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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owe you.
    인용 2023. 11. 30. 12:12

    그렇다면 세상이 이처럼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힘들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는 까닭이 무엇일까? 왜 세상에서 불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네 나이에 이런 문제들을 똑바로 판단하고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워. 다만 네가 지금 당장 알아야 할 것이 있단다. 이처럼 불공평한 세상에서 너는 별다른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공부하면서 네가 타고난 재능을 조금씩 키워 나가고 있는데,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다는 거야. 코페르! ‘고마움’에 담긴 진짜 뜻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렴. 흔히들 ‘고맙다.’,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는 뜻으로 ‘고마움’이라는 말을 쓰고는 하는데, 그 말은 본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웬만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란다. [일본어 有難う 아리가토 - 인용자] 나는 본디 이렇게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분, 그게 바로 ‘고마움’이라는 마음이란다. 고마운 마음이 ‘고맙다.’라는 말이 되어 나타나고, 그 말에는 고마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드러나는 거란다. 이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지금의 너를 되돌아보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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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교환・소비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므로 예를 들면 ‘내가 신발을 만들면 그것을 쌀과 교환해서 먹을 수 있다’는 연쇄적인 사건으로 형성되어 있다. 어떤 시점의 행동은 그 후의 행동에 영향을 주어서 계속 이어진다. 게다가 그 연쇄는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의 행동은 나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내가 신발을 만들지 않으면 당신은 신발을 신을 수 없다. 당신이 쌀을 생산하지 않으면 나는 신발과 쌀을 교환할 수 없다. 내 현재의 행동이 당신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당신의 현재 행동이 나의 미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내가 신발을 만들었지만 당신이 쌀을 만들지 않았으니 신발을 만든 것은 취소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미 만든 신발은 취소가 불가능하다. 현재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과거뿐이며 미래는 현재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것은 인과율이라 불리는 원리다. 이러한 인과로 연결된 사슬이 서로 얽혀 현실의 경제가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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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로서의 인류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방인들을 관대하게 대하고, 인간관계를 더 나아가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성의 공동체적 바탕을 간직함으로써 인류에게 진 빚을 갚는다.

     

    (…)

     

    * 우주에, 우주의 힘들에, 요즘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자연에 빚을 지고 있다. 우리의 존재의 근거가 바로 그것이다. 그 빚은 제식을 통해 갚는다. 제식을 올리는 것은 우리를 한없이 작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대한 존경과 인정을 표하는 행위이다.

     

     

    만약 누군가가 현대사회와 같은 개인주의적인 사회를 위한 정신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 한 방법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인류와 사회, 자연 또는 우주에 무한한 빚을 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그 빚을 어떤 식으로 갚으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이 말에는 적어도 지적 모순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기성 권위의 거의 모든 시스템, 말하자면 종교와 도덕, 정치학, 경제학, 형벌제도 등에 대해 감히 계산할 수 없는 것을 계산하려 들고 또 우리들에게 그 무한한 빚 중 일부를 반드시 갚으라고 말하기 위한 제도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인간의 자유란 곧 그 빚을 갚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줄 아는 능력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지금까지 이런 접근법을 취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에 ‘실존적 부채’ 이론들은 언제나 기존의 권위적인 구조들을 정당화하는 방법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우리가 이 모든 것들에 지고 있는 부채의 수호자는 당연히 국가라고 수백 년 동안 단정해왔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사회주의자나 사회주의 집단들은 결국엔 이런 주장의 다양한 버전에 호소하게 된다. 악명 높은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옛 소련이 시민들을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내세운 것도 바로 그런 식이었다. 소련 국민들을 낳고, 기르고, 교육시키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시킨 것은 소련 정부이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권리로 소련 정부의 투자의 결실을 빼앗으며 다른 나라로 옮길 수 있는가? 마치 소련 정부에 아무런 빚을 지지 않았다는 듯이. 이런 수사(修辭)는 비단 사회주의 정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자들도 그와 똑같은 주장을 편다. 특히 전시(戰時)에 그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현대의 모든 정부들은 어느 정도 민족주의자들이다.

     

    이것이 20세기의 위험한 함정이다. 한쪽엔 시장의 논리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은 개인으로 출발한다고 상상하길 즐긴다. 다른 한쪽엔 국가의 논리가 있다. 그 논리 때문에 우리 모두는 상환이 절대로 불가능한 빚을 안은 채 시작한다. 우리는 시장과 국가는 정반대이며, 시장과 국가 사이 어딘가에 진정으로 인간적인 가능성들이 있다는 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이분법이다. 국가가 시장을 창조했다. 시장은 국가를 필요로 한다.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하나가 없는 가운데서는 지속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적어도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형태로는 존재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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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힌두교의 지적 전통의 예는 아주 인상적이다. 인류에게 진 부채는 초기의 몇몇 텍스트에만 나타났다가 금방 망각되었다. 그 후의 힌두교 해석자들 거의 모두는 그런 빚을 무시하고, 대신 자기 아버지에게 진 부채를 강조한다.

     

    아마 『브라흐마나』의 저자들이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바가 우주와 우리의 관계는 종국적으로 상업적 거래와는 전적으로 다르며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상업적 거래가 동등과 분리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 사실 이 목록을 놓고 부채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는” 유일한 길이 부채를 글자 그대로의 의미대로 되갚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결코 분리되지 않았고, 또 빚을 청산하고 별도의 자율적인 존재를 성취한다는 인식 자체가 애초부터 우스꽝스런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어떤 인간을 인류 또는 우주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가정하는 것 자체가 오직 죽음으로만 씻을 수 있는 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는 우리가 우주에 진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우리의 죄는 그러한 빚을 상상할 만큼 자기 자신을 현재 존재하고 있거나 현재까지 존재했던 모든 것들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그 생각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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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종교인들이 사람다운 삶에 대한 지혜와 잠언을 남겨 놓으셨어. 지금도 많은 문학가와 사상가들이 사람다운 삶이라는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있단다. 그리고 작품과 논문으로 자신들이 깨달은 비밀을 쏟아 내고 있지. 종교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찾아낸 인생의 지혜를 글로 남겨 놓았어. 너도 이제는 조금씩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훌륭한 사람들의 생각을 배울 때가 되었는데 그렇더라도 마지막 열쇠는 코페르, 바로 너 자신이란다. 너 말고는 아무도 없어. 네가 인생을 살고,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체험하고, 체험하면서 생각한 것을 위대한 사람들이 남긴 지혜와 견주어 볼 때 비로소 그 사람들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인생은 수학이나 과학과는 달라서 책만 공부해서는 정답을 배우지 못해.

     

    인생에서 중요한 건 어느 때나 네가 느낀 진심, 네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이란다. 그런 감정에서 비로소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거란다. 네가 무언가를 절실히 느꼈거나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있다면 그런 느낌이나 생각을 절대로 속여서는 안 돼. 어떤 일에서 또는 어떤 문제에서 네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늘 기억해 두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다는, 인생에서 되풀이되지 않는 오직 단 한 번뿐인 경험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것들이 모여 언젠가는 너만의 사상을 이루겠지.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네가 체험한 데서 출발해 솔직하게 생각하라는 것인데, 코페르!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란다. 여기에 거짓이 있어서는 안 돼. 조금이라도 거짓이 섞여 있다면 네가 아무리 위대한 것을 생각했다고 해도 모두 거짓이 되어 버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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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s most persistent and urgent question is, "What are you doing for others?" - Martin Luther King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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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1]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 요시노 겐자부로 지음 ; 김욱 옮김

    [2] 단단한 경제학 공부 : '선택의 자유'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 야스토미 아유미 지음 ; 박동섭 옮김

    [3] 부채 그 첫 5, 000: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 /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 정명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