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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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대 뉴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 9. 19:43
섣달 그믐날이므로, 항상 하던 대로 ‘올해 10대 뉴스’를 생각해본다. 중요도 순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열거함. (1) 이 6년에 걸쳐 드디어 완결. 원고를 보낸 게 작년 12월이었지만, 마지막 회차가 에 게재된 날로 치면 올해 일인 셈이다. 에 이어 ‘레비나스 3부작’을 이것으로 끝내게 되었다. 레비나스 선생의 사상을 한 사람이라도 많은 일본인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레비나스 철학 전도사’로서의 일을 미력이나마 이루었다고 생각함. 구천에 계신 레비나스 선생께 그 사실을 보고드리자니 조금이나마 어깨가 가벼워졌다. (2) ‘일본인은 어째서 알베르 카뮈를 좋아하는가?’ 라는 제목의 카뮈론을 신초샤 월간지 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를 읽게 된 현상을 기반으로 한 원고 청탁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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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젊은이들은 왜 투표를 하지 않는가? #2021년 중의원 선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1. 12. 29. 07:00
터부는 피하고 캐릭터를 연기하며, 친구도 없는 일본의 젊은이... 낮은 투표율의 배경을 미야다이 신지 씨에게서 듣다 2021/10/29 주말로 닥친 중의원 선거 투표일. 28일 은 선거 때마다 언론이 지적하는 젊은이의 낮은 투표율 문제와 관련해 도쿄도립대학 사회학자인 미야다이 신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튀지 못하고, 연대할 수 없는 젊은이들 우선 “어딜 뽑아야 할지 모르니 투표를 못한다”라는 의견에 대해 미야다이 씨는 “정치에 관한 가치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당은 소속 의원을 당의 노선에 구속케 하려는 경향이 강하므로, 개인의 공약이나 매력에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정당을 골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한 가치관이 필요하다. 이는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대해 토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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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문학이란 무엇인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26. 12:02
대학원에서 '비교문화 특강'이라는 걸 담당하게 되었으므로, 여세를 몰아 학부의 전공과목 강의도 '비교 문학'으로 정해버렸다. '비교문학'이란 건 처음 담당하는 수업이다. 첫 담당일 뿐만 아니라, 필자 자신이 대학이나 대학원 다닐 때 그런 명칭의 수업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비교문학 학회에도 입회하지 않았고, 애초에 비교문학 책조차 읽어본 적이 없다. 참으로 대담하다. 아니, 대담하다기보다는 무모하다. 필자는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데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지루하다.) 하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칠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가르친다. 공부하면서 벼락치기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벼락치기와도 같은 교수법은 상당히 스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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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0 동창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23. 07:00
오즈 야스지로는 장례식과 관련된 장면을 좋아했다. (1958)는 절에서 사십구재 독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961)은 화장 장면으로 시작한다. (1953)는 탈상 장면이 인상적으로 쓰여졌다. 오즈는 동창회 장면도 좋아했다. 류 지슈, 나카무라 노부오, 기타 류지 등의 ‘아저씨 트리오’는 긴자의 요릿집 ‘와카마쓰’에 모여서는 술을 마시며 동창회 계획 세우는 데 열중한다. 거듭 생각해 보면, ‘동창회’라는 것은 일정 연령이 지나고 나면 어쩐지 ‘장례식’과 비슷해진다. 동창회가 되면 우리들은 질리지도 않고 똑같이 과거의 악행을 폭로하고, 똑같은 옛날 얘기를 우려내며, 똑같은 농담을 하며 웃는다. 필자의 장례식에 모인 친구들은, 지금 동창회에서 루틴화되어 있는 이야기를 아마 똑같이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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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 내가 보고 싶은 설날 특집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20. 07:00
연말 신문에 연말연시 TV 편성표 종합판이 크게 실려 있었는데, 보고 싶은 방송이 거의 없었다. 결국 보고싶은 설날 프로는 NHK 특선 뿐. 벌써 다섯 번째 본 영화인데도, 신기루 저편에서 오마 샤리프의 그림자가 어슬어슬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푸념은 그만 두고, 필자가 보지 않은 설날 특집 방송은 대체로 버라이어티물이었다. 이에 대해 적잖이 생각한 바를 술회하고자 한다. 버라이어티 방송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필자는 모르지만, 재담가가 골프를 친다든가, 가수가 요리를 만든다든가, 야구감독 부인이 인생상담을 한다든가, 배우가 퀴즈를 푼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면 요컨대 ‘본업 이외의 재능을 보여드린다’는 게 본질이 아닐까 한다. 언뜻 들은 바로는 본래 엄격한 전통 예능인 노가쿠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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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0 철학하는 하트먼 상사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17. 07:00
히로마쓰 와타루가 세상을 떠났다. (1994년 - 옮긴이) 1970년대 ‘신좌익 운동’에 크나큰 사상적 영향을 끼친 철학자였다고 신문의 사망기사는 보도했다. ‘사상적 영향’은 잘 모르겠지만 ‘Would-be-intelligentsia’였던 소년들에게 심각한 ‘문체적 영향’을 끼친 것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70년대 초엽, 젖비린내 나는 관념으로 언어를 짜올리던 소년들이 떠받들던 문체의 스승은 누구보다도 요시모토 다카아키였다. ‘필자’, ‘우리들’, ‘실상’, ‘목하’와 같은 요시모토의 사소한 프레이징을 소년들은 남용했다. ‘신좌익’ 운동이 몰락해가는 흐름 속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정치 소년의 황량한 심정과 요시모토의 말투는 아마 친연성이 있었을 게다. 그리고 요시모토 문체 고유의 ‘끈적함’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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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철학의 쓸모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14. 07:00
알고 지내는 젊은 여성한테서 편지가 왔다. 정신병원에서 주간보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한다. 편지에 따르면 그녀는 ‘일단 퇴원해 사회에 적응하며 통원하는 사람들’의 말동무를 해 준다는 듯하다. 그 사람들이 그녀에게 묻는 질문이 퍽 철학적이라고 한다. 그녀는 대학 시절 철학을 조금 접하여 프랑스 현대 사상을 졸업 논문 주제로 고른 이로서, 철학에 대해 약간은 이해하고 있지만 어려운 질문에는 쩔쩔매는 모양이다. ‘철학은 포스트모던 이래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현재 가장 참신한 철학은 무엇인가? 그것에 관한 책을 소개해 달라는 말을 듣는데, 무엇이 좋을까요’ 하고 그녀는 다시금 물어온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답장을 보낼 겸 해서 이 물음에 관해 좀 생각해보고자 한다. 마음에 병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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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에 관한 개인적인 추억 그리고 소소한 감상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2. 11. 07:00
필자가 를 손에 들게 된 것은, 1966년 가을 때 일이었다. 그때 일은 반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을 길잡이 삼아, 필자는 지적 성숙의 한 단계를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얘기를 시작해보자. 그때, 필자는 입시 명문 도쿄도립 히비야 고등학교의 교지편집부라는, 그렇게 제멋대로일 수가 없을 고등학생들의 집합처 같은 동아리의 1학년이었다. 선배들은 헤겔과 마르크스, 프로이트, 사르트르같은 고유명사를 마치 옆반 친구 부르듯이 예사로 입에 담았다. 필자는 게서 언급된 사람들에 관해 가까스로 인명사전 수준의 지식만 갖고 있었지, 그들의 책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었다. 더욱이 토론을 하며 그중 한 구절을 타이밍 좋게 인용하는 지적 곡예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압도적인 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