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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에 대해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님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1. 28. 19:10
여름방학이 되면 교원들의 연구 집회가 전국 각지에서 개최된다. 올해는 이제껏 두 대회에 초청받아 기조 강연을 했다. 하나는 전국 작문 모임, 하나는 도호쿠 6개 현 교육 연구 집회였다. 돌아오는 여름에 교육 관련 집회 강연이 또한 두 건 예정되어 있다. 나이가 든 탓에 먼 곳으로 여행다니는 게 신체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교육 관련된 강연 의뢰는 될 수 있는 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많이들 불러주시는 이유는, 아마 필자가 현장의 교원들에게 '힘내세요'라고 말하지 않는 소수의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들은 이미 충분히 파이팅하고 있다. 과로사하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부성, 교육 위원회, 보호자, 언론 등은 '노력이 부족하다'며 비판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니 교원 지원자 수가 격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교원 분들에게 '쓸데없는 업무는 필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에만 온 힘을 집중시키는 게 훨씬 낫다'고 말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란, 학생들을 웃는 얼굴로 학교에 맞아들이고,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이곳이 네가 있어야 할 장소'라는 보증을 해주며, '나는 네가 여기에 있어주기를 바라. 그러니 여기 계속 있어주지 않을래?' 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일이다. 학생들을 환대하고, 승인하며, 축복하는 것이다. 그것만 되면 교사의 역할로서는 거의 만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이외의 것, 교과를 가르치는 일을 포함해 회의나 서류 작성, 평가 심사 등은 모두 부차적인 업무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의 본질은 자학 자습(自學自習)이다. 학생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배움'에의 의욕이 발동하게 된다면, 솔직히 말해서, 교사의 일은 반 이상 끝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읽고 싶은 책이 있어요' 하면 책을 손에 들려주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하면 준비해 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하면 어떻게든 손을 써서 소개시켜준다. 그런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발동되었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언제 어떤 계기로 '배움에의 의욕'이 발동될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효과적인 방법이 몇 가지 알려져 있는 것으로 안다. 교사의 몫은 그것을 우직하게 되풀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학생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배움에의 의욕'이 어떤 계기로 발동될지 예측이 불가능한 이상, '아무리 안 맞는 총도 계속 쏘다 보면 결국 한 방은 맞는다' 식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학생들의 지적 욕구가 항진(亢進)한다'는 마법의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답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띄는데, 만약 그 사람이 '그러니 돈을 내라(혹은 자신을 숭배하라)'고 나오는 경우에는, 절대 믿으면 안된다. 학생들의 개성이 정말 다종다양한 이상, 단일한 '올마이티 카드'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다양한 교육 이념을 갖추고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다양한 교육 방법을 구사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다양한 타입의 교원을 학생들 앞에 세우는 일밖에는 없다. 어느 교사가 학생들에게 딱 들어맞을지 알 수 없는 이상, 이것이 가장 '헛일'이 될 리스크가 적다.
이 모든 것에 더해, 모든 교사는 '학생들을 환대하고, 승인하며, 축복하는' 것을 본무로 하고 있다는 입장을 필자는 양보할 수 없다. 하기 싫다거나 할 수 없는 인간은 교단에 설 자격이 없다.
필자가 교원들에게 하는 말은 대체로 이런 이야기이다. 교사는 딱히 유용한 지식이나 기능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회의, 보고서 작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의 성숙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작업을 우직하게 행하면, 반드시 보답받는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교사들이 깊이 수긍해준다.
(2022-11-13 10:3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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