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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에는 반드시 사서가 필요하다 "학교 도서관" 질문세션 (1/3)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12. 19:10

    (가장 많았던 질문이 ‘게이트 키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사서의 구체적인 자질 차원의 문제인데요, 게이트 키퍼론을 현실 문제로 받아들이자면 어떠한 업무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인가, 이상론과 현실론이 양립할 수 있는가. 말하자면 게이트 키퍼 역할을 맡고 있는 도서관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실질적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또한 시대 흐름에 따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의 균형도 문제입니다. 최근 교육 당국이 다급히 현장에 주문하고 있는 게 정보통신 친화적 환경입니다만, 이게 과연 말하자면 ‘주술적 효과’와 나란히 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신 사서분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사서 교사단을 유심히 살펴보면 무척이나 미스테리감 넘치는 선배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 강연을 들으러 온 저희로서는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하니까, 어떤 방식으로 갈피를 잡으면 좋을까, 교육 효과 측면도 따져보고 싶다 하는 그런 질문을 우선 드립니다.)
     
     
    여러분이 이렇게까지 ‘게이트 키퍼’라는 키워드에 반응해주신 건,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는 자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어휘로 표현할 길이 이제까지는 없었을 뿐이죠. 제가 ‘게이트 키퍼’라는 말을 꺼내니까 여러분이 ‘맞아 맞아’ 하고 느껴주셔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완전 내 얘기야’ 라는 공감이 있으니만큼 이런 리액션을 해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이트 키퍼’라는 단어 자체는,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비로소 나온 말입니다.
     
    의료인이 되는 사람이든, 학교 교사가 되는 사람이든, 기본적으로 멘털리티에 일정한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거예요.
     
    특히 그런 경향성이 강한 게 교육자와 의료가입니다. 이 둘만큼은 세상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집단을 이뤄서 살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4가지가 기본이 된다고 봅니다. 이 네 기둥이 인간 사회를 떠받들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심판자입니다. 그 다음은 ‘힐러’입니다. 질환이나 외상을 낫게 하는 의료인입니다. 그 다음은 ‘가르치는 사람’, 교육자입니다. 그 다음은 ‘기도하는 사람’, 종교가구요. 집단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4개의 기둥이 필요불가결합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것들을 기본동사로 바꿔 말하면 ‘심판’ ‘치료’ ‘가르침’ 그리고 ‘기도’입니다. 이 4가지 기본 동사로 인간 집단의 생활이 영위되고 있습니다. 이 4요소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집단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집단이든 일정 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직종에 강한 끌림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기본적으로 ‘뭔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치유계’ 멘털리티가 장착된 사람은 아마 전체 인구 가운데 7~8% 정도는 항상 존재합니다. ‘가르치는 것이 좋은걸’ 하는 사람은 조금 많아서, 아마 전체의 10% 정도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전부 선생님을 하는 건 아니예요. 다른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어떤 계기로 어느날 문득 ‘선생님 좀 해 주지 않을래?’ 라는 말을 듣고서 ‘네 할게요.’ 라고 즉답하게 됩니다. 생전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은 겁니다.
     
    여기에 오신 분들도 당연한 얘기지만, 사실 어떤 종류의 경향성을 띠고 계신 분들입니다. ‘치유계*’ 이기는 한데, 간호사는 마녀 계보를 따릅니다. 의사는 말하자면 자연 과학 계통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의료의 묘한 맛은, 이렇게 자연과학자인 의사와, 마녀인 간호사가 협업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 치유계: 각주를 참조해 주세요. - 옮긴이)
     

     
    이거 진짜 재밌는 얘기니까 좀만 곁다리로 새 보자면요. 모 여대에서 간호학과가 신설되었을 적에 간호사이기도 한 그 학교의 선생님들과 <간호학 잡지>라는 곳의 주관으로 대담 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간호 교육, 여학생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뒷풀이 자리에서 잡담을 하다가 이런저런 내부 정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 옮긴이)
     
    간호사는 미스테리어스합니다. 별별 일을 다 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당직 병실에 예감이 좋지 않은 환자가 있으면 ‘사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아이고, 이분은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겠는데’ 라는 걸 압니다. 그분의 동료는 또한 이런 경우에 ‘종소리가 들린다’고도 합니다. 간호사들끼리는 알음알음 이런 얘기가 통하지만, 의사는 그런 사례를 전혀 믿지 않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으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어느날 그 병원 근처에서 사고가 일어나 물밀듯이 대량 중상자가 속속 실려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트리아지(triage)’를 시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정된 의료 자원의 분배를 위해 부득이하게 환자를 그 경중에 따라 처치 내용을 달리 해야 했던 상황이지요. 이렇게 된 이상 의사 역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이 두 명의 간호사에게 ‘냄새가 나는가?’ ‘소리가 들리는가?’ 하고 묻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런 특이한 능력이 있고, 또 이걸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의료가라는 말씀입니다.
     
     
    도서관 사서도 굳이 말하자면 마술을 부리는 권속이라고나 할까, 마법사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전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을 표면화하자면 ‘학교 교육 내부에 ‘게이트 키퍼’, 마법사의 지분을 확보하자’는 구호가 되겠고, 이걸 액면가 그대로 요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좀 어렵지만, 핵심적으로는 여러분의 마인드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학교가 정한 규칙이나 목표, 가치관 및 행동규범이 존재합니다만, 우리는 애시당초에 마녀이니까, 그것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활동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미안하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당신이 하는 말은 속세에서 하는 얘기잖아. 우리는 지식의 아카이브를 수호하고 있어. 단기 실적을 올리라느니, 증거가 어쨌다느니, 수치가 어쨌다느니, 평가가 어쨌다느니 하는 것과는 아예 상관이 없는 차원의 일을 하고 있다 이 말이야. 그럼 이만 수고.’ 이런 식의 삐딱한 태도를 기회 있을 때마다 내비치고 어필하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용자 수가 어쨌네, 열람 횟수가 어쨌네, 그런 건 당치도 않아. 도서관이란 건 원래 사람이 없어야 되는 곳이야’ 같은 식으로 말하는 거죠.
     
     
    학교로 말할 것 같으면, 뭐가 어찌 됐든 다양한 선생님들의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게, 한 명 한 명의 판단기준이 다른 게 바람직합니다. 가치의 척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서로 다른 사람이 많이 있는 게 아이들의 성숙 차원에서 가장 좋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가치관으로 규율되어 있는 사회는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로 숨막히는 곳입니다.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숙할 수도 없습니다. 학교 내부에는 이렇게 우리 아이들이 ‘쉴 만한 물가’가 필요합니다.
     
    양호실 등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양호실은 의료 원리가 지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의료 원리는 그 옛날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나온 이래로 변함이 없습니다. 상대가 어느 신분에 있는 인간이든,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그 진료 사항을 바꾸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의료는 시장에 내놓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상대가 누가 됐든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의료 행위를 베풀어야 합니다. 의사로서 그렇게 하겠다고 선서하는 겁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양호실은 학교 안에서도 딴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양호실에서만큼은 우리 아이들을 절대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병이 든 사람들을 누구든지 수용하여 치유해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학교 역시 이런 별세계가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학교 도서실은 별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장소에서는 적어도 ‘지(知)’에 관한 문제에서는, 일반 교실과는 완전히 다른 도량형이 적용됩니다. 그곳에 들어갔더니 숨을 깊게 쉴 수 있었다든지, 마음을 푹 놓을 수 있었다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이 모든 담론에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명의 아이를 살릴 수 있었으니까요. 학교 자체는 싫지만, 도서실에는 가겠답니다. 그런 느낌으로, 고유한,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다 좋으니까 마법사 같은 분위를 띄우며 업무에 임해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교장한테서 ‘이게 뭔짓거리들이냐?’ 라는 말을 들으면, ‘전 원래 마녀라서, 마법을 부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겁니다(웃음).
     
    이건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도서 문화 뿐만이 아니고, 진실된 의미에서의 학교 교육을 생각하자면, 학교 안에는 절대적으로 ‘마법사’가 존재해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해리 포터>와 같은 마법사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 속에서 선생님들은 전원 미스테리어스한 비밀을 품고 있지 않나요. 하지만 오늘날 학교 선생님들의 경우 미스테리어스함을 가질 것을 금지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부디 학교 안에서의 미스테리어스한 부분을 제발 맡아주시기를 저는 간곡히 바라고 있습니다.
     
     
    출처: http://blog.tatsuru.com/2023/09/09_0927.html
     
     
     

    옮긴이 횡설수설 각주: 일본의 젊은이들이 오랜 기간동안 쓰고 있는 표현인 ‘~계(系)’를 어떻게 매끄럽게 번역해야 할지가 아닌 게 아니라 항상 고충입니다.
    물론 ‘치유계’라는 표현 자체는 한국에도 퍼져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특정 집단의 은어라는 기원을 생각하면 지양해야 합니다. (‘코스프레’같은 경우와는 아직 결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지뢰계’ ‘양산형 지뢰계’ 같은 스트릿패션 사조가 홍대로 수입(?) 되고 있다는 것 같은데, 뭐 그런 겁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문화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어떤 언어를 깊이 파고들 수는 없는 법이고, 제 경우 그 문화는... 다도도 우키요에도 하이쿠도 아닌... 일본인들이 말하는 ‘아키바 계’ 였습니다. 오타쿠라는 겁니다.
    가끔씩 ‘~계’를 MBTI 성격유형으로 바꿔 표현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도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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