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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와 연필만으로 충분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3. 11. 8. 13:49
『열풍』 2010년 7월호
ーー 오늘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께 미국 애플사의 아이패드 출시를 맞아 감독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IT와의 관계 맺기’에 관해 들어보고자 합니다.
미야자키: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그 게임기 같은 물건, 그리고 그걸 갖고 묘한 몸짓으로 호작질하는 꼴은 역겨울 뿐이라 관심도 없고, 그 물건은 나한테 아무런 감동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혐오감만 들 뿐이지요. 그러고 보니 요즘 지하철 안에서 그 이상한 손놀림으로 자위행위나 다름 없는 짓을 공공연하게 하는 인간들이 늘어났네요. 만화책 보는 인간들, 휴대전화 때리는 인간들로만 지하철이 가득 찼을 때와 마찬가지로 짜증이 폭발할 노릇입니다.
(중략)
ーー 하지만 아이패드가 있으면, 이를테면 이메일 같은 것을 통해 남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작업을 추진할 수 있고, 일부러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쿄에 살 필요도 없어질지 모릅니다. <이웃집 토토로>같은 정경 속에 머무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널리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바람직한 현상 아닐까요?
미야자키:
시골에서 일할 수 있는 인간은, 애시당초에 그게 없어도 일은 합니다. 시골에서는 일을 못 하겠다고 말하는 인간은, 그의 손에 어떠한 도구가 쥐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일 안 합니다.
ーー 앞으로의 추세로 말하자면, 이제까지 보통 책상에 놓아두었던 컴퓨터가 사라지는 한편, 보고 계시는 아이패드처럼 다재다능한 도구를 다들 갖고 다닐 것으로 추측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야자키:
그래서 어쩌라고요? (それで何がどうなるの?)
ーー 언제 어디서나 강력한 기술을 지니고 다닐 수 있게 되면 삶이 여러 면에서 보다 수월해질 거라고 다들 얘기합니다만….
미야자키:
가장 행복할 시간인 애인과 함께 있을 때도 데리고 있고, 남들과 열띤 토론을 벌일 때도 노상 쥐고 있고... 그럴 거면 그냥 차라리 컴퓨터를 뇌에 심어버리는 게 어때요? (웃음). 책상에 컴퓨터가 이곳저곳 놓여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딱 그렇게 우울증이 발병하는 사람이 늘어났는데 말입니다.* 갈 데까지 가서 이제는 머리에 칩까지 박으면, 나쓰메 소세키**가 예상했던 대로 신경 쇠약에 걸린 나머지 자살로 귀결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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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도우 95 출시 무렵, 동시에 일본에서는 거품경제 붕괴 직후 온갖 천재지변 및 인재,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다. - 옮긴이)
(** 1867~1916. 소설가 - 옮긴이)
ーー 유용한 도구로 잘 활용하기만 하면 문제 없을 텐데요.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나한테 도구를 말할라치면, 연필과 종이 그리고 몇 안 되는 화구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중략)
ーー 요컨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미야자키:
그렇게 유용한 물건이라면, 한번 해 보세요. 당신이 칭찬하는 그 ‘아이’ 어쩌고[iナントカ] 하는 걸로 찾아봐다 주세요. 아타케부네[安宅型軍船]에서 땀 흘려 노를 젓는 사람은 어떻게 해갈했을지, 끼니는 어떻게 해결했을지를요. 노를 젓는 동안 임무 교대는 할 수 있었을까요? 노가 서로 부딛히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한둘이 아닙니다. 위에서 해상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어도, 배 밑바닥의 노잡이는 바깥 상황을 전혀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 노잡이가 어떤 심리 상태 속에 있었을지 ‘아이 어쩌고’로 알 수 있겠어요?
그거 안 나와요, 내 장담합니다. 당신의 ‘아이 어쩌고’를 통해 띄우는 사진 같은 건 전혀 도움 안 됩니다. 하치오지에 위치한 신쇼인 사찰에 찾아가서 다케다 신겐의 아타케부네 모형을 직접 보거나 도쿄 만 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형을 직접 견학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아타케부네의 숨결[ソフトの部分]입니다. 그런 정성적인 면모를 느끼려면, 여러 기록이나 문서를 찬찬히 읽고 나서 스스로 곰곰이 추측해 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습니다.
ーー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말씀하신 문헌 조사를 통해 어떤 대상에 대한 상상력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제껏 실컷 욕하신 아이패드를 통해 말입니다.
미야자키:
당신을 모욕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서는 아마 이루지 못할 겁니다. 왜냐구요? 아타케부네 밑바닥의 분위기나, 거기서 땀범벅이 되어 노를 젓던 남자들에게 당신은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더더군다나 공감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세상에 나아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거기에 상상력을 쏟아붓는 대신에, 피상적으로 아는 체만 하게 만드는 헛똑똑이 도구로써의 ‘아이 어쩌고’를 손에 쥐고서 그걸 애무하고만 앉았기 때문입니다.
하루빨리 ‘아이 어쩌고’를 사고 나서 전능감을 만끽하려는 사람이 모르기는 몰라도 줄지어 있겠지요. 이보세요, 1960년대에 붐박스라는 것(사람이 이고 질 크기가 아니였어요) 에 홀딱 빠져서, 어딜 가나 뻐기고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 지금은 연금생활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 추한 사람들과 당신은 동류입니다. 신제품에 홀린 듯 달려들고, 손에 쥐고서 우쭐대는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생산을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출처: https://ghibli.jpn.org/report/nepp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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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 이것이 너희들과 우라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란다. 우라가와는 아직 어리지만 세상에서 필요한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어. 생산하는 사람들 자리에 어엿하게 서 있어. 우라가와의 옷에서 유부 냄새가 나는 건 자랑이지 절대로 창피한 일이 아니란다. 이런 말을 해서 아직은 소비밖에 할 줄 모르는 너를 다그치는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뜻으로 꺼낸 말은 아니란다. 너희는 이제 겨우 중학생이야. 세상에 발을 내딛으려고 준비하고 있어.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내도 너희를 비난할 사람은 없어. 그래도 너희는 소비 생활만 한다는 것은 꼭 기억해 둬야겠지. 너희는 우라가와가 비록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이라고는 해도 게으름 부리지 않고 가게 일을 돕는 것을 존경해야 해. 우라가와의 처지를 무시하고 얕보는 것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야.
사람은 누구나 먹고 입어야 해. 소비하지 않고 생산만 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생산이란 쓸모 있는 소비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소비 자체가 나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자기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해서 세상을 윤택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자기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만 하는 사람들을 견주어 본다면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은 누굴까? 너도 이런 질문은 쓸데없다고 생각하겠지. 생산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을 맛보고 즐기면서 소비하는 사람도 없어. (...) 너도 앞으로는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의 다른 점을 언제나 기억해 두기 바란다. 네가 생산과 소비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게 된다면 부자라고 해서 고결한 가치를 갖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멸시하는 이들 가운데 네가 머리를 숙이고 존경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될 거야.
너는 날마다 생활하면서 너한테 필요한 물건을 소비만 할 뿐, 아무것도 생산하지는 못하고 있어. 그런데 네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실은 너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중요한 어떤 것을 날마다 만들어 내고 있단다. 그게 과연 뭘까? 코페르, 이 문제의 답은 너 스스로 찾아내야 한단다. 서두를 필요는 없어. 이 질문을 잊지 않고 언젠가 그 답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니까.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서는 안 돼. 또 남들이 답을 가르쳐 줘도 그 답이 네 답이 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단다. 스스로 발견할 것! 이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운이 좋아서 내일 당장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또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러나 외삼촌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삶에서 반드시 이 답을 찾을 것이라고, 아니, 꼭 찾아야 한다고 믿고 있단다.
- 요시노 겐자부로 <자네들,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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