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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등 기업: 덴쓰를 가다 『電通』 (1/3)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3. 11. 20. 12:20
(옮긴이 일러두기: 2016년에 작성된 프랑스어 원문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시간이 꽤 흐른 뒤 한국어로 아래와 같이 중역하였다.) ‘덴쓰는 일본의 언론을 지배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을 단 프랑스의 인터넷 뉴스 기사를 번역해 둔다. 기자는 Mathieu Gaulène이며, 2016년 5월 13일에 게재되었다. 한가할 때에 글을 조금씩 옮기고 보니 A4 용지 8장, 7,000자 쯤 되는 장문의 기사가 나왔다. https://larevuedesmedias.ina.fr/le-publicitaire-dentsu-tire-t-il-les-ficelles-des-medias-japonais 『덴쓰는 일본의 언론을 지배하고 있는가?』 Mathieu Gaulène 덴쓰는 세계 제 5위의 커뮤니케이션 그룹이며, 일본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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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자이 오사무, 에밀 길렐스인용 2023. 11. 20. 12:17
문득 생각난 것은 '배음적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를 읽었을 때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배음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을 받아 드는 수신자 측의 영적인 성숙도, 그 사람이 내면화하고 있는 '종족의 우주관', 사상, 미의식, 가치관 등에 의해 다양하게 분절됩니다. 그러므로 '배음적 문체'로 쓰인 문장을 읽은 독자는 거기에서 자신만을 수신인으로 하는 메시지를 수신하게 되는 것이지요. (...) 자신 안에 복수의 화자를 동시에 존재시킬 수 있고,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다자이 오사무지요. 이것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되면 다중인격이 되고 말지요. 다중인격이란 그때그때 다른 인격이 교대해서 나오는 상태인데요, 그래서는 배음은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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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개정판에 부쳐 (김욱동)인용 2023. 11. 14. 16:20
(...) 나는 이번 기회에 초판 번역본을 개정하기로 결심했다. 개정하되 부분적으로 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손을 보기로 했다. 건물에 빗대어 말하자면, 낡은 서까래를 몇 개 갈거나 지붕을 새로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집의 뼈대만을 남겨 두고 벽을 허물어 집 구석구석까지 뜯어고쳤다. 실제로 한 단락, 심지어 한 문장도 다시 손보지 않을 곳이 없다시피 하다. 이 점에서 이번 개정은 개수(改修)의 수준을 넘어 가히 구조 변경이라고 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나는 초판 번역본을 개정하면서 "유려하면서도 원문을 잘 살려 낸" 번역이라는 평가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번 개정판에서 나는 특별히 다음 세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은 일부 표현을 철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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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그루드지에프 (3)인용 2023. 11. 14. 16:15
(이하 콜린 윌슨 ) 게오르그 그루드지에프 (1) 게오르그 그루드지에프 (2) 그루드지에프는 또 불안이라든지 혐오, 혹은 분노라고 말한 '소극적 감정'에 인간은 놀랄 만큼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러한 감정은 인체의 유지에 전혀 불필요해서 산처럼 쌓아놓은 화약에 성냥을 던지는 것과 다름없이 비경제적이라고 한다. 인체라는 에너지 공장의 활동을 저해하는 사고가 소극적 감정이다. 인간은 또한 많은 '중심'을 갖고 있다. 감정의 중심, '동작'의 중심(동작에 관계 없는 모든 일을 하는 중추), 지능의 중심 그리고 본능의 중심이 있으며, 더욱이 성의 중심이 있고, 그보다도 고차적이지만 본인이 전혀 느끼지 못하는 두 개의 중심이 있다. 마지막 두 개의 중심은 무의식의 마음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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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도약한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3. 11. 14. 13:52
얼마 전에 교육에 관한 인터뷰를 「스바루(플레이아데스 - 옮긴이)」* 에서도 진행했다. 그때 ‘논리국어’ 과목에 대한 의견을 구술했던 것이 활자화되었으므로, 가필하여 올려둔다. ー (* 스바루: 집영사에서 간행하는 순문학 문예지. 1909~1913년의 원조 스바루 잡지는 소설가 모리 오가이가 지도적 위치를 점하였다. - 옮긴이) 요전날에 효고 현에서 활동하시는 국어 선생님들의 모임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집회에 오신 선생님들을 살펴보니 요즘 국어교육 현장의 화제는 아무래도 ‘문부성 학습 지도 요령’의 개정과 함께 등장한 ‘논리 국어’ 과목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논리국어란 게 대관절 무엇인가 하고 그분들은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정말로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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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넘어서도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는 놈은 바보다인용 2023. 11. 14. 13:50
'부모님 때문에 내 인생이 이 모양 이꼴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이었음을 고백한다.- 장강명세상이 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탓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심판, 바람, 공, 너 나 할 것 없이 내 삶을 망치려고 할 것이다. 성공한 운동선수는 유능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자신이 책임을 진다. 엄마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용서를 말하자면,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해 부모님을 가장 먼저 용서하자. 그들은 완벽하지 못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에겐 성공적인 부모가 되는 대중심리학 서적이 없었다. 게다가 우리를 키우는 일 외에도 다른 걱정거리가 많았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든 간에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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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인용 2023. 11. 8. 14:10
그의 회고록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어린 시절이다. 그 책에서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자기 부모를 왜 그렇게 헐뜯었을까? 독자는 그가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해 복수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자기 부모에게 복수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린 시절이 아무리 불행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독한 사람들이었고 불쌍한 아이였던 자기는 그들의 독재를 견뎌내야 했다는 식으로 부모를 공개적으로 욕하는 글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남길 수 있을까. 그러한 행동에는 어딘가 비열한 구석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 부모를 비난하는 건 정말 듣기 싫다. 나는 일생을 무위도식자가 아닌 프롤레타리아로 살았다. 어린 시절 이후 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 나 자신의 '잠재력'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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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와 연필만으로 충분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3. 11. 8. 13:49
『열풍』 2010년 7월호 ーー 오늘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께 미국 애플사의 아이패드 출시를 맞아 감독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IT와의 관계 맺기’에 관해 들어보고자 합니다. 미야자키: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그 게임기 같은 물건, 그리고 그걸 갖고 묘한 몸짓으로 호작질하는 꼴은 역겨울 뿐이라 관심도 없고, 그 물건은 나한테 아무런 감동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혐오감만 들 뿐이지요. 그러고 보니 요즘 지하철 안에서 그 이상한 손놀림으로 자위행위나 다름 없는 짓을 공공연하게 하는 인간들이 늘어났네요. 만화책 보는 인간들, 휴대전화 때리는 인간들로만 지하철이 가득 찼을 때와 마찬가지로 짜증이 폭발할 노릇입니다. (중략) ーー 하지만 아이패드가 있으면, 이를테면 이메일 같은 것을 통해 남들과 직접 대면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