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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소개 서문에서 (나심 탈레브)인용 2024. 1. 24. 18:26
세상에는 충격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가변성, 무작위성, 무질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번창하고 성장하며, 모험과 리스크,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충격을 가하면 부서진다는 의미인 프래질에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단어는 없다. 이제부터 이런 단어를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고 부르자.
안티프래질은 회복력 혹은 강건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회복력이 있는 물체는 충격에 저항하면서 원상태로 돌아온다. 반면, 안티프래질한 대상은 충격을 가하면 더 좋아진다. 이런 특징은 진화, 문화, 사상, 혁명, 정치 시스템, 기술 혁신, 문화적이거나 경제적인 성공, 기업의 생존, 훌륭한 조리법(닭고기 수프나 코냑 한 방울을 떨어뜨린 타르타르 스테이크), 도시의 성장, 법률 시스템, 적도 지방의 삼림, 박테리아의 저항, 심지어 지구상에서 인간의 존재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모든 것들의 배후에 있다. 그리고 안티프래질은 인간의 몸처럼 살아 있는 유기체(또는 복잡계)와 책상 위의 스테이플러처럼 생명이 없는 물리적 대상 간의 경계를 정해 준다.
안티프래질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이는 일정 정도의 오차를 좋아한다는 의미다. 안티프래질은 우리에게 미지의 것을 다루도록 해주고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않고도 잘 실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우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안티프래질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실행을 통해서 더 잘할 수 있다.
(…)
나는 매우 똑똑하고 프래질하기보다 차라리 우둔하고 안티프래질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정 정도의 스트레스나 가변성을 좋아하는 대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경제 시스템, 인간의 몸, 영양(당뇨병을 비롯해 현대의 이와 비슷한 질병은 음식물 섭취의 무작위성의 결여나 간헐적인 단식과 같은 스트레스의 결여와 관련이 있다*), 정신이 그렇다. 심지어 안티프래질한 금융 계약도 있다. 이런 계약은 시장의 가변성으로부터 이익을 얻도록 명시적으로 작성된다.
안티프래질은 프래질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해준다. 질병을 없애지 않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없듯이, 또는 손실을 먼저 줄이지 않고서 부를 증진시킬 수 없듯이, 프래질을 줄이지 않고서 안티프래질해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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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계 종교의 수행 중 하나인 단식을 염두에 둔 구절임. 그리스정교에서는 단식의 일정과 내용이 세분화되어 있음. - 인용자)
(…)
나는 트레이더로서 그리고 스스로 이상하다고 말했던 분야의 직장인으로서 20년 넘게 지내다가,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학술계라고 일컫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이제는 연구논문을 써야 한다. 실제로 나는 논문을 쓰면서 생활에서의 안티프래질을 떠올렸고, 자연스러운 것과 부자연스러운 것의 소외에서 비롯되는 이분법도 생각해냈다. 현장에서의 삶은 재미있고 활기차고 긴장감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지금 학술계에서의 삶에는 이런 요소가 전혀 없다. 그리고 불안정하고 리스크가 따르는 직장인으로 지내다가 학자가 되면 조용하고 정신적으로 편안해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새로운 문제와 불안한 일들이 매일 발생하기 때문에 하루 전에 겪었던 골치 아팠던 일, 화가 났던 일, 싸웠던 일은 잠시 잊어버리게 된다. 박혀 있던 못을 빼고 각양각색의 다른 못으로 대체한다. 학술계(특히 사회과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질투하고 차갑게 대하며, 작은 거절에도 원한을 갖고 산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컴퓨터 스크린과 외롭게 마주 대하면서 시대에 뒤처진 삶을 살고 있다. 나는 현장에서는 이런 수준의 질투는 말할 것도 없고 질투 자체를 경험한 적이 없다. 내가 경험하기로 돈과 거래는 관계를 정화시켜주는 것이었다. 인식과 신뢰와 같은 의견이나 추상적인 문제는 관계를 왜곡시키고 영원한 대립 관계를 조장했다. 나는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경력만을 좇는, 신뢰할 수 없고 짜증스럽고 탐욕스러운 인간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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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두 문단은 이 글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일 것으로 생각된다. 독자 제현의 양해를 구해 마지않는 바이다. - 인용자)
(대규모 시장이나 기업은 아니지만) 기업 혹은 레반트 지역의 야외 시장인 수크(Souk)는 너그럽고, 정직하고, 사랑스럽고, 믿을 수 있으며, 개방적인 품성을 지닌 최고의 인간을 배출하는 곳이다. 나는 근동 지역의 기독교 소수파의 한 사람으로서 (특히 소규모) 기업이나 시장은 관용과 인내의 품성을 갖게 해주는 유일한 곳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곳에서는 합리화나 훈계를 배척한다. 안티프래질한 팅커링처럼, 실수는 사소하고 기억에서 금방 사라진다.
나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환경에서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다른 학자들과 충돌하면서 지내기 전까지는 그런 환경이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추구할 수도 있는) 현장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생물학자이자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매트 리들리(Matt Ridley)는 나에게 지성을 중시했던 페니키아 상인(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가나안 상인)의 기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
단순한 것은 더 많은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하고, 명백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두려움 없이 다루도록 하며, 훨씬 더 바람직하게는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나서서 우리의 무지를 똑바로 바라보게 해줄 몇 안 되는 방법, 원칙, 금지 명령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가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길을 갈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시스템을 수정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안하려고 한다. 그러나 단순함을 이루어내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머릿속을 깨끗하게 정리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랍인들도 이런 생각을 다음과 같은 통렬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실력이 없어도 된다. 그것을 글로 쓰려면 정복해야 한다.
경험법칙은 경험을 통해 찾아낸 방법으로 대상을 단순하게 만들어 실행에 옮기기 쉽도록 해준다. 그러나 경험법칙의 중요한 장점은 사용자가 이런 법칙이 완벽하지 않고 편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장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면 경험법칙은 위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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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자: 나심 탈레브는, 정확히 말하면 『블랙 스완』은 제가 2010년 무렵 한국어 트위터에서 어떤 탈레브 열성 독자를 자처하던 계정 주인분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적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 Irvine 캠퍼스 소속이라고 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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