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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의 표상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13. 12:00
일본의 인터넷 상에서 최근 개봉된 영화 <오펜하이머>에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핵을 투하하는 장면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논란이 되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징>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마찬가지로 원자폭탄을 다룬 연출을 맡았다. 그 영화에서 배트맨은 고담시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원자폭탄을 도시로부터 6마일 떨어진 ‘안전한 해상’에 투기(投棄)한다. 하지만 배트맨과 시민 모두 피폭된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는 네바다 원자폭탄 실험장을 헤매던 존스 박사가,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리자마자 모델하우스의 냉장고에 몸을 숨긴다. 이에 따라 그는 핵폭발의 와중에도 다소의 타박상을 제외하고는 무사했다.
어째서인지 미국 국민은 핵무기라는 것을 ‘크기가 좀 커다란 폭탄’ 정도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 자기 나라가 소유하고 있는 무기에 대해, 이렇게 중대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역시 일종의 ‘병’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어째서 미국 국민은 핵무기의 파괴력과 독성을 이렇게까지나 과소평가하는 것일까?
그건 죄책감의 플립사이드일 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에의 원자폭탄 투하가 이루어진 뒤, 그 참상을 전해 들었던 미국 국민 사이에는 죄의식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등장했다. 주로 종교인들과 리버럴 사람들이었다. ‘패배할 것이 명약관화했던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20만 명의 시민을 살해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고 트루먼 대통령을 규탄했다. 1946년 도쿄 재판 서두에서 변호인 블레이크니 소령은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자, 계획했던 자, 그 실행을 명령했던 자 모두 살인자나 다름 없다’고 말하며 이러한 미국에는 ‘평화에 대한 죄’를 심판할 권리가 없다고 논했다.
이러한 죄책감이 미국 내부의 반핵 여론을 조성해낼 것을 우려한 스팀슨 전 육군성 장관은 1947년에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100만 명의 미국 병사가 목숨을 구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어떠한 통계적 근거도 없었지만, 미국 국민은 이러한 주장을 급거 받아들였다. 원자폭탄 투하에 따른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후 미국 국민의 공식 견해가 되었다.
허나 이 또한 어떤 종류의 역사 왜곡(원문 歴史修正; 역사 수정 - 옮긴이) 이다. 한 번 내뱉은 거짓말은 마지막까지 둘러대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 국민이 ‘원폭은 그저 사이즈가 커다란 폭탄이다’라는 ‘이야기’를 이후 계속 복용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억압당한 의식은 증상으로 회귀해 영화 <오펜하이머>처럼 생각지도 못한 기회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주간 아에라AERA 9월 6일)
(2023-09-25 08:5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조삼모사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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