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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연초徒然草 번역 후기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6. 19. 17:36

    이케자와 나쓰키池澤夏樹 씨가 <일본 문학 전집> 전 30권을 개인 편집했을 적에 <쓰레즈레구사徒然草>의 현대어 번역을 맡았다. 사카이 준코酒井順子 씨가 <마쿠라노소시枕草子>, 다카하시 겐이치로 씨가 <호조키方丈記>, 필자가 <쓰레즈레구사>인 기묘한 편성 중 한 권이었다. 그것이 2016년에 초판으로 나왔는데, 6년 째에 이르러 4쇄를 찍게 되었다. 기쁜 일이다. 기념으로 초판에 실었던 ‘번역 후기’를 채록해 둔다.

     

     

    현대어 번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현대어 번역’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학교 참고서에 딸려 나오는 번역문은 ‘현대어 번역’이 아니다. 말뜻은 정확하지만, 원문의 ‘감촉’이나 저자의 ‘호흡’이 전해져오지 않는다. 이번 작업에서 필자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텍스트에 내재한 살아 숨쉬는 신체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결심하고서, 번역을 시작했다.

     

    <쓰레즈레구사>는 요시다 겐코[兼好法師]가 늘그막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청년 시절 것도 섞여 있다 (그런 듯하다). 원래대로라면 엄밀한 텍스트 비평이 수반되어야 마땅하겠으나, 다행히도 필자는 ‘텍스트의 신체’에만 용건이 있어서, 집필 연대를 따진다든가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었다.

     

    ‘텍스트의 신체’라는 것은 작가의 지문과도 같아서, 연령이나 입장에 상관이 없으며,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필자 자신 이미 고희에 가까운 연령이 되었지만, 글에는 과거의 감회나 기억의 단편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다. 화제에 따라 필자는 종종 약관 이십세가 되어 쓰고, 때로는 초로의 남자가 되어서 쓰며, 때에 따라서는 시간을 날아올라 임종의 순간이 되어 쓸 때조차 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써 나가며 시간 속을 자유로이 왕래한다. 그리고,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 존재했었던 과거의 자신에 상상적으로 이입하여, 그때 보게 되는 풍경이나 피부에 와닿는 공기를 선명하게 회상할 수 있다. 그것이 쓰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유열 중 하나다. ‘한가로이徒然なるままに’ 붓을 놀렸던 겐코 법사가 그 유열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는 초가에 들어앉아 책상 앞에 정좌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자유자재로 시간과 공간을 왕래하고, 거기서 감지해낼 수 있는 세부 사항을 알뜰하게 서술한다. 달빛의 차가움, 바람의 향기, 물오른 겹겹의 초록, 이끼 낀 길의 한적함,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 혀 끝에서 느껴지는 맛 좋은 술… 등등을 겐코 법사는 오로지 유열적으로 써나간다.

     

    탐미주의적 생활자의 감회라는 것을 말할 때, 우리는 무작정 ‘아름다운 것’에 대한 서술만을 떠올리지만, <쓰레즈레구사>가 고전으로써 칠백 년에 걸쳐 애독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읊는 ‘아름다운 것’이 심미적인 시각 대상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에 모두 ‘느껴지는’ 것을 사랑스럽게, 그러나 한계에 이를 때까지 조탁한 언어를 기술하였다.

     

    이를테면, 계절이 바뀔 무렵에 대해 쓴 제 19단. 겐코 법사는, 봄의 흥취로 우선 새의 노랫소리를 든다. 그리고 ‘햇빛’, ‘담장의 풀’, ‘안개’, ‘꽃봉오리’, ‘비바람’, ‘푸른 잎’, ‘매실 향기’를 열거하며, 여름으로 이어지는 풍물시로써 ‘뜸부기의 울음소리’, ‘메꽃’, ‘모기향 연기’를 꼽으며, 이어 ‘기러기 울음소리’, ‘싸리밭 아래’, ‘때이른 추수’, ‘사나운 바람’ 등의 가을 정경으로 붓이 나아간다. 물 흐르는 듯한 필치로 그는 독자의 오감을 차례차례 흔들어 깨운다.

     

    뛰어난 작가에게 공통되는 점인데, 겐코 법사도 ‘후각’과 ‘촉각’을 활성화시키는 수완이 탁월하다. 이 두 가지 감각은 발생적으로 가장 오래된 감각이며, 그만큼 신체의 심층, 고층(古層)을 휘젓는다.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이나 아름다운 음색을 대한다치면 우리는 심미적 태도를 견지하고서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지만, 향기나 감촉에 대해서는 그러한 관조적 태도를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은 직접 우리의 신체에 감촉되기 때문이다.

     

    그 직접성은 ‘통각’에 관한 삽화에서 두드러진다. ‘코가 꽉 막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던 교가 소즈行雅僧都의 고통*(42단). 주사를 부리는 남자에게 허리를 베여버린 구카쿠보具覚坊 조난(遭難) (87). ‘고양이 요괴猫また’에게 습격당해 시냇물에 굴러떨어진 렌가시連歌師의 공포(89단).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취흥에 겨워 솥을 머리에 뒤집어썼다가 빠지지 않아 그만 귀와 코를 잃게 된 법사의 이야기이다(53단). 그때 법사가 느꼈을, 굉장히 어리석은 이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자신을 두고 느끼는 자기혐오의 깊음과, 솥을 놓쳤을 때 경험했던 격통에 무심코 상상적으로 공감해버리자면, 우리는 잠시나마 꿈자리가 뒤숭숭해진다.

    현대 해석으로 어떤 질환이라는 설이 분분함 -옮긴이

     

    ‘기묘한 맛이 나는 이야기’를 겐코 법사는 어째서인지 즐겨 수집하였다. 지고稚児**에게 머리를 보여주지 않는 ‘야스라덴やすら殿’의 이야기***(90단) . 어디가 대단한 운전사인지 전혀 모를 소몰이의 이야기(114단). 정식으로 도전장을 날리고서 냇가에서 서로 칼부림하는 (조폭 영화 같은) ‘유리걸식’ 이야기 (115단). 라쿠고 <곤약 문답>의 원형이 아닐까 의심조차 드는 묘에 쇼닌明上人의 착오 이야기****(144단).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토란의 어미줄기만 상식(常食)하는 조신 소즈盛親僧都 둘러싼 에피소드 가운데 ‘시로루리*****’ 이야기(60단).

    ** 옛 신사나 사원 등지에서 부름을 받아 행렬 등에 동원되었던 소년 - 옮긴이

    *** 스님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의미 - 옮긴이

    ****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이야기 - 옮긴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는 왠지 모를 기묘한 리얼리티가 있어서, 잊어버릴 수가 없다. 그러한 일화를 필자는 특히 좋아한다. 겐코 법사가 잘난 체하며 쓴 ‘그가 잘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필자는 잘 모르는 것이기도 하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으나, 겐코 법사가 ‘잘 모르겠지만, 좀체 잊혀지지 않아서’ 금세 써버린 이야기는 필자에게도 역시 ‘잘 모르겠지만, 좀체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리하여 필자는 70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겐코 법사의 곁에 있는 자기 자신을 느낀다.

     

     

    (2022-05-29 16:5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옮긴이 주석】

     

    ***** 쓰레즈레구사 제 60단은 괴짜 천재에 관한 내용인데, 그의 제자 한 사람을 두고서, 만약 그의 얼굴 생김새와 비슷한 사물이 있다면 그것은 ‘시로루리’와 같을 것이라고 친히 이른 바, 이 ‘시로루리しろうるり’라는 것은 당대에도 지금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이 ‘시로루리’는 역시 괴짜 천재로 법도에 어긋남이 많을지언정 남들에게 미움 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