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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자이 오사무, 에밀 길렐스
    인용 2023. 11. 20. 12:17

    문득 생각난 것은 '배음적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를 읽었을 때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배음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을 받아 드는 수신자 측의 영적인 성숙도, 그 사람이 내면화하고 있는 '종족의 우주관', 사상, 미의식, 가치관 등에 의해 다양하게 분절됩니다. 그러므로 '배음적 문체'로 쓰인 문장을 읽은 독자는 거기에서 자신만을 수신인으로 하는 메시지를 수신하게 되는 것이지요. (...)
    자신 안에 복수의 화자를 동시에 존재시킬 수 있고,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다자이 오사무지요. 이것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되면 다중인격이 되고 말지요. 다중인격이란 그때그때 다른 인격이 교대해서 나오는 상태인데요, 그래서는 배음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컨대 오케스트라의 악기 연주자들이 한 명씩 무대에 나와서 자신의 파트를 연주하고 들어가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서는 음악이 되지 않습니다. 교향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솔리스트가 연주하고 있을 때도 배후에서는 모든 악기가 낮은 음으로 얽혀 들어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음적인 문장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불과 한 줄의 문장에서도 배음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다자이 오사무의 『앵두』는 "아이보다 부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싶다"라는 잊기 어려운 첫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라고 생각하고 싶다" 앞의 쉼표 하나에 이미 작가의 망설임과 자신이 앞에 했던 말을 없던 걸로 하자는 결기가 들어 있는 거지요. "아이보다 부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정반대의 명제를 말하는 또 한 명의 작가가 동시에 거기에 있는 것이지요. 『만년(晩年)』은 그 유명한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누가 읽어도 "죽을 마음은 없었다"라는 자신이 한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명제를 '대선율'로 깔고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을 한 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거기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다자이 오사무가 우리의 감성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배음이 들리면 우리는 거기에서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그 언어를 읽어 냅니다.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듯이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셈이니까요.
    배음을 낼 수 있는 작가는 독자를 '자신이 지금 가장 읽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라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들게 합니다. 아마도 다자이 오사무가 조금 오래 살았다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오에 겐자부로, 미시마 유키오보다 먼저 다자이 오사무가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야말로 일본 문학 최고의 배음적 문장의 작가였기 때문이지요.
    저는 다자이 오사무의 계열에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도 틀림없이 배음적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십여 개 국어로 작품이 번역되어서 전 세계 수천만 독자가 그의 신간 발표를 기다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 <배움엔 끝이 없다: 우치다 선생의 마지막 강의> 202~209쪽


    글라주노프는 피아노의 음색에 대해 설명할 때 루빈시테인을 자주 언급했으며 그의 말을 종종 인용하곤 했다. "피아노를 하나의 악기라 생각하는가? 그건 사실 100개의 악기야." (...)
    글라주노프는 리스트가 '내면적' 목소리를 모두 드러내주었다며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그는 작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다성 음악(polyphony)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곧잘 일깨워주었다. 무언가 설명할 게 있어 피아노에 앉으면 그는 항상 반주(伴奏) 성부와 반(半)음계(chromatic), 주제의 상행 발전과 하행 발전을 강조했다. 그것은 그의 연주에 충만감과 생명을 주었다. 나는 이것이 피아니즘의 가장 큰 비밀 중 하나라고 느끼고 있다. 이 점을 이해하는 피아니스트는 커다란 성공으로 가는 전환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자주 연주되는 유명한 곡들은 치기가 너무 어렵다고 어떤 일류 피아니스트가 내게 한탄한 적이 있다. "새 연주법을 찾기가 너무 어렵군요." 그는 털어놓았다. 내 마음속에는 이 발언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되는 반응이 즉각 나타났다. 첫 반응은 이러했다.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 내 옆에 앉아 있구나.'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비창》이나 《월광 소나타》 혹은 《헝가리안 랩소디》를 치기 때문이다. 이런 곡의 목록이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는 똑같다. 이 연주자들은 작곡가가 의도한 바대로 연주하지도 않고 그 작품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나타내지도 못한다. 그 작품이 자신에게 갖는 고유한 의미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연주하는가? 그저 음표만 연주할 뿐이다. 그것도 기본적으로 귀에만 의존한다. 누군가가 먼저 초연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니까. 이렇게 귀에 의존하는 연주의 작품 목록이 오늘날에는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와 힌데미트의 작품을 포함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서 이런 스타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본질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이 자기비판적 발언이 마냥 반갑기만 했다. 그러나 다음 단계의 반응은 훨씬 더 차분했다. 이런 식이었다. 어떻게 '새 연주법'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불평할 수 있는가? 그게 무언데? 돈이 가득 든 지갑이라도 되는가? 길을 걸어가다가 '새 연주법'을 주울 수 있는가? 누군가가 떨어뜨린 것을 줍기만 하면 되는가? 그 피아니스트는 알레이쳄(Sholom Aleichem)의 농담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아시다시피, 알레이쳄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재능이란 돈 같은 거야. 그게 있든가 아니면 없든가, 둘 중의 하나지." 나는 이 위대한 만담가가 여기에서는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돈이란 왔다 갔다 하는 것이어서, 오늘은 없지만 내일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재능이 없다면 그 상황은 심각하고 오래 지속된다.

    그러니 당신이 새 연주법을 찾을 게 아니라, 그것이 당신에게 찾아와야 한다. 어떤 음악 작품을 위한 새 연주법은 대개 인생의 다른 측면들이나 인생 일반에 대하여 새로운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게 마련이다. 나는 그런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유디나라든가 소프로니츠키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자기 인생은 바꾸지 않고 순진하게 새 연주법만을 추구하던 피아니스트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내 생각을 털어놓음으로써 그의 기분을 언짢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를 언짢게 하겠는가? 오히려 그를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러다가 연주할 때의 다성 음악에 대한 글라주노프의 충고를 기억해냈다.

    그래서 그에게 충고했다. "자네는 왜 연주하는 곡들의 다성 음악적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가. 여러 성부의 움직임을 보여주게. 제 2의 음성, 내면적 움직임을 찾아내게. 아주 재미있고 즐거워질 거야. 그것들을 찾을 수 있게 되면 청중들에게도 보여주게. 그들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도록. 알겠나? 그러면 큰 도움이 될 거야. 작품들이 금방 다시 살아날 테니까."

    그리고 연극을 비유로 들어 설명했다고 기억한다. 거의 모든 피아니스트는 전면에 한 인물이나 주선율만 내세우고 다른 것들은 그냥 어두운 배경과 수렁 속에 남겨둔다. 그렇지만 희곡은 대개 여러 배역을 위해 쓰인다. 만약 주인공 혼자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연극은 의미가 통하지 않고 지루해진다. 묻고 답하는 것을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모든 등장 인물은 배역에 맞게 발언해야 한다. 그래야 연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그때 이미 유명해져 있던 피아니스트에게 내가 건넨 충고는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충고를 받아들이고 실천했다. 소위 성공이란 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는 연주에 그다지 깊이가 없는 기교파로만 죽 알려져왔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이 그가 얼마나 지적이고 얼마나 심오한지를 떠들고 있었다. 그의 명성은 상당히 올라갔으며 나에게 감사의 전화까지 했다. "당신이 해준 좋은 충고에 감사합니다." 나는 대답했다. "내게 감사하지 말고 글라주노프에게 감사하게."


    - <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209~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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