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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인용 2023. 11. 8. 14:10
그의 회고록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어린 시절이다. 그 책에서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자기 부모를 왜 그렇게 헐뜯었을까? 독자는 그가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해 복수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자기 부모에게 복수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린 시절이 아무리 불행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독한 사람들이었고 불쌍한 아이였던 자기는 그들의 독재를 견뎌내야 했다는 식으로 부모를 공개적으로 욕하는 글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남길 수 있을까. 그러한 행동에는 어딘가 비열한 구석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 부모를 비난하는 건 정말 듣기 싫다. 나는 일생을 무위도식자가 아닌 프롤레타리아로 살았다. 어린 시절 이후 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 나 자신의 '잠재력'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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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와 연필만으로 충분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3. 11. 8. 13:49
『열풍』 2010년 7월호 ーー 오늘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께 미국 애플사의 아이패드 출시를 맞아 감독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IT와의 관계 맺기’에 관해 들어보고자 합니다. 미야자키: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그 게임기 같은 물건, 그리고 그걸 갖고 묘한 몸짓으로 호작질하는 꼴은 역겨울 뿐이라 관심도 없고, 그 물건은 나한테 아무런 감동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혐오감만 들 뿐이지요. 그러고 보니 요즘 지하철 안에서 그 이상한 손놀림으로 자위행위나 다름 없는 짓을 공공연하게 하는 인간들이 늘어났네요. 만화책 보는 인간들, 휴대전화 때리는 인간들로만 지하철이 가득 찼을 때와 마찬가지로 짜증이 폭발할 노릇입니다. (중략) ーー 하지만 아이패드가 있으면, 이를테면 이메일 같은 것을 통해 남들과 직접 대면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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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청년의 때를 기뻐하라인용 2023. 11. 2. 20:50
메이예르홀트는 그녀를 광적으로 사랑했다. 그런 사랑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랑이 우리 시대에도 존재한다는 상상은 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언가 불길한 요소가 있었고 결국 불행한 종말을 맞았다.이 같은 사실은 우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지키려면 그것에 아무 관심도 갖지 않는 게 최선이다. 우리가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들은 금세 사라져버린다. 당신은 모든 것, 특히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반어법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들이 살아남을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이것이 삶의 가장 큰 비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노인들은 그 비밀을 몰랐다. 그들이 모든 것을 잃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의 운이 좀 더 좋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솔로몬 볼코프 살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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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레터인용 2023. 10. 31. 23:29
"그러면 요컨대 우리는 이 고서점에서 만난 거네요?" 이번에는 내가 난처해 할 차례였다. "그런 얘기가 되겠지." "그렇게 되는 거예요. 멋지네요." 와카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고서를 책장에 도로 꽂았다. 며칠 뒤, 우리는 대학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이래로 몇 번인가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그때마다 강의는 제쳐두고 책이나 음악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보다 책을 많이 읽는 같은 세대 사람하고 만난 것은 처음이에요." 와카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냥 읽고 있는 것뿐이야. 나는 그 독서에서 아무 것도 얻고 있지 않아."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책 본래의 가치를 끌어내기 위한 접시가, 나에게는 없어. 내가 하는 독서는 냄비에서 작은 접시로 스프를 콸콸 쏟아붓는 것하고 똑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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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를 어떻게 발견해낼 수 있을까요?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0. 26. 12:29
한국의 모 출판사와 함께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는 일본인 저자 우치다 타츠루 책’을 내기로 했다. 상대 측에서 질문을 보내주면 거기에 필자가 답하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낸다는 취지이다. 그중에 흥미로운 질문이 있었다. ‘멘토는 어떻게 찾아내면 좋을까요?’ 라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온라인 상에서의 의사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덕에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을 멘토로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라인 선배’ ‘온라인 멘토’같은 말도 있습니다. 좋은 멘토와 멘티, 혹은 바람직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란 어떠한 모습이겠습니까? 아래 내용은 이 질문에 대해 필자가 보내는 답장이다. 멘토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생애 스승으로 우러러보면서, 계속 그 뒤를 따라갈 사람도 있고, 일시적으로 A지점부터 B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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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초등학생들은 유튜버가 되고 싶어하는 걸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3. 10. 24. 18:01
(※ 아래는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가 쓴 『일본의 되풀이되는 대동아전쟁 무엇이 문제인가? 新しい戦前 この国の“いま”を読み解く』 의 일부를 ‘프레지던트 온라인’이 재편집해서 게재한 기사를, 일부 번역한 것입니다.) 왜 초등학생들은 유튜버가 되고 싶어하는 걸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인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유감스러운 일본의 교육- 이대로 가다가는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건 가질 수 있을 리가 없다 ‘유명해지면 돈이 들어온다’는 발상의 만연 【시라이】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우치다 교수님이나 저는 다소간 유명합니다. 따라서 유명해지면 으레 성가심도 따른다는 점을 숙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유명해져도 수입보다 유명세(稅)를 더 치러야 한다. 유명해진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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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에 관하여 (장강명 <열광금지, 에바로드>)인용 2023. 10. 22. 14:52
(...) 처음 며칠은 시차와 상가의 환한 조명, 귀가 멍해질 정도의 소음, 말을 붙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서슬 퍼런 밤시장 '누님들'의 기운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새벽시장의 정신 나간 활기와 도매시장 이모, 누나 들의 거칠고 단순한 성정에 마음이 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복잡한 생각이나 고민에 빠질 것 없이 온몸을 써서 일하고, 내키는 대로 말하고, 배고플 때 먹고, 웃고, 떠들고, 다시 일하다 보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 상가 건물을 나설 때 맡는 새벽 공기 냄새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런 위선도 가식도 없었다. (...) 새로 맡은 임무는 사장이 일본이나 홍콩,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옷을 다시 지방 상인이나 사입자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신용카드 없이 모든 거래를 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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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에게서 배운 커뮤니케이션의 진수 / ‘같잖은 합리주의’로부터의 탈각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3. 10. 21. 15:51
귀신으로부터 배운 커뮤니케이션의 진수 우치다 동지나 하지 때에, 죽은 자의 세상이라고나 할까, 그런 초월적인,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과, 인간이 사는 세속 사이의 경계선이 조금 낮아져서, 무언가가 찾아옵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이란, 이 세상의 도량형으로는 재어서 알 수 없으며, 추측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어떠한 귀신일지라도, 단 하나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류는 고대에 발견했습니다. 그건 ‘귀신은 공경하되 이를 멀리 할 것’ 즉 ‘존경하는’,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샤쿠 “논어”에 나오는 말이지요. 우치다 이 귀신이라는 존재를 포용한다든가, 이해한다든가 하는 시도는 통하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통하는 것이 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