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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을 메워 공장을 짓겠다는 군민을 설득해 2014년 개장한 국립생태원은 개장 첫해부터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가 퇴임하기까지 3년 내내 목표 관람객 수는 300퍼센트를 초과했다. 죽어 가던 지역 경제가 살아났다.
최재천은 그 모든 것이 군림(君臨)의 경영(經營)이 아니라 군림(群臨)의 공영(共營)이 이룬 결과였다고 한다. 혼자 다스리지 않고 함께 일하면 망하기가 더 어려운 일이라고. 여왕개미가, 침팬지가, 꽃과 곤충이 그에게 속삭이더라고.
생태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SNS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키 작은 꼬마에게 상장을 주기 위해 무릎을 꿇은 사진이 공개되었던 것이다. 그 사진을 보니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하모니처럼 떠올랐다.
“서로 상대를 적당히 두려워하는 상태(일명 상호허겁)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평화를 유지하게 만든다. 우리 인간은 무슨 까닭인지 자꾸만 이러한 힘의 균형을 깨고 홀로 거머쥐려는 속내를 내보인다. 그러나 내가 그동안 관찰해 온 자연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자연에서 제일 먼저 배울 게 있다면 이 약간의 비겁함이다.”
- 최재천,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에서 (이상 김지수,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평균 나이 72세, 우리가 좋아하는 어른들의 말> 66~67쪽에서 재인용).
중국 역사에서는 남과 북이 싸우면 언제나 남쪽이 집니다. 중국의 전쟁사는 언제나 남의 패배와 북의 승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한 남방인들의 기질이 험난한 풍토에 단련된 북방의 강인한 기세를 당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싸움에 지는 것을 패배라고 하고 그것을 ‘敗北’라고 씁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나는 점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점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을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부류의 의기(意氣) 방자(放恣)한 사람에 비하면 훨씬 좋은 사람이지요.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못 되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있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은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약한 사람으로 느끼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敬畏)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神)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점 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8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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