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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번 트랜스레이션은 확실히 우수한 회사였습니다.”
    인용 2024. 2. 8. 20:51

    어번 트랜스레이션은 확실히 우수한 회사였습니다.

     

    이 말은 번역을 잘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시 번역 회사는 도쿄에 600개나 있었는데, 실제로 번역하는 전문 번역가는 전부 프리랜서였고, 거의 같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일하는’ 상태였기에 번역의 질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라면 일거리를 받아 납품하는 ‘창구’, 즉 번역 회사뿐입니다.

     

    그렇다면 경단의 맛이 아니라 ‘이 떡집이 싸다’, ‘납품이 빠르다’, ‘포장지가 예쁘다’ 등 실로 사소한 차이로 경쟁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것입니다.

     

    어번 트랜스레이션은 중간 착취를 최소한으로 억제했습니다. 학생 아르바이트를 연장하는 기분으로 회사를 경영했기 때문에 우리 월급도 낮게 책정했고, 월세도 놀랄 만큼 싼 곳을 빌렸기 때문에 경비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작업 속도가 빨랐습니다. 고객이 전화를 걸어오면 금방 오토바이를 타고 원고를 가지러 갔고, 그 길로 번역자에게 달려가 급한 일은 그날로 납품했습니다.

     

    우리의 장점은 모두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쿄 시내는 자동차나 지하철보다 오토바이가 가장 빠릅니다. 어디에나 세워놓을 수 있고, 일방통행 도로나 인도도 요령만 좋으면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 후 히라카와 군과 나는 영업을 담당하고 배달원인 동시에 경영자 노릇을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당장 가격이나 납기를 교섭할 수 있었습니다. 일일이 ‘위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즉시 판단, 즉시 결정입니다.

     

    게다가 나는 기업 내 번역자이기도 하므로 짧은 글은 그 자리에서 번역해 그 자리에서 납품하는 재주 부리기가 가능했습니다.

     

    중간 착취가 적고 보수를 지체하지 않고 얼른 지불해주니까 번역자, 통역자, 타이피스트 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우리 스스로 회사를 세우고 일을 시작해보았는데 웬일인지 순조롭게 잘 굴러갔습니다.

     

    히라카와 군과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제국주의 타도’라는 슬로건을 외쳤는데, ‘어라, 자본주의도 쓸 만한 시스템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일반적으로 관계자들 전원이 될수록 득을 볼 수 있는 틀을 만들어놓으면 어김없이 돈을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 파는 상품은 거의 비슷한데 점포의 특징이 다를 뿐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게임입니다. 사소한 발상의 차이가 매상에 금세 반영되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규모의 확장으로 얻는 이익이나 ‘전통의 위력’이나 발주 담당자의 뇌물 같은 것, 말하자면 현실의 회사 경영에서는 작업의 질과 무관하게 매상에 관여하는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그러한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회사가 젊었습니다. 사장도 나도 창업 당시 스물여섯이었습니다. 동종 업계에서 사원의 평균 연령이 제일 젊은 회사였을 것입니다.

     

    재미 삼아 ‘회사 놀이’를 시작했을 뿐인데 성공해버리니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신명이 났습니다.

     

    신명 나는 명랑한 회사’였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이 찾아와 새로운 일거리를 건네주었습니다.

     

    제판용(製版用) 정서(淨書) 작업을 해보지 않을래?”, “인쇄도 해보지 않을래?”, “리플렛 편집 작업을 해보지 않을래?”, “책을 내보지 않을래?” 등등 알지 못하는 일거리도 가지고 옵니다.

     

    이런 일을 자주 가져온 인물은 우리가 하청을 받아 출입하던 회사의 영업사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영업하고 올게요” 하고 회사를 나와 우선 어번 트랜스레이션에 옵니다. 그다음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만화나 오토바이 잡지를 읽으면서 빈둥거립니다.

     

    마음이 편하니까 그러고 있었겠지만, 실제로 ‘어번 트랜스레이션에 일하러 와 있다’는 관계를 만들면 그런 생활 태도를 가장 그럴듯하게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기, 어번 트랜스레이션에서 이거 해보지 않을래? 너희들이라면 할 수 있어”하고 일거리를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95~98)


    나도 또한 젊었을 때 ‘현대 사상의 깊은 숲’에서 숨이 끊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 남은 사력을 다해서 그 ‘숲’으로부터 빠져나오긴 했지만 ‘조난’의 고통을 사무치게 느꼈다. 지천명을 지난 어느 날 나는 문득 자신의 ‘조난 경험’과 거기서부터의 ‘탈출 경험’을 젊은 독서인들에게 내레이터로서 전하는 것이 혹여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 일을 통해서 새로운 ‘조난자’의 출현을 미리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현대 사상의 PTSD’로 고통받는 30, 40대의 독서인들에 대한 구호 활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현대사상의 조난 구조 활동’. 우와 이거 멋지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나에게는 조난자들을 등에 업고 하산할 만큼의 체력은 없다. 그래서 일단 나의 임무를 그들을 ‘격려’하는 것에 한정하기로 했다. 눈 덮인 산을 달려서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조난자’들의 콧등을 핥고, 브랜디를 먹이고, ‘그 다음은 자력으로 일어서기를’이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떠난다. ‘현대사상의 세인트 버나드’.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도 좋아하고.

     

    문제는 ‘브랜디’에 상응하는 ‘어떠한 조난도 한 모금만 마시면 일단은 숨통이 트이는’ 구조의 논리를 세우는 것이다. 조금 생각한 후에 나는 묘수를 생각해냈다. 그것은 ‘모른다’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이다’라는 역전의 발상이다.

     

    … ‘모른다’는 것은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지자(智者)’에 대한 욕망이 기동하고 있는 징후이다. 그것이야말로 독자가 지적으로 뭔가를 돌파하는 것의 징조다. 그래서 모른다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조심스러움이야말로 위대한 사상가에 대한 경의의 표명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나의 구명용 ‘브랜디’다. ‘몰라도 괜찮아’라는 이 논리를 목에 걸고 나는 오늘도 ‘현대 사상의 조난자’들의 지적 소생을 위해서 눈 덮인 산을 질주하고 있다. 멍멍

     

    (<망설임의 윤리학>. <우치다 다쓰루>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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