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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제국의 속주 신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는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6. 7. 23:45
‘월간 일본’ 5월호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의 세계’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거기에 필자의 긴 인터뷰가 실리게 되어, 전재해둔다.
—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의 존재양상을 뒤바꿔놓았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일단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우치다 님은 이 전쟁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다고 보십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민국가의 저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전 이후, 국민국가는 그 역사적 역할을 끝내고서 서서히 소멸해간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라 국민국가는 기초적 정치 단위를 자임하기를 끝마치고, 세계는 다시 여러 제국으로 분할됩니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1996년)에서 앞으로 세계는 7개 내지 8개의 문명권으로 분할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요, 많은 지식인이 거기에 동의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마디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의 속주가 될 것인가, 단독적 국민 국가가 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둘러싼 것입니다. 푸틴은 구소련 권역을 다시금 지배하에 둠으로써 제국을 재편하고자 합니다. 거기에 대항해 우크라이나 국민은 목숨을 걸고 단독 국민 국가가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제국의 ‘병탄’지향과 국민국가의 ‘독립’지향이 정면 충돌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추세는 ‘제국의 승리’를 지시하였을 터였습니다만, 의외로 우크라이나는 완고히 저항하여 ‘제국화’ 플랜을 좌절시키고, 국제사회는 ‘국민국가의 복원력’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국민국가가 그리 간단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 전 세계는 ‘제국인가, 국민국가인가’ 하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르는 데 영향을 끼친 역사적 배경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겠습니까.
전근대 세계에서는 제국이 기본적인 정치단위였습니다. 제국이라 함은 다인종, 다언어, 다종교, 다문화를 가진 집단을 병존적으로 포섭하는 통치 모델입니다. 강권적이며, 정치적 자유에 제한을 둡니다만, 치안은 나름대로 안정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각 민족 집단은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서 평온히 공생하게 됩니다. 유럽은 종교전쟁을 거쳐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비로소 ‘국민국가’라는 새로운 정치적 단위를 도입하였습니다.
국민국가라는 것은 어떤 한정적인 ‘국토’ 안에서 인종, 언어, 종교, 문화를 공유하는 동질성 높은 ‘국민’이 집단 거주하는 통치 모델입니다.
국민국가가 지배적인 정치단위가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국민국가가 제국보다 전쟁에 강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증명했던 것이 프랑스 혁명 전쟁입니다.
그때까지의 전쟁은 왕후 귀족이 용병을 고용하여 영토나 왕위 계승을 두고서 다퉈온 모양새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전쟁의 주체는 의용군이었습니다. 시민이 스스로 총을 들고서, ‘혁명의 대의’를 유럽에 선포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후방의 시민도, 산업계도, 언론도 이 전쟁에 전면적으로 협력하였습니다. ‘총력전’이라는 전쟁 형태가 가능하게 된 것은 국민 국가의 성립에 의해서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사적 혁명을 짊어지고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 헌신에 의해 국력은 증강된다’는 신빙에 의해 환상적으로 통합된 국민국가가, 여러 민족집단으로 분단되어진 채 황제에 복속하고 있는 제국을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압도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제국의 속주였던 지역은 차례차례 국민 국가로 자립하게 된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만 제국이 와해된 일로 말미암아, ‘국민국가가 아니고서는 앞으로의 파워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 세계적 상식이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예로부터 ‘제국의 식민지’였던 지역들이 하나둘 독립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경우, 이때 ‘민족 자립’의 대의를 내걸고 독립했던 국가는 반드시 ‘인종, 종교, 언어를 공유하는 동질성 높은 국민’에 의해 형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내에 민족 대립 문제를 내포하고서, 동족이 국경선으로 분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민 국가의 창건을 서두른 것은, 국민국가가 향후 기초적인 정치단위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한 글로벌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냉전 종식 후 ‘국민국가가 기초적인 정치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유고 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고슬라비아는 다섯 개의 민족, 네 개의 언어, 세 개의 종교를 포함하는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티토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 하에 있던 시절 유고는 국제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존재감이 있었습니다만, 티토 사후 민족들이 저마다 독립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민족 자립’ 운동이 일어나 연방은 해체되는데, 그 과정에서 학살이나 약탈, 강간 등의 전쟁범죄가 행해졌습니다. 이후에도 구 유고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의 많은 수는 정정(政情) 불안과 경제 위기 가운데에 처해있습니다.
‘민족 자립’이라는 말 자체가 허울은 좋지만, ‘혈족’ 집단을 목표로 하는 정치 운동은 반드시 ‘민족 정화’라는 폭력을 불러일으킵니다. 유고의 경험에서 ‘뭐가 됐든 동질성 높은 국민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국운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는 식의 20세기에 널리 공유되었던 신념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경제의 글로벌화가 이 추세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상품, 자본, 인간, 정보가 국경을 넘나들며 고속으로 왔다갔다하게끔 하기 위하여, 세계적인 대기업은 아무런 국민국가에도 귀속되지 않는 ‘무국적 산업’이라는 형태를 선택하였습니다. 인건비, 제조비용이 저렴한 나라에 제조 거점을 두고, 조세피난처로 본사를 옮기며, 어느 국민국가에도 고용창출이나 납세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기업 형태야말로 이익을 최대화하는 길이라는 점을 자본가들은 깨달은 것입니다.
각국의 엘리트 계층도 또한 ‘조국’에 무관심해졌습니다. 세계 각지마다 생활 거점을 갖고, 국적을 달리 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로 얽히며, 대륙 사이를 자가용 제트기로 이동하는 것이 엘리트의 지위를 나타내는 표징이었습니다. 이 ‘조국의 운명과 자신의 개인적 운명을 끊어내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그들의 나라를 사실상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의 국민국가에서 지도층을 형성합니다.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국정에 개입하며, 국가의 공공재를 사유화하려 하였습니다. ‘올리가르히’라는 개념은 러시아에서만 쓰이는 게 아닙니다. 사유화 추진을 일삼는 ‘엘리트’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합니다. 물론 일본에도 있고요.
이렇게 국민국가 내부에 격차가 확산되고, 국민으로서의 일체감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국민국가의 액체화’라고 불리는 현상입니다.
이와 나란히 ‘정치적 제국화’도 진행되었습니다. 군사동맹이나 경제공동체를 통한 ‘제국의 재편’이 시작된 것입니다. EU(신성 로마 제국), 러시아(러시아 제국), 터키(오스만 제국), 인도(무굴 제국), 중국(중화제국)이라는 옛 제국에, 영국-미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 편대를 이루는 ‘파이브 아이즈’(대영제국)가 가세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베스트팔렌 시스템은 그 역사적 사명을 마치고, 세계는 다시금 ‘제국화’한다는 미래예측이 행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 그 예상이 뒤집혀진 계기가,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사태였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그 전에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가 있었으므로, 전조가 있었다면 있었던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코로나 사태에서는 국민국가의 경계선이 강고한 ‘역학적 장벽’이었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2020년 초에 이탈리아가 의료 역량 부족에 빠졌을 떄, 의료지원을 요청받은 독일과 프랑스는 자국민을 우선하여, 의료자원의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똑같은 감염증에 걸려도, 국경선을 그어 놓고서는 이쪽 사람은 살고, 저쪽 사람은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감염증에 대해서만큼은 솅겐 협정이 무용지물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지고 나서는, ‘국민국가는 의외로 지구력이 있다’는 점이 증명되었습니다.
— 제국화 추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국민국가는 간단히 소멸되지 않는다는 거군요.
앞으로의 세상은 제국의 ‘병탄’지향과 국민국가의 ‘독립’지향이 맞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거기에 제국 이외의 군사동맹이나 경제협력기구도 얽혀들어갑니다. IS나 어노니머스같은 비(非)국가 주체도 끼어듭니다.
이번 전쟁에서도 서양 국가들은 국민국가로서, EU 회원국으로서, NATO 가입국으로서, UN 가입국으로서… 등등 매번 바뀌는 정치 과제들에 중점을 두고 정치단위를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앞으로의 기본값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향후 국제사회에서는, ‘제국’, 군사동맹, 경제협력기구, 국민국가, 비국가 주체 등 여러 정치단위가 중층적으로 겹쳐지면서, 각자의 논리로 움직이게 됩니다. 정치 과제 각각을 두고 국민국가의 위정자들은, 어느 정치단위에 중점을 두고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까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겠지요.
이제까지의 국제 정치의 기본적인 주체는 UN에 참여하고 있는 193개의 국민국가였으며,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고자 한다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문맥에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어느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규칙이 매우 복잡해집니다. 이제는 국제 정치에 변수가 늘어난 탓에, 복잡한 파워게임이 되었습니다. 지금보다 가일층 궁리를 많이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열도이므로, 우리들은 동질성 높은 국민 국가야말로 온전한 나라의 형태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국민국가 체제는 ‘그렇게 하는 게 집단으로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채용된 잠정적인 정치적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치단위는 일정 불변의 것이 아니고, 역사적 조건이 바뀌게 되면 팽창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 일본이 ‘제국’을 지향하고 있었을 때, 치시마(쿠릴 열도의 다른 이름 - 옮긴이)에서 네이멍구까지, 싱가포르에서 인도네시아까지가 ‘황국의 판도’였습니다.
— 지금과 비슷한 전쟁이나 분쟁은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요컨대,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입니다. 이번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제 사회를 향해 ‘우리는 자국 영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이 싸움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 또한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표명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독립이나 국익보다 더 높은 ‘상위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향한 전 세계 시민들의 지원이 쇄도하였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라크나 아프간, 시리아의 주권 침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한테만 지원하는 일은 이중잣대다’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번만큼은 다른 일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이제까지의 분쟁에서는 피해국이 ‘자신들의 영토가 침탈당한 일, 생존이나 자유, 권리가 위협받은 것’을 호소하기는 했어도, 그것을 지키는 것이 곧장 ‘만인의 생존과 자유, 권리를 지키는’ 것과 통한다는 메시지를 전파할 수는 없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안타깝다’고만 생각하지, 침략받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제까지의 피해국들과는 질이 다른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일국의 영토나 국익보다 <상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 사회에 표명하지 못한다면, 군사력에서 상당한 우위가 있다 하더라도 그리 간단히 전쟁에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전 세계 사람들은 러시아의 실패로부터 학습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는 나토의 동방 진출로 자국의 안전이 위협받았다는 ‘전쟁 이유’를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푸틴한테는 절실한 문제일지는 몰라도, 러시아의 국익 말고는 상관되는 바가 없습니다. 러시아라는 일개 국가를 초월하는 ‘상위 가치’를 위해 싸운다는 메시지를 러시아는 내보낼 수 없었습니다. 국내 전용 프로파간다로서는 충분했을지도 모르지만, 국제 사회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피해자 의식이 아무리 리얼하다고 해도, 그 의분에 폭넓게 공감해줄 사람을 국제사회에서 발견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반항적 인간>의 서두에서, 이제까지 주인의 명령에 유유히 따르던 노예가 어느날 ‘그 명령만큼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하고 항명하는 일이 일어남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카뮈는 그러한 항명을 ‘반항’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이 ‘반항’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 자신의 운명에만 관계된 것이 아님을 느낄 때입니다. 자기 한 사람이 고통을 견디고 굴욕을 감내해서 끝날 문제라면 우리들은 그렇게까지 격하게 저항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조리한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나 한 사람만 고통받는 것으로 끝난다면 상관 없다’고 받아들이는 일은 심리적으로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자신이 물러서면, 자기 한 사람만으로는 상환할 수 없는 거대한 채무를 다른 사람들이 짊어지게 된다고 판단하였을 때, 잠자코 포기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때까지 짐짓 ‘굽히고만 들어갔던’ 사람이 ‘허리를 펴고서’ 맞서게 됩니다.
카뮈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인간이 죽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반항을 하다 목숨을 잃는 것은, 그것이 자기 자신의 운명을 뛰어넘은 <미덕>을 위한 행위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이 어떤 가치의 이름 아래 행동하는 것은 막연하다고는 해도 그 가치를 만인과 공유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항적 인간’은 그 싸움을 통해, 잠재적으로는 만인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항적 인간은 결코 고독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우크라이나 시민들 속에서 ‘반항적 인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들이 얼마나 잔혹한 폭력을 당했는가를 명백히 드러냄으로써, 우크라이나의 ‘반항’이라는 싸움에는 ‘정치적 올바름’이 있다고 호소한 것입니다. 그 점에서는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위’의 실제 사례를 털끝 하나 보여줄 수 없었던 푸틴에 맞서, 메시지 측면에서는 승리하였습니다. ‘포스트 트루즈 시대’가 되면서부터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 자체가 조롱적인 뉘앙스로밖에는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유통기한이 끝나서 역사의 쓰레기통에 들어가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치적 올바름’이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정의와 공정’을 위해 싸우는 인간같은 건 있을 리 없다, 모두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 뿐이라는 냉소적 시선이 지배적인 시대라고 생각하였는데, 의외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정의와 공정’을 내걸고서 국제 사회의 윤리적 지지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듣기 좋은 말’이 가진 현실 변화 능력의 크기가 증명되었습니다.
—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냉전 이후의 국제 사회에서는 자유나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법에 의한 지배가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이들 가치관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유나 민주주의는 서구 계몽 사상가들이 그 가치를 발견해낸 것이므로 반드시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가치’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들의 가치관은 폭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무질서 상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자연 상태로부터 인류가 벗어나기 위해 발명한 산출물입니다. 그 높은 뜻만큼은 음미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러시아는 ‘힘에 의한 지배’라는 구호를 감행하였습니다. 이는 카뮈가 말한 ‘넘어서는 안 될 선’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행위를 인정해버리면 인류 사회는 다시금 ‘힘이야말로 정의’라는 식의,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수탈하는 무질서 상태로 회귀해버리고 맙니다. ‘그것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피해야만 한다’는 위기감이 전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감을 양성하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대립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이나 중국의 반응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미국의 국내 여론 가운데에는,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사 개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바마 행정부 이래 미국은 내향적, 고립주의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미국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가 격하게 저항하게끔 사주하고, 러시아군의 인원과 장비를 소모케 하는 한편, 경제 제재로 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지게 하여,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이류국’으로 전락시키겠다는 식의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크라이나라는 ‘줄칼’을 갖고서 러시아의 국력을 깎아먹을 수만 있다면, 미국이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계산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향후 러시아를 지원해야만 하니 말입니다. 국제적 고립으로부터 러시아를 옹호해야만 하지만, ‘대의명분’이 없습니다. 이유를 들자면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으면 서양 국가들이 ‘팽창’해버리기 때문이라는 파워게임의 논리밖에는 없습니다.
중국은 푸틴 정권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사정이 있습니다. 푸틴이 실각하는 경우에는 러시아 국내에 친서방파가 대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푸틴 자신이 처음에는 나토 가입을 희망했을 정도였으니만큼, 포스트 푸틴의 러시아가 ‘친서방’ 노선으로 갈아탈 가능성은 적지 않습니다.
푸틴이 실각하여 우방국 러시아의 정정이 불안해지는 것도, 친서방파가 정권을 잡는 것도 중국은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함은, 중국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은 ‘푸틴의 장기 집권이 앞으로도 계속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빈국으로 전락해가는 러시아를 계속 부양해주겠다는 치다꺼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히 단기적으로는 러시아의 천연자원을 싸게 갖다쓸 수 있으니 다소의 이익을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대러시아 지원이 중국에게 엄청난 비용부담이 될 것으로 봅니다.
— 대만 정세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이제까지 서양 언론의 논조는 ‘중국은 오늘이라도 대만 침공에 발을 들이밀지 모른다’였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로 대만 침공 개시의 허들이 높아졌다고 봅니다.
이번에 러시아에게는, 단숨에 키예프를 공략하고 젤렌스키 정권을 전복시켜 친러파 정권을 수립해버리기만 한다면, 러시아에 에너지 자원을 의존하는 서양은 러시아의 승리를 사실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복안이 있었을 겁니다.
그랬을 터이나, 실제로는 속전속결에 실패하였습니다. 여기서 생겨난 시간적 여유를 통해 서구는 ‘힘에 의한 지배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일치단결하여, 경제적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강력한 제재를 밟아나가겠다는 합의형성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푸틴한테는 예상 밖의 전개였을 겁니다.
그러므로,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경우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만을 침공해도 단기간에 ‘친중파 정권’을 성립시키고, 저항 세력을 평정하며, 질서를 회복한다는 시나리오를 실현시키기가 어렵습니다. 대만으로서는 뭐가 됐든 격하게 저항하여 괴뢰 정권의 수립만큼은 저지할 수 있다면, 그 사이에 들어오는 국제 사회로부터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자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희생시키더라도 대중국 경제제재에 참여하는 경우, 중국이 입을 경제적 손실에 시진핑 정권이 견뎌낼 수 있을까요.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는 연간 경제성장율이 6%를 하회했을 때 ‘위기 수준’에 들어온다고들 합니다. 대만 침공으로 인한 경제 제재로 중국 경제 성장의 속도가 늦춰지는 경우에 시진핑으로서는 정권을 잃을 리스크가 생깁니다. 대만 침공을 이룩하여 자신만의 ‘전설’을 만들어냈을 때의 이익과, 경기침체로 정권을 잃을 리스크를 저울질하여 어느 쪽에 ‘비중’을 둘 것인지에 대한 시진핑의 판단, 거기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 일본은 우크라이나의 처지와 같이 ’제국의 속령(属領)’이 될 것인가, ‘독립된 국민국가’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미합중국 제국의 속령’입니다. 전후 일본은 일관되게 종속적 평화를 선택해 왔으므로, 가령 중국이 쳐들어왔다고 쳤을 때, 미국이 미중 전쟁을 피하고자 일본을 버린다면, 이번에는 훌훌 ‘중화 제국의 속령’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겁니다.
일본인은 눈 앞의 현실에 잘 적응하는 태도를 ‘리얼리즘’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여하한 구상은 없지만, 아무리 믿기 힘든 것이라도 그것을 현실로 여기면 금방 적응합니다. 그러므로 중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면, 자민당은 즉시 친중파로 전환하여, 희희낙락 전후 민주주의 체제(일본 평화헌법 체제; 전쟁 및 일부 무력행사 포기, 전력 미보유, 교전권 부인 - 옮긴이)를 내팽개치고서, 독재 체제를 펼칠 것으로 봅니다. 중국의 속령이 되면 마음껏 강압적으로 국민을 지배할 수 있고, 시민적 자유를 박탈할 수 있으며, 잘만 하면 병영 국가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니까요.
그저 일본은 미중 대립의 최전선에 있으므로, 미 제국의 속령에 머물든, 중화제국의 속령이 되든, 앞으로 안정적 평화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 제국의 속령이 되어도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면, 독립된 국민국가를 목표로 해야하겠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땅의 일본인들에게는 ‘총력전’을 치를 힘이 더는 없습니다. 개인적 노력과 국운 사이의 연관성(linkage)이 끊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베 정권 이래의 네포티즘(연고주의)이 가르쳐 준 것은, 국민이 개인적 노력의 성과를 세금으로 납부해도, 사적 권리의 제한을 받아들여도, 사재의 일부를 공공에 공탁하여도, 권력자와 그 측근들이 그것을 사유화할 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공공을 위한 노력이 무시로 권력자와 그 연고자를 살찌우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대체 누가 ‘나라를 위해’ 땀을 흘리고 싶겠습니까.
— 그럼에도 우리는 일본의 독립을 지향해야 합니다. 설령 무익한 노력이 될지언정, 일본의 독립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진짜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을 맞아, 자민당 외곽에서는 전쟁 가능 헌법개정 추진이나 나토식 핵공유 논의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리얼리스트로 여기고 있겠지만, 그건 틀렸습니다. 그때그때의 현실에 최적화하려 드는 것은 리얼리즘이 아니라, 그냥 현실 추종주의입니다. 그러므로, 러시아가 당초 ‘힘은 정의다’라고 위압적인 태도를 보였던 때 그들은 일제히 ‘러시아처럼 강대한 무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우크라이나가 격하게 저항하면 ‘무력보다 애국심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현실이 바뀔 때마다 우왕좌왕 태도를 바꿉니다. 그것이 그들의 리얼리즘입니다.
하지만 진짜 리얼리스트는 현실에 적응하기보다도, 현실을 능동적으로 바꾸는 행위를 중요시하는 사람을 이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현실을 바라는가’ 하는 이상을 분명히 내걸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우선 ‘우리는 어떠한 세계를 꿈꾸는가’에 관한 이상향을 우선 정립해야 합니다.
그 이상에 관해서는 이미 일본국 헌법에 쓰여져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국 헌법은 연합군 총사령부(GHQ)가 대필한 것이다’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후 일본인은 그것을 일단 받아들인 뒤, 헌법이 내건 이상을 위해 국민적으로 노력해나가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헌법에는 일본의 국익 이상의 ‘상위 가치’가 쓰여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이 과연 “평화를 애호하는 제(諸) 국민(일본국헌법 전문前文의 문구 - 옮긴이)”이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원래 헌법이란 건 어느 나라에서나 ‘밑도 끝도 없는 텍스트’입니다. 그 밑도 끝도 없음을 국민적 노력으로 메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때의 인권 선언도, 미국의 독립 선언도 그 점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거기에 쓰여져 있는 것은 그 시점에서는 현실이 아닙니다. 목표로 두어야 할 ‘이상’입니다. 문언이 현 시점에서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목표로 두어야 할 방향이 애초에 잘못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언’에 대해 논해야 할 것은 그것이 현실적인가 비현실적인가가 아니라, 결국에는 만인이 그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상위 가치’를 목표로 하고 있느냐의 여부, 그것 뿐입니다. (3월 30일 인터뷰어 및 구성 스기하라 히사토)
(2022-04-21 11:5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번역 노트】
본문 중 “냉소적 시선”의 원문은 ‘シニシズム’인데, cynicism의 본래 뜻은 고대 그리스 키니코스 학파의 견유주의(犬儒主義)에서 비롯되었다고 함. 후에 궤변가라는 뜻으로 전용된 소피스트와 비슷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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