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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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와 <스가타 산시로>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 19. 20:36
젊은이들로부터 가끔 ‘고민 상담’ 이메일이 온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답장하고 있다. 저번에는 영화 와 불교 사상의 관계를 자유 연구 과제로 하고 있는 대학교 1학년생으로부터 문의가 도착했다. 에 나오는 사제관계는 일본 무도(武道)의 사제관계와 통하는 것입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조지 루카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엄청난 팬으로서, 구로사와를 향한 오마주가 여기저기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에서의 중심적인 사제관계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요다, 오비완 케노비와 아나킨 스카이워커 이렇게 두 쌍입니다. 아마 오리지널은 구로사와의 일겁니다. 야노 소고로와 스가타 산시로의 관계가 루크와 요다이고, 무라이 한스케와 히가키 겐노스케의 관계가 아나킨과 오비완에 투영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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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 Buy Me Love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 6. 20:22
‘토착의 지’를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아오키 신페이 군과 오랜만에 실제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면으로 대담을 하였다. 아오키 군의 근간(近刊) 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아오키 군은 십수년 전 필자가 주최하는 대학원 연구수업에 다녔던 청강생 청년이었다. 지중해 고대사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자였는데, 도시에서의 생활에 지쳐 파트너인 아오키 미아코 씨와 함께 나라 현 히가시요시노라는 산속 마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집을 빌려 자택을 ‘사설 도서관’으로 개방하고, 현지에서 장애인 취업 지원을 하며, 히가시요시노를 거점으로 학술 활동을 해오고 있다. 직감에 따른 경우에는, 우선 행위가 있고, 나중에 ‘어째서 내가 이런 일을 했는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하지만 애초에 직감적인 움직임이므로,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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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츠라 니요 씨의 라쿠고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27. 20:56
필자는 병적인 두문불출인지라, 요세(寄席)장에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는 간 적이 없다. 전통 예능이 싫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한다. 하지만, 집에서 나가는 것이 억겁인 것이다. 누가 손을 내밀어 끌어주지 않으면 갈 일이 없다.다행히도 라쿠고에 관해서는 다카시마 고우지 선생이 손을 잡고 끌어주어서, 한조테이에 ‘병풍’으로서 따라가게 되었다. 작년 여름 거기에서 처음으로 가츠라 니요 씨의 무대를 보았다. 제목은 . 말씨의 선연함과 등줄기의 뻗음이 인상적이었다.필자는 무도가이므로, 신체의 심지가 쑥 통하는 신체를 보면 어딘가 기뻐진다. 니요 씨는 말랐지만, 체간이 강하다. 검이나 곤봉을 휘둘러도 딱 모양새가 나올 것이다.구조가 안정되어 있으면 일탈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문학, 무도, 예능, 건축 등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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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시키고 싶어하는 남자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1. 18. 20:49
극단 니토샤(二兎社)가 나가이 아이 씨의 작품 를 14년만에 다시금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도쿄 도립 고등학교 졸업식의 국가 제창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교사와, 그 교사를 설득하는 교장 사이의 긴장된 의논을 중심으로 한 희곡이다. ‘국기 국가(國歌)에 대해서’ 의견을 요청받았으므로, 아래와 같은 문장을 기고했다.얼마전 미션스쿨 행사에서 불러주어 강연하였다. 장소는 성공회 계열 학교였는데, 강연 전에 예배가 있었고, 회중이 함께 오르간 연주에 맞춰 성가를 불렀으며, 주(主)의 기도를 제창했다.필자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그날도 아침 일찍 ‘아침 불공’을 드렸다. 축문과 반야심경, 부동명왕의 진언을 읊고, 구지[九字] 주문을 외면서 도장을 영적으로 맑게 하는 것이 합기도 도장주인 필자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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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받는 마인드를 해제하기: 합기도의 오의(奧義)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9. 16. 22:19
아이키도라는 무도(武道)를 가르치고 있다. 수련을 시작한지 반세기가 흘렀고, 가르친 지 30년이 지났다. 수백 명의 문인을 기르며 알게 된 사실은, 오늘날의 일본 사회가 ‘비(非) 무도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구조체라는 것이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조금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도는 승패, 강약, 교졸(巧拙)을 겨루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은 무도란 경기장에서 라이벌과 대치하여 승패를 다투고, 기량을 평가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축구나 복싱, 피겨스케이팅은 그렇다. 하지만, 무도는 본래 그런 것이 아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심사’받는다는 것은 ‘기선을 제압당하는後手に回る’ 것이기 때문이다.‘기선을 제압당한다’ 함은 무도적으로 ‘뒤처진다’는 것인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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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성행위’ 와 자기결정론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30. 11:10
20년 전쯤에 성에 대한 윤리를 주제로 한 논집 아래 ‘성노동’에 대한 기고를 요청받았다. 정말로 문외한인 분야의 논건이었지만, 고심하여 썼다. 어떤 책이었는지는 잊어버렸다. 분명히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나온 논집이었기는 한데, 지금까지 갖고 있지는 않다. 그때 했던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쓰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들어가며 초장부터 솔직하게 말씀드리는데, 필자 자신은 성노동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한 것도 아니고, 온 힘을 다해 주장하고 싶은 개인적 의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종종 성노동을 다룬 문장을 읽곤 하지만, 몇 쪽(때에 따라서는 몇 줄) 읽기만 해도 기분이 축 처져 책을 덮어버리게 된다. 참 난감하기는 한데, 필자를 좀먹는 이 피로감이 반드시 개인적인 것이라고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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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조노 스스무 <교양으로서의 신토神道, 살아남은 신들> 서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6. 30. 23:55
시마조노 선생이 쓴 신토론 책에 대한 평론을 의뢰받았다. 도요경제신보사 사이트에 게재된 글임.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필자의 개인사를 짧게 이야기하기로 하자. 필자가 어떤 식으로 신토(神道)에 접근했었던 인간인지를 밝혀두고자 한다. 필자는 신토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 아니다. 그 편향성을 밝히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아이키도라는 무도(武道)를 20대 때부터 수행하여, 대학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문하생도 두고 있다. 긴 시간동안 공립 체육관의 무도장을 빌려 수련하였는데, 뭔지 모르게 성에 차지 않는 것이었다. 가미다나神棚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립 시설은 ‘정교 분리’가 원칙이므로, 모든 종교적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없으면 불안하다. 꼭 가미다나가 아니어도 좋다. 화두를 써놓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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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신앙과 수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5. 1. 20:03
한국의 박동섭 선생이 ‘우치다 다쓰루 연구’를 위해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있다. 열람코자 하는 주제가 있는데, 한국의 도서관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하기에 서랍을 한참 뒤적거리다 보니 나왔다. 2013년 4월에 썼던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상당히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박 선생에게 보내는 김에 블로그에도 올리기로 한다. 23년간 고베 여학원 대학이라는 미션스쿨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때까지 기독교와의 접촉은 거의 없었지만, 근무하면서 교목과 대화하고, 예배를 보며, 때로는 권유받아 성경을 논했다. 유대교 철학이 전문인지라 비 기독교인이지만, 은 학생 시절부터 계속 읽었다. 필자가 연구했던 것은 에마뉘엘 레비나스라는 프랑스의 유대계 철학자이다.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