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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와 일본, 쇠망의 패턴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6. 12. 21:49

    오사카의 어떤 시민집회로부터 ’우크라이나와 카지노(오사카 유치를 추진하고 있음 - 옮긴이)’라는 괴이한 주제로 강연을 요청받았다. 하이고, 어떻게 이 ‘양대 주제’를 다뤄야 하나 고민한 끝에 ‘러시아와 일본의 쇠망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지 않을까?’ 라는 가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애저녁에 경제 대국이 아니다. GDP 순위는 세계 11위로, 이탈리아와 캐나다, 한국보다 낮다. 미국의 7%, 일본의 3분지 1이다. 1인당 GDP 순위는 세계 66위다.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와 같은 옛 위성국들보다 낮다. 구소련은 물리학계에서 세계적 발군이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노벨상 수상자는 5명이다. 평화상을 한 명이 받았는데 드미트리 무라토프라는 정권 비판 언론인이고, 4명의 물리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은 미국에, 한 명은 영국에 머물고 있다. 러시아 시스템에는 더 이상 지적 혁신을 창출해낼 문화적 생산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외형적인 수치로는 아직 일본이 우세하나, 장기 침체 경향과 이에 동반된 사회적 경색감은 두 나라의 모습이 같다.

     

    시스템의 쇄신이 행해지지 않고, 권력이 한 줌의 집단에 배타적으로 집중되며, 예스맨밖에 출세가 불가능하고, 상사에게 진언하는 사람은 좌천되고, ‘올리가르히’나 ‘지대추구자’가 공공재를 사유재로 전환시켜 거액의 부를 쌓는 한편, 서민은 열악한 고용 환경 아래서 신음하고… 열거하고자 한다면 공통점이 여럿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푸틴 대통령에게 ‘블라디미르. 그대와 나는 똑같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소’ 하며 만면에 웃음을 띠고 발언했던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반드시 립서비스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확실히 이 두 권력자가 전망하는 미래는 상당히 비슷하다. 그것은 ‘미래가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일본의 공통점은 ‘마땅한 미래의 모습’을 제시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어느 나라를 살펴봐도 지도자의 메시지란 거지반 한탄과 회고, 그리고 후회다(‘저놈 때문에 이리 됐다’ ‘옛날이 좋았다’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식의 문형이 반복된다).

     

    그 분노나 비탄은 주관적으로는 절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것이 당사자에게 아무리 절실한 것이라 할지라도, 미래를 배태하지 않는 메시지는 타자의 가슴에 파고들지 못한다. ‘아유, 그러세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겠습니다’는 식의 겉치레 리액션밖에 해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서 말씀드리는데, 필자가 ‘미래’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들이 맛본 고통과 슬픔을, 누구에게도, 두 번 다시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생각을 발판으로 전망하는 ‘미래’이다.

     

    전쟁이든, 가난이든, 역병이든, 아픔과 고통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똑같은 고통을 겪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바람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허나, 그러한 바람을 관철하는 사람이 구상하는 미래가 아니고서는 타자를 감격시킬 수 없다. 그러한 ‘미래상’만이 인종이나 종교, 언어의 차를 뛰어넘어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질 수 있다.

     

    러시아 사람과 일본인 모두 전쟁이라는 외상적 경험에 굉장히 혼이 나 있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로부터 도출해낸 지침이란 기껏해야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다’는 회한에 그쳤다. 어느 나라든지 자신들의 괴로운 경험을 두고서 ‘전 세계에서 우리들이 맛봐야 했던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사람이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원까지 이르는 일은 없었다. 그러한 기원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예전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진혼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필자는 생각하지만, 러시아는 물론 일본에서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여태껏 소수에 그쳤으며, 앞으로도 다수파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하기로 이 두 나라에는 유감스럽게도 ‘미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단히 상식적인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언론만 보는 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들은 적이 없으므로, 필자가 대신 말씀드리는 바이다.

     

    (2022-05-02 16:2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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