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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30 평정심에 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8. 5. 07:04
이 글은 고베 대지진 이후를 다루고 있으니, 적어도 1995년 이후에 쓴 것으로 확인된다. 그때는 상당히 ‘평정심 있는 사람’을 우러러보았던 것이리라. ‘평정심을 유지하고서’라는 말이 곧잘 들려온다. 그러나, 이러한 교훈에는 때때로 터무니없는 함정이 존재한다. 고베 대지진 아침, 잔해 더미 가운데에서 양복과 가방을 갖추고서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가 향해 가는 역은 이미 무너졌고, 어떠한 교통수단도 기능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평정심’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집 주변에는 무너진 주택 안에서 구조를 요청하던 이웃도 있었을 것이고,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 유아나 노인도 있었을 텐데, 이 ‘평정심을 갖고 있는 아저씨’에게는 그러한 사태에 대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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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의 세계> 서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8. 2. 14:44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타츠루입니다. 책을 손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서 는 ‘기존에 써둔 것’을 컴필레이션한 것입니다. 소재로써 블로그 글이나 여러 매체에 발표한 원고를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원형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가필했으므로 절반 정도는 새로 쓴 ‘세미 오리지널’이라고 봅니다. 상당히 시국적인 책 제목이기는 합니다만,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일본 사회를 깊이 잠식하고 있는 여러가지 ‘병독病毒’이 가시화된 바, 본서는 이러한 논고를 다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생각한 것을 쓰며 ‘서문’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일본 사회를 보며 정직하게 ‘무섭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차츰차츰 ‘불관용’적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이 날카로워졌습니다. 섣불리 닿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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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30 정보화 사회에 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8. 2. 07:02
왠지 부끄러워지는 제목이네. 이것도 주제가 너무 옛날 것임.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제나 같다. 같은 얘기를 오래오래 써먹는 거니까, 이것도 일종의 ‘고전 예능’이겠다. ‘정보화 사회’라는 말이 요즘 자주 들린다. ‘정보 수신 능력’은 비즈니스맨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보통 말한다. 이러한 말들은 전혀 믿을 수 없다. 애초에 ‘정보’라는 말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글자를 쳐다보고 있어도 쉬이 알 수가 없다. 최초로 information을 ‘정보’라고 번역한 이는 누군고 하니 모리 오가이라고 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뜻을 매끄럽게 소개해 주어서 좀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정보’라는 말을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풍조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뭐가 싫은가 하니, 이 말을 ‘정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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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30 욕망에 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7. 30. 07:59
버블 붕괴 후 2,3년이 지난 시점이니까 1992년 쯤에 쓴 글일까. 시의성이 부족하네. 몇 년 전, 버블 경제가 눈부셨던 시절의 아침, 신문을 펼쳤더니 전단지가 묵직하게 떨어져 나왔다. 그것들을 곰곰이 살펴보고 있자니, 홈쇼핑과 근처 슈퍼 광고를 빼면 남은 광고는 세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부동산 광고, 하나는 에스테틱 살롱의 광고, 하나는 학원 광고이다. ‘집을 사고 싶어’, ‘아름다운 피부를 갖고 싶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 같은 세 가지 소원에 일본인의 욕망이 집약되어 있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보금자리’는 아버지의 소원이고, ‘미모’는 어머니의 소원이며, ‘학력’은 자녀의 소망이다. 단지 이런 것들 뿐이다. 일본인의 욕망은, 불과 이 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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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30 우드스탁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7. 27. 07:28
(1991년경?) 다음은 ‘영화에 대해서’. 고베신문의 의뢰로 쓴 것입니다. 너무 긴 탓에 줄여서 발표했지만 호되게 당한 탓인지, 그 뒤로 원고 주문이 들어오지 않고 말았습니다. (1970)이라는 영화가 있다. 플라워 칠드런과 히피 운동과 옛적 락 음악 시대의 유물이다. 지친 중년 남자들이 밤중에 위스키를 마시며 무릎을 끌어안고 헤드폰으로 소리를 크게 해 들을 적에, 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린 1970년대를 회고하며, 통절하게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좋은 영화이다. 허나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영화 얘기를 해 보자. 이 영화를 보며 다시금 놀란 점은, 이 거대한 락 콘서트가 틀림 없이 ‘종교적’인 의례였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이제 20년도 전의 일이니 지겨울 정도로 들어온걸 갖고 뭘 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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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올림픽 중단을 탄원함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7. 24. 12:47
다시 도쿄 올림픽에 대해 쓴다. 질린 독자도 있겠지만, 끈질기게 쓸 것이다. 5월에 변호사 우츠노미야 겐지 씨의 호소로 온라인 서명 사이트에서 올림픽 중지를 탄원하는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35만 명을 넘은 서명인원이 모였던 시점에 도쿄도지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7월 6일 시점에는 44만 5천 명). 탄원서는 고이케 도쿄도지사 앞으로 제출되었다. 하지만 도쿄도는 이 탄원서에 대해 어떠한 검토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이 이후의 개시청구로 밝혀졌다. 보도기관으로부터 ‘탄원서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라는 물음을 받자 도쿄도는 예의 ‘목하 코로나 대응에 전력을 다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안전하고도 안심할 수 있는 대회 개최를 위해 중앙정부와 올림픽조직위원회 등과의 제휴 협력해 착실히 준비를 이어나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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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다나베紀伊田辺 성지순례 여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7. 24. 11:50
종교학자이자 승려인 샤쿠 뎃슈 선생과 ‘성지순례’ 여행을 계속해오고 있다. 십 년도 더 이전에, 고베여학원대학에서 ‘현대영성론’이라는 수업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종교에 관해 여러가지 주제를 두 사람이서 번갈아 논했다. 학기가 끝날 무렵 수업에서 언급된 사찰이나 불상의 실물을 학생에게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어, 샤쿠 선생의 해설을 들으며 교토 도지(東寺)의 입체 만다라상이나 삼십삼간당의 천수관음 등을 찾아간 뒤에 난젠지(南禪寺)의 물두부(湯豆腐) 상을 받게 되었다. 거목의 인도를 받아 성지를 순례하는 일의 즐거움을 그때 알게 되어, 그 뒤로 ‘성지순례’ 연속 기획이 시작되었다. 오사카 우에마치다이치(上町大地), 나라의 미와(三輪) 산, 교토 무라사키노(紫野), 구마노(熊野) 옛길, 나가사키 지하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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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은 어떻게 써드릴까요?' (우치다 타츠루)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7. 24. 10:26
주니치신분(中日新聞)에 이번 달부터 칼럼을 게재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꼭지. 첫 연재이므로 자기소개를 하고자 한다. 이런저런 매체에서 ‘직함은 어떻게 써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정직하게 말하건대, 필자에게 물어봐도 곤란하다. 필자의 명함에는 ‘개풍관 관장’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개풍관이라는 것은 필자가 고베에 연 도장 및 학원의 이름이다. 거기서 합기도를 가르치고, 아울러 ‘서당 세미나’라는 것을 개강해서 학생들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그것이 주된 일이다.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라는 이름도 자주 쓰이는데, 딱히 그런 직업이 있을 리가 없다. 책을 쓰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므로 ‘저술가’라든가 ‘에세이스트’라고 해도 좋겠지만 좀 켕긴다. ‘사상가’라는 직함을 붙여주는 곳도 있지만, 사상으로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