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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투쟁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2. 23:16
필자를 강연에 초청해주는 곳은 교육 관련 단체가 가장 많다. 의학계부터 기독교계, 시민단체 등도 곧잘 불러준다. 최근들어 도서관 관련 단체에서 강연을 두 번이나 요청받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도서관은 지금 위기적 상황에 놓여있다. 모든 지자체가 도서관을 예산 절감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 사회적 유용성을 수치적, 외형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기관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시민의 지적 성숙에 어떻게 이바지했는가를 연말에 수치적인 증거로 나타내라고 요구해도 그것은 무리다. 예산을 투여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분야는 불필요한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반론하기 어렵다. 그래서 도서관 예산은 삭감되고, 사서는 해고당하며, 결국에는 사유화된다.
하지만 사서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점은 도서의 비치에 있어서의 시장 원리의 강요라고 들었다. 이용자가 읽고 싶어 하는 책만을 두어라, 열람 실적 없는 서적은 폐기하라, 여하간 이용객을 늘려라... 하는 지시를 받는 모양이다. 허나, 그건 말이 안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 자신이 갖고 있는 ‘도서관의 추억’이란, 인기 없는 서가 사이에서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긴 시간 걸어다녔던 것이다. 좌우를 둘러보면 끝없이 펼쳐진 서가에 무수한 책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그 책들 대부분에 대해 필자는 그 제목이나 글쓴이를 알지 못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전문영역 서가에 그 분야 서책이 꽂혀 있다. 나 자신이 죽기 전까지 다 읽을 수 있는 책의 숫자는 겨우 몇천 권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양은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서책들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는 이곳에 축적된 인류의 지(知)를 거의 대부분 모른 채 죽는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필자는 밥 먹듯 도서관 안을 긴 시간 떠돌아다녔는데, 그중 가장 뼈저린 감회는 ‘읽고 싶은 책이 이렇게나 많다니’ 라는 기쁨 이상으로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생애를 마감할 대상으로서의 책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자기 자신의 좁은 지견에 대한 통절한 자각이었다.
도서관은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무지를 가시화시켜주는 장치이다. 자신이 얼마나 세상 사물을 모르는지 가르쳐주는 장소이다. 그래서 이 장소에서는 숙연히 옷깃을 여미고서 ‘1분 1초를 아껴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결의를 새로이 다짐하게 된다. 도서관의 교육적 의의는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만약 도서관의 서가가 ‘자신이 이미 읽은 책과 앞으로 읽을 책’으로만 파묻혀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이 다 알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만으로 구성된 사회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경직되어 있으며, 환기가 안될 것인지는, 조금이라도 상상력이 있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관계자들에게 ‘모두가 읽고 싶어 하는 베스트셀러만을 꽂아둬라. 안 읽히는 책은 버려라. 그러면 이용객은 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지성과는 연고가 없는 인간이다. 허나 지금 일본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정부의 요직을 점하고 있으며, 교육과 문화 분야 예산의 분배를 결정하고 있다. 일본의 지적 생산력이 급격한 기울기를 그리며 하락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정치가가 ‘시민들에게 이러이러한 책을 읽혀라’ 하고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사서들에게 충분한 전투력이 있다. 하지만, 시장 논리에는 맞서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은 사람들 속에 내재해 있는 ‘배움’에의 욕망에 불을 댕기는 귀중한 지적 장치이다. 그러한 ‘성역’에 시장 논리나 정치 이념은 결코 개입해서는 안된다.
이런 얘기들을 했다. 서책을 사랑하는 얌전한 이들이었으므로 ‘전력을 다해 싸워라’ 하는 필자의 구호[agitation]는 이들을 적잖이 놀라게 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
(2022-11-13 10:38)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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