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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에서인용 2024. 2. 11. 13:10
명보 자신은 소유물에 크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에도 종종 제 옷가지나 책 따위를 가난한 친구들과 하인의 아이들에게 아무렇게나 줘버려 꾸중을 듣곤 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엔 남들에게 아무리 많이 퍼 주어도 늘 자신에겐 쓸 것이 차고 넘치도록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는 심지어 자신의 희생으로 인해 발생하는 역경을 깊이 음미하며 즐기기까지 했다.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요구하는 의로운 일을 할 때마다 솟아오르는 양심의 만족이 그의 영혼에 밝은 빛을 비추었다. 한편 이런 행복감에 상충하여 균형을 맞춰준 것이 있었다. 명보는 자기 주변의 수많은 타인들에게 이러한 양심의 자각이 부재할 뿐 아니라, 그런 감정을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혐오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철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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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제트기와 전자 두뇌의 시대입니다.”인용 2024. 2. 9. 23:11
회색 도당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모모의 친구인 어린이들을 자기네 계획대로 조종하는 일이었다. 모모가 실종된 뒤에도 어린이들은 틈만 나면 원형 극장 옛터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 내었다. 환상적인 세계 여행을 떠나거나, 성곽과 궁전을 짓기 위해 그들에겐 몇 개 낡은 상자와 궤짝만 있으면 충분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열심히 생각을 짜내 계획을 세우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요컨대, 아이들은 마치 모모가 여전히 자기네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실제로 모모가 여전히 거기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인적자원입니다. 미래는 제트기와 전자 두뇌의 시대입니다. 이 모든 기계를 조작할 수 있는 수많은 전문가와 숙련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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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허겁인용 2024. 2. 9. 21:08
갯벌을 메워 공장을 짓겠다는 군민을 설득해 2014년 개장한 국립생태원은 개장 첫해부터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가 퇴임하기까지 3년 내내 목표 관람객 수는 300퍼센트를 초과했다. 죽어 가던 지역 경제가 살아났다. 최재천은 그 모든 것이 군림(君臨)의 경영(經營)이 아니라 군림(群臨)의 공영(共營)이 이룬 결과였다고 한다. 혼자 다스리지 않고 함께 일하면 망하기가 더 어려운 일이라고. 여왕개미가, 침팬지가, 꽃과 곤충이 그에게 속삭이더라고. 생태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SNS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키 작은 꼬마에게 상장을 주기 위해 무릎을 꿇은 사진이 공개되었던 것이다. 그 사진을 보니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하모니처럼 떠올랐다. “서로 상대를 적당히 두려워하는 상태(일명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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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바보니까요.”인용 2024. 2. 8. 21:22
실제로 학문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자칫 선망의 마음을 넘어서 남을 질투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 이상한 감정에 대하여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질투는 무언가를 창조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지 않은 감정이라고 단언해 두고 싶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 여기서 체념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상대가 안 돼서 단념했어요. 그래도 그리워 못 잊을 그 사람. 이것은 전쟁 전에 유행한 ‘비에 피는 꽃’이라는 노래의 가사인데, 유학생활 동안 나는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세상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하버드 대학 시절의 멈퍼드와 아틴이 그랬다. 그런 우수한 사람들을 일일이 질투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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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번 트랜스레이션은 확실히 우수한 회사였습니다.”인용 2024. 2. 8. 20:51
어번 트랜스레이션은 확실히 우수한 회사였습니다. 이 말은 번역을 잘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시 번역 회사는 도쿄에 600개나 있었는데, 실제로 번역하는 전문 번역가는 전부 프리랜서였고, 거의 같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일하는’ 상태였기에 번역의 질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라면 일거리를 받아 납품하는 ‘창구’, 즉 번역 회사뿐입니다. 그렇다면 경단의 맛이 아니라 ‘이 떡집이 싸다’, ‘납품이 빠르다’, ‘포장지가 예쁘다’ 등 실로 사소한 차이로 경쟁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것입니다. 어번 트랜스레이션은 중간 착취를 최소한으로 억제했습니다. 학생 아르바이트를 연장하는 기분으로 회사를 경영했기 때문에 우리 월급도 낮게 책정했고, 월세도 놀랄 만큼 싼 곳을 빌렸기 때문에 경비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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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판 『커먼의 재생』 서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2. 7. 18:12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커먼의 재생』 문춘문고판을 집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단행본은 2021년에 나왔습니다. 월간지 『지큐 일본어판』에 2016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일종의 ‘인생 상담’*조로 쓴 글을 모은 책입니다. 그런 만큼 맨 처음 꼭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도쿄올림픽**이나 코로나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옛날얘기 지금 와서 읽어봤자 과연 재미가 있으렵니까?’라는 의문이 당연히 솟아오를 겁니다. 용솟음치는 게 당연합니다. 근데 한번 읽어보시면 재미난답니다. 어째서 시사성 하나 없는 글인데도 여태까지 읽을만한 걸까요? 여기에 관한 사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ー (* The Professor Speaks라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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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2. 6. 18:33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종교’와 ‘종교성’ 등에 관한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과 샤쿠 뎃슈 선생님이 함께 쓰신 ‘영성’, ‘종교’, ‘종교성’에 대한 저작을 전부 다 읽어본 것 같습니다. 『성지순례 시리즈(聖地巡礼シリーズ)』를 필두로 『일본 영성론(日本霊性論)』, 『현대 영성론(現代霊性論)』이나 『정토진종, 입문은 했지만(はじめたばかりの浄土真宗)』, 『이제 와서 절밥을 얻어드실라고?(いきなりはじめる仏教入門)』부터 『미스터리 그 자체! 일본의 종교(日本宗教のクセ)』까지 모든 내용이 흥미로웠고 얻어가는 것도 많았습니다. 쓰신 책들을 통독하고 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지성적이기에 합당하려면 인간은,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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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는 대체 누구 지지자냐?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 31. 23:58
우치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리버럴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언론에서 우치다 선생님을 ‘리버럴 지식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십 년 이상 선생님이 쓰신 거의 모든 저작을 홀린 듯이 읽었을 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인터넷 언론 등의 매체에 기고하셨던 문장을 읽고, 또한 선생님께서 출연하신 라디오 방송 등을 듣고 있는 자 된 처지에서, 우치다 선생님을 ‘리버럴 지식인’으로 간단히 못 박는 건 좀 잘못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선생님의 ‘교육론’ 등에서 “학교 교육은 타성이 강한 제도이며, 사회 변화에 즉각 대응해서는 안 된다.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식의 구절을 곧잘 마주치게 됩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교육’에 관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