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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 허상론 —헌법은 원래 그런 것—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6. 14. 22:43

    ‘주간 금요일’의 헌법 특집에 조금 긴 글을 기고했다. 헌법기념일이므로 다시금 블로그에 수록한다.

     

     

    이번 호는 헌법 특집이라고 하기에, 헌법에 대해 갖고 있는 사적 의견을 쓴다. 똑같은 내용을 이미 여러 군데 써왔으므로 ‘이미 알고 있다구’ 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보는데, 필자가 하는 말과 비스무레한 언동을 하는 사람조차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끈질기게 똑같은 내용을 말하겠다.

     

    헌법에 대한 필자의 개인적인 정의란 ‘헌법은 허상이다’는 것이다. ‘허상인 게 당연하다’인데, 조금 위악적으로 말한다면 ‘허상이다 뭐 어쩔건데?’ 가 되겠다.

     

    여러가지 유형의 ‘선언’의 맥락에서 보면, 헌법도 빈말에 불과하다. 단, 그것은 ‘채워야 할 공백을 가시화해나가기 위한 빈말’, ‘비전이 있는 빈말’, ‘현실을 창출해내기 위한 빈말’이다.

     

    헌법과 눈 앞의 현실 사이에는 반드시 불일치가 일어난다. 그것이 헌법의 상태(常態)인 것이다. 헌법이라는 것은 ‘거기에 쓰여져 있는 것이 실현되게끔 현실을 변성(變成)해 가기’ 위한 일종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지, 눈 앞에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현실과 부합하지 않으니 헌법을 갈아야 한다’는 주장은 말하자면 ‘나는 시험을 아무리 쳐도 60점밖에 못 받으니까, 앞으로는 60점을 만점으로 치자’는 열등생의 우격다짐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이제는 학습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므로, 본인은 굉장히 속이 편할 것인데, 틀림 없는 사실은, 그의 학력이 그 뒤 1밀리미터도 향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점은 일본의 개헌론자들이 ‘헌법을 현실에 끼워맞추자’라고 발언하고 난 뒤에 그들의 지력이 얼마만큼 향상되었는지를 누군가가 계측할 수만 있다면 불 보듯 뻔히 알 수 있다.

     

    개헌파가 주장하기로는, ‘헌법 9조(소위 전후 일본 평화헌법의 근원이 되는 조항 - 옮긴이)의 내용과 현실의 군사적 위협 사이에는 불일치가 있으니,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는 세계를 표준으로 두고 헌법을 고쳐쓰자’고 주장한다. ‘군사적 위협이 없는 세계 따위는 실현될 리가 없으므로, 그런 기치를 내세워봤자 헛짓이다’라는 주장은, 분명 견식이라면 견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평화를 유지하는 한편, 전제와 예속, 압박과 편협을 지상으로부터 영원히 제거”하기 위한 노력 따위 아무도 하지 않는 세상에서, 혼자만 착한 척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코웃음치는 사람을 보고 ‘쿨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간혹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사악하고 우둔하기가 한량 없는 생물이므로, 끝끝내 개선의 여지가 없다’와 같은 언명은 포장마차 같은 데서 술김에 내뱉는 한 별 상관도 없지만, 공문서에 기재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왜 그러냐면, 일단 그러한 인간관을 공인해버림으로써 나중에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보다 선량하고 보다 현명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인격 수양의 동기를 크게 앗아가버리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아무리 인간이란 존재에 낙담을 하고 있어도, 겉으로는 전 구성원이 선량하고도 현명하며 정직하다는 사회를 ‘목표’로 내걸고 제도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만큼은 집단 존속이라는 목표를 위하여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전 구성원이 사악하고 우둔하며 거짓말쟁이인 사회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설계하는 것은 현실적 태도일지도 모르지만, 그 제도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선량하고 현명하며 정직’해질 가능성은 줄어든다.

     

    전 구성원이 사악하고 우둔하며 거짓말쟁이여도 기능하는 사회가 있다면, 그것은 원리적으로는 하나밖에 없다. ‘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다. 신이 삼라만상을 굽어보고, 구성원의 행동과 마음 속을 구석구석 파악하는 사회가 있다면, 모두가 사악하며 우둔하고 거짓말쟁이여도 사회는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차선책으로써 ’신의 대리인’을 자임한 권력자가 전 구성원을 ‘잠재적 죄인’으로 간주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 자민당의 개헌 초안을 읽어보면, 그들이 확고히 그렇게 추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모두 사악하고 우둔하며 거짓말쟁이므로, 전권을 가진 권력자가 전원을 감시해야 마땅하다’는 국가관과 ‘헌법과 현실에 모순이 있을 때는 현실에 맞춰 고쳐야 한다’는 헌법관은 참으로 동형적인 사고의 산물인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인간의 사악함이나 취약함을 ‘개선 불가능’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입각한 제도설계에 반대한다. 어떤 인간을 ‘표준적인 것’으로 간주하겠냐는 관점의 선택에 따라, 그 이후에 출현하는 사회의 모습이 바뀌기 때문이다. ‘선언’은 정말로 그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러하였으면 좋겠다’는 사회의 모습을 가시화하는 것이 선언이 가진 쓸모이다. ‘이러하였으면 좋겠다’는 것인 즉 ‘현실은 그렇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다.

     

    프랑스 인권 선언, 미국 독립 선언, 쉬르레알리슴 선언, 다다 선언, 미래파 선언 모두 당대 시점에는 하나도 현실적이지 않은 것들이 쓰여져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기초자의 ‘그러하였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바람이 들어가 있다. 그 ‘강렬한 바람’이 부정형적인 미래에 조금이나마 윤곽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독립선언을 살펴보면 ‘만인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고 쓰여져 있다. 허나, 그것이 ‘선언’ 되었음에도 노예제도는 이후 86년 간 이어졌고, ‘공민권법’이 시행되기까지는 188년을 필요로 했으며, BLM 운동은 이 선언이 ‘허상’이었음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만인은 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다’는 독립 시점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선언이 쓰여졌다면, 미합중국은 지금과 같은 국가가 되어있지 않았을 것이다. 미합중국을 아주 조금이라도 차별 없는 나라로 바꾸어 나가게 한 것이 이 ‘선언’의 힘이다. ‘빈말에는 비전이 있다’는 사실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국 헌법 제 9조 2항과 자위대의 존재라는 모순에 대해, 우리의 개헌파는 곧잘 ‘이런 비현실적인 조문을 갖고 있는 헌법은 일본국 헌법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그건 단적으로 거짓말이다. 미합중국 헌법 역시 조문과 현실 사이에 치명적인 괴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 의회의 권한을 규정한 합중국 헌법 8조 12항을 보면 “육군을 소집하고, 유지한다. 단, 이 목적을 위한 예산 지출 승인은 2년을 넘는 기간에 걸쳐서는 아니 된다”라고 한다. 세계 최대 군사 대국인 미합중국 헌법은 지금껏 ‘상비군을 보유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이 조항은 건국 당시 ‘연방파’와 ‘분리파(주州 스스로의 권리를 우선하는 주권파州權派 - 옮긴이)’ 사이에 있었던 타협의 산물이다. 연방파는 상비군을 연방 정부의 관리하에 두고자 했으며, 주(州)는 연방정부의 군사력 독점에 저항했다. 군인은 쉽사리 시류에 따라 정부의 사병(私兵)이 되어 시민에게 총구를 들이민다는 사실을 미국 시민은 독립전쟁을 통해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 시점에서 대다수의 주는 ‘상비군을 보유해서는 아니 된다’는 주 헌법을 채택했다.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직업군인이 아니라 무장한 시민(militia)여야만 한다. 시민은 싸울 필요가 있을 때에만 소집에 응하여 총을 들고 싸운다. 전쟁이 끝나면 시민 생활로 복귀한다.

     

    물론, 그러한 사항은 건국자의 이상에 지나지 않아서, 21세기의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현실과 괴리되어 있으므로 개헌하자’고 목소리를 내는 미국 시민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헌법을 읽어내릴 때, 독립 시점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래에 어떠한 이상적인 나라를 염두에 두었는가를, 그 원점으로 되돌아가 ‘목표로 해야 할 국가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헌법을 유지함으로써, 미국은 지금껏 ‘상비군을 보유하지 않는 국가’를 (그것이 어느정도 실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표로 한다는 점에 대해 의사표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란 그런 것이다.

     

    (2022-05-03 08:5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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