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지:주간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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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시라이 씨와 이야기한 것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4. 14. 21:43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 씨와 2년 반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가 한 첫번째 질문은, 안전보장 정책의 역사적 전환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일본 국민은 이렇게까지 무반응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전쟁에 휘말릴 리스크가 급격히 증가했는데도 말이다. 시라이 씨와 필자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그것은 일본의 안전보장 전략을 결정하고 있는 주체는 일본 정부가 아니라 미국 정부이기 때문이다. 시라이 씨는 저서 과 에서, 일본은 주권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대일본제국에 있어 천황이 점하고 있던 초(超) 헌법적 지위에 지금은 미국이 있다. 일본은 안전보장, 에너지, 식량 등 기간적인 정책에 대해 미국의 허락을 득하지 않으면 뭔가를 결정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미국(특히 주일미군)의 기득 권익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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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공산당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3. 12. 21:37
필자의 친구로 마쓰다케 노부유키라는 분이 있다. 경제학자인 이시카와 야스히로 씨와 필자의 공저 라는 시리즈의 기획을 세우고, 15년에 걸쳐 강한 인내로 저자 두 사람을 격려해 준 놀라운 솜씨의 편저자이다. 학생 시절에는 요요기 계 전학련 위원장을 하고, 공산당 중앙 위원회에서는 안보 외교 부장을 역임한 고참 당원이다. 그가 일본공산당의 당 대표는 공천제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것이 ‘분파’ 활동으로 간주되어 당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은 것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마쓰다케 씨와는 오랫동안 사귀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런 그가 공산당의 당세(黨勢) 회복을 위해 제언을 하고 싶다고 하여, 미력하게나마 필자도 힘을 보태고자 그의 책 의 띠지 문구를 썼다. 에는 공산당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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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사태를 상상하는 것에 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2. 20. 20:24
연초이므로 ‘2023년은 어떤 해가 될까요’ 하고 이런저런 사람들로부터 문의가 온다. 그러한 경우에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말해두고 있다. 작년 연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고 예측했던 사람은 극히 적었다. ‘우크라이나가 철저하게 저항한다’고 예측했던 사람도 더욱 적었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예측이 틀어졌는가. 양국의 경제력, 경제력, 외교력은 비교 가능하다. 그로부터 추리하여, 침공 후 수일에서 수 주간 우크라이나는 굴복하고, 지도자는 망명하며, 친러시아 괴뢰정권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은 예측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실제로 현실 변성력을 발휘한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기분’이었고, 그것은 수치적으로는 고량(考量)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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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마르크스의 심상찮은 인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2. 5. 22:36
에 격주로 1500자 에세이를 쓰고 있다. 상당한 양이 쌓였고, 이를 블로그에 갈무리하여 올려두기로 했다. 시간 순으로 되어있지 않은 점 하해와 같은 양해 바란다. 미국론을 쓰고 있다. 1장을 나눠 ‘마르크스와 미국’을 논했다. 알지 못하셨던 분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마르크스와 미국 사이에는 얕지 않은 인연이 있다. 19세기 미국에는 ‘홀스테드 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일정 기간 공유지에서 경작에 종사하면 토지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법률이다. 자영농이 되기를 바랐던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서부 개척의 추진력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코뮤니즘의 선구적 실천’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마르크스 자신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텍사스에 이민을 갈 계획을 세웠다. 미국에는 마르크스의 지인과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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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문학이 갖는 의의에 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11. 14. 22:25
매년 이맘때가 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예정 글’을 쓴다. 첫 의뢰는 15년 전쯤에 받았다. 이 세상에 ‘예정 원고’라는 것이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확실히 뉴스가 예고 없이 날아들게 되면 긴 원고를 쓸 여유가 없다. 그래서 언론은 예정 원고를 준비해 놓는다. 예정 글이 실릴 일이 없어져도 글쓴이는 원고료를 고스란히 받는다. ‘작년과 똑같아도 상관 없어요’라고 담당 기자는 말하지만, 그건 좀 멋쩍으므로 매년 조금씩 버전업을 해 써보낸다. 일전에 라는 책을 냈을 때, 출간 1년 전에 썼던 예정 글을 그대로 게재한 적이 있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글을 활자로 내보냈다고 문예평론가에게 호되게 야단맞았다. 하지만 ‘일어난 일’에 관해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해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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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클럽 활동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9. 17:26
에 동아리 활동의 지역 이관에 대해 썼다. 문부성과 스포츠 청(廳)의 주도로, 공립 중학교에서 행해지는 동아리 활동에 대한 ‘지역 이관’이 추진되고 있다. 우선 내년도부터 운동부의 지역 이관이 시작되고, 인문계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도 다음 달께 제언이 다 마무리지어질 것이라 한다. 승리 지상주의에 중독된 지도자가 학생의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을 내뱉는다든가, 몸이 망가질 정도의 장시간 속박을 강요하는 ‘혹사형 동아리 활동’은 사라지는 편이 좋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교원 입장에서도 과도한 부담이 되고 있다. 동아리 활동 고문교사가 되고 나서 휴일을 반납하고 학생을 지도하던 교원의 심신에 무리가 왔다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학생도 힘들고, 교원도 힘드니, 그런 동아리 활동은 아웃소싱하면 된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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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공약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7. 4. 21:33
에 6월 8일 기고한 글. 위정자가 자신들에게 명백한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정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많은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그러한 사람들이 ‘정보 비대칭 상태’라든가 ‘왜곡된 정보 노출’에 처해 있는 탓에, 그들을 ‘계몽’시키면 정치적 태도는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한다. 허나, 정말로 그럴까. 필자는 최근 점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정당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마 (무의식적으로라도)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 어떤 정책이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지, 어떤 정책이 불이익을 가져다줄지 정도는 알 것이다. 외교, 안보, 경제정책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판단내릴 수는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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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허상론 —헌법은 원래 그런 것—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6. 14. 22:43
‘주간 금요일’의 헌법 특집에 조금 긴 글을 기고했다. 헌법기념일이므로 다시금 블로그에 수록한다. 이번 호는 헌법 특집이라고 하기에, 헌법에 대해 갖고 있는 사적 의견을 쓴다. 똑같은 내용을 이미 여러 군데 써왔으므로 ‘이미 알고 있다구’ 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보는데, 필자가 하는 말과 비스무레한 언동을 하는 사람조차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끈질기게 똑같은 내용을 말하겠다. 헌법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인 정의란 ‘헌법은 허상이다’는 것이다. ‘허상인 게 당연하다’인데, 조금 위악적으로 말한다면 ‘허상이다 뭐 어쩔건데?’ 가 되겠다. 여러가지 유형의 ‘선언’의 맥락에서 보면, 헌법도 빈말에 불과하다. 단, 그것은 ‘채워야 할 공백을 가시화해나가기 위한 빈말’, ‘비전이 있는 빈말’, ‘현실을 창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