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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시나리오: 앞으로의 세계 정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9. 20:48
세계 정세가 오리무중이다.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 모두 글로벌한 협동 없이는 해결 불가한 문제들인데, 어떤 나라도 리더십을 발휘할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런 탓인지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막연한 주제로 강연 의뢰가 줄잇는다. 다행히도 필자는 ‘앞으로의 세상’ 같은 말로 허풍을 치는 것을 특기로 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서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번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실패해 몰락하고, 경제적 거품 붕괴와 인구 문제로 중국의 성장이 멈추는 한편, 미국은 국내의 분열을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는 미국 승자독식 시나리오이다. 두번째는 ‘미국도 버티지만, 중국이 강권 체제를 유지한 채 경제 재활성화에 성공한다’는 미중 양극 시나리오다. 세번째는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한꺼번에 몰락하고, 세계는 다극화한다’는 카오스화(化) 시나리오이다.
이러한 주제에 관해 필자는 미국 학자가 쓴 글을 참조한다. 왜냐하면 당해 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고 거기에 대비하는’ 능력이 높게 평가받기 때문이다. 우리 일본같았으면 ‘패배주의’라는 낙인이 찍혀 멍석말이를 당할 얘기도 미국에서는 정부 고위급 인사 뿐만 아니라 싱크탱크에 속해 있는 학자가 거리낌 없이 발표하고, 그 상상력의 다양함을 다툰다.
미국 사람의 이러한 지적 태도를 필자는 높이 평가한다. 러시아나 중국의 학자가 똑같이 썼다가는 투옥당할 정도의 상세한 ‘우리나라 망국의 시나리오’를 당당히 전문지에 게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전까지는 ‘미중 양극론’이 지배적인 언설이었지만, 이번에는 미중러 전부 쇠퇴하고 세계는 다극화한다는 ‘카오스 론’이 세를 얻고 있다. 하지만, 카오스론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절망적인 모습이 아니다.
국제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범통적(汎通的) 비전을 아무도 제시할 수 없는 판국에 미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이 적절한가. 이러한 물음에 맞닥뜨리게 되면 비관도 낙관도 불필요하다. 이는 쿨하고 리얼하게 사량(思量)해야 할 실제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아군의 머릿수를 늘리고, 당면한 적을 쓰러트리며, 될 수 있으면 잠재적인 적들끼리 싸움을 붙일 것’이 전략으로서 적절하다는 것이 다극화 및 카오스화론자들의 평균적인 의견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은 이제 ‘민주주의와 인권의 옹호자’라는 전도사적 행위를 단념해야만 한다. 통치, 시민적 자유, 인명 중시관 모두 미국인과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른 ‘꺼림칙한 이웃들’과도 공생하는 기술을 익혀야만 한다. 그렇게 논하는 사람들의 수가 미국 내에서 차츰 늘어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꺼림칙한 이웃들과의 공생’이란 것은 아마도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민적 분열을 에둘러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단일한 정치적 아이디어로 집단을 통합하는 일은 이제 그만 두는 게 낫다. 그보다는 ‘누구나 최저한 그것만큼은 합의할 수 있는 점’을 찾는 게 좋다. 서로 얼굴을 마주치며 사는 이상 이것저것 단점이 보이게 되어 짜증이 날 것이다. 그보다는 이해관계상 일치점을 찾을 것이 권장된다. 어느 나라든지 ‘살아남는다’는 목적에 대해서만큼은 전 국민적인 합의가 가능할 것이다. ‘방치해도 미국이 승자독식’하는 시나리오보다도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가는 미국은 쇠퇴’한다는 시나리오가 미국의 국민적 화해를 이룩하는 데 있어서는 유용하다. ‘승자 독식’의 꿈에 취해 있는 것보다는, 위기를 앞에 두고 거국단결하는 것이 국운의 만회에는 보탬이 된다.
사정은 일본도 다르지 않다. ‘망국의 시나리오’를 위해 상상력을 발휘할 것. 사실 그것이야말로 일본 지식인의 급선무인 것이다.
(2022-11-18 09:5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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