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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에 관한 암묵지적 논의인용 2023. 11. 30. 11:21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려면 무의식의 세계를 그려 볼 필요가 있다. 뇌를 커다란 호두처럼 반으로 쪼갠다고 생각해 보자. 위쪽 절반은 의식이 자리하고, 흘러가는 생각들이 담겨 있다. 아래쪽 절반은 무의식이 있고, 호흡과 소화처럼 타고난 프로그램과 걷기와 말하기처럼 창조해 낸 프로그램이 섞여 있다.
운전을 배운다고 상상해 보자. 모퉁이에 접근할 때마다 뇌 위쪽 부위에서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오른 다리를 올려서 왼쪽으로 12센티미터 옮겨 가 페달을 가볍게 눌러라.” 이렇게 몇 달간 의식적인 생각을 이어 나가다 보면 자동 프로그램이 생성되어 생각 없이도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브레이크 프로그램이 뇌의 아래쪽 부위, 즉 무의식 속에 정착한 것이다.
그래서 숙련된 운전자는 5시간 동안 운전을 해서 집에 와 놓고 “운전을 했는지도 모르겠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은 무의식이 다 했다. 어떤 의식적인 생각도 일정 기간 동안 반복되면 프로그램화된다.
(…)
재미난 사실은 무의식의 패턴을 알게 되면 아무도 패배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미래는 의식적인 생각에 달려 있다. 생각을 훈련하면 의식적인 생각이 새로운 무의식 프로그램을 낳는다. 운전이란 무의식적인 행동이 생긴 것처럼 더 성공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행동을 개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을 들여 생각을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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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식에 의한 개변이 의식적인 개변을 능가해 그걸 지우고 본래 스즈미야 씨가 의도한 결말마저 수정한 거라면, 무의식이 의식보다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낸 게 되죠. (…) 의식과 무의식이 대립했을 때 후자가 우선시된다는 게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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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잠시 바꾸자면, 이 점에서 우리 두 사람은 작곡에 관한 견해가 완전히 일치했다. 글라주노프는 끝없는 회의 도중에 음악적 아이디어가 머리에 떠오르는 바람에 많은 애를 먹었다. 사실, 소위 ‘창조적 노동자’ 가운데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정말로 굉장한 아이디어나 개념이 왜 하필 회의 도중에 떠오르느냐고 투덜대곤 했다. 나도 수백 수천의 시간을 회의에 허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서 그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마 틀림없이 특별한 뮤즈, 즉 회의의 뮤즈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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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목욕을 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막혔던 부분의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현상은 아무래도 일반적인지, 많은 분들의 체험담을 보게 됩니다. 도대체 어떤 시스템으로 목욕으로 인해 뇌가 활성화되는지는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목욕의 완전한 루틴워크화가 그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은 목욕할 때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움직이잖아요. 몸을 씻을 때 일일이 ‘먼저 왼팔을 씻고, 그다음에 오른팔, 그리고 등, 가슴, 배를 경유해 다리를 순서대로 씻은 다음 마지막으로 대야에 받아둔 물을 전신에 아낌없이 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목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개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간 다음 나올 때까지의 행동은 자동화된 수준일 겁니다. 참고로 저는 목욕을 하고 나와 냉장고 앞에 가기까지가 완전 자동화된 상태입니다. 그 자동화 와중에 가끔 정신을 차리고서 ‘어? 지금 머리에 샴푸를 했나?’ 하고 자신의 행위에 의문을 가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고, 그리고 이처럼 제대로 된 의식도 있고 몸도 움직이는데 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육체의 자동화 상태를 우리의 뇌는 어떤 부자연스러운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요. 그 불안정한 상태가 뉴런에 전기적인 동요를 일으켜 그 결과로 뇌는 운동에 걸맞은 사고를 무의식중에 작동시키게 되고, 그때까지 표층 의식이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정체되어서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여러 문제의 답을 ‘옜다’ 하고 던져주는 거라고 보면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거의 무사고 모드로 하는 행동인 산책 또한 생각할 때 좋다고 하는 것도 같은 현상이라고 여겨집니다. 학회에 발표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이 메커니즘이 이미 해명되어 명명된 것이라면 죄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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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마음 가는 대로 해라』
『스즈미야 하루히의 직관』
『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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