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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마르크스의 심상찮은 인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5. 22:36
<주간 금요일>에 격주로 1500자 에세이를 쓰고 있다. 상당한 양이 쌓였고, 이를 블로그에 갈무리하여 올려두기로 했다. 시간 순으로 되어있지 않은 점 하해와 같은 양해 바란다.
미국론을 쓰고 있다. 1장을 나눠 ‘마르크스와 미국’을 논했다. 알지 못하셨던 분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마르크스와 미국 사이에는 얕지 않은 인연이 있다.
19세기 미국에는 ‘홀스테드 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일정 기간 공유지에서 경작에 종사하면 토지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법률이다. 자영농이 되기를 바랐던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서부 개척의 추진력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코뮤니즘의 선구적 실천’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마르크스 자신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텍사스에 이민을 갈 계획을 세웠다.
미국에는 마르크스의 지인과 친구가 많이 있었다. 1848년 시민 혁명 실패 후 관헌의 추적을 피해 많은 사회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간 탓이다. 이들은 ‘48년 세대(포티 에이터즈)’라고 불렸다.
그 가운데 요제프 바이데마이어라는 전 프러시아 군인이 있었다. <신 라인 신문> 시절 이래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친구인데, 뉴욕에서 잡지를 창간했다. 그러기 직전에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바이데마이어는 그 사건에 대해 ‘당초에 어떤 역사적 조건에 따라 일어난 일인지 해설해 주었으면 하네’ 하고 옛 친구 마르크스에게 기고를 요청했다. 이에 마르크스가 써서 보낸 것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다.
‘런던 주재의 날카로운 정치기사를 쓰는 남자’라는 평판이 있었던 마르크스에게, 당대 뉴욕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했던 <뉴욕 트리뷴>지 편집장 호러스 그릴리는 런던에 있던 마르크스에게 특파원 자리를 제안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마르크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1852년부터 61년까지 10년 동안 400 꼭지가 넘는 기사를 송고했다. 그중 몇 개는 사설로 게재되었다. 다루었던 테마는 영국의 인도 지배, 아편 전쟁, 미국의 노예 제도 등 다양했다. 뉴욕의 지식인들은 남북 전쟁 직전 10년 동안 거의 열흘에 한 꼭지의 기세로 마르크스의 정세 분석을 접한 것이다. 그다지 언급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실상 마르크스는 남북 전쟁 이전의 미국 북부 여론 형성에 깊이 관여한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자, 노예 해방을 사회적 공정의 실현으로 평가한 ’48년 세대’는 당연히 북부에 투신했다. 64년 링컨 재선 당시, 제1인터내셔널은 축전을 보냈고, 링컨은 이에 대해 ‘미합중국은 유럽의 노동자들의 응원 메시지를 통해 계속 싸워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는 사의로 답했다. 이런 인연이 있었는데도 현재 미국 정치를 논하는 사람들 가운데 미국 정치사와 마르크스 사이의 관련성을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두 번에 걸친 ‘공산주의자 사냥’ (한 번은 미첼 팔머에 의해, 다른 한 번은 조셉 매카시에 의해)에 따라, 미국사에서 마르크스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쓸려나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대학에서 서부극 영화의 정치성을 검증해보자는 테마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때 존 포드 감독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보았다. 동부 로스쿨을 막 졸업한 청년 변호사 랜스(제임스 스튜어트)가 서부에서 터프한 야생남(존 웨인)과 만나, 성장을 이룬다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어째서 자네 같은 인텔리가 서부에 온 것인가’하는 물음을 받자, 랜스가 ‘호레스 그릴리가 말한 <청년이여, 서부로 향하라> 라는 슬로건에 감화되어서’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었다. 마르크스를 미국에 불러들인 그릴리는 또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를 서부로 내보낸 것이다. ‘미국의 감춰진 내막은 깊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2022-11-13 10:4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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