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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코 선생과의 대담집 '후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1. 25. 21:00
중앙공론사에서 우스비 사코 선생과의 대담을 중심으로 한 책이 나오게 되었다. 교정지는 이미 돌려주었고, 마지막으로 '후기'를 썼다.
우스비 사코 선생과의 대담을 중심으로 엮은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사코 선생은 일본 대학에 처음 등장한 '아프리카 출신이자 무슬림인 학장'입니다.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동포로 맞아들이려는 마음 자세에 관해 일본 사회는 아직도 충분한 성숙에 달하지 못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그럼에도 사코 선생 같은 사람이 등장한 것, 사코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가는 것은, 일본의 미래에 대해 저를 조금이나마 낙관적인 기분이 들게 합니다. 제가 일본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게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사코 선생은 제게 그 '거의 없는' 경험을 하게 해준 희유한 사람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주로 일본의 학교 교육에 대해 논합니다. 학교 교육이 우리 두 사람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정기적으로 교단에 서지는 않지만, 지금도 몇몇 대학의 이사나 객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대해 말하자면, 낙관적인 기분이 될 건덕지가 거의 없습니다. 대학 교육은 제도로서도 점점 열화하고 있으며, 연구 교육의 산출물 품질도 점차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속도가 붙어서 말입니다.
그 원인은 본문에도 여러번 쓰여져 있습니다. '교육 연구를 중추적으로 제어하고, 관리하려는 욕망'이 가져다준 결과입니다. '만악의 근원' 같은 과격한 표현을 저는 그다지 쓰고 싶지는 않지만, '제어하고, 관리하려는 욕망'이 현재 학교 교육을 황폐화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어하고, 관리하려는 욕망'은 '질서'를 가져다주고, '효율'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었을 터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반대의 결과를 내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것은 '창조'와 '관리'가 원리적으로는 서로 어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리'가 무엇인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창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그에 비하면 거의 없습니다.
일본 사회에는 '관리'하려는 사람 앞에 커리어패스가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들이 통치 기구의 상층부까지 오르고, 정책 결정에 관여할 수 있게 됩니다. 허나, '창조'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은 시스템 내에서 출세하는 일에는 보통 흥미가 없으므로, 창조적인 사람이 정책 결정에 관여할 회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원 분배의 결정을 '관리가 좋은 사람들=창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내리는 한, 그 집단이 창조적인 성질을 띨 기회는 일단 없습니다. 자신의 출세밖에는 흥미가 없는 샐러리맨에게 조직 매니지먼트를 맡기면, 조직은 점점 숨막히게 되고, 보잘것없는 것이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함은, '관리'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일에 앞서 '먼저 상하관계를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누가 보스인가' '누가 명령하는 자이며, 누가 따르는 자인가' '누구에게 존댓말을 쓸 것이며, 누구에게 반말을 해도 되는가' '누구에게는 매도나 질타를 통해 굴욕감을 선사하는 일이 허용되는가' 하는 것을 우선 확인하려 듭니다. 그들은 우선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집단이 애초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어떠한 '선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되었는가, 구성원들은 각자 어떠한 기능이나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와 같은 사항들에는 부차적인 관심밖에 없습니다(아예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심사는 '위아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조직에서, 상사가 부하에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업무 지시'가 아니고, '마운팅'입니다. 바로 지금 눈 앞에 있는 인간에게 굴욕감을 맛보게 하고, '이 사람에게는 대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여러 업무보다 우선시됩니다. 그런 집단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침 회의에서 상사가 부하에게 '기합을 주는' 일이 일본의 회사에서는 흔히 행해지는데, 그건 딱히 오늘 할 일의 수순을 확인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질타하는 인간'이고, 누가 '잠자코 고개를 숙이는 인간'인가를 확인하는 의례인 것입니다. 그런 걸 몇 시간 한다 해도 일은 1밀리미터도 진척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관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관리하고 있는데, 하향식으로 모든 지시가 말단까지 시달되고 있는데, 어째서 조직의 퍼포먼스가 점점 낮아지는 것인가.
어째서 일이 잘되지 않는가. 그렇게 물으면, 그들은 반사적으로 '관리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혼내는 게 잘못돼서' '굴욕감을 안겨주는 방식이 잘못돼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욱 관리를 강화하고, 조직을 상의하달적으로 만들며, 심사를 엄격히 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에게 처벌을 가혹하게 부과합니다. 물론, 그런 걸 하면 할수록 조직의 퍼포먼스는 더욱 하락할 뿐인데도, 그때조차 대책은 '관리를 더욱 강화하는' 것밖에는 떠올리지 못합니다.
군대에는 '독전대(督戰隊)'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선의 상황이 불리해졌을 때 달아나는 병사들에게 총구를 들이밀며 '전선으로 돌아가 계속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쏴죽인다'고 협박하는 임무를 담당합니다. 군대의 지휘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간혹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반 수 이상이 독전대이고,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는 반 수 이하'인 군대가 있다면 '관리는 되지만, 굉장히 약한' 군대일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갑갑한 조직'은 이러한 '독전대가 너무나 많아 싸울 병사가 거의 없어진 군대'와 유사합니다. 학교 현장도 그렇습니다.
교육 행정 당국이 발령한 정책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거의 모든 것이 실패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문부성이나 지자체의 수장, 교육 위원회 모두 자신들의 실수라고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두 '현장이 일으킨 문제'가 된 것입니다. 지시한 정책은 옳았지만, 현장의 교원들이 무능했고, 반항적이었으며, 정책의 실현을 막았으므로 성과가 오르지 않았다. 그러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당연하게도 '더욱 관리를 강화하고, 현장의 교원들에게 결정권, 재량권을 될 수 있는 한 갖지 않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차차 제도에 손을 대고, 교사를 푸대접하고, 심사하며, 등급을 매기고, 학장이나 이사장에게 전권을 집중시켜, 교원 회의나 교수회에서도 교원의 권한을 박탈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현장의 저항'은 사라지고, 교육 정책은 성공했을 터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떠한 성과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 실패 또한 '현장이 예상 이상으로 무능했기 때문이다. 현장이 예상 이상으로 반항적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관리를 강화하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의 '독전대'적 요소만이 오롯이 팽창하고,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의 수는 점점 감소하며, 피폐해졌다... 는 것이 일본의 현상입니다.
지금 학교 교육 현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사가 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매년 교원 채용 시험의 응시자가 줄고 있습니다. 경쟁률이 낮아졌으므로, 신입 교원의 학력(學力)이 낮아졌으며, 사회 경험이 거의 없는 탓에 학급을 잘 이끌어나갈 수 없는 교원이 늘고 있습니다. 이에 괴로움을 느끼고 병결하거나 이직하는 교원도 많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교원들로부터 권리를 빼앗고, 냉대하며, 기회 될 때마다 굴욕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므로, 당연히 예측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 문부성이나 지자체의 수장은 결코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겠지요.
다시 한번 반복해 말씀드리지만, '관리'와 '창조'는 궁합이 나쁩니다.
창조라는 것은 '우연'과 '선택'이 독특한 비율로 혼합된 프로세스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식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무엇인가에 이끌려서 움직이는' 프로세스인 것입니다. 하고 있는 게 일단 '이리 갔다 저리 갔다'로 보이기에 '관리'하는 측으로부터 '뭘 하고 있는 거냐'고 힐문을 받아도 잘 대답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가 어느 목적지를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떠한 목적지'인가, 여정 전체의 어느 부분에 와 있는가는, 자신조차 말로 잘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대단한 것>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정도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완성품이 무엇인가, 마감은 언제인가, 그것이 어떠한 세속적 이익을 가져다주는가에 대해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무언가를 창조'해 낼 때의 실제적 감각입니다.
'창조'는 과학이나 예술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식문화는 본질적으로 지극히 '창조적인 프로세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식문화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우선 '굶주림을 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화하게끔 하는 게 그 주된 활동이 됩니다. 실제로 인류는 이를 위해 실로 다양한 궁구를 해 왔습니다. 굽고, 끓이고, 찌고, 그을리고, 물에 담가놓고, 햇볕에 말리고, 발효시키고... 등등. 이제까지 먹을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소재를 활용하여 처음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든 사람은 인류에 위대한 공헌을 한 것입니다만, 이러한 사람들은 이제까지 알려져 있는 모든 조리법을 시도해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쓸데없는 우회를 하지 않고서, 단숨에 한 길로 이어진 목적지에 다다른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식재료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의 머릿속에 '이것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프로세스'가 갑자기 떠오른 것입니다. 정말 독창적인, 이제까지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조리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시도해 보니,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맛있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프로세스는 정말이지 우연에 지배당한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창조적인 조리인은 '어쨌든, 이렇게 하면 이걸 먹을 수 있게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늠'을 하면서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가늠'을 했는지는 본인도 잘 설명을 못합니다.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 뿐입니다.
'대강 가늠을 해서 그리로 향하는' 프로세스를 '스토캐스틱(stochastic)'적 프로세스라고 부릅니다. 희랍어로 '과녁을 겨누어 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창조는 '스토캐스틱적 프로세스'라는 것을 많은 창조적 과학자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에 따르면, 수학적 창조란 이제까지 알려져 있던 수학적 사실 가운데 '이것과 저것을 결합시켜 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조합을 문득 떠올리는 것인 듯합니다. 그 경우의 '이것'과 '저것'은 둘 다 '오랫동안 알려지기는 했지만, 서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었던' 사실들입니다.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그 연결성을 번뜩 떠올려낸 자가 창조자입니다.
창조적인 조리인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먹지 못했던 것으로 간주되었던 식물이나 동물은 눈 앞에 무작위하게 마구 흩어져 있습니다. 조리법 역시 경험적으로 유효한 몇 가지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날, 한 조리인이 '오랫동안 알려지기는 했지만, 서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었던' 어떤 먹을 수 없는 것과 조리법의 조합을 떠올렸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요리의 발명으로 이어지면서, 인류를 굶주림으로부터 구원하는 데 다소간 공헌을 한 것입니다.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창조란 '바깥에서 보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서 사후적으로 회고해보면 마치 화살 하나가 과녁을 꿰뚫는 것 같이 필연적인 행정(行程)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프로세스입니다. 그래서 '스토캐스틱'인 겁니다.
많은 창조적인 사람들은 학자든 예술가든 자신들의 창조 경험을 저와 비슷하게 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설명드리면 이해가 가실 텐데, 말하자면 정말로 '관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프로세스입니다. 저와 사코 선생의 관심은 어떻게 다시 한번 '창조'를 사람들 사이에 활성화시킬 것인가였습니다. 거기에 대해 두 사람이서 상당히 진지하게 생각했고, 이런저런 '실험'도 해왔습니다. 이 책을 내면서, 서울에 불고기를 먹으러 간다든지, 공항에서 학생들과 딱 만나 여행을 간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그 때에는 '그냥 막 떠오른 생각' 이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서 뒤돌아보면 '그랬기 때문에 다음 전개가 있을 수 있었다' 하는 중요한 발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승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떠한 성과가 기대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어찌됐든 '이건 <수지 맞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코 선생과 저는 그 직감을 믿었습니다.
사코 선생이나 저나 '관리하는 측'에서 보면, 참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희들이 그저 반항적이라든가, 반 권력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창조'란 것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부디 이 책을 통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왠지 글이 몹시 길어졌으므로, 끝맺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의 성립에 힘을 다해주신 이나가 시게미 선생, 라클레 편집부 구로다 다케시 씨, <대학 랭킹>의 고바야시 데쓰오 씨, 세키쇼보의 다카마쓰 유카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놀랄만한 화제를 통해 제게 지적 자극을 끊임없이 주시곤 했던 우스비 사코 선생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2022-11-03 10:3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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