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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 이라는 기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16. 14:28
어떤 언론이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싣고자 하여 이에 관해 필자와 인터뷰를 가지고 싶다고 의뢰를 해 왔다. 필자는 근현대사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약간의 지식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도쿄에서 매년 열리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역대 도쿄도지사가 보내왔던 추도문을, 현임 도지사 고이케 유리코가 보내기를 거절했던 결정은 역사에 대한 그릇된 태도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말씀드렸다.
고이케 지사는 추도문을 보내지 않은 이유를 “무엇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인지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든다. 하지만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이상,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확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당시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지어낸 얘기가 아니냐’, ‘기억이 잘못된 것 아니냐’, ‘상반되는 증언도 얼마든지 나왔다’와 같은 ‘반증’을 들이밀면, 과연 고이케 지사가 말하는 대로 ‘명백한 역사적 사실’의 확정을 막을 수는 있다.
중일전쟁 중에 난징에서 일어난 시민 학살과 관련해, 1983년에 옛 제국 육군 장교들의 친목 단체인 가이코샤[偕行社]가 그들의 간행지에 다룰 목적으로 당시 현지에 있었던 군인들을 대상으로 체험 수기를 모집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학살이 존재했다는 비판에 반론하여 옛 육군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기획이었다. 그러나 정작 수기들을 살펴 보니 그중 많은 수는 군부에 의한 학살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가이코샤 측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솔직하게 군부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옛 일본군과 관련이 있는 자로서, 중국 인민들에게 깊이 사과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참으로 다 갚을 길 없는 비참한 사건이었다” 라는 사죄의 말을 남겼다. 필자는 이러한 양심적인 태도에 존경을 표한다.
하지만 이렇게 학살 사실을 인정했던 옛 육군 인사들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역사 수정주의자는 이후에도 끊임 없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수정주의적 반론’이 있는 한, 난징 학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의견이 있으며, 명백한 역사적 사실은 확정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며 사과를 거부하는 일도 이론상 가능한 것이다.
역사를 대하는 이런 태도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역사적 허무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좀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력 취임식 즈음에 백악관 보도관이 “과거 대비 가장 많은 인파가 취임식에 운집했다” 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기자회견에서의 지적을 받은 대통령 고문 켈리안 콘웨이는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또 하나의 사실>”이라며 보도관의 주장을 옹호했다. 영어 원문을 살펴보면 콘웨이는 ‘Alternative facts’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현실에 있었던 사실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저런 사실에는 그것을 대체하는 또다른 사실이 있을 수도 있다. 콘웨이는 이로써 어떤 선언을 했던 것이다.
이는 현재 전 세계에 극단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역사 허무주의의 이정표로 자기매김한 사건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분명히 그 누구도 ‘신의 관점’에 입각하여 역사를 한 눈에 조감할 수는 없는 이상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만이 객관적 사실이고,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주관적 환상에 불과하다’라고 배척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자신의 주관적 편향을 고려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억제적인 지적 태도를 필자는 높게 평가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명백한 역사적 사실』 을 논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는 데까지 나아가는 허무적 태도는 옳지 않다. 그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행위 그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역사가가 탐구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니다. ‘개연성 높은 사실’이다. 과거에 관한 ‘명백한 사실’ 이외의 언명은 전부 사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사학과 지성의 의의 모두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주간금요일 8월 26일)
관동대지진 당시에 일어났다고 하는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논했다. 그 글에 필자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 확정되어 있지 않은 한, 사과나 추도를 하지 않겠다는 건 역사학과 지성을 부정하는 일이다’라고 썼다. 직접적으로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보낼 추도문 전달을 거절했던 것을 비판하는 논지로 썼다.
이어서 이번에는 마쓰노 히로카즈 내각 관방장관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 내부에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내각 측의 사과나 위령의 취지가 없었다는 점을 인터넷 여론은 문제삼았다.
실제로는 내각부 중앙방재회의가 2009년에 작성했던 『재난 교훈의 계승에 관한 전문 조사 위원회 보고서』 내용 가운데 관동 대지진과 관련한 살상 사건의 일람표가 게재되어 있다.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내각부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각 관방장관은 이와 관련해 그것은 보고서를 썼던 ‘유식자[有識者]’*의 사견에 불과하며, 정부의 공식적 견해가 아니라는 궤변을 부렸다. 내각부가 공개하고 있는 공식적인 문서에 대해서까지 ‘작성자의 개인적 감상’이라는 발뺌이 통하리라고는 필자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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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식자: 현대적 어의는 일본 정부가 정책에 관한 공청회를 열 때 여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주로 일컫는다 - 옮긴이)
이 사건에 대해서는 ‘불령선인’의 범죄를 보도했던 당시 신문의 오보를 근거로 학살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적인 폭론이 지금도 유포되고 있다. 그러한 흑색선전을 허용하는 언론 환경이 실제로 일본 사회에 존재하고, 그것이 재일 코리안이나 재일 외국인을 향한 차별과 폭력을 구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쓰노 관방장관은 ‘사실 관계를 나타내는 공문서’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부 차원에서 사실 관계를 규명할 의사 또한 밝히지 않았다.
관방장관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과실을 범함 - 옮긴이)’는 이른바 ‘역사 전쟁’의 일환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역사 전쟁’이란 대일본제국이 과거에 범했던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해 그것을 ‘없던 일’로 역사를 덧칠하여, 주로 중국 한국에 대한 ‘윤리적 부채’를 해소하려 드는 기도를 이른다.
이러한 역사 바꿔치기는 용납될 수 없다. 생생한 비유를 들어보겠다. ‘사체’를 골판지 상자에 담아놓고, 테이프로 칭칭 감아 구겨넣어 숨기려 해도, 부패하는 냄새는 떠오르게 마련이며, 급기야는 그 장소를 머물기 어려울 정도로 불쾌한 장소로 만들어 버린다. 자기 나라의 역사가 갖고 있는 어두운 면을 은닉하는 행위가 이와 비슷하다. 은폐해 놓았던 것은 부패함으로써 부활[腐乱]하여, 결국 다른 질병의 발생원이 된다. ‘억압된 사념은 정신 증상으로 발현됨으로써 회귀한다’는 프로이트의 탁견처럼 말이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이 가장 간과하는 사항은 거짓말은 원래 나쁘다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벌을 받는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잊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는 국제법상 중립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일에 협력했다. 비시 정부의 관료는 레지스탕스를 처형하고,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에 보냈다. 하지만 드골 장군의 ‘위업’으로 프랑스는 전승국으로서 전쟁을 끝마쳤다. 허나, 그건 과연 프랑스에게 다행한 일이었을까. 2차 대전 이후에 프랑스에서는 독일 부역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은폐되고, 역사학자들 또한 비시의 비인도적인 정책에 관해서 연구하기를 극구 자제했다. 그렇게 ‘프랑스는 항상 정의로운 전쟁에서 싸워왔다’는 ‘수정된 역사’를 정사(正史)로 채용한 탓에 프랑스인은 2차 대전 이후 베트남과 알제리에서의 비인도적인 폭력 행사를 자제할 수 없었으며, 지금도 깊은 사회적 분열에 고통받고 있다. 여기에는 ‘프랑스는 항상 정의로웠다. 프랑스인에게는 반성할 과거와 부끄러워할 과거가 없다’는 역사 수정이 관여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역사 수정으로 한줌의 자존을 탈환해도, 그 나라는 결국 몇 배나 되는 굴욕과 손해를 나중에 다른 형태로 지불하게 된다. 이제는 슬슬 이걸 꼭 알아야 할 때다. (주간금요일 9월 6일)
(2023-09-25 08:5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조삼모사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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