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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17. 14:52
【아래 글은 박동섭 선생님의 번역으로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에 수록되었습니다. 2024-08-22】
(2023년 8월 5일 / 학교 도서관 문제 연구회 / 오사카사학회관
학도연 2023 간사이 대회 『변화와 마주하는 학교도서관 - 아이들과 사회를 잇는 도전』 1일차 강연)
안녕하세요. 이번에 소개받고 자리에 서게 된 우치다 다쓰루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둘러보니까요, 여러분은 오히려 얼굴이 새하얗고, 강사 한 명만 얼굴이 새까맣게 타 놓고서는 여러분 앞에 서 있자니(웃음), 진심으로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여러분은 거의 여름방학 내내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던 바람에 놀러 다닐 여유가 없으셨겠습니다만, 저는 해수욕장에 다녀왔던 겁니다. 3일 동안 말이지요. 교토 부(府) 교단고(京丹後)라는 곳인데, 여기 좋더라구요.
저는 가이후칸(凱風館; 개풍관)이라는 아이키도(合気道; 합기도) 도장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후칸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바닷마을[海の家]’이라는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여관을 한 동 전세내서 하는 겁니다. 10명 이상 묵으면 한 동을 통째로 내어줍니다. 거기서 참석자 모두가 물장구도 치고,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무도(武道) 수련 도장이기는 합니다만, 도장을 처음 세울 적의 컨셉은 ‘옛날 옛적 일본 회사 같은 것’으로 정한 바 있습니다. 제 어린 시절, 그러니까 쇼와 20년~30년대* 정도의 일본 회사로 말할 것 같으면 대체로 종신 고용과 연공 서열을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가족이나 다름 없는 푸근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런저런 직종을 가진 사람들끼리 한 가족처럼 지냈던 겁니다. 그렇게 모두 모여 하이킹을 가고, 등산을 가고, 바다에 놀러 가며, 마작을 칩니다. 저희 집에도 아버지 회사 사람들이 곧잘 놀러와서는, 같이 밥을 먹곤 했습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어린 마음에도 ‘아~ 요것 참 좋다’ 하고 각인이 된 겁니다.
(* 일본의 고도성장기인 ~1960년대 초중반. - 옮긴이)
하지만 훗날 일본 기업들은 종신 고용과 연공 서열 제도를 폐지하고, 성과주의와 능력주의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직장에 들어가서 정년까지 한 회사에서 일하는 식의 고용 형태가 사라졌으며, 회사는 한때 가족을 대신했던 사회적인 기능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연(地緣)사회가 붕괴하고, 혈연(血緣)사회가 붕괴했으며, 가족이나 다름 없던 회사도 사라졌고, 도시의 의탁할 데 없는 시민들은 원자화되었으며 모래알처럼 흩어졌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다시 한 번, 옛날 같이 포근하면서도 느슨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지연이나 혈연 공동체의 경우는 태어날 때부터 거기에 짜맞춰지게 되는 법이라, 결국 계속 거기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게 아니라, 마음대로 들어와서, 있고 싶을 때까지만 있으면서,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선선히 보내주는, 그런 성긴 중간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출입은 자유지만, 일단 속해 있는 한 ‘멤버십’은 확실히 지키면서, 서로 지원하고 돕는[相互支援・相互扶助] 커뮤니티입니다.
40대나 50대가 되면, 가족들 역시 점점 나이가 들어갑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혼자 사는 사람은 배우자도 없으며 자녀도 없습니다. 친척들하고도 그다지 교류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의지할 데 없는 고아나 다름 없는 사람이 지금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할 수 있는, 사실상의 가족과도 같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게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자 이제 어떻게 가족과 유사한 공동체를, 맨바닥에서부터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모여서 어울리기만 해서는 공동체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아이키도 도장을 하고 있는데, 이건 교육 공동체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이 공동체의 지속은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냥 모임을 갖거나 수련만 하는 게 아니란 겁니다. 저에게는 스승이신 다다 히로시[多田宏]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은 무도의 기술과 사상의 체계가 있으며, 그것을 이제는 제가 다음 세대에게 패스하는 겁니다. 제자는 그 스승으로부터 이어받은 도통(道統; 道學을 전하는 계통. - 옮긴이)을 후속 세대에 전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 도장(道場) 공동체는 계속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친족(親族)이라는 개념을 ‘존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정의에 따르면, 도장(道場) 공동체, 혹은 종교 공동체나 교육 공동체 역시, 다음 세대에 계승할 지식이나 기술을 전하는 기구이므로, 마찬가지로 일종의 친족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 1908~2009. 문화상대주의적인 견지에서 인류학을 전개함. 주요 저서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등. - 옮긴이)
처음 얼마 간은 함께 수련을 하면서, 쉬는 날에는 모두 놀러 나가는 기회를 가지면 되겠거니 했습니다. 그래서 바닷마을에 가고, 스키 타러 가고, 하이킹 가고 성지 순례를 가며, 말을 타러 가는 등 여럿 했습니다. 따라서, 가이후칸에는 ‘동아리 클럽 활동’이 여남은이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스키부, 하이킹부, 성지순례부, 수학여행부, 폭포수행부, 승마부 같은 활동을 하는 겁니다. 저는 될 수 있는 한 ‘동아리 활동’에는 전부 참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이후칸에서는, 무도 수련과는 별도로 ‘훈장님 연구실[寺子屋ゼミ]’이라는 것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고베여대 대학원의 사회인 대상 연구수업이었던 것의 후신이라는 사연이 있는데요. 제가 은퇴한 뒤에도 수업을 계속해 주기를 바라는 기존 연구수업 수강생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개강한 것입니다. 다다미 70 장짜리 가이후칸에 좌탁을 서른 개 정도 깔아놓고서 인문학 합동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이 연구수업에서 어느 여성 수강생이 ‘묏자리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분은 50대 여성이었습니다. 스스로 부모님 묘를 돌보는 처지라서, 양친의 제사[供養]를 지내고 있으며, 스스로의 묘도 그 자리에 쓸 수 있지만, 그분 자신의 제사는 누가 지낼 것인가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걸 듣고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내 제사는 누가 지내주겠는가’ 하는 문자열을 제 귀로 들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묏자리 문제는 보통은 ‘이장(移葬)’같은 것처럼 선조까지의 묘에 대해 말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그분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의 묏자리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온도차가 제법 있습니다. 남자는 그런 것을 그다지 언급하지 않습니다. 저희 부친은 돌아가시기 전에 ‘중은 부르지 마라. 법사(法事) 치르지 마라. 법명(法名) 짓지 마라. 유골은 바다와 산에 뿌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남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반면에 어머니하고 형과 ‘어떡할까?’ 상의를 해봤더니, 모두 ‘아서라 아서라’ 하는 거예요(웃음). 결국, 스님을 모시고, 법사를 치렀으며, 법명도 지었습니다. 유골은 다소간 다비를 하였으므로 그것만큼은 유언대로 따랐습니다. 스루가 만(후지산이 내다 보이는 명승지 - 옮긴이)에 가서 바다에 뿌렸으며, 형과 산에 올라서 뿌리고 왔습니다.
남자 같은 경우 비교적 그런 식입니다. 죽은 뒤의 묏자리 걱정같은 건 그다지 안 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죽은 뒤의 자신’에 대한 상당히 리얼한 관점이 있습니다. ‘남편과 같은 묘를 쓰고 싶지 않다’ ‘시어머니와 같은 묘를 쓰고 싶지 않다’ 와 같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시는 여성분들이 연구수업 자리에 몇 분이나 계셔서, ‘이분들은 죽은 뒤에도 살려는 셈이로구나’ 하고 좀 놀랐습니다. 사후에도 절반 정도는 살아있는 거라서, 개성이나 인격도 일정 기간 지속되는 걸로 여기는구나 했습니다. 따라서 사후의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준다든지, 커뮤니케이션을 걸어준다든지 하는 것 등을 남은 이들에게 바라고 있습니다.
듣고 보니, 옳다구나 그게 제사라는 것일지도 모르겠거니 했습니다. 50년이고 100년이고 제사 지내달라는 말이 아닌 겁니다. 하지만 죽고 나서 곧장 잊히는 건 사양이구요. 죽은 뒤에도 잠시동안은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서, 뭔가 자신에 대해 시시콜콜히 화제로 삼아주기를, 그 사람은 생전에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 모두가 그리워하듯이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라는 영화가 딱 그랬던 거예요(제목에 ‘살다’라는 뜻이 있음 - 옮긴이). 영화에서는 중간 쯤에 주인공이 죽고 마는데, 러닝타임의 나머지 절반은 장례식 장면입니다. 밤샘하러 왔던 조문객들이 ‘와타나베 과장은 사실 이러이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고 한명씩 증언을 해나갑니다. 그런 증언들의 단편이 축적되면서, 시시한 말단 공무원으로만 보였던 와타나베 과장이 알고 보니,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점이 점차 밝혀집니다. 그것이 추모라는 것의 요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히 떠받들고 그러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모르셨겠지만, 저는 그 사람의 이러한 면을 알고 있어요’ 하고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나가는 사이에, 인물의 입체상이 완성되어 갑니다. 그것을 추모라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간제류[観世流] 노가쿠를 이럭저럭 30년 가까이 연습하고 있습니다. 노가쿠의 곡에는 행각승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승려가 어느 지방에 당도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매실 나무가 되었든 폐가가 되었든 까닭이 있어 보이는 뭔가가 있어서, 이게 뭘꼬 하고 서성거리는 사이에 그곳 지방 사람이 등장해서는, 여기에는 이러이러한 내력[因縁]이 있소이다 하고는 사라집니다. 나카이리(中入り; 인터미션 - 옮긴이) 뒤에 노치지테(後ジテ; 2부 주인공 - 옮긴이)가 등장하여 ‘사실 이 몸은 이즈미 시키부올시다’ 혹은 ’다이라노 아쓰모리올시다’ 등의 이름을 대며, 그 장소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를 이야기해 갑니다. 그리고 승려에게 ‘부디 저를 공양(供養)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합니다. 이것이 노치지테의 마지막 말인 겁니다. 그렇게 사라지면서 끝내는 것이 후쿠시키 무겐 노[複式夢幻能]의 기본 패턴인 것입니다.
참말로,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어도 얼마간은 이 죽은 몸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 주기를 죽은 이는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응하는 것이 추모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장기간 할 필요는 없으며, 대체로 십삼 주기 정도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직접 사후 세계에 가서 설문조사를 해온 건 아니지만요(웃음). 십삼 주기 쯤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계 쪽 조모(祖母)의 십삼 주기 때에, 백부께서 ‘다들 나이도 어지간히들 잡쉈고, 멀리서 모이러 오는 것도 일이니까, 다같이 모여서 법사를 하는 건 이번으로 끝내자. 이제는 당자가 할 테니’ 하고 선언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 ‘그렇구나. 공양은 십삼 회기쯤 하면 되는 거구나’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 자신도 올해 72세고 보니 음, 앞으로 10년 정도는 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죽은 뒤에 얼마동안 제삿밥 얻어먹고 싶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13년 정도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쯤 되고 보면, 저와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도 모두 떠나는 거고, 저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집안 사람들도 제각기 상당한 연령에 이르러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상, 그쯤 해서 페이드 아웃하면 되는 거라고 봅니다.
애초에 제 나이쯤 되고 보면, 점점 죽음에 가까워 가는 것입니다. 눈이 안 보이게 되기도 하고, 이가 빠지기도 합니다. 저는 몇 달 전에 무릎에 인공 관절 삽입술을 받았으므로, 무릎은 사이보그인 겁니다. 몸 여기저기가 벌써 부분적으로는 죽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생물학적으로 전 부분이 죽게 되는 겁니다만, 그 전부터 조금씩 죽음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도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동안에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은’ 상태가 당분간 이어집니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인 죽음이란 것에 디지털적인 생사의 경계선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점점 아날로그적으로, 죽어있으면서도, 죽음에 이르지 않은 상태가 당분간 이어지며, 느린 속도로 페이드 아웃이 진행되어 갑니다. 이전 13년, 이후 13년 도합 26년 정도 걸려 인간은 죽어가는 게 아닐까... 발표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나의 묘는 누가 돌보아줄 것인가. 누가 공양해줄 것인가. 걱정된다’ 는 사람이 나왔으니만큼, 차라리 이 기회에 묏자리를 보아버리자, 해서 가이후칸 명의의 추모공간을 조성했습니다. 가이후칸에 속한 문인(門人) 가운데 자녀가 없는 사람, 자신의 후사를 추도해 줄 만한 사람이 없는 사람은 우리 묘에 들어와 주십사 하는 취지입니다. 도장(道場)은 앞으로도 줄곧 이어질 터이니, 매년 추도해주는 사람이 끊기는 일은 없습니다. 이거 참 좋은 생각이다 해가지고 즉각 제 친구인 샤쿠 뎃슈(釈徹宗; 1961~. 종교학자. 오사카 상애相愛대학 학장. - 옮긴이) 선생 계신 곳에 상의를 하러 가서, 실은 이런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꺼내니까, 웬걸 샤쿠 선생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이었어요.
샤쿠 선생은 여기서 머잖은 곳에 위치한 뇨라이지[如来寺]라는 사찰의 주지를 맡고 계시기도 한데, 불자 분들 가운데에는 홀로 지내는 탓에 후계자가 없는 사람들이나,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묘를 이제는 돌볼 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합동묘를 만들어야겠다고 샤쿠 선생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이후칸은 ‘도반 사당[道縁廟]’, 뇨라이지는 ‘보살 사당[法縁廟]’이라는 합동묘를 조성하였습니다. 뇨라이지 가까이에 있는 산에 자리잡은, 조망이 참으로 수려한 터에 묘비 두 기를 나란히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매년 한 번씩 ‘성묘’ 행사를 갖고 있습니다. 계절 좋은 때에 다같이 차례지내는 것인데, 샤쿠 선생이 법문을 외어주시고, 법연을 해주시면, 참례자들은 향을 사릅니다. 법연이 끝난 뒤에는 묘비 앞에 널따란 방수포를 깔고, 좌탁을 늘어놓고서는, 샴페인을 마시고 진수성찬을 음복합니다.
오늘 이 강연장에 오기 전에 저는, 아침 8시 반부터 점심까지 아이키도 수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도서관 관계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오늘 밤 7시부터는 인터넷 상에서 샤쿠 선생과 ‘오봉(お盆; 조상의 혼령을 맞이하는 일본 절기로, 양력 8월 15일 전후가 연휴 - 옮긴이) 맞이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참으로 눈코뜰 새 없다 싶기는 하되, 문득 ‘이 세 가지 일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겠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오늘의 제 일과는 오전의 무도 수련과, 오후의 도서관 담론, 그리고 밤에 하는 종교와 제사 그리고 죽음에 관한 고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옳다거니, 저야말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였구나 하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냐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과 이 세상 사이를 중매하는 일의 전문가입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의 인터페이스로서, 사람은 어떻게 동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과 지식의 전문가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도서관에 소속되어 있는 인원으로서 스스로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의 인터페이스로 존재한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지 못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상 그런 일들을 하고 계신 겁니다.
이곳 연단에 서기 직전에 대기실에서도 말씀을 나눴습니다만, 듣자 하니 행정 당국이 도서관 입장에서는 실로 엄한 짓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도서관을 망가뜨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도서관 따위는 필요 없다. 사서 따위는 필요 없다.’ 극단적으로는 ‘책 따위는 필요 없다’에 이르기까지 반지성주의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쪽 사람들은 도서관을 이렇게도 미워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득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현세적인 이익밖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만이 의미가 있는 거라고 믿고 있는 이상,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따위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도장(道場)’이란 애시당초에 종교 용어입니다. 수업을 하는 곳입니다. 무도(武道) 수업의 목적은,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한다든가, 움직임을 날렵하게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몸을 ‘양도체(良導體)’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양도체(良導體)’라는 것은, 어느 부위에도 경직, 막힘, 해이가 없는 정비된 몸을 이릅니다. 그 신체를 통해 거대한 자연의 힘, 에너지가 발동됩니다. 자신의 신체는 힘의 연원이 아니라, 통로인 겁니다. 그렇기에 아집을 버리고, 투명한 심신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것이 무도(武道)적인 수업(修業)입니다. 이런 점에서, 무도와 종교 사이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종교의 경우, 자신이 종교적으로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스스로 평가내리기가 어지간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무도의 경우는, 그것을 외형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마르고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덩치 큰 사내를 냅다 집어 던진 뒤에, ‘어머, 이렇게 할 수 있게 되어버렸지 뭐야’ 하며 스스로 놀랍니다. 신체적인 실제 감각을 통해 자신의 신체가 ‘자연의 거대한 힘이 관통하는 통로’로서 얼마나 다듬어져 있는가를, 압니다. 그것은 딱히 근육이 우람해졌다든가, ‘와자’(技; 아이키도에는 ‘와자’가 도합 2,884개 있다고 알려져 있음 - 옮긴이)가 숙련되었다든가, 움직임이 빨라졌다든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양도체(良導體)’로 다듬어서, 야생의, 자연의 거대한 힘을 발동케 하는 것입니다. 무도 수업을 통해 그것을 닦습니다. 이상이 현재 단계에서 제가 무도에 대해 이해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제가 <무도론>에 저술한 바 있는데, 실제 감각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는 애초에 무슨 종교를 갖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자신은 종교적인 인간으로서, 아주 오래 전부터 ‘초월적인 것’,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의 교감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이 ‘교감’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일련의 ‘매너’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이 경계선을 넘어서서 인간 세계 속에 깃들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응대할 것인가에 관해 옛사람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충분한 거리를 두고, ‘저기 실례가 되겠습니다만, 너무 무도한 일은 벌이지 말아줍시오’ 하고 슬쩍 되돌려보내는, 한숨 돌리며 보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외부에서 도래한 것으로부터 인간들 자신들의 세계에 무언가 ‘바람직한 것’이 더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말씀을 드리면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앉았는 거냐’ 하고 어처구니없어하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특수한 기능인’으로 일컫습니다. 어떤 기능을 갖고 있냐 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지하 1층까지밖에는 접근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지하 2층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하 2층에 내려가면 거기에는 태고적부터 연면히 흐르는, 지금도 온 세상에 펼쳐져 있는 ‘수맥’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도구로 무언가 여남은이나마 건져서는 갖고 올라옵니다. 지하 2층은 인간이 오래 있기에 위험한 곳이므로, 일을 보고 난 뒤에는 재빨리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지하 2층에서 경험했던 것을 서사의 형식으로 이야기해오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이 작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러한 분야의 기능을 습득한 소수의 인간이 있습니다. 하루키 자신이 종종 스스로 그런 인간이라고, 이런저런 문학론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제가 봤을 때 이건 문학적 메타포가 아니고,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경계선 저편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는 소설들은, 따지고 보면 죄다 그런 것들뿐이니까요. 누군가가 경계선 너머로 사라져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 경계선 저편으로부터 위험한 무언가가 내습하는 탓에, 그것을 되돌려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테마가 반복됩니다. 둘 다 경계선, 그러니까 피안과 차안을 왕래하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는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유령’이 등장합니다. 이게 ‘유령’이라고나 할까,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이 등장해서는, 주인공은 그걸 어떻게 맞이할지를 이래저래 궁리합니다. <양을 쫓는 모험>부터 쭉 그래왔기는 했습니다만, <무라카미 하루키, 가와이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에서 대담을 하고 나서 결정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대담 가운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와이 하야오에게 “<겐지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악령이라든가 생령 같은 초현실적인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현실 그 자체였기에 그리 묘사한 것이겠지요?”라고 질문을 했는데, 가와이 하야오는 ‘그런 것들은 전부, 현실이 맞습니다’ 하고 즉답하는 겁니다.
<겐지모노가타리>에는 생령이 나오지요. 로쿠조노 미야스도코로의 생령이 ‘아오이노우에’나 ‘유가오’에게 저주를 걸어 목숨을 앗아갑니다. 생령이나 악령에 의해 사람이 죽는다는 개념은, 헤이안 시대(794~1185년 - 옮긴이) 때는 그냥 현실이었던 것이라고, 가와이 하야오 씨는 선뜻 단언했습니다. 이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커다란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겠지요. 그렇구나, 내가 유령 이야기만 줄창 써댔던 것은, 그게 애초에 ‘몽땅 현실’ 에서 일어나는 얘기였기 때문이었구나. 그렇게 여겼겠지요.
무라카미 하루키 자기 자신의 문학적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에다 아키나리’에 이르게 된다고 그는 스스로 밝힙니다. 개화기 때부터 시작된 근대 문학을 전부 부정하고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훨씬 이전의 우에다 아키나리가 나타났던 겁니다. 그리고 우에다 아키나리가 쓴 이야기들은 죄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이 인간을 죽인다거나,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도망다닌다거나, 그것과 어떻게든 해보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우에다 아키나리 이래의 문학적 계보를 직계로 잇는 게 바로 하루키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본인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마당이니, 그런가 보다 합니다.
우에다 아키나리 역시 당대에는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성리학자들은 합리주의자였으므로, 우에다 아키나리가 쓰는 ‘유령 이야기’를 코웃음쳤습니다. 그런 건 괴력난신이자 망상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우에다 아키나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에게는 현실을 뒤흔들 수 있는 힘이 있어서, 그것이 현실 속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 비로소 우에다 아키나리의 문학적 가치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의해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키 이전에도 1960년대에 우에다 아키나리를 높게 평가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일본 문학의 연원은 우에다 아키나리로부터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건 바로 에토 슌이었습니다.
에토 슌은 프린스턴 대학으로 유학가서, 그곳에서 일본 문학을 강의했습니다. 영어로 수업을 하고, 영어로 논문을 쓰고, 귀국할 무렵에는 영어로 잠꼬대를 할 정도로 영어 세계에 깊이 침잠해 있었습니다만, 영어로는 자신이 정말로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썼던 문장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자신은 영어를 능숙히 다룰 수 있어서, 이 외국어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대화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영어로는 새로운 문학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으로서는 일본어로만 문학적으로 뭔가 이노베이션을 일구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일본어의 연원이란 게 있습니다. 에토는 그것을 소위 ‘침묵의 언어’라고 불렀습니다만, 그런 게 세상에는 있습니다. 고대서부터 현대까지, 일본 열도에서 발화되고, 서술되었던 모든 말들의 총화가 거기에 집적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한량 없는 ‘연원’이 있습니다. 일본어가 모국어인 인간은 그 아카이브에 액세스할 수 있습니다.
에토 슌은 영어권 화자들과 커뮤니케이션까지는 가능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내부에는 영어에 해당하는 ‘침묵의 언어’의 몫이 없습니다. 따라서, 영어로는 창조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모국어로서의 영어 화자만이 영어에 해당하는 ‘침묵의 언어’ 아카이브에 액세스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본에 돌아와서는, 별안간 우에다 아키나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하라 사이카쿠나 지카마쓰 몬자에몬 따위는 전부 집어치워야 된다, 우에다 아키나리가 훨씬 훌륭하는 겁니다. 만약 일본에서 진정한 세계 문학이 출현한다면, 그것은 우에다 아키나리에서 이어지는 계보에서밖에는 나올 수 없다고 예언하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약 60년 뒤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등장합니다. 딴세상 얘기 같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죄송합니다만, 이렇게까지 달아오르고 보니 하루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서 처음으로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의 조우하는 이야기가 쓰여졌던 건 <양을 쫓는 모험>에서부터였습니다. 이 작품을 다 쓰고 나서 비로소 전업 작가로 나서도 되겠다는 자신이 붙었다고 하루키는 밝혔습니다. 그때까지는 재즈바 오너라는 입장의 겸업 작가였습니다만, 전업 작가가 되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마음껏 소설을 집중적으로 쓸 수 있는 환경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어떤 ‘광맥’에 가까워졌다는 실감이 생겼습니다. 매일 바지런하게 끌을 쥐고서 바위를 긁어나가는 사이에, 점차로 지하 수맥, 지하 광맥에 접근했다는 실감이 들었다는 얘기를 인터뷰에서 술회했습니다.
결국에는 그의 <양을 쫓는 모험>이 세계 문학의 반열에 들었습니다만, 이 작품은 세계문학 계보의 직계에 해당되는 ‘광맥’을 잇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씨 본인은 미처 깨닫지 못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양을 쫓는 모험>에 속하는 동일한 계보의 세계 문학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입니다. 챈들러에게도 선행 작품이 있는데,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입니다. 이 세 작품은 서로 거의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알아듣기 힘든 얘기라 죄송합니다.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 얘기를 드렸습니다만, ‘나’라는 주인공, 그리고 그의 친구 ‘쥐’가 나옵니다. ‘쥐’는 ‘나’의 얼터 에고(alter ego)입니다. 자아의 분신이란, 상처 받기 쉽고, 순수하며, 도덕심이 결여되어 있는 면이 있으면서도, 지극히 매력적인 남자입니다. 이것이 주인공의 ‘소년 시절’, 애들러슨스(adolescence)입니다. 그 어린 자기 자신과 결별해야만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얼터 에고는 ‘나’가 장차 터프하고도 하드한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가기 위해 잘라내 버린, 자신의 가장 부드럽고, 가장 연약한 부분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 자신의 애들러슨스를 인격적으로 표상해낸 것이 ‘쥐’이고, 테리 레녹스이며, 제이 개츠비이입니다. 그들은 모두 어른이 되기 위해 주인공이 잘라내 버렸던 애들러슨스의 대리 표상(代理表象)입니다. 얼터 에고는 주인공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라고 고하는데, 주인공이 그것을 이루고 나면, 얼터 에고는 자취를 감춥니다. 세 작품은 모두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양을 쫓는 모험>이 1982년,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이 1953년,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가 1925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선행 작품이 마저 마련되어 있습니다. 알랭푸르니에의 <대장 몬느(Le Grand Meaulnes)>라는 소설입니다. 이게 1913년 작품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의 나이는 제법 낮아집니다. 주인공은 프랑소와라는 열다섯 살 소년인데, 그의 앞에 키가 크고, 매력적이면서, 자유분방한 오귀스탱 몬느라는 소년이 나타납니다. 프랑소와는 그에게 매료당해, 그와 함께 모험하는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귀스탱은 떠납니다. 영원히 모습을 감춥니다.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애들러슨스이기 때문이지요. 소년 시절의 막이 내려가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어른’ 대열에 나란히 서게 될 적에, 그 황금과도 같은 나날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들기 마련인지라, 마침내 ‘어느날 영원히 내 앞에서 사라져버린 매혹적이고, 도덕심이 결여되어 있으며, 유아적인 소년’을 조형해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20세기 들어서 ‘똑같은 이야기’가 4개 쓰여진 셈이 됩니다. 잘 찾아보면 아마 <대장 몬느> 이전에도 선행 작품이 있었을 겁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소년은 언젠가는 어른 세계에 끼여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통과의례란 것을 거치면서, 자신의 찬란한 소년기에 영원히 결별을 고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 상실이 가져다주는 비참함과 고통스러움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소년 시절’을 인격적으로 표상하는 매혹적인 얼터 에고와 결별하는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로 치자면 할례라는 이니시에이션이 있겠습니다만, 이것이야말로 소년기와의 결별이란 극심한 신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경험임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소년기와의 이별은 트라우마적인 경험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외상이 남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서사가 필요합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조사해 보면 수천 개가 넘는 사례가 나올 것입니다. 인류가 통과의례라는 제도를 발명해낸 이래로 ‘그러한 이야기’에 대한 수요는 항상 존재하였을 터입니다. 따라서 그런 맥락에서의 ‘광맥’이 있습니다. 태고의 인류에서부터 이어지는 모든 남자의 ‘나를 감싸 줄 이야기를 써 주게’하는 바람에 응하는 것이니만큼,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게 결국 세계 문학이 되는 겁니다.
이야기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얼터 에고와 헤어질 결심을 다루는 이야기는 ‘자기 자신의 소년기를 추도하는’ 제법 종교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온 세상의 남자들은 통과의례를 거쳐 ‘밋밋한 어른’이 되어버림에 따라, 자신들의 잃어버린 소년 시절을 추모하는 이야기를 희구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런 유형의 서사를 저술하는 것은 남성 작가의 몫일 겁니다. 여성 작가가 쓴 ‘얼터 에고와 헤어지는 이야기’를 저는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작품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알고 계시는 분은 제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모국어로 쓰여진 서책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거대한 언어적 아카이브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일본어를 예로 들면, 모국어의 아카이브란 과거에 일본 열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 적에, 비로소 말이라는 게 처음 터져 나온 순간부터, 열도라는 공간 안에서 발화된 모든 음성, 쓰여진 모든 문자가 집적되어 있는 무언가입니다. 그 아카이브의 가장 상층부에 떠오른 국물, 거기에 현대 일본어가 있습니다. 현대 일본어는 그 ‘침묵의 언어’에서 떠오르게 된 ‘포말’과도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 일본어를 모국어로 삼는 사람은 이론적으로는, 언어적 감각을 아주 약간 민감하게 집중만 하면, 일본의 고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20세기 문학은 물론이거니와, 19세기 말의 나쓰메 소세키나 모리 오가이도 금방 읽어낼 수 있고, 그러는 가운데 18세기의 우에다 아키나리도 읽을 수 있습니다. 동일한 일본어로 쓰여져 있으므로, 이해해 내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저는 몇년 전쯤에 <쓰레즈레구사(徒然草; 도연초)>를 현대 일본어로 옮겼던 적이 있습니다. 이케자와 나쓰키 씨가 기획한 <개인편집 일본문학 전집> 가운데 제가 <쓰레즈레구사>의 번역을 부탁받았던 것입니다. <마쿠라노조시>를 사카이 준코 씨가, <호조키>를 다카하시 겐이치로 씨가 마찬가지로 현대어로 옮기는 모둠이었습니다.
이케자와 씨께 부탁받았으니만큼 거절하기 힘들어 받아들였습니다만, 고전문학은 오랫동안 읽은 적도 없고, <쓰레즈레구사>는 재수 학원 시절 조각글을 읽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각오를 굳히고 현대어 번역을 시작해보니, 이게, 상당히 술술 옮겨져서 놀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00년 이상 이전에 쓰여진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어(古語) 사전 1책만 있다면 번역해버리는 겁니다.
그때 생각했던 게, 도연초를 쓴 요시다 겐코를 타임머신으로 현대 일본에 데리고 와도, 아마 3주 정도면 현대 일본어로 술술 이야기할 수 있을 거란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뿌리가 같은 일본어니까요. 문법 구조가 같고, 음운도 같구요. 따라서 모르는 단어를 들어도, ‘아~ 이 단어가 이렇게 변화했구나’ 하고 바로 압니다. 요시다 겐코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면, 아마 바로 현대 일본어의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겠구나 생각하는 거예요.
따라서, 저 역시 타임머신으로 가마쿠라 시대(고려의 무신정권 시기와 대강 일치 - 옮긴이)로 데리고 가도, 한 달 정도 살면 네이티브 스피커와 똑같은 정도로 말문이 터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서 밤낮 <쓰레즈레구사>를 읽는 행위 역시, 상상적으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마쿠라 시대로 돌아간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고 보면, 무엇이 그 옛날 쓰레즈레구사에 쓰여져 있는지를 이해하는 겁니다. 모르는 단어라도 어찌어찌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옮기고 난 뒤에, ‘<쓰레즈레구사>의 현대어역을 마치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되어, 위와 같은 얘기를 한 겁니다. 그러자니, 질문 답변 시간에 관중 가운데 손을 든 분이 계셨는데, 자신이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라고 밝힌 그분은, ‘제가 사실은 <쓰레즈레구사>를 전공했는데, 최근에 이걸 연구해서 박사 논문을 막 제출한 참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와아, 이거 일 났구나 싶었는데, 그 선생님이 ‘우치다 님의 현대어 번역은 굉장히 잘 되어있었습니다’라고 하셔서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웃음). 특히 가카리무스비(係り結び)의 활용형이 우수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까닭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가카리무스비 자체는 문법 지식으로써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 활용형이 뭔가 5종류 정도 있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저는 가카리무스비에 복수의 뉘앙스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허나 그 선생님에 의하면, 제 가카리무스비의 활용형은 실로 정확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걸 옮길 수 있었던 건, 저에게 사전에 문법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고, 평연한 일본어로써 읽었기에 그랬겠지요.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아, 모국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절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어떤 언어의 모국어 화자 입장이 되면, 어떤 시대의 문헌이더라도, 약간만 익숙해지면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원래는 똑같은 ‘침묵의 언어’로부터 유래했으니까요.
한편, 모국어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니오로지즘(neologism) 입니다. 신조어를 만들려거든 모국어가 아니고서는 안 됩니다. 이걸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말이죠, 벌써 10년도 더 된 일입니다. 스키를 타러 가서 그곳의 노자와 온천 노천탕에 들어가 있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2명이 나중에 들어와서는 텀벙 하고 노천탕에 들어가는 순간, ‘으와~ 야베에~(うゎー、やべえー)’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야바이(ヤバい)’ 라는 말은 원래 범죄자들이 쓰던 은어인데 ‘위험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시민 사회에 도입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은어의 양성화는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입니다만, ‘야바이’의 경우는 한술 더 떠서 ‘대단히 기분이 좋다’로까지 뜻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렇구나, 그런 식으로 의미가 바뀐 거구나 하고 그때 생각했던 것입니다만, 그와 동시에, 어째서 의미가 바뀌었다는 걸 내가 알고 있는 걸까, 이제는 오히려 이게 궁금해진 것이었습니다. 딱 듣게 된 순간 ‘야바이’에 ‘매우 기분이 좋다’ 라는 새로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제가 곧장 찾아볼 수 있는 국어사전에 따르면 ‘야바이’ 항목에는 ‘속어(원문 若者言葉; 젊은이들 말 - 옮긴이)’로 ‘매우 기분이 좋음’ ‘최고임’ 이라고 등록되어 있습니다.
신조어라는 현상의 놀라운 점은 ‘듣는 순간에 난생 처음 접한 말임에도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듣고서 ‘이거 혹시 이런 뜻인가요’ 하고 되묻지 않으면 그 뜻을 알 수 없는 어휘는 ‘신조어’가 아닙니다.
‘마갸쿠[真逆]’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처음 들었던 게 어느 대담 자리였는데 시부야 요이치 씨가 하고 있는 잡지 ‘SIGHT’가 주관했었습니다. 이때 다카하시 겐이치로(소설가 - 옮긴이)씨가 참석했는데요. 겐이치 군이 ‘마갸쿠’라는 소리를 내었을 때, 난생 처음 들은 말이었는데도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라는 문자열이 금방 머리에 떠올랐고, 그것이 ‘정 반대’보다 조금 강조된 의미라는 뉘앙스의 차이까지 전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들은 말인데도 의미와 뉘앙스를 모두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우리는 일상적이고도 평범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처음 말하기 시작하고 나서, 아마 몇 주나 몇 개월 안 걸렸을 텐데요, 결국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일본 전국의 사람들이 ‘마갸쿠’란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신조어를 만든다는 건, 외국어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유창하게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면, 영어에 속하는 신조어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go-went-gone이라는 불규칙 변화를 외우는 게 성가시므로 앞으로는 go-goed-goed로 해버리자고 해도, 영어 화자는 쳐다도 안 봐줍니다. ‘그런 이상한 영어는 없다’는 말만 듣고 말 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자기 자신을 있게 만든, 그 언어적 자원의 근저에서 자연스레 솟아오른 어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국어 아카이브가 갖는 생성력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마음 속 깊이 통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에토 슌이 ‘침묵의 언어’라고 부른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걸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서책이라는 것은, 그런 모국어 아카이브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서책을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 이 모든 게 바로 그 풍요로운, 깊이가 한량 없는 모국어의 아카이브에 들어가기 위한 회로입니다. 그것은 일상적인 현실과는 유리된 ‘경계선의 피안’에, ‘지하’에,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 맞닿기 위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이나 미의식, 이데올로기가 통용되지 않는 경위일 터이지만, 기어코 이해가 가능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 모국어의 아카이브가 자기 자신의 어휘 감각이나 어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구사하고 있는 논리 형식, 자신의 사념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때에 사용하는 어휘, 이 모든 것이 그 아카이브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남의 집에 방문할 기회가 있는데, 이때 잠시만 있어도 까닭 없이 숨통이 조여오면서 어서 나오고 싶어지는 집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 경우 그건 ‘책이 없는 집’이 그랬습니다. 아무리 예쁘게 꾸며놓아도, 책이 없는 집은 오래 있으면 숨이 막히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산소결핍에 걸릴 것 같습니다. 책이 없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책이란 건 ‘창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세계로 나 있는 창’, 다시말해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인 겁니다. 따라서, 책이 있으면 안심됩니다. 바깥 세상으로부터 시원한 공기가 확 하고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죠.
제 친구들의 집에 가보면 거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만, 화장실에 책이 있습니다. 저희 집도 그래요. 정말, ‘장난이 아닌’ 양의 책이 화장실에 쌓여있습니다. 화장실은 공간적으로 상당히 폐쇄감이 드는 곳인데, 거기에 책이 몇 권 세워져 있는 것만으로도 갇혀 있는 곳에서 뭔가 널찍한 곳으로 나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널따란 곳에서 배설 작업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화장실에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때에는, 읽을 책을 미리 찾아낸 뒤에 갑니다. 제 책장 앞에서 ‘아이고 큰일났다’하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음... 이건 아니야. 이것도 아니고’ 하며 책을 고릅니다. ‘아, 이거다’ 하고 정해지면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책이 없는 화장실은 좁아 터진 곳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책을 펼치면 해방감이 듭니다. 이렇듯, 책이라는 것은 이곳과는 다른 세계로 향하는 개방성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서관 관계자분들과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말씀을 들어보면, 행정 당국이 ‘이용자 수를 늘려라’ 라든가 ‘열람 회수가 적은 책은 버려라’ 등 도서관 측에 이런저런 압력을 가한다고 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인데요, 도서관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이 가득하고 너저분한 도서관이 이상적이라고는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없는 장소입니다.
<존 윅>에서도, 확실히 뉴욕 시립 도서관인지 어딘지에서 키아누 리브스와 킬러가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 있었지요. 서가 사이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몇 분 씩 치고받고 칼로 찌르고 하는데 그 사이에 개미 하나 얼씬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엄청난 소란입니다. 어머, 서가에 깔리겠어, 책상이 부서지겠어, 호들갑을 떨 법한데도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서관 책 가운데에, 명백한 개인 물품을 은닉해두는 겁니다. 존 윅은 아무도 빌리지 않을 듯한 책을 도려내어, 무기로 추정되는 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결국, 영화에서 상정하고 있는 도서관의 기본 설정은, ‘그곳에서 결투를 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몇 년 간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책이 있는’ 게 됩니다. 저는 이 기본 설정이 ‘올바르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도서관이란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사람이 없는 서가 사이를 혼자서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걷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제가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던 도서관의 추억은 전부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도서관 곳곳을 혼자서 걸어보는 겁니다. 끝없이 서가가 이어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스스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의, 거의 알지 못하는 제목의 서책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스스로 그런 학문 분야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분야의 책이 수십 권씩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그랬구나. 여기에 있는 서책 가운데, 내 전 생애를 거쳐 읽을 수 있는 수는, 수십만 분의 일에 그치는 거구나. 나머지 서책들하고는 거의 남남인 채로 나는 인생을 마칠 것이다’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사람이 없는 도서관에서, 압도적인 양의 서책을 바라보았던 때에 느꼈던 것은, ‘아, 나는 앞으로 이만큼씩이나 책을 읽는 거다’가 아니라, ‘일생을 걸어도 읽지 못하는 책이 이만큼씩이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통감케 하는 것이 도서관이 가지는 가장 큰 교육적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의 사명은 ‘무지의 가시화’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무지하거니와, 죽을 때까지 공부해도 아마 아무것도 모른 채 끝날 지 모른다 하는 무한의 감각입니다. 그러한 자기 자신의 ‘가공할 만한 무지’ 앞에서 전율하는 것이, 도서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영화에서 도서관은 무한한 지(知)의 공간으로 표상되어 있습니다.
도서관이라는 것은 ‘장서가 무한하게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장서가 무한하므로, 당신은 이 도서관의 극히 일부를 살짝 맛보는 것만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이며, 당신이 죽은 후에도, 이 거대한 도서관에는, 당신이 끝내 알 수 없었던 예지나 감정,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같은 게 딱 그렇지요.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장서가 무한한 도서관이라는 설정이지요. 수도사들이 있지만, 누구 하나 장서를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게 서가가 이어져 있어서, 안내를 받지 않으면 자칫 도서관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인터스텔라>도 그래요. 마지막 장면은 우주의 끝까지 이어진 무한한 도서관의 영상이었습니다. 도서관이란 본질적으로 무한입니다.
도서관이 그곳에 들어선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한’이라는 개념입니다. 그곳에 발을 내디뎌 들어갔을 때에, 자기가 사는 인생의 유한성과 함께 자기가 알고 있는 지(知)의 유한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이상으로 교육적인 사건은 이 세상에 없다고 단언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세상을 알지 못하는가, 모르는 채로 인생을 마치는 것인가. 앞으로 일생을 걸고 아무리 똑똑해지려고 노력하더라도, 이 거대한 지(知)의 아카이브 가운데, 조각만한 것밖에 자신은 접촉할 수 없으며, 그 이상 스스로 습득하기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조각에 불과할지라도, 자신이 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장소의 일부에는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며, 잘만 하면 그 일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장소에, 자신이 무언가를 만들어내어 그것을 보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삼가는 것[慎ましさ]’ 입니다. 무한한 지(知)에 대한 ‘예의 바름’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물정을 모르는가, 자신의 지성이 닿는 범위가 얼마나 협소한가에 대한 유한성의 자각[覚知]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은, 눈 앞에 이렇게 ‘무한한 지(知)를 향해 열려 있는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서관으로부터 분명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와 도서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했습니다.
유럽을 무대로 하는 영화를 보면, 부자가 사는 저택 응접실 내부가 대체로 벽 전부 서가로 채워져 있습니다. 저는 그런 영화를 수십 개, 수백 개 보아왔습니다만, 그 영화에서 집 주인이 서가에서 책을 꺼내서 읽는 장면은 일단 없었습니다. 개중에는 이제 막 벼락 부자가 된 인간이, 옛날 귀족의 저택을 구입해 거기서 사는 듯한 설정도 있습니다만 그 경우, 이 서가의 책은 가구 집기의 일부로서 아마 ‘통째로 산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자기 소유의 장서도 아니고, 서가 채우기가 딱히 자신의 취미도 아닙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눈에 거슬리니 전부 치워서 헌책방에 팔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런 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유럽에서는 입신양명하게 되어 오래되고 커다란 저택을 구매한 인간은 반드시 그 저택의 이전 주인들이 꾸민 장서에 둘러싸여 살아야만 한다는 암묵의 법칙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재에서 일을 보면서 문득 고개를 들면, 거기에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나 <로마 제국 쇠망사> 등의 가죽 표지 책이 늘어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읽은 적이 없었겠지요. 이제까지 사업이나 정치 활동으로 바빴을 테니까요. 따라서, 서재에 있는 책은 전부 ‘읽지 않은 책’인 겁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읽지 않을 책이지요. 그러한 수천 권의 책이 매일 서재의 주인을 향해 ‘너는 정말로 무지하구나. 그러니 우쭐대면 못쓴다’는 메시지를 소리 없이 보내옵니다.
확실히 그러한 고전을 가죽으로 두르고 금박 제목을 입혀 세워두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인간은 자신이 읽지 않은 서책을 올려다볼 적에, 서책으로부터 ‘너는 성공한 자로서 잘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에 집약되어 있는 지적 아카이브의 일부조차 읽지 않았다. 스스로 이 세상을 거의 모르는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거라’ 하고 설교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한 설교를 서책으로부터 듣는 것을 일과로 하는 것, 그것이 유럽에서의 사회적 성공자에게 부과된 조건이 아니었을까,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일본의 경우 ‘단나게이[旦那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만, 어느 정도 사회적 위신을 갖추게 되면 ‘게이고 고토[お稽古事]’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저는 간제류 노(能)를 수련한 지 이제 30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게이고 고토’에는 어지간한 돈이 듭니다. 사회 초년생은 불가능합니다. 예전 같으면 부장님 정도가 되지 않으면 월사금이나 사례금을 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일정 지위에 오르면 ‘게이고 고토’를 하기로 거의 의무화되어 있었습니다.
수련을 쌓는다 하면 뭘 하느냐, 여하간 선생님한테 욕먹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으로부터 욕을 들어먹습니다. 초심자 때는 물론 그렇지만, 십 년을 해도 이십 년을 해도, 변함 없이 욕을 먹습니다.
어제도 저는 노(能) 수련을 행하였습니다만, 선생님에게 혼나고 또 혼났습니다. 저도 이제는 고희를 넘겼으니, 나이가 지긋합니다. 그런 저를 보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한 일입니다. 이제는 노력할 수 있는 체력이 남아있지도 않은데, 72세인 저를 80세 선생님이 계속 꾸짖는 것입니다. 순서가 틀렸다, 박자가 틀렸다, 부채를 잘 못 펼친다든가, 좀 더 천천히, 좀 더 빠르게라든가, 계속 혼나기만 하는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혼내는 것은 굳이 말하자면 전부 ‘내가 할 법한 실수’입니다. 저라는 인간의 본성이 드러내었던 실패입니다. 그저 서툴다든가 기억력이 부족하다든가 하는 게 아닙니다. 제 실패에 노정되어 있는 것은, ‘세상을 허투루 대하는 태도’라든가 ‘급한 성질’ 같이, 정말 제 인간적인 결함이 노정되어 있는 부분인 겁니다. 그곳을 핀포인트로 지적당했습니다.
어제 같은 경우도 우타이[謡]에서 ‘잰체 하지 마라. 잘 보이려고 하지 마라’고 꾸지람 들었습니다. ‘이 파트가 창(唱)에서 <절정>이니, 조금 목소리를 떠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하고 제가 질문하니, ‘여태껏 연습했는데도 여전히 그런 바보 같은 소리나 하고’ 라며 꾸지람 들었습니다.
그때, 수련은 ‘혼나기 위해 돈을 내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라고 통절하게 느꼈습니다. 가창이나 무용적인 기술을 익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원래의 의미는 잘난 체하는 남자들에게 ‘자만하지 마라. 우쭐해하지 마라’고 머리를 때리는 교육적인 장치가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듭니다.
서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도서관도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도서관도 우쭐댐을 책망하는 교육적 기능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도서관에 갔는데 만약 ‘자신이 읽었던 책’과 ‘자신이 앞으로 읽을 예정인 책’만으로 서가가 메워져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만으로 가득찬 도서관은, 도서관으로서 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이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빌리러 가는 장소가 아니며, 참고자료를 조사하러 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확실히 그런 기능도 있습니다만, 가장 큰 기능은 ‘무지를 가시화하는 것’입니다. ‘잘난 체하지 마라’ 하고, 이용자의 콧대를 꺾으며, ‘정수리의 일침’을 가합니다. 그것이 아마도 도서관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교육적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므로, 전문가가 보호해야만 합니다. 오늘 참석해주신 사서 여러분 모두 사실은, ‘게이트 키퍼’라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알아채지 못하셨겠지만, 그런 겁니다. 사서 여러분은 게이트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게이트 저편에는 상당히 ‘위험한 것’이 펼쳐져 있습니다. 따라서 초보가 비무장으로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문지기가 있습니다. 이 앞에는 이세계가 펼쳐져 있으므로 전문가의 안내가 필요한 겁니다.
아까도 대기실에서 짧게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하시모토 도오루가 오사카 부(府)지사가 되고 나서, 도서관에 대한 그의 탄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상 그는 우선 공무원 영역, 그 다음에는 교육과 의료, 그리고 분라쿠 같은 전통 문화 유산을 핀포인트로 겨냥해 망가뜨렸지요. 이런 분야 선별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정확했습니다. 그가 노렸던 것은 전부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은 뭐가 되었든 전부 가로막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건 돈과 욕정이라는 거죠. 권력과 재력을 모든 인간이 바라고 있는 거니까, 그것 말고는 이 세상에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 가공할 만한 천박하고 격렬한 세상 안에 모든 사람을 가둬버렸습니다. 하시모토 도오루의 이런 열의를 띤 ‘다른 세계 파괴하기’는 상당히 공을 들인 작업물입니다.
현재 학교 현장은 학생들에게 시험을 부과하고, 그 성과로 ‘줄세우기[格付け]’ 하는 평가 기관 비슷한 곳이 되어버린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육기관의 목표는 학생들을 심사, 평가하고 줄세우는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성숙을 지원하는 장(場)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라는 것은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도통 알 수 없는 존재’ 입니다. 그래도 됩니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똑같은 테두리에 맞춰놓고, 똑같은 과제를 부여하여, 그 성과로 줄을 세우는 건,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잘못된 접근 방식입니다.
옛날 옛적 일본에서는 어린이들이란 7세까지는 ‘성스러운 존재’로 다룬다는 법칙이 있었습니다. 와타나베 교지 씨(1930~2022. 사상사학자, 역사가, 평론가. - 옮긴이)의 책 <가버린 세상의 추억[逝きし世の面影]>를 보면, 개화기[幕末] 일본에 도래한 외국인들이, 귀여움 받고 자라는 일본 어린이들을 보고서 놀라워하는 묘사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특별히 어린이들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그러는 게 아니라, ‘아직 세상의 규칙을 적용해서는 아니 되는, 열외적인 존재’로서 어린이를 경원시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은 그게 중세 이래로 전통적인 풍습이었습니다. 어린이는 7세 무렵까지는 ‘다른 세계’와 이어져 있는 ‘성스러운 존재’인 겁니다. 그런데 일정 연령에 이르면, 그 연결이 끊어지게 됩니다. 유년기의 끝이란, 다른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져버린 연령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사람은 ‘성스러운 존재’에서 ‘속된 존재’가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 이 세상에 다리를 놓는 존재에는 기본적으로 아명(兒名)을 붙이는 관습이 우리 일본인들에게는 있지 않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슈텐 동자’ ‘이바라키 동자’ (이상 “도깨비” - 옮긴이) ‘야세 동자’ 등 말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질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소 치는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대 일본 열도에 서식하는 가장 큰 짐승인 소를 다루는 자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존재인 겁니다. 따라서 어른이 되어도 아이 모습을 하고, 아명을 썼습니다. 교 우와라베[京童]도 마찬가지입니다. 딱 꼬집어서 아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다 큰 어른이지만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므로, 어린이 청소년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명을 붙이는 사례에는 선박이 있습니다. ‘무슨 무슨 마루(丸)’ 하는 식으로요. 해양이나 하천과 같이 소용돌이치는 야생적인 에너지의 세계와 인간 세계 사이를 ‘중개하는’ 존재이므로, 선박 역시 어린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는 절반은 야생임과 동시에 절반은 문명이므로, 야생과 인간 세상 사이를 중개할 수 있습니다.
도검의 사례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도에는 보통 아명이 붙습니다. ‘거미 베는 아해(즈치구모土蜘蛛 - 옮긴이)’나 ‘새끼 여우 아해(고카지小鍛冶 - 옮긴이)’와 같이, 이름난 일본도에는 무슨 무슨 ‘마루’라는 아명이 주어집니다.
저는 무도 수행을 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이아이(발도술, 거합 - 옮긴이) 검술’을 수련하고 있어서 도검 소지 허가증이 있습니다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진검을 들고 한번 서 보면, 일본도는 이 세상 아닌 다른 세상과 통해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일본도를 뽑고 자세를 취하면, 자연의, 야생의 거대한 에너지가 일본도를 통해 발동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자신의 신체가 에너지의 통로가 되어있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도로, 일본 무장들이 착용했던 철제 투구를 벱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근력으로 투구를 벨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투구를 베어버린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일본도가 베어먹은 흔적이 있는 투구도 얼마든지 잔존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일본도를 갖고서는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일본도를 통해 발동하는 무언가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다름 아닌 자연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검을 갖고서 검술을 수련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바입니다. 일본도는 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 사이를 가교합니다. 따라서 아명을 붙입니다. 그러한 전통적인 ‘어린이’관이 전통적으로 일본에는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전혀 되새겨지지 않는 것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학교라는 것은 사실 이 ‘성스러운 존재’ 와 같은 어린이 청소년을 그 본래 의미대로 받아들여, 이 학생들을 천천히 천천히 ‘성스러운 존재’로부터 분리시켜 나가는 장소인 겁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와 결부되어 있는 학생들을 능숙한 솜씨로 외부 혹은 다른 세계로부터 분리시켜, 현세로 데리고 오는, 참으로 세심한 분리 작업 같은 것을 교사들은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 교실도 무도 도장과 마찬가지로, ‘초월적인 존재’나 이세계와의 교류가 일어나는 장(場)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매우 신중하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주례(周禮)>를 살펴보면 사대부가 익혀야 한다는, 군자의 ‘육예(六藝)’라는 전통관이 있습니다. 육예란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이릅니다.
여기서 첫째가 예(禮)입니다. 군주가 학습해야 할 제일가는 학문이 예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귀신’을 섬길 때의 예법입니다. ‘귀신’이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을 이릅니다. 다른 세계와 잇닿아 있는 존재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존재를 섬기기 위한 올바른 매너를 우선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는 악(樂), 다시 말해 음악을 익힙니다. 짧게 얘기하자면, 음악은 시간 의식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양쪽의 영역에 촉수를 뻗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청취한다는 행위가 불가능합니다. 리듬과 멜로디 같은 요소로서의 ‘이제는 들리지 않는 소리’와 ‘아직은 들리지 않는 소리’를 지금 이곳에서 청취할 수 없으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사(射)는 활쏘기입니다. 무도 전반을 가리킵니다. 어(御)는 야생 동물을 다스려서 인간 세계에 유용한 노력을 시키는 능력을 이릅니다. 자고로 무(武)란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는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사(射)와 어(御)는 무도에 해당합니다.
도서관의 임무를 꼽자면 저는 이러한 육예 가운데 ‘예(禮)’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은 ‘게이트 키퍼’, 문지기라고 제가 방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학교라는 장(場)은, 말인 즉 학생들을 ‘저쪽 세계’에서 ‘이쪽 세계’로 이동시키는, 매우 민감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장(場)입니다. 반쯤은 야생의 존재인 우리 아이들을 문명화시켜 가는 겁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입니다. 그 성장 과정을 교원들은 지원합니다. 그게 여러분들의 임무입니다.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현재 굉장히 많습니다. 왜 학교를 안 가는 걸까요? 제가 보기에는 학생들 내면에 존재하는 ‘수수께끼같은 것’, ‘미스테리한 것’을 0점 처리하는 현행 학교 교육을 그 아이들은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근대적이고 현실적인 교육 이론은 어린이 청소년을 그저 ‘작은 어른’ ‘무능한 어른’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어떤 외경의 염, 다시 말해 경의를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양호실 등교라는 것이 있는 세상입니다. 교실에는 출석하지 않지만, 양호실에는 갑니다. 학생들은 직감적으로 아는 겁니다. 의료 분야는, 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학교 교육과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는 활동이라는 것을요. 보건교사는 대개 여성분이 맡습니다. 보건교사는 간호사 계통입니다. 그리고 간호사는 그 기원을 따져보면 마녀 계통으로 이어집니다. 프랑스어로 산파를 sage femme라고 일컫습니다. ‘지혜 있는 여자’ 라는 뜻입니다. 전근대까지 이러한 ‘지혜 있는 여자’들이 약을 짓고, 병을 다스리며, 출산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여러 차례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을 신봉하는 마녀’로 정죄받아 처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와 청소년만큼은 아는 겁니다. ‘어! 양호실에 마녀가 산다’ 는 걸요. 마녀이니 오히려 안심이 됩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머글’ 이지만, 보건실에는 마녀, 세속의 가치관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움직이는 마녀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사서 교사의 경우도 ‘도서관에 마녀가 산다’고 학생들이 느끼게 되면, ‘도서실 등교’ 역시 일어날 법한 일입니다. 교실로 향하지 않는 학생이 등교해서는 곧장 도서실로 가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입니다. 양호실로 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서관으로 직행하여, 거기서 하루 종일 책을 읽는 아이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아이들을 환대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여러분은 게이트 키퍼, 즉 문지기이기 때문입니다.
게이트 키퍼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외부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사회의 현실적인 가치관이 적용되지 않는 세상이 있는 법입니다. 그런 세상으로의 접근은 말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일과도 같은데, 거기서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 조우하는 일이 학생들에게도 가능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지하 2층에 푹 빠져들면 그것 역시 위험한 일이므로, 제한 시간이 초과되면 현실 세계로 다시 끌어냅니다. 그 점, 문지기로서의 수완을 잘 발휘해야 할 부분입니다.
제가 도장에서 설파하는 내용도 사실은 이런 맥락입니다. 저희 유소년부는 이르면 4세부터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여기서 무엇을 배우는 걸까요? 무도를 수행하면 예의범절을 익힐 수 있다든지 애국심이 함양된다고 지껄이는 궐자가 있습니다만, 그런 걸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애국심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국민국가 따위의 잡된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 ‘귀신’을 섬길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도장에서 배워갈 것은 극론하자면 단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경의를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도장에 들어올 때, 정면을 향해 제대로 ‘자레이[座禮]’를 행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도장을 차린다는 게 여간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대학에서 아이키도부를 지도하였을 적에 공설 체육관을 빌리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일장기나 비상구 표지가 있으면 있었지, ‘가미다나(神棚; 신주단지와 비슷한 개념 - 옮긴이)’는 없었습니다. 물론 저희 가이후칸 도장에는 ‘가미다나’를 마련했습니다. ‘가미다나’도 좋고, 불단이나 십자가도 좋은데 이는 외부로 향하는 통로와도 같은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이런 것들이 공설 체육관보다도 높은 공공적 성격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미다나 류에는 세속의 가치관이 통하지 않는 것이 존재합니다. 여기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곧 ‘자신의 이해나 공감이 닿지 않는 대상에는 우선 적절한 거리를 둔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예의범절을 몸에 익히는 것, 그것이 무도를 배운다는 것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도장에 들어서서,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읍하며, 수련을 마치면 ‘감사합니다’라고 소리 내어 말합니다. 사범인 제가 먼저 제창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제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제자가 되겠습니다만, 이들이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리니 제가 ‘오냐. 가르쳐주마’ 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시키는 것도 역시 아닙니다. 제가 하는 ‘잘 부탁드립니다’는 도장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앞으로 잠시동안 이 도장에서 수련하겠사오니 수련을 잘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무도 부상을 입지 않도록, 부디 이 자리에 있는 문인들을 지켜주십시오, 하고 도장에게 간원하는 것입니다.
이는 야구 경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투수가 모자를 벗고서 홈에 예를 표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건 심판에게 짐짓 공손히 스트라이크 판정을 잘 좀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닙니다. 이 의식은 to the ball, to the field 의식입니다. 이제부터 9회까지 시합을 합니다, 부디 훌륭한 게임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도장에서 행하는 인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수련을 잘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하고 읍하는 겁니다. 그런 식의 절대적인 ‘장(場)에 대한 경의’를 필요로 합니다. 이것 하나만큼은 유소년부 문인들에게도 귀가 따갑도록 가르칩니다. 저에게 경의를 표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도장에 부속하는 게이트 키퍼, 즉 문지기입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 엮이는 때에 어떻게 해야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선학으로부터 전수받은 방식을 다소나마 압니다. 따라서, 제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얘기입니다. 산을 오를 적에, 안내인이 하는 말을 들으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초심자가 함부로 행동하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자택 바로 아래에 있는 1층 도장으로 내려와서, 간밤에 닫혀 있던 도장 문을 열고 의식을 행합니다. 축문, 반야심경, 부동명왕의 진언을 차례로 읊은 다음, ‘린 표 도 샤 가이 진 레쓰 자이 젠’ 하고 주문을 외우며 표식을 긋습니다. 이리하여 도장은 영적으로 정화됩니다. 이게 제가 매일 행하는 성무일과입니다. 저 역시 게이트 키퍼니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여러분도 지극히 자연스레 저와 비슷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아침이 되어 여러분이 담당하고 있는 도서실 문을 열 때, 열 몇 시간 정도 아무도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던 곳에 들어서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마련입니다. 고요히 아무 말 없는 서가를 향해, 저도 모르게 손을 모으고 싶은 마음이 든 적 없으신가요. 엄청난 수의 서책이 끝없이 세워져 있는 장소에는 그러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신사나 사찰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도서관을 향해 한 걸음 내딛었을 때, 저도 모르게 예를 표하고 싶어지는, 저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싶어지는, 그러한 느낌을 학생들이 가져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도서관의 존재 의의를 다 한 게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도서관은 유용한 지식을 얻기 위한 시설이 아닙니다. 결과론적으로는 물론 다양한 정보나 지식을 얻게 됩니다만, 그에 한 박자 앞서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서, 조금이라도 슬기롭게,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발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다음 볼 시험 범위에 나오니까, 과제를 써야 하니까 읽는 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현세적인 이익에 봉사하기 위한 독서를 하려거든 도서관이 필요하지 않으며, 사서도 필요없습니다. 그래, 읽지 않는 것보단 장하지만, 그것은 서책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서책은 통념보다 신성한 것이기 마련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만, 저는 줄기차게 이와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성스러운 서책을 섬기는 일종의 성직자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사서와 교사 모두 오늘에 와서는 모두 노동자가 되어 놓아서, 성직자라는 자각들이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노동자입니다. 여러분은 응당 고용환경의 개선 등 노동자로서 투쟁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성직자와 노동자의 이중화를 사명으로 하고 있음을 유념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이나 의료 세계에 몸담게 되는 사람들은, 역시 어떤 종류의 경향성을 띠고 있습니다. 선택할 만 하니까 선택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게이트를 지키게 됩니다.
따라서, 하시모토 도오루 같은 사람은 그걸 눈치챘던 겁니다. 교육, 의료 등의 분야에는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려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강자, 경쟁에서 이긴 자가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반면에 약자, 경쟁의 패자는 쭈그리고 살라는 게 그들의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현세의 권위나 가치와는 관련 없는 것이 이 사회에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용납치 않습니다. 따라서 문을 전부 닫습니다. 닫을 뿐만이 아니고, 용접한 뒤 철문까지 달아서, 다시는 ‘초월적인 것’이 이 세상에 새어들어와 우리 아이들이 지적 성숙에 이르게 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 듭니다.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감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핀포인트로 인간의 감정 생활과 종교적 감수성을 풍양케 만드는 기관을 닥치는 대로 망가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오직 현세밖에 없습니다. 지금 여기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승부 난 게 모든 걸 결정합니다. 상대적인 우열, 승패, 강약만이 문제시됩니다. 여기까지 오면 영락 없는 반지성주의입니다만, 그 이상으로 ‘외부’에 대한 증오심에 의해 그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에 많은 일본인들이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성적, 감성적, 영성적인 성숙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에 동의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말세적인 풍경입니다.
첫머리에서 제가 방문했다고 말씀드린 교토부 단고(丹後) 반도 지역에는, 거주 인구가 단 2명 밖에 없는 초(超) 한계 촌락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십 명이 살았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80세가 넘은 할머니가 두 분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그곳에 재래식으로 세워진 빈집을 개보수하여 머물고자 하는 저희 가이후칸 문인이 있습니다. 문인 부부가 뚝딱뚝딱 빈집을 수리하고 있는 와중에 할머니들이 다가와서는 ‘자네들, 여기서 살 셈인가’ 하고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고쳐 놓고 나서 주말에만 텃밭을 가꾸러 오려구요’ 했더니 ‘그것도 좋은데 이 근처에 공민관이 있거든. 자네들이 그 공민관을 우선 돌봐주게나’라는 말을 그들 부부는 들었습니다.
그 자세한 사정은 이렇습니다. 그 마을에서 곧장 올라가면 사찰이 하나 있는데, 그 사찰이 허물어진 탓에, 부득이 지장보살의 본존을 공민관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헤이안 시대(794~1185년 - 옮긴이)때 만들어진 불상이 공민관에 안치되어 있는 건데요.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시면 그 마을은 폐허가 될 것이므로, 공민관에 있는 본존불을 돌볼 사람이 사라집니다. 두 분 모두 이제는 손 쓸 도리가 없으므로, 자네들 부처가 공민관을 지켜주게나, 그것 말고는 거기서 무슨 일을 벌이든 상관 없다네, 라는 말씀을 했단 겁니다.
제가 가보니까요, 건물이 상당히 큽니다. 1층은 다다미 40 장 쯤 되는 강당이 있고, 2층에는 숙박시설이 되어있습니다. 물론 부엌이나 샤워장도 있구요. 문인 부부가 우선 그곳 다다미를 손질하고, 청소하며, 침구류를 마련해 머물면서, 공민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본래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우수 인력입니다만, 향후에는 회사를 그만 두고 이 마을로 이사올까 고민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장본존님은 누군가가 지키는 게 아무래도 맞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논밭을 일궈서 쌀농사를 짓고, 채소를 심고, 염소도 치구 양도 치구... 하는 이런저런 희망을 읊는 거예요. 참으로 가상하지요. 실상 잘 살펴보면 이런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전국에서요.
이 사람들은 야생자연과 문명 사회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겁니다. 거기서 힘껏 버티고 있는 거예요. 그들도 직관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이 자연과 문명 사회의 인터페이스라는 걸요. 모든 종류의 인터페이스에는 누군가 키퍼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상관없으니까 누군가가 키퍼를 해 주어야만 해요. 그곳에 서서 야생의 침입을 저지합니다. 저지하는 한편, 야생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를 거둡니다. 야생의 존재 즉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와 인간 사이의 경계 영역만이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기 마련입니다. 야생 그 자체나 문명 그 자체는 은혜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원시림 속에서 인간은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한편, 콘크리트 숲 속에서는 거둘 먹을거리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설령 강물이 흘러도 그것은 먹을 수 없는 물입니다. 먹을 물도, 먹을 농산물도 모두,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야생과 문명 사이의 프론트라인입니다. 따라서 그 경계선을 누군가가 꼭 지켜야 합니다. ‘센티널(sentinel)’이란 ‘보초’ ‘파수꾼’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초월적인 존재, 야생의 존재,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와의 경계선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머릿수가 일정 수 있지 않으면 이 세상은 유지될 수 없다는 직감을 따라나선 끝에, 그들은 그 마을에 남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일본 전국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서 여러분과 관련이 있는 도서에 관해 말할라치면, 지금 일본 전국에서 ‘1인 독립 서점’이 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을에 서점이 결국 다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는 거예요. 서점이 한 곳도 없는 마을에서는 도무지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럼 스스로 서점을 차리자. 근데 본래 생업도 있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며, 서점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으니까,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만 서점을 합니다. 듣자하니 서점업은 복잡한 인허가가 필요 없이 간단히 사업자 신고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도매상을 거치자면 터무니없는 자금을 필요로 하지만, 중간 도매를 거치지 않고 출판사 책을 직접 사입하는 책가게는 즉시 개업할 수 있습니다. 그런 ‘1인 서점’이 지금 일본 전역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1인 서점을 만듭시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님에도, 점점 불어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책방을 시작하는 분들은 사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많습니다. 대체로 서점과 카페를 동시에 하고는 했습니다.
요전번에 어떤 심포지엄에 참가한 일이 있습니다. ‘로컬에서 문화 거점 만들기’라는 주제였습니다. 저도 화상회의로 참가했습니다. ‘1인 독립 서점이라는 게 있어서, 상당히 애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니까,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어떤 여성분이 ‘저도 그거 하고 있거든요’ 라고 하는 겁니다. 고치 현(시코쿠 지방 - 옮긴이) 산꼭대기라고 해요. 거기는 차 끌고도 못 올라갑니다. 가는 도중에 차를 버려놓고, 화전밭을 차근차근 헤치며 길을 걷다 보면, 기어코 산꼭대기에 집이 나타나고 거기가 서점이란 겁니다. 하지만 그곳의 컬렉션은 ‘고치 현에서 가장 위트와 아이러니가 넘치는 큐레이션’으로 소문이 나 있어서 손님이 끊이지 않습니다. 제가 허풍치는 게 아니고 실제로 목격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화면 뒤에서, 남학생이 ‘안녕하세요’ 하고 들어와서는 ‘아 여기 잘 찾아왔네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산길을 타고 온 거니?’ 하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이 남학생같은 사람들이 하루에 몇 명씩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런 반면에 도서를 단순한 상품으로 여기면서 비즈니스 하는 식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런 비즈니스 모델은 이제 파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 접근법으로 도서를 팔아 돈을 벌려고 해서는 소용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되든 안되든, 책을 사수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방문한 바 있는, 돗토리 현에 위치한 ‘두물머리-공항[汽水空港]’이라는 이름을 가진 플레이스가 있습니다. 이곳은 젊은 부부가 맨손으로 일으킨 책방 겸 찻집입니다. 신랑은 본디 수도권 사람이었는데요, 2011년에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정말 안되겠다, 도시 문명은 이제 끝장났음을 느껴, 그저 도쿄 반대방향으로 반대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가 돗토리 현의 쿠라요시 시까지 왔을 때쯤에는 돈이 다 떨어져서, 거기서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육체 노동에 종사하며 사는 동안에 갑자기 서점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땅을 마련하여 서점과 카페를 꾸몄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돗토리의 문화공간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부지불식간 이제는 일본 전국에서 속속 사람들이 모여들어, 쿠라요시 근처에서는 지금 이런저런 문화적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심히 창대해졌습니다만, 그 시작은 미약한 ‘1인 서점’에서 비롯하였음을 기억해주십시오.
이런 사례 이외에 1인 출판사도 지금은 전국적으로 일본에 전개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중에는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주말만 나와서 자기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어 출판합니다. 수익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합니다만, 그럼에도 자비를 들여 책을 계속 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모양으로 개인 차원에서 서책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전국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학교 도서관과 사서 모두 지금 모진 꼴을 당하고 있습니다. 억압당해 있을 뿐만이 아니고, 직업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하지만 ‘서책을 지키자’는 암묵적 합의가 전국적으로 넓고 느슨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스스로 희생해, 스스로의 힘으로 도서 문화를 지키기 위한 거점을 세우며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제가 친구로 삼고 있는 청년, 아오키 신페이가 있습니다. 현재 그는 아오키 미아코 사모님과 부부 동반으로, 나라 현에서 ‘루차 리브로’라는 문화 거점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루차 리브로는 자택을 도서관으로 개방해놓은 ‘사립 도서관’입니다.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역시 전국에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 주위에 이런저런 사람이 모여드는데, 그 실천을 목도하러 오는 겁니다. 아오키 부부는 책을 몇 권 썼는데, 개중의 몇몇은 그들의 ‘1인 서점’에서 편집한 출판물입니다.
자본주의 논리와는 무관한 영역에서, 이러한 실천들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여러분도 힘 닿는 데까지, 도서 문화의 수호자로서, 다른 세계로 향하는 대문이나 다름 없는 도서관의 게이트 키퍼로서, 그러한 성스러운 사명에 매진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상부에서 ‘이용자 수를 늘려라’ 라든가 ‘베스트셀러를 비치하라’ 같은 말을 한다 해도 개의치 말고, ‘웃기지 마! 우리는 <성스러운 게이트 키퍼>다. 기도 안 차는구만.’ 하는 식으로, 세속의 간섭을 일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질문 시간】
(가장 많았던 질문이 ‘게이트 키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사서의 구체적인 자질 차원의 문제인데요, 게이트 키퍼론을 현실 문제로 받아들이자면 어떠한 업무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인가, 이상론과 현실론이 양립할 수 있는가. 말하자면 게이트 키퍼 역할을 맡고 있는 도서관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실질적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또한 시대 흐름에 따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의 균형도 문제입니다. 최근 교육 당국이 다급히 현장에 주문하고 있는 게 정보통신 친화적 환경입니다만, 이게 과연 말하자면 ‘주술적 효과’와 나란히 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신 사서분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사서 교사단을 유심히 살펴보면 무척이나 미스테리감 넘치는 선배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 강연을 들으러 온 저희로서는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하니까, 어떤 방식으로 갈피를 잡으면 좋을까, 교육 효과 측면도 따져보고 싶다 하는 그런 질문을 우선 드립니다.)
여러분이 이렇게까지 ‘게이트 키퍼’라는 키워드에 반응해주신 건,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는 자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어휘로 표현할 길이 이제까지는 없었을 뿐이죠. 제가 ‘게이트 키퍼’라는 말을 꺼내니까 여러분이 ‘맞아 맞아’ 하고 느껴주셔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완전 내 얘기야’ 라는 공감이 있으니만큼 이런 리액션을 해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이트 키퍼’라는 단어 자체는,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비로소 나온 말입니다.
의료인이 되는 사람이든, 학교 교사가 되는 사람이든, 기본적으로 멘털리티에 일정한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거예요.
특히 그런 경향성이 강한 게 교육자와 의료가입니다. 이 둘만큼은 세상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집단을 이뤄서 살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4가지가 기본이 된다고 봅니다. 이 네 기둥이 인간 사회를 떠받들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심판자입니다. 그 다음은 ‘힐러’입니다. 질환이나 외상을 낫게 하는 의료인입니다. 그 다음은 ‘가르치는 사람’, 교육자입니다. 그 다음은 ‘기도하는 사람’, 종교가구요. 집단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4개의 기둥이 필요불가결합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것들을 기본동사로 바꿔 말하면 ‘심판’ ‘치료’ ‘가르침’ 그리고 ‘기도’입니다. 이 4가지 기본 동사로 인간 집단의 생활이 영위되고 있습니다. 이 4요소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집단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집단이든 일정 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직종에 강한 끌림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기본적으로 ‘뭔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치유계’ 멘털리티가 장착된 사람은 아마 전체 인구 가운데 7~8% 정도는 항상 존재합니다. ‘가르치는 것이 좋은걸’ 하는 사람은 조금 많아서, 아마 전체의 10% 정도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전부 선생님을 하는 건 아니예요. 다른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어떤 계기로 어느날 문득 ‘선생님 좀 해 주지 않을래?’ 라는 말을 듣고서 ‘네 할게요.’ 라고 즉답하게 됩니다. 생전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은 겁니다.
여기에 오신 분들도 당연한 얘기지만, 사실 어떤 종류의 경향성을 띠고 계신 분들입니다. ‘치유계’ 이기는 한데, 간호사는 마녀 계보를 따릅니다. 의사는 말하자면 자연 과학 계통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의료의 묘한 맛은, 이렇게 자연과학자인 의사와, 마녀인 간호사가 협업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거 진짜 재밌는 얘기니까 좀만 곁다리로 새 보자면요. 모 여대에서 간호학과가 신설되었을 적에 간호사이기도 한 그 학교의 선생님들과 <간호학 잡지>라는 곳의 주관으로 대담 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간호 교육, 여학생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뒷풀이 자리에서 잡담을 하다가 이런저런 내부 정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간호사는 미스테리어스합니다. 별별 일을 다 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당직 병실에 예감이 좋지 않은 환자가 있으면 ‘사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아이고, 이분은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겠는데’ 라는 걸 압니다. 그분의 동료는 또한 이런 경우에 ‘종소리가 들린다’고도 합니다. 간호사들끼리는 알음알음 이런 얘기가 통하지만, 의사는 그런 사례를 전혀 믿지 않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으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어느날 그 병원 근처에서 사고가 일어나 물밀듯이 대량 중상자가 속속 실려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트리아지(triage)’를 시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정된 의료 자원의 분배를 위해 부득이하게 환자를 그 경중에 따라 처치 내용을 달리 해야 했던 상황이지요. 이렇게 된 이상 의사 역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이 두 명의 간호사에게 ‘냄새가 나는가?’ ‘소리가 들리는가?’ 하고 묻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런 특이한 능력이 있고, 또 이걸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의료가라는 말씀입니다.
도서관 사서도 굳이 말하자면 마술을 부리는 권속이라고나 할까, 마법사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전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을 표면화하자면 ‘학교 교육 내부에 ‘게이트 키퍼’, 마법사의 지분을 확보하자’는 구호가 되겠고, 이걸 액면가 그대로 요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좀 어렵지만, 핵심적으로는 여러분의 마인드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학교가 정한 규칙이나 목표, 가치관 및 행동규범이 존재합니다만, 우리는 애시당초에 마녀이니까, 그것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활동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미안하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당신이 하는 말은 속세에서 하는 얘기잖아. 우리는 지식의 아카이브를 수호하고 있어. 단기 실적을 올리라느니, 증거가 어쨌다느니, 수치가 어쨌다느니, 평가가 어쨌다느니 하는 것과는 아예 상관이 없는 차원의 일을 하고 있다 이 말이야. 그럼 이만 수고.’ 이런 식의 삐딱한 태도를 기회 있을 때마다 내비치고 어필하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용자 수가 어쨌네, 열람 횟수가 어쨌네, 그런 건 당치도 않아. 도서관이란 건 원래 사람이 없어야 되는 곳이야’ 같은 식으로 말하는 거죠.
학교로 말할 것 같으면, 뭐가 어찌 됐든 다양한 선생님들의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게, 한 명 한 명의 판단기준이 다른 게 바람직합니다. 가치의 척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서로 다른 사람이 많이 있는 게 아이들의 성숙 차원에서 가장 좋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가치관으로 규율되어 있는 사회는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로 숨막히는 곳입니다.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숙할 수도 없습니다. 학교 내부에는 이렇게 우리 아이들이 ‘쉴 만한 물가’가 필요합니다.
양호실 등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양호실은 의료 원리가 지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의료 원리는 그 옛날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나온 이래로 변함이 없습니다. 상대가 어느 신분에 있는 인간이든,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그 진료 사항을 바꾸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의료는 시장에 내놓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상대가 누가 됐든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의료 행위를 베풀어야 합니다. 의사로서 그렇게 하겠다고 선서하는 겁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양호실은 학교 안에서도 딴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양호실에서만큼은 우리 아이들을 절대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병이 든 사람들을 누구든지 수용하여 치유해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학교 역시 이런 별세계가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학교 도서실은 별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장소에서는 적어도 ‘지(知)’에 관한 문제에서는, 일반 교실과는 완전히 다른 도량형이 적용됩니다. 그곳에 들어갔더니 숨을 깊게 쉴 수 있었다든지, 마음을 푹 놓을 수 있었다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이 모든 담론에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명의 아이를 살릴 수 있었으니까요. 학교 자체는 싫지만, 도서관은 가겠답니다. 그런 느낌으로, 고유한,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다 좋으니까 마법사 같은 분위를 띄우며 업무에 임해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교장한테서 ‘이게 뭔짓거리들이냐?’ 라는 말을 들으면, ‘근데 전 마법사거든요.’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겁니다(웃음).
이건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도서 문화 뿐만이 아니고, 진실된 의미에서의 학교 교육을 생각하자면, 학교 안에는 절대적으로 ‘마법사’가 존재해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해리 포터>와 같은 마법사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 속에서 선생님들은 전원 미스테리어스한 비밀을 품고 있지 않나요. 하지만 오늘날 학교 선생님들의 경우 미스테리어스함을 가질 것을 금지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부디 학교 안에서의 미스테리어스한 부분을 제발 맡아주시기를 저는 간곡히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 질문은 도서실을 이용하는 우리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과 상호관계에 대해서입니다. 최근 학생들을 살펴보면 ‘어쩌라고’ ‘나하고는 상관 없어’ 같은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면 좋을까요.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인 도서관과, 성스러운 존재라고 말씀하신 우리 아이들과의 궁합은 어떠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걸까요? 자기 자신의 무지를 가시화시킴과 동시에, 무언가 알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는 호기심과 향상심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드립니다.)
도서관이란 ‘자신의 무지를 가시화하는 장치다’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의 결점이 노출되었기에 ‘다리가 얼어붙는 것’과, 그럼에도 ‘좌우지간 내면 속 만분의 일이든 억분의 일이든,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다’ 는 배움에 시동이 걸리는 마음은, 셋트 메뉴입니다. 소스라치는 동시에 겸허해지는 겁니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은, 머릿속이 잡다한 지식과 정보로 가득 차 있어서 더는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가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를 ‘무지’라고 합니다. ‘무지’란 다름이 아니고, 머릿속에 쓰레기같은 지식들만 많은 나머지 그만 새로운 것이 들어갈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겁니다.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고, 일찍이 롤랑 바르트*가 주장했습니다.
(* 1915~1980.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 주요 저서 <글쓰기의 영도>, <작가의 죽음> 등. - 옮긴이)
이러한 맥락을 뒤집어보면, ‘지적’이란 말의 의미는,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이 거듭 거듭 지(知)에 대한 새로운 갈망이 솟아오르는 상태를 이릅니다. 생각보다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정지해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더 알고 싶다. 더욱, 배우고 싶다’는 의욕입니다. 더더욱 자기 자신의 지(知)의 프레임을 쇄신시켜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단일한 가치관 속에 갇혀있고 싶지 않게 됩니다. 좀 더 다른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한 자기 쇄신의 역동적 과정을 지(知)라고 이르는 것입니다.
어떤 운반용기가 있다고 칩시다. 그 속에 여러 지식이나 정보, 기술을 쑤셔박는 것이 ‘뭔갈 배운다’는 것이라고 보통은 여기기 마련입니다만, 그건 아주 틀린 생각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 저장공간 자체가 점차 형상을 바꾸고, 용적이 변화되고, 기능이 변화되어 가는 것이야말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하드디스크 안에 이것저것 콘텐츠를 저장해두는 게 아니란 말씀이예요. 새로운 입력이 있을 때마다 저장용기 자체가 다른 것으로 변화해 가는 것을 ‘배움’이라고 이르는 법이니까요. ‘괄목상대’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삼국지에서 나오는 말인데, 배움의 도정에 있는 인간은 단 사흘동안 안 보이는 사이에 딴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배우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면 3일 전하고는 표정도, 말도 어휘도 목소리 톤마저 바뀝니다. 모조리 바뀌어버리는 거예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배운다는 건요. 본디 학교교육이란 우리 아이들이 딴사람이 되는 역동적 과정을 지속지원하는 겁니다.
무지 상태에 도취, 안주해 있는 우리 아이들을 자기 쇄신 프로세스로 안내하는 것이 교사의 임무입니다. 안주해 있다는 것 자체가 ‘무지’를 의미합니다. 척척박사 연하며 시답잖은 궤변으로 선생님을 이겨먹으려고 드는, 같잖은 ‘금쪽이(원문 ガキ; a brat - 옮긴이)’가 종종 나옵니다만(웃음), 그런 게 바로 무지의 전형입니다.
이러한 무지 상태에 꼭 응고되어 있는 친구들을 풀어서 녹여내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사실 그로써 자기 자신을 방어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자기 쇄신이란 건 자기가 한 번 손에 쥔 스킴(scheme)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큰 맘 먹고서, 자신의 신념 체계를 부수고, 무방비한 개방 상태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그때에는 매우 부서지기 쉽고, 상처받기 쉽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자기 쇄신은 불가능하기 마련입니다. 연속적인 자기쇄신은 사실 위험천만한 시도입니다. 배움을 위해 자기 방어를 해제하는 것이므로, 그때는 대단히 유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유약한 상태로 자기 자신을 두었을 적에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은 경험을 가진 아이는,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결국 자기 자신을 다른 누군가에게 개방하기를 그만 두게 됩니다. 이제는 겁이 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그 방어 기제는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이제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는 엄포로 표면화됩니다. ‘내가 알아서 살 거야!’ 라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는 사실 뭔가 상처를 입었던 겁니다. 용기를 갖고서 자기 자신의 자치관을 포기해 보았던 때에 상처받은 경험이란 게 있는 겁니다. 그러니만큼 그것을 해제하는 건 누가 되었든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가 대학 강단에 서 보니 비로소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만 18세 쯤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게 된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정도의 차는 있다손 쳐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트라우마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절대로 이젠 교사 따위한테 마음을 열지 않겠다고 각오를 굳히고서 등장하는 학생도 있곤 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겁먹을 것 없어. 네 마음을 열어도 네게 상처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걱정 말렴’ 이라는 메시지를 납득시키는 데 2년 정도가 걸립니다. 겨우겨우 3학년 정도쯤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지적인 스킴(scheme)을 부수고서, 자기쇄신 과정에 오를 수 있게 됩니다. 상처받기 쉬운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기만 하면 자기 자신을 개방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부분의 우리 학생들은 아마도, 예전에 자신의 마음을 한 번 열고서 선생님을 믿고 부모님을 믿고 친구를 믿어버린 탓에,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줄곧 마음문을 걸어잠그고 있습니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닫아버리는 겁니다. 따라서 교육에 몸 담고 있는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바는, 아이들이 마음을 열었을 때에, 다시 말해 취약한(fragile) 상태일 때, 절대로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학교란, 원래대로라면 온실 역할을 꼭 해줘야 하는 장소입니다. 자신을 아무리 무방비 상태로 놓아두어도 누군가로부터 상처받는 일이 없다는 점을 선생님들이 보증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순수함(innocence)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성스러운 존재’와 통해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것은 다름 아닌 순수함을 이릅니다. 순진무구하고 무방비하다는 것입니다. 순수함을 띠고 있을 때 상처를 입으면, 아이들은 방어 기제를 취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적이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무방비함을 갖출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자기 방어가 철저하고 어떠한 공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동시에 지적인 사람이 될 수는 단언컨대 없습니다. 지적이라는 것은 곧 무방비하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무방비한 상태로의 전환’은 그렇게 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함양시켜 가는 것이 학교 교육의, 특히 초중고 6년 동안의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순진무구해도 좋다, 무방비 상태로 있어도 상관 없다, 그렇게 해도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게 바로 그런 작업입니다.
무방비함을, 순수함을 유지한 채로 성장한 사람을 만나 보면 대단히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 존재로 또한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 권력 명예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그렇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이노센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회적 승인을 집요하리만치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이 자상하게 사랑을 베풀어 준 경험이 있는 자녀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죽자 살자 유명해지겠다든가, 돈을 벌겠다든가, 남에게 굴욕감을 안겨줄 수 있는 입장이 되고 싶다고는 바라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장에서 마주칠 수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뭔가 좀 아닌 것 같은 방향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미상불 이노센스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서 여러분이 학생들 얼굴을 직접 보면서 지내실 테니 잘 아실 겁니다. 구김살이 없고 언뜻 무방비해보이는 친구들은, 지금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말로요.
학교 교육의 참된 임무를 생각할 때는, 우리 아이들 마음 속에 가까스로 남아있는 한 줌의 순수함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무방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에게 놀라운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삐걱 삐걱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데도, 동시에 지적으로 혁신적인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킬 방도가 여럿 있습니다만, 그중 한 가지는, 일단 여러분이... 학교 안에 ‘미스테리 존’을 꾸며주시는 거거든요(웃음). 미스테리 존 내부에서만큼은 무방비한 자세를 취해도 안심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여러분 ‘게이트 키퍼’를 맡은 사서 분들은 무한을 상징하는 도서실에서의 행동 요령이라고나 할까, 서책을 다룰 때의 매너를 알고 있으므로, 사서 여러분의 노하우에 학생들이 따라만 준다면 그들이 결코 상처받지 않을 거라는, 그러한 보증을 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미스테리 존 깊숙이 들어가 본 경험이 있는 ‘선배’로서, 여러분이 우리 아이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는, 그런 작업을 나서서 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여기서는 줄세우기도 아니하고, 평가도 내리지 않으며, 물론 윽박지르지도 않으며 불필요한 공포심을 심어주지도 않습니다. 이곳에서만큼은, ‘길 안내인’이 따라붙는 한, 절대로 상처 받지 않을 것이라는, 그러한 장소를 학교 내부에 만들어 주시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따라서 하시모토 도오루 같은 세속의 권력자들은 그런 장소만 쏙쏙 골라 망가뜨리는 겁니다. 학교 안에 세속의 가치관이 통용되지 않는 미스테리 존이 떡하니 있어 버리면 그들의 신자유주의가 위협받으니까요. 그럼에도 미스테리 존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합니다. 이 성지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단결해야 합니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생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학교의 본무는 평가나 줄세우기, 상대적 우열을 논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데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거듭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책과 미디어 등 자료 전반에 대한 질문입니다.
모든 자료가 신성성을 띠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예컨대 판타지 문학을 읽는다 하더라도 지혜로워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의 지식과 ‘연결’되겠다는 의미에서는 논픽션・비문학 등 사실적인 텍스트가 쓰여진 도서를 읽는 게 아무래도 깊이 있는 독서 활동이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질문입니다.
또한 현재 학교 도서관은 학과의 탐구 학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 과정에서 도서관에서의 조사 활동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조사를 목적으로 한 독서가 있는 반면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자 하는 독서도 학교 도서관에서는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종이 독서 센터와 영화 등 미디어 센터 사이의 균형이라고나 해야 할까, 이걸 어떻게 절충해야 좋을지도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부쩍 늘고 있는 디지털 자료와의 안배도 고려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기꺼이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책만 앞에 두었다 하면 숨이 턱 막히는 친구도 학교 도서관 실무에서는 곧잘 있으므로, 이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지 등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판타지냐 논픽션이냐 하는 장르는 상관없습니다. 어떤 책이든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좁고 자그마한 자신의 껍질을 깨뜨리고서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겁니다. 어린이들은 상당히 고집이 셉니다. 자신의 연령이 되었든 성별이 되었든 자신이 귀속해 있는 집단의 문화가 되었든, 그런 종류의 ‘감옥’ 안에서 빠져나오기가 꽤 어렵습니다. 이를 해제시켜 ‘감옥’ 바깥으로 구출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머나먼 나라의, 머나먼 시대의, 연령도, 성별도, 종교도, 생활 문화도 완전히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신체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자아의 구속[呪縛]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으로는 그게 가장 잘 듣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소설, 판타지 물론 비문학도 좋습니다. 논픽션을 예로 들면, 실제로 리얼한 인물이 등장해서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것이므로, 그 리얼한 타자 속에 상상적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몸이 되어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제 개인적인 독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0세 무렵의 일입니다. 그때까지는 만화밖에 안 읽는 아이였지요. 저희 아버지는 교양을 중시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 을 집에 들이게 되었고, 그걸 읽혔습니다. 매월 한 권씩 집에 책이 도착합니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 속도가 느렸습니다. 상당히 지루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부모님이 읽으라고 명령하시기에 꾸역꾸역 읽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꼬박 지나도 한 권을 채 읽을 수조차 없습니다. 미처 다 못 읽었는데도 다음 책이 도착하니까 못 읽은 책이 점점 쌓여갑니다. 그럼에도 고새 책 읽는 게 익숙해지고 속도도 빨라져서 책을 읽는다는 게 점점 즐거워졌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이라는 책이 도착했습니다. 읽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1860년대의 뉴잉글랜드에 사는 4인 자매 가족에 속한 여자아이 안에 상상적으로 스며들어가서 여자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을 한 겁니다. 조에게 감정이입하여, 소녀가 되어 세상을 보는 경험을 했을 때, 제 내면에서 무언가 전구가 켜졌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키다리 아저씨> <빨간머리 앤> <사랑의 요정> <알프스 소녀 하이디> <소공녀> 등을 읽고는 소녀의 몸이 되어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이 너무나 재미나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레 소녀들이 읽는 순정만화도 읽을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순정만화를 아예 못 읽겠다는 사람들이 어지간히 있습니다. 소년만화는 환히 꿰면서 엄청스레 읽어대는데도, 순정만화는 안 읽습니다. 칸 분할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겠고, 대사도 너무 복잡해서 못 읽겠다는 겁니다. 저는 보기 드문 ‘순정만화 읽는 남자’ 입니다. 정말 소수에 해당됩니다. 스즈키 쇼(1952~. 무용평론가. 무용사가. 번역가 - 옮긴이) 씨와 예전에 “순정만화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어린이 시절에 소녀 소설을 읽고서 여자아이가 되어 본 경험이 있는 경험의 여부 차이가 크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스즈키 씨도 저와 마찬가지로 소녀의 몸이 될 수 있는 사람인 겁니다.
올해 여름 <다 빈치> 지(誌)에 야마기시 료코 특집(2023년 9월)이 실렸습니다. 저한테 야마기시 료코 선생의 만화가 어째서 이렇게 무서운가를 써달라는 청탁을 해 오더군요. 그러고 난 뒤 문춘에서도 문고화를 맞아 제게 해설을 써달라고도 했습니다. 남자면서도 소녀들이 읽는 만화책에 해설문을 써서 싣는 사람은 적습니다. 저는 그럴 수 있는 소수파 사람입니다.
제가 기고했던 에세이 바로 윗칸의 저자는 이와이 시마코 씨였는데, 이와이 씨가 야마기시 선생의 가장 무서운 작품으로 꼽은 게 공교롭게도 저랑 똑같았습니다. 제가 하나 덧붙이기는 했지만요.
소녀용 만화를 읽을 수 있게 됐단 건 내놓고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중요한 건 어린이 시절에 소녀 소설을 조기교육으로 읽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여자아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일이라는 각인이 애초에 되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여성이 쓴 작품을 수월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훗날 문학이 아닌 철학을 전문분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근데 철학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역시 철학자 속에 상상적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 사람은 어째서 이런 개념을 필사적으로 풀어 쓰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건데요. 그러는 사이에 ‘아 그렇구나. 이런 말을 하려고 했구나’ 하고 웬일인지 알게 됩니다. 자신의 선입관을 내려놓고, 타인 속에 들어가보지 않으면, 철학서는 그냥 어렵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철학은 문학서를 읽는 것처럼 읽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말투는 비교적 딱딱하지만, 실제로는 철학자 역시 ‘이것만큼은 내가 꼭 말해야만 눈 감을 수 있겠다’ 라는, 억누를 수 없는 정념이 있기 때문에 철학서를 쓰는 것입니다. 그 감정은 소설가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르는 상관 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머나먼 나라의, 머나먼 시대의, 현재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 속에 틈입해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기도 하거니와, 굉장히 유쾌하고 근사한 일이라는 점을, 부디 우리 아이들에게 힘주어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덜미를 붙잡고서 “야 됐고, 책 읽어!” 하는 겁니다(웃음).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조삼모사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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