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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개츠비 개정판에 부쳐 (김욱동)
    인용 2023. 11. 14. 16:20

    (...) 나는 이번 기회에 초판 번역본을 개정하기로 결심했다. 개정하되 부분적으로 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손을 보기로 했다. 건물에 빗대어 말하자면, 낡은 서까래를 몇 개 갈거나 지붕을 새로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집의 뼈대만을 남겨 두고 벽을 허물어 집 구석구석까지 뜯어고쳤다. 실제로 한 단락, 심지어 한 문장도 다시 손보지 않을 곳이 없다시피 하다. 이 점에서 이번 개정은 개수(改修)의 수준을 넘어 가히 구조 변경이라고 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나는 초판 번역본을 개정하면서 "유려하면서도 원문을 잘 살려 낸" 번역이라는 평가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번 개정판에서 나는 특별히 다음 세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은 일부 표현을 철저히 규정에 맞추어 고쳤다.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법은 교통신호와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지키지 않으면 큰 혼란이 빚어진다.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이 문제에서 혼란을 겪지 않도록 배려했다.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자주 사용하는 줄표(ー)도 우리말 어법에 맞게 생략할 것은 생략하고 살릴 것은 살렸다.

    (...)

    셋째, 비록 오역은 아니더라도 졸역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다듬었다. 또 표현이 애매하거나 자칫 다른 뜻으로 오해될 수 있는 부분도 좀 더 분명하게 바로잡았다. 번역의 배가 지나갈 때 기점 언어의 바다 속에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도 다시 한 번 살폈다. 가령 제 3장에서 조던 베이커가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한 젊은 아가씨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원문의 "I started"를 초판본에서 "나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로 번역했지만, 개정판에서는 "나는 놀라 움찔했다"로 고쳤다. 영어 동사 'start'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지만 문맥에서 보아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로 옮기는 쪽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좀 더 원문에 충실하게 바꾼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동안 나는 대학의 번역학과와 여러 기관에서 번역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실제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번역이란 역시 힘이 드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번역에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못지않게 '어떻게' 말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개정판에서 나는 '무엇'과 '어떻게' 사이에서 균형을 꾀하려고 고심했다. 한편으로는 '과잉 번역'이 없는지 살피고, 다른 한편으로는 '축소 번역'이 없는지 살폈다. 한마디로 원작의 의미를 손상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옮기면서도 될 수 있는 대로 원작의 스타일도 함께 옮기려고 노력했다. 말은 이렇게 하여도 실제로 기점 텍스트의 육체는 말할 것도 없고 영혼까지 옮겨 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과연 번역자의 의도대로 구조 변경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오직 독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모쪼록 독자의 채찍을 바랄 뿐이다.

    2010년 11월
    김욱동



    【새 문학전집을 펴내면서】

    세대마다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역사가 다름 아닌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모든 세대는 그 세대에 고유한 관심사를 매개로 과거와의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여 새 역사를 써내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는 새로 쓰기를 통해서 진정 당대의 역사로 정립된다. 이것은 문학사나 예술사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그러나 새로 작성할 것은 비단 역사만이 아니다. 번역 문학도 마찬가지다.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두시언해」는 조선조 번역 문학의 빛나는 성과이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시대의 두시 번역이 필요하다.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오늘에는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

    「두시언해」가 단순한 번역 문학이 아니고 당당한 우리의 문학 고전이듯이 우리말로 옮겨 놓은 모든 번역 문학은 사실상 우리 문학이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 문학을 자임하며 오늘의 독자들을 향하여 엄선하여 번역한 문학 고전을 선보인다. 어엿한 우리 문학으로 읽히리라 자부하면서 새로운 감동과 전율을 고대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떳떳이 이 책들을 추천한다.

    ー편집위원 김우창・유종호・정명환・안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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