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
가츠라 니요 씨의 라쿠고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27. 20:56
필자는 병적인 두문불출인지라, 요세(寄席)장에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는 간 적이 없다. 전통 예능이 싫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한다. 하지만, 집에서 나가는 것이 억겁인 것이다. 누가 손을 내밀어 끌어주지 않으면 갈 일이 없다.다행히도 라쿠고에 관해서는 다카시마 고우지 선생이 손을 잡고 끌어주어서, 한조테이에 ‘병풍’으로서 따라가게 되었다. 작년 여름 거기에서 처음으로 가츠라 니요 씨의 무대를 보았다. 제목은 . 말씨의 선연함과 등줄기의 뻗음이 인상적이었다.필자는 무도가이므로, 신체의 심지가 쑥 통하는 신체를 보면 어딘가 기뻐진다. 니요 씨는 말랐지만, 체간이 강하다. 검이나 곤봉을 휘둘러도 딱 모양새가 나올 것이다.구조가 안정되어 있으면 일탈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문학, 무도, 예능, 건축 등에 ..
-
환대라는 것에 관해: 모테 나시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20. 21:42
다도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필자는 다도에 관해서는 참으로 깜깜한 처지에 있으므로, 차에 대해 갖고 있는 특단의 지견이 없다. 그 대신에 ‘모테나시’에 대한 사견을 쓰고자 한다. ‘모테나시もてなし’의 기본은 상대방에 따라 응대의 내용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환대의 본의 또한, 아마 그것이 전부일 것이다. 상대의 겉모습을 보고서 일단 환대해 두면 자신에게 이익이 있으리라고 보는 상대에게는 예를 다하면서, 꾀죄죄한 상대에게는 차를 내지 않는 사람은 ‘환대’라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환대의 가장 이해하기 쉬운 모습은, 황야를 터벅터벅 걷다 온 이방인이 물 한잔을 요청할 때, 장막의 주인이 활짝 웃는 얼굴로 받아들이며,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유목민들의 세계에서는 이..
-
미국과 중국의 향방: <월간일본> 인터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19. 21:27
―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각기 신체제를 출범시키면서 미중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습니다. 세계 정세의 향방과 관련한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미국 승자 독식’과 ‘미중 양극론’ 그리고 ‘다극화, 카오스화’ 이 세 가지입니다. 최근 수년 간은 ‘미중 양국이 패권을 다투는’ 양극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만, 저는 ‘다극화하는 동시에 미중 경쟁에서는 미국이 우위’인 시나리오가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미국이 품고 있는 최대 문제는 ‘국민 분열’입니다만, 이에 대해서 미국은 과거 몇 번이나 분열을 극복해낸 ‘성공 체험’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위기에 대한 ‘레질리언스’(회복력)가 중국보다는 미국이 더 강한 듯 보입니다. 미국은 건국 이래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
-
세 가지 시나리오: 앞으로의 세계 정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9. 20:48
세계 정세가 오리무중이다.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 모두 글로벌한 협동 없이는 해결 불가한 문제들인데, 어떤 나라도 리더십을 발휘할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런 탓인지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막연한 주제로 강연 의뢰가 줄잇는다. 다행히도 필자는 ‘앞으로의 세상’ 같은 말로 허풍을 치는 것을 특기로 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서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번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실패해 몰락하고, 경제적 거품 붕괴와 인구 문제로 중국의 성장이 멈추는 한편, 미국은 국내의 분열을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는 미국 승자독식 시나리오이다. 두번째는 ‘미국도 버티지만, 중국이 강권 체제를 유지한 채 경제 재활성화에 성공한다’는 미중 양극 시나리오다. 세번째는 ‘미국 중국 ..
-
헌법 공언론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8. 21:04
이번 호는 헌법 특집이므로, 헌법에 대한 사견을 쓴다. 똑같은 말을 여러 군데에다 썼으므로 ‘이미 아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헌법에 대해 필자처럼 말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는 것 같으므로,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말을 잇는다. 헌법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인 정의는 ‘헌법은 공언이다’라는 것이다. ‘공언인 것이 당연’하고, 좀 시비조로 말하면 ‘공언인데 뭐 어쩌라고’인 것이다. 여러가지 종류의 ‘선언’과 똑같이, 헌법도 공언이다. 다만, 그것은 ‘채워야 할 공백을 가시화시키기 위한 공언’, ‘방향성이 있는 공언’, ‘현실을 창출해내기 위한 공언’이다. 헌법과 눈 앞의 현실 사이에는 반드시 모순이 있다. 그것이 헌법의 본래 모습인 것이다. 헌법이란 것은 ‘쓰여져 있는 내용이 실현될 ..
-
비교공산당론: L’Internationale sera le genre humain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6. 21:08
일전에 일본공산당으로부터 ‘당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는 설문조사에 응답을 요청받았던 적이 있다. 필자는 ‘개명해서는 안된다’라고 답했다. 필자의 친구들 가운데에서도 실리적인 이유에서 ‘공산당같이 낡은 이름은 버려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개명해도 당은 마르크스주의를 그대로 계승할 것이며, 언론도 아랑곳없이 ‘〇〇당(옛 공산당)’이라고 계속 표기할 것이다. 과연 이런 전망 속에 어떠한 ‘실리’가 있다는 말인가. 필자가 일본공산당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게 좋겠다고 보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비교 공산당사’라는 흥미 깊은 연구 영역이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전 세계에 공산당이 생겨났다. 독일 공산당, 프랑스..
-
미국과 마르크스의 심상찮은 인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5. 22:36
에 격주로 1500자 에세이를 쓰고 있다. 상당한 양이 쌓였고, 이를 블로그에 갈무리하여 올려두기로 했다. 시간 순으로 되어있지 않은 점 하해와 같은 양해 바란다. 미국론을 쓰고 있다. 1장을 나눠 ‘마르크스와 미국’을 논했다. 알지 못하셨던 분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마르크스와 미국 사이에는 얕지 않은 인연이 있다. 19세기 미국에는 ‘홀스테드 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일정 기간 공유지에서 경작에 종사하면 토지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법률이다. 자영농이 되기를 바랐던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서부 개척의 추진력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코뮤니즘의 선구적 실천’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마르크스 자신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텍사스에 이민을 갈 계획을 세웠다. 미국에는 마르크스의 지인과 친..
-
도서관의 투쟁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2. 23:16
필자를 강연에 초청해주는 곳은 교육 관련 단체가 가장 많다. 의학계부터 기독교계, 시민단체 등도 곧잘 불러준다. 최근들어 도서관 관련 단체에서 강연을 두 번이나 요청받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도서관은 지금 위기적 상황에 놓여있다. 모든 지자체가 도서관을 예산 절감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 사회적 유용성을 수치적, 외형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기관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시민의 지적 성숙에 어떻게 이바지했는가를 연말에 수치적인 증거로 나타내라고 요구해도 그것은 무리다. 예산을 투여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분야는 불필요한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반론하기 어렵다. 그래서 도서관 예산은 삭감되고, 사서는 해고당하며, 결국에는 사유화된다. 하지만 사서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점은 도서의 비치에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