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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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한국 국민에게 말한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5. 2. 24. 14:25
어제 가이후칸에 오신 한국 손님들과 있었던 질문 시간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취임으로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하는 주제가 나왔습니다. 같은 동아시아인끼리 피부에 와닿을 여러 사안 가운데 하나는, 트럼프가 양국에 핵무장을 다그치는 것이 있겠고, 나머지 또 다른 하나는 한미 상호방위 조약, 내지는 미일 안보조약을 파기하라고 압박할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트럼프가 하는 짓들은 그가 잘하는 ‘딜’ 같은 것인데 진짜 속내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맹국 핵무장이든 상호방위조약 파기든지간에 벌어지기만 하면 동아시아는 그 순간 아비규환에 빠집니다. 중국은 역내의 혼돈을 원치 않습니다. 따라서 트럼프는 여차하면 지르겠다고 해놓고서 정작 중국한테서 외교적 실속을 챙기려 들 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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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변경론》 중국어판 해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5. 2. 8. 21:36
어느 가을 저물녘, 비상근 강사로 오래 봉직해 왔던 고베여학원대학에서 우치다 다쓰루 교수에게 《일본변경론》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석양이 캠퍼스의 교회당과 D관 앞의 조그만 일본 목조 신전을 따스히 비추고 있었다. 전자는 양풍인데, 후자는 일본 고래의 건축양식이고 보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그 대조적인 풍경은 퍽 인상적이었다. 이 고즈넉한 풍경을 볼 때마다, 우치다 교수의 논설은 지금 눈 앞의 인상적인 정경과도 같이, 일본 국내에 그치지 않고 보다 확대된 외부 시야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외부 시야란, 말하자면 국외자의 시점이며 그것은 내가 일본에 살고 있으면서 중국인의 시점으로 일본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인에게는 별 것 아닐지라도, 바깥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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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재난으로 잃은 것과 배운 것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5. 1. 31. 13:13
한신아와지 고베대지진이 일어난 지 어언 30년이 흘렀다. 30년 전 1월 17일 그날, 아시야 자택에서 이불 위로 굴러떨어진 장롱서랍이 안면을 강타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열두 살 난 딸과 둘이서 살고 있었기에, 딸의 방으로 곧장 달려갔다. 가구는 거의 대부분 쓰러져 있었지만, 침대 위에 딸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아, 무사했구나' 하고 딸을 껴안았다. 그때 느꼈던 안심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밖의 일들은 사실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집 주위의 공중전화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그때 코트를 입고, 서류가방을 든 남성이 사람들 옆을 스쳐지나갔다. 버스가 오지 않는 탓에 걸어서 출근할 작정인 듯했다. 그때, 한 트럭이 언덕을 올라왔는데, 창 밖으로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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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의 쿠데타 (日 아사히신문 천성인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4. 12. 13. 20:12
역사는 반복되는 대신, 압운을 남긴다고들 한다. 45년 전 어제, 한국의 전두환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공수부대 등을 출동시켜 주요 인물들을 구속하고 불과 하룻밤 만에 실권을 장악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은 작년 한국에서 크게 흥행한 바 있다. 계획을 성공시킨 장군의 파안대소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끝날 수만은 없었다. 전씨는 내란수괴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법정에 섰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영광과 영락, 그리고 광채와 그늘의 대비. 한국 대통령이란 존재는 대대로 그렇게 강력한 인상을 남겨왔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똑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인가? 비상계엄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어제는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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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선생님께 '우치다 다쓰루'에 대해 여쭤보러 가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4. 10. 18. 20:41
출처: 神野 壮人 씨 https://note.com/penguin_wo/n/n7235feaa4158 (지난 글) ー학술 연구로서는 평가를 받지 못해도, 작가나 그 작품을 논하는 방법론으로서는 유효한 접근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우치다 선생님의 ‘연구자가 아닌, 팬으로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논하는 접근법입니다. 이것이 무라카미 문학을 해석하는 방법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무라카미 하루키론은 세계적으로 대만 한 군데에서만 주목했습니다. 타이베이의 담강대학이라는 곳에 세계 유일 ‘무라카미 하루키 연구센터’가 있습니다. 거기에 초빙되어 한 차례 무라카미 하루키론을 강연한 적이 있었어요. 그것 말고는 평가고 자시고 할 게 없네요.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을 자처하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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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나게이」에 대하여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4. 7. 1. 15:59
노가쿠의 호쇼(宝生) 유파에서 내고 있는 ‘보생’이라는 잡지에 이 전통 예술과 관련한 에세이를 기고했다. 내가 쓰는 글 중에는 뭇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매체에 기고하는 게 종종 있는데 이것도 그중 하나이다. 이에 따라 가상 공간에 채록해 두기로 한다. ‘단나게이’라는 양식 간제 유파의 ‘우타이’와 ‘마이’ 수련을 시작한 지 십칠 년 된다. 이 년 전에 첫 노(能) 무대로 ‘쓰치구모’를 선보였고, 2014년 금년 유월에는 ‘하고로모’로 두 번째 노 무대에 선다. 그다음 있을 노 공연은 내후년인데, ‘아쓰모리’에 참여할 예정이다. 필자가 전문 기예로 삼고 있는 아이키도의 기준으로 꿰맞춰 보면, 잠정적으로 ‘三단’ 근처에 해당한다. 겨우겨우 한고비를 넘긴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사항들을 서서히 깨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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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와 진구 가이엔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4. 6. 17. 18:45
도쿄도 도지사 고이케 유리코 귀하실례를 무릅쓰고 갑작스레 편지를 올립니다. 저는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입니다. 진구가이엔 재개발과 관련하여 제 생각을 전달드리고자 이렇게 붓을 들게 되었습니다. 부디 일독해 주시기를 청합니다.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선인이 100년을 들여 지키고 보살펴 온 귀중한 진구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희생시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그러나 진구를 개발함으로써 은혜를 받는 축은 한 줌의 부유층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나무와 나무들은 한 번 잃게 되면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는 자연입니다.제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는 2007년 당시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가 뉴욕 시내에 100만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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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보다 몸에 먼저 스며드는 언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4. 2. 22. 17:30
이 책을 읽자니 문득 행간 행간마다 돌아가신 스즈키 구니오 씨의 육성이 들려오는 바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스즈키 씨와 대화를 나눴고 책도 두 권 냈다. 필자가 관장 노릇을 하는 가이후칸 도장에 오셔서 아이키도 수련도 같이했었다. 스즈키 씨는 강도관 유도 삼단이다. 무도에 대한 존중심과 함께 그 넘쳐나는 호기심이 인상적이었다. 스즈키 씨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삿포로시계탑 강당까지 갔다 왔다. 서로 술잔을 기울인 적 또한 하도 많다. 스즈키 씨의 사상을 논한 사람은 많아도, 스즈키 씨의 문장에 대해 말한 사람은 많지 않다. 스즈키 씨는 독특한 '문체'를 갖고 있다. '스타일'이라고 해도 좋고, '보이스'라고 해도 좋다. 이는 신체 실감이 뒷받침되고 있음이 확실한 말 이외에는 달리 말하지 않겠다는 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