이미 저 세상 사람인 듯한 기분’이다. 이리하여 사람은 점차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래도 대신에, 죽었다곤 해도 두부 모 가르듯이 딱 죽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사람이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이걸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식으로 죽은 자를 호출하여, 산 자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의 규구*로 삼는다.

    (* 규구준승規矩準繩의 준말. 컴퍼스와 자, 수준기와 먹줄을 이름. 이것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라는 의미로 확장됨. 출전은 『맹자』 이루 상편. 레비스트로스는 또한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는 산 자와 산 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한다”고 했다 한다. - 옮긴이)

     

    필자도, 필자의 부친이 살아 계셨을 동안에는 아버지의 말씀을 그저 설교로만 여기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했던 것이다. 근데 이게 참,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종종 떠올랐다. ‘그랬구나.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었어’ 라고 깊이 깨달아, 마음 속으로 합장*을 하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른다.

    (* 옮긴이: 일본에서는 사후관과 관련, 불교의 영향이 깊다.)

     

    무릇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점점 죽어가고, 동시에 죽은 뒤에도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아마도 생물학적 죽음의 시점에서 13년 전쯤부터 단계적으로 죽음이 시작되어, 죽은 뒤 13년 쯤 걸려 완전히 죽음을 끝맺게 된다, 는 게 필자의 가설이다. 대저 사반세기에 걸쳐 인간은 천천히 죽는다. 어지간히 막막한 시간이 있는 것이다.

     

    보통 생각하는 죽음보다도 훨씬 일찍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므로, 미리미리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 그리고 또한 무덤에 간 뒤에도 생각보다 오래 살게 되므로, 되도록 산 자들이 빈번하게 회상을 해 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동안에 무엇을 미리미리 해 놓으면 좋을지, 그런 것들을 숙고하는 것이 중년을 넘긴 인간의 ‘영적 과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2023-09-30 09:2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조삼모사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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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부 코너

     

    1. 합동묘는 오사카 부 이케다 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묘비에는 「安定打坐」 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정토진종 여래사 측에서 법연을 베풀어 주십니다.

    건축가 고시마 유스케 씨의 설계라고 하는데, 이분이 개풍관(가이후칸)도 설계하셨습니다. 구경하러 가기 링크

     

    문의 https://nyoraiji.net/joint-cemetery/

     

    2. 이제는 여러분 모두가 알아두시는 게 좋을 듯해 기재해 둡니다.

     

    https://twitter.com/levinassien/status/1303581678070243328

     

    “지금 이걸 써 두어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을런지 모르겠는데, 내 장례식 때 운구차 출발하거든 BGM으로 Bruce & Terry Here comes the summer 를 깔아 주기 바랍니다. ‘절대 안 돼!’ 라고들 할 게 뻔하므로, 뜻 있는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들어가서 그걸 에어팟(원문 헤드폰. 옛날 초창기 워크맨 시절 그 헤드폰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 옮긴이)으로 슬그머니 청취해주세요.

     

    Beachboys, Jean & Dean, Bruce & Terry 등등, 당시 캘리포니아의 정신 나간 서핑 뮤직은 왠지 모르게, ‘극락세계(원문 서방 정토 - 옮긴이)로 떠나는 유쾌한 출항가’로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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