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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향방: <월간일본> 인터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19. 21:27
―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각기 신체제를 출범시키면서 미중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습니다.
세계 정세의 향방과 관련한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미국 승자 독식’과 ‘미중 양극론’ 그리고 ‘다극화, 카오스화’ 이 세 가지입니다. 최근 수년 간은 ‘미중 양국이 패권을 다투는’ 양극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만, 저는 ‘다극화하는 동시에 미중 경쟁에서는 미국이 우위’인 시나리오가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미국이 품고 있는 최대 문제는 ‘국민 분열’입니다만, 이에 대해서 미국은 과거 몇 번이나 분열을 극복해낸 ‘성공 체험’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위기에 대한 ‘레질리언스’(회복력)가 중국보다는 미국이 더 강한 듯 보입니다.
미국은 건국 이래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 통치 원리의 갈등 아래 고통스러워해왔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애초에 궁합이 나쁩니다. ‘물과 기름’같은 관계입니다. 개인이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어 평등을 잃게 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시민적 자유를 어느정도 제약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평등 가운데 어느 쪽을 취하고, 어느 쪽을 버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 균형 잡기를 그르치면, 국민적 분열, 경우에 따라서는 내전의 위기에마저 직면하게 됩니다. 허나 미국은 그때마다 ‘화해 서사’를 직조해 내어 국민 통합을 유지해왔습니다.
현재 미국은 ‘준 내전’ 수준에 이를 정도로 분열이 심각하다고 봐도 좋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이러한 위기를 몇 번이나 헤쳐나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열을 헤치고 화해를 달성했을 때에 국운의 상승이 찾아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현재의 분열을 언젠가 극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분단과 화해 양극단을 왕복해 왔습니다. 단일한 통치 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는 갈등을 통해 미국은 고통스럽게 정치적 에너지를 응집했으며, 그것이 아메리칸 데모크러시의 원동력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에 비해 중국의 통치 원리는 좀 더 심플합니다. ‘중화 황제에 의한 독재’ 아니면 ‘군웅 할거하는 내전 상태’ 이 두 가지가 디지털적으로 교차합니다. ‘독재와 내전 사이 그 중간쯤의 균형’을 잡지 않습니다. 중앙의 하드파워가 강력할 때는 제국이 유지되고, 약해지면 변방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교대극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왔습니다.
현재 중국은 ‘무류(無謬)의 공산당’에 의한 일당 독재 체제이므로, 미국 같은 통치원리상의 모순이 없습니다. 중국 공산당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도 전 국민 평등의 달성이었습니다. 시민적 자유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권력자, 부유층을 쓰러트리고 사회적 약자, 빈민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것, 그것이 최우선시되었습니다.
마오쩌둥의 중국은 ‘국민 모두가 동등하게 가난’해지는 방식이었는데 그 이상은 실현되었습니다. 하지만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이 그것을 뒤엎었습니다. ‘먼저 부하게 된 자를 살찌우고, 낙오한 자들을 돕는다. 부유층이 빈곤층을 지원하는 것을 그 의무로 한다’는 논리로 인민 사이에 자유 경쟁을 도입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서 매년 두자릿 수를 넘는 경제 성장을 달성한 것입니다만 동시에, 초(超) 부유층이 생겨나고, 다른 한켠에는 거의 절반 정도의 국민이 빈곤 가운데 놓이게 되는 격차 사회가 되었습니다. 혁명으로 철폐되었을 계급이 사실상 부활해버린 것입니다.
공권력이 개입하여 부자의 호주머니에 손을 대어 빈자에게 분배하지 않으면 사회적 평등은 달성할 수 없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경제 성장이 멈출 리스크가 있습니다. 중국은 여기서 ‘자유와 평등 사이의 갈등’에 처음으로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과거에 똑같은 갈등으로 고통스러워해낸 뒤 그것을 해결해 낸 성공 체험을 중국의 통치자는 갖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유와 평등 사이의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내, 제국이라는 ‘그릇’을 수리해나가며 유지해 온 정치적 경험이 없습니다. 중국의 레질리언스가 약하다고 제가 보는 것은, 이러한 경험 부재 때문입니다.
시진핑은 이러한 통치상의 리스크를 잘 알고 있어서, 강대한 ‘황제’가 됨으로써 시민적 자유를 억제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이 강경 노선은 일시적으로는 성공하겠지만, 머지 않아 한계를 맞게 됩니다. 경제 활동의 자유를 억제하면 성장은 멈추며, 언론의 자유를 억제하면 지적 혁신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레질리언스는 국가라는 ‘그릇’을 유지하는 힘입니다만, 이는 중국보다 미국이 강하다고 봐도 좋습니다. 현재 정치 상황만 보면 민주주의 탓에 혼란이 깊어가는 미국보다 독재체제를 기반으로 안정되어 있는 중국이 우세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장기적으로는 레질리언스의 차이가 미중 간의 명암을 가르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허나 현시점에서 미국은 레질리언스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프랑스 혁명이 ‘자유・평등・우애’라는 세 가지 원리를 내건 바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극의 원리를 조정하기 위해, 우애라는 ‘제 3의 원리’를 도입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뛰어난 착안점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유와 평등 모두 본질적으로는 상당히 폭력적인 이념입니다. 자유를 추구하게 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자연 상태(무정부 상태)가 되고, 평등을 추구하게 되면 전체주의 감시 국가가 될 리스크가 있습니다. 모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대단히 숨막히는 사회로 끝맺게 됩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면 빈부 및 강약의 차가 역력히 드러납니다. 평등 실현의 대의를 내건 정부에게 강대한 권력을 위탁하면, 시민적 자유는 부정당합니다. 어느 하나만을 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애(fraternité)는 같은 공동체에 속한 동료에 대한 마음, 즉 친절입니다. 덩샤오핑 역시 ‘선부론’에서 ‘부자가 낙오자를 돕는 것’을 자유의 조건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민 사이의 ‘상호 우애’는 ‘의무’로 권력자가 명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측은지심’이라는 인간성의 근간에서부터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입니다. 개인 속에 내재해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행동 규범을 이르는 것입니다. 법률로 정해둔 것도 아니요, 이익을 유도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우애가 조정해주지 않는 한, 자유와 평등의 모순은 해결 불가능한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 우애는 각기 실천하는 주체의 차원이 다릅니다. 자유의 주체는 개인입니다. 평등의 주체는 공권력입니다. 우애의 주체는,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 중간에 있는 공동체입니다.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폭주를 중간 공동체의 상식이 억제합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럴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납득할 수가 없어’ ‘그런 식으로 말하다가는 끝장이야’ 하는 식으로 이유 없이 사람으로서 드는 정(情)이 완충재가 되어 자유와 평등의 모순 관계를 완화시켜줄 수 있게 됩니다.
자유와 평등 모두 두뇌가 마련해 준 이성인 반면에, 우애는 사상이 아니라 감정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이유를 고집한다 해도 ‘삼켜 넘기지를 못하겠다(呑み込めない)’, ‘간에 기별도 안 간다(腑に落ちない)’, ‘닭살이 돋는다(鳥肌を生じる)’는 식의 신체적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은 이성의 폭주를 억제하는 인간적인 ‘경보(alert)’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애가 착실한 두께를 가진 사회, 즉 두터운 중간 공동체를 가진 사회는 자유와 평등의 대립을 완화시켜주는 노하우가 생기게 되는 반면, 중간 공동체가 빈약한 사회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정면 충돌하여 사회적 분열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두툼한 중간 공동체의 유무 여부가 레질리언스의 열쇠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미중 패권 경쟁을 보면 경제력이나 군사력 분야 이외에도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 같은 가치관 경쟁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같이 ‘먹고 사는 힘’ 만이 국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려 국력은 국제 사회에서의 ‘지도력’이 좌우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을 모으는 힘’ 내지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라고나 할까요.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므로, 수치적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루 바람이 잘 통하는 세계상을 제출해낼 수 있는 나라, 외국 사람들이 ‘그 나라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는 나라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높은 국력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이전 시기 소련과 중국이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에 ‘스탈린주의자’ 혹은 ‘마오쩌둥주의자’가 존재하여 그들이 자국의 이익보다도 소련이나 중국의 국익을 우선적으로 배려했고, 이렇게 하는 게 세상에 ‘좋은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 있었습니다. 그 ‘동경 심리’가 군사력이나 경제력 이상으로 소련과 중국이 갖는 국제 사회 영향력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푸틴주의자’ 내지는 ‘시진핑주의자’를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해외 사람들이 자국에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고, 정치 결정에 영향을 미치면서 러시아나 중국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는 미국에 어드밴티지가 있습니다. 왕년의 ‘자유 국가’라 했던 그 명성은 빛을 바랬지만, 그럼에도 ‘미국에는 찬스가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고, 미국은 그러한 사람들을 환대하는 시스템이 일단은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므로 ‘이방인을 환대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성공 체험이 미국인이라는 종족의 사상 가운데 뿌리박혀 있습니다. 그것을 잊고 ‘아메리카 퍼스트’ 같은 슬로건을 내세운 탓에, 이렇게까지 국력이 쇠퇴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미국인도 이제는 적잖게 있을 겁니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화학・물리・생리의학 부문에서 노벨상을 받은 미국인의 38%가 이민자 출신이었습니다. 미국의 과학 기술상의 우위는 전 세계에서 재능이 모여드는 개방성이 담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푸틴과 시진핑이 트럼프의 복권을 간절히 바라는 것도 당연합니다. 해외로부터의 이민을 ‘재난’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미국의 국력은 그저 쇠퇴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국은 ‘중국 표준 2035’, ‘천 명 계획’으로 해외에서 우수한 인재를 모으고자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초일류 재능이 모이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정말로 창조적인 재능은 처우나 임금보다도, 자신의 연구를 전 세계에 발표할 수 있는 권리, 세계 과학자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 터이기 때문입니다. 노벨상을 탈 만한 학자에게 ‘당신의 연구 결과는 정부 기밀이므로 자유로이 발표할 수는 없소’ 라는 조건을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그 학자가 ‘그래도 대우가 좋으니’ 라는 이유로 중국에 갈 턱이 없습니다.
‘중국의 논문 발표 수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자연과학계 노벨상 수상자는 중국보다 미국이 자릿수 자체가 다를 정도로 많습니다. 21세기 들어서만 미국은 77명이 수상했습니다만, 중국은 2015년에 항말라리아제를 발견한 한 명 뿐입니다. 이러한 연구 환경에서 초일류 인재가 ‘대우가 좋으니 중국에 간다’는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요. 그보다는 지적으로 더욱 자극적인 환경을 택할 것입니다.
애초에 지적 혁신을 도맡는 이들은 기질적으로 ‘통제를 싫어하는 인간, 관리가 익숙하지 않는 인간’ 입니다. 이런저런 수단을 구사해 국민을 감시하고 있는 중국에 창조적 재능이 ‘매력을 느끼는’ 일이 과연 일어날까요. 이는 주관적인 문제이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저는 아마 힘들 것이라 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중국은 2027년부터 급격한 인구 감소 국면에 돌입합니다. 따라서 ‘사람을 모으는 일’이 국가적 급무입니다. 생산가능연령 인구가 격감하게 되므로 물론 노동력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과학기술상의 혁신을 가져다 줄 재능을 모집하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도의 중국 문명을 사모하여 아시아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시기가 몇 번 있었습니다. 중화 제국이 발하는 ‘왕화(王化)의 광휘’를 몸소 체험하고자 변방민들이 당나라로 향했습니다. 당나라는 그들을 환대하였고 푸짐한 하사품을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그렇게 하여 왕년의 중국은 글로벌한 지도력을 발휘해 대국의 지위를 유지해 왔습니다. 과연 시진핑이 그러한 과거의 성공 체험을 떠올려내 ‘환대의 나라’를 지향하도록 노선을 변경할 결단을 내릴까요. 저는 그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홍콩이나 신장 위구르에서 그것을 먼저 실천했을 테니 말입니다. 홍콩에서는 700만 명, 신장 위구르에서는 2500만 명 가운데 중국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지재’가 수만 명 있을 터입니다만, 시진핑은 오히려 그들의 시민적 자유를 탄압하고, 국민 감시를 강화함으로써 그들이 중국을 버리고 해외로 가능성을 찾아 나가도록 촉진해버렸습니다. 자국민에게조차 외면받는 나라가 해외에서 ‘동량지재’를 모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하지만 이러한 숙제는 일본 또한 안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이미 저출생이 진행되고 있는 일본, 중국, 한국, 대만 사이에 인재 쟁탈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경제력이 쇠퇴했으므로 더 이상 대우상의 메리트가 없습니다. 고용 조건이 나은 곳을 찾는 아시아의 젊은이에게 있어서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보다도 매력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구태여 사람을 모으고자 한다면, ‘이방인을 환대하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사회는 시민적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고, 이방인을 동포로서 환대하며, 가능한 한 최대한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국제적 평가를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모으는’ 힘이 됩니다. ‘환대의 나라’라는 평가를 얻게 된다면, 다소 임금이 낮더라도 전 세계에서 사람은 모일 것입니다. 자연이 온화하고, 치안이 좋고, 음식도 맛있고, 예술이나 관광 측면에서도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 다음 갖출 것은 ‘환대’의 정서 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일본인 스스로 일본을 ‘기분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밑도 끝도 없는 결론이 나와버렸지만, 일본의 부활을 위한 처방전은 이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따지고 보면, 서구의 쇠퇴와 신흥국의 대두라는 세계적인 조류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대로 서구는 지도력을 잃어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서구의 영향력이 낮아지는 트렌드는 분명히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제 서구의 가치관이나 정치 모델을 공공연히 비판하게 되기도 하였거니와, 거기에 동조하는 나라들도 세계에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나 러시아가 서구를 대신해 지도력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은 마오쩌둥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지만, 중국의 지도력은 오히려 마오쩌둥 시대가 더 높았습니다. 당시에는 전 세계에 마오쩌둥주의자가 있었고, 마오쩌둥 사상을 배우며, 자신들의 나라를 중국처럼 개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일본에도 있었고, 프랑스에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망상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중국이 어떤 종류의 미래 지향적 비전을 견인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진핑에게는 더이상 그런 지도력이 없습니다. 시진핑은 자신을 마오쩌둥에 비견할 만한 위대한 지도자라고 자칭하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마오쩌둥을 방불케 하는 강권 체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만, ‘시진핑주의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차이를 시진핑은 알지 못합니다. 그 무지가 언젠가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으로 봅니다.
서구를 포함해 요즘들어 폭력적인 내셔널리즘이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했습니다. 이민 배척, 인종 차별 등의 언사도 공공연히 입에 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세를 얻는 나라는 이제 더 이상 해외로부터 ‘새로운 피’를 들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창조적인 재능은 그런 나라로부터 이탈해버리고 맙니다. 내셔널리즘, 자국익 제일주의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나라의 언동은 분명 생생할 정도로 리얼합니다만, 세계를 이끌 힘은 없습니다. 국제사회에 혐오감이나 공포감을 줄 수는 있지만, 존경을 받지도 못하고, 글로벌 리더십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 미국의 쇠퇴와 엮여, 앞으로의 국제 사회는 다극화・다층화할 것이라는 논조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 일극 지배’를 비판하여 ‘다극 세계’를 강조하면서, 비 서구 제국(諸國)을 접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서구의 통치 이념이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사실입니다만, ‘우리 좋을 대로 할테다’ 하는 식의 뿔뿔이 흩어진 방식으로는 세계적인 과제를 갈무리할 수 없습니다. 팬데믹, 기후변화, 아프리카의 기근 등은 트랜스 내셔널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그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자신들 나라만 좋으면 됐다’는 사고방식을 하면 그러한 트랜스내셔널적인 과제를 모조리 내팽개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용을 지금 부담하지 않으면 언젠가 지구적 규모의 재난이 닥쳤을 때 그때까지 챙겨두었던 아주 조그마한 국익을 전부 토해내도 역부족이 됩니다.
다극화 모델은 언뜻 봤을 때는 합리적으로 비칩니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다극화 모델을 채용하면, 개개 국민국가의 자기이익만이 최우선시되고, 배외주의와 인종차별, 종교 차별 등에 제동을 못 걸게 됩니다. 다극화 모델로 인해 세계가 평화로워지고, 사람 살기 좋은 지구촌이 되리라고는 저는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좀 편협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으로서 이것만큼은 해서는 안된다’, ‘사람이라면 이정도는 해야 한다’는 상식에 얼터너티브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미국은 건국 이래 ‘매니페스트 데스티니’를 내걸고 자국의 정의를 확산시키며, 일극 모델의 세계를 지향했던 나라입니다. 그러한 미국이 간단하게 다극화 모델을 인정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전도사’로서, 때로는 무력에 호소하면서까지 전 세계에 자유와 민주주주의를 수출해 왔습니다. 하지만 먼로 주의,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비전론(非戰論),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만 좋으면 끝’ 등의 내향적인 태도를 취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태도는 그때그때 바뀝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미국인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하면 그걸로 끝이다’는 ‘자유’의 원리가 과격화된 것이고, ‘전 세계가 미국처럼 여유롭고 민주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평등’의 원리가 과격화된 것입니다. 여기에서조차 미국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반되는 통치 이념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즘 미국 정치학자의 논조는 이제 미국이 ‘전도사’의 임무를 그만 두고 ‘중국과 러시아 등 <꺼림칙한 이웃>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윤리적으로 성숙했다거나 다른 나라의 통치 원리를 존중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자유와 민주주의의 전도사’라는 사명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되면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이 세계적으로 쇠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듭니다.
세계가 다극화・카오스화하는 이상, 서구에 뿌리를 둔 근대 시민 사회론의 영향력은 몰락해가겠지요. 비서구권으로부터 ‘인권이라든가 민주주의같은 건 보편적 가치관이 아니라 서구의 로컬 룰에 지나지 않으니, 우리에게 강요하지 마라’는 이의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말씀드리건대, 힘이 있는 인간이 약자를 수탈해도 좋다든가, 노예화해도 좋다는 사고방식이 세계 표준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절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근대 시민 사회론의 기본이 되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삶의 방식’에 대한 상식을 저는 수용합니다. 그것은 자유와 평등, 우애라는 세 가지 원리의 갈등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삶의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상식을 철회할 마음이 없습니다.
100년 단위의 장기적 시간 길이로 보면, 세계는 조금씩이나마, 점점 ‘인간적’으로 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전쟁이 있고,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으며, 독재자가 시민을 체포하고 고문하며 죽이는 일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100년 전, 200년 전과 비교하면 전쟁에서의 사상자 수, 아사자의 수도 줄었으며, 고문이나 불법 구금, 인종 차별, 성차별 등도 상당히 억제되어왔습니다. 총체적으로 세상은 조금씩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서구의 근대 시민 사회론이 목표로 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유럽은 기원전부터 2000년 간 계속 전쟁을 해왔습니다. 그 경험을 반성하며 ‘사람이 더 이상 서로 죽고 죽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떠올려낸 아이디어가 근대 시민 사회론입니다. 관념적으로 보면 사회론이기는 하지만, 유혈과 폭력이라는 생생한 체험에서 나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일시적인 백래시는 반복될지언정, 최종적으로 세계는 근대 시민 사회의 실현을 향해 불가역적으로 전진을 거듭해 나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세계가 다극화・다층화되는 가운데, 서로 다른 나라가 자국의 가치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카오스 속에서 일본은 꼭 지켜야만 할 자국의 가치관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일본에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처럼 자국의 가치관을 확산시키지도, 중국과 러시아처럼 다른 나라의 가치관에 반발할 수도 없습니다. 슬프지만 이것이 지금 일본이 처한 실상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통치 원리상의 두 기둥은 상징 천황제 조항이 있는 헌법 제 1조와 평화주의를 강조한 제 9조입니다. 거듭 말씀드리는 바와 같이, 천황제와 입헌 민주주의는 통치원리로써 모순됩니다. 주권국가이면서 군대를 갖지 않는 것 사이에도 모순이 있습니다. 이 갈등에 고뇌하면서 일본은 나라로서 성숙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일본인이 택한 갈등이라기보다는 미국인이 장착시켜 준 갈등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 갈등이 일본인에게는 육화(肉化)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에는 나라로서의 ‘대들보’가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일본은 전쟁 이후 다 타버린 쑥대밭 근처에서 모아놓은 재료로 세운 막사 같은 것입니다. 고도 성장 덕분에 도중에 상당히 화려한 막사를 꾸밀 수 있었지만, 샹들리에나 스테인드글라스, 호화로운 소파를 들여놓았지, 어디에도 대들보는 없습니다. 현관도 없고 도코노마(床の間; 전통 건축에서, 객실의 상좌를 한 단 높게 만들어 꾸민 공간 - 옮긴이) 도 없습니다. 막사에서 사는 게 익숙해져, 대들보를 세우는 법이나 가모이 끼우는 법, 다다미 까는 법, 쇼지 붙이는 법도 잊어버려서 결국 일본다운 집이 어떤 것인가를 알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 우치다 님은 <일본변경邊境론>에서 일본은 변방국으로서 선진국의 문명을 받아들이며 발전해 왔다고 쓰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변방’조차도 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변방에서는 마치 케이크와도 같이, 토착 문화라는 토대(빵) 위에 문명(데코레이션)을 토핑하여 ‘하이브리드’를 창조해냅니다. 토대와 토핑이 잘 어울리면 썩 괜찮은 게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그러한 ‘변방 도식(scheme)’조차 구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토착 문화의 ‘케이크 빵’ 그 자체가 너무 얕아져버려 퍼석퍼석해졌기 때문입니다. 펄렁펄렁거리는 맛 없는 케이크 빵 위에 어떤 외래 토핑을 올린다고 해도, 맛있는 케이크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어떻게 하여 다시 한번 토착 문화를 되찾아, 외래 문물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두텁게, 풍미 깊은 ‘케이크 빵’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아이키도와 검술 같은 무도를 수련하고, 노가쿠를 익히며, 미소기하라이(禊祓)나 다키교(滝行)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일본의 전통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통문화는 앉고 서는 신체의 움직임 가운데, 그야말로 옷 입는 법, 의례, 젓가락 드는 법 등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신체의 사용방법, 마음의 사용 방법을 배워나가게 되면, 자연스레 일본인다운 사고방식, 감수성 등이 몸에 익을 것입니다.
이 전통 문화가 아까 말씀드렸던 ‘토착 케이크 빵’이 됩니다. 그 케이크 빵의 두께와 깊이가 없으면, 변망의 문화는 개화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배외주의적인 언동을 반복하고, 거리에서 외국인을 매도할지라도, 그런 걸로는 전통 문화의 계승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한 명 한 명이, 선인으로부터 ‘이것이 일본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없어지지 않도록 하렴’ 하고 패스받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에는 무도, 전통예능, 제례, 기모노 입는 법, 논농사 경작법 등이 있을 것입니다. 한 명 한 명이 자신에게 맡겨진 ‘패스’를 확실히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 그것이 일본인으로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치 밀푀유처럼, 국민 한 명 한 명이 자신이 갖고 있는 얇은 조각들을 모아서, 토착 문화의 토대를 더욱 두텁게 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모두가 자기 몫대로, 다다미를 깐다든지, 쇼지(障子)를 갈아 끼우는 사이에, 언젠가는 보잘것없는 막사를 소박한 일본 가옥으로 다시 세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집이 세워졌을 때, 나라의 대들보가 될 수 있는 일본의 가치관도 자연스레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1월 4일 인터뷰어 및 구성: 스기하라 히사토)
(2022-11-21 08:4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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