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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2|30 정보화 사회에 대해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8. 2. 07:02

    왠지 부끄러워지는 제목이네. 이것도 주제가 너무 옛날 것임.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제나 같다. 같은 얘기를 오래오래 써먹는 거니까, 이것도 일종의 ‘고전 예능’이겠다.

     

     

    ‘정보화 사회’라는 말이 요즘 자주 들린다. ‘정보 수신 능력’은 비즈니스맨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보통 말한다.

     

    이러한 말들은 전혀 믿을 수 없다. 애초에 ‘정보’라는 말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글자를 쳐다보고 있어도 쉬이 알 수가 없다. 최초로 information을 ‘정보’라고 번역한 이는 누군고 하니 모리 오가이라고 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뜻을 매끄럽게 소개해 주어서 좀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정보’라는 말을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풍조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뭐가 싫은가 하니, 이 말을 ‘정보를 가진 자’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 사이의 사회적 지위를 ‘차별화하기’ 위해 오로지 사용하고 있는데, 게다가 그 사실을 분명히 밝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정보’사회라고 말하는 것은 단적으로 ‘정보’가 중추적인 ‘상품’이나 ‘재화’로서 유통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틀릴 지도 모른다.) ‘정보사회’에서는 아마 ‘정보’가 하나의 ‘물건’으로써, 독점할 수 있고 빼앗기며 도둑맞고 쓸모 없게 되고, 바겐 세일에 부쳐지며 버려지는 성질의 것이리라.

     

    ‘정보사회’라는 사고방식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정보는 <물건>이다’라는 확신이라고 간주된다. 이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정보사회’란 진실로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은 그런 문제를 조금 고찰해 보고자 한다.

     

    저널리즘의 세계에서는 곧잘 ‘특종’이라든가 ‘단독’이라는 말이 쓰인다. 이 말이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저널리즘적 사고는 ‘정보’를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독점할만한 ‘물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첩보 소설 등에서는 ‘정보’란 대체로 ‘필름’이라든가 ‘비밀 문서’라든가 하는 ‘실체’로 그려진다. 이것을 적과 아군이 뒤섞여 서로 빼앗는다.

     

     

    그러나 ‘정보’는 과연 ‘물건’인 것인가. ‘상품∙재화’인 것인가. 숨긴다든지, 훔친다든지, 독점한다든지, 나눠 가지든지 할 수 있는 것인가.

     

    저널리즘적인 ‘정보’는 ‘타사를 배제함’이라든가 ‘제외’라는 말의 쓰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종류의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적 사건을 남보다 앞서 보도하는 ‘시간적인 차별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떤 사건을 다른 매체에서 알아채기 전에 반나절 빨리 알게 될 때, 이렇게 먼저 보도한 매체의 독자는 어떠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른다.

     

    반나절 후에는 주지의 사실이 될 사건을 그보다 앞서 알게 된다고 할 때, 그 시간 격차를 이용해 우리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오늘 밤중에 일본이 침몰합니다’ 라든가 ‘고질라가 상륙합니다’ 같은 정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아는 게 도움이 된다.)

     

    정보가 가져다주는 ‘시간적인 차별화’로 이익을 얻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팅>(1973)에서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한 것처럼, 혹은 소련군의 침공을 알게 된 관동군 참모들이 한 것처럼) 먼저 정보를 얻은 자가 아직 알지 못하는 자를 ‘속이고’ ‘따돌리는’ 모습으로밖에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주식 정보(○○은행이 도산하고 있다), 정계 정보 등(신칸센이 ○○지방을 통과할 지도 모른다) 그 정보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손에 넣어서 이익을 얻는 자는, ‘물건’이나 ‘재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버려두면 다른 사람의 이익에 속하게 될 것을 재빨리 마련해 훔치고 있는 것이다.

     

    정보가 ‘물건’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정보라는 것은 말하자면 ‘수위차’ 같은 것으로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보의 ‘이익’은, 그 속도, , 질을 따져가며 ‘열등한’자로부터 ‘우수한’자가 ‘무언가를 빼앗는’ 형태로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애독하는 ‘가이드북’이나 ‘매뉴얼’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거기에 가득 실려 있는 정보라는 것은 (상품정보, 유원지 정보, 영화 정보, 음악 정보 등등) 본래 알든 모르든 상관 없는 것들이다. 아니, 최신 ‘컬트 뮤직’이나 ‘컬트 영화’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통달했다는 것은 오히려 악취미다. (요즘 일부 생활정보지에는 별도로 본문의 ‘주석’까지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팽대한 양의 무의미한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은, 쓰레기 같은 정보조차 그것을 ‘모르고 있는’ 자와 ‘알고’ 있는 자 사이에 사회적인 지위의 차별화를 가져다주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뮤지션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누구도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해 코멘트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트리비얼한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젊은이들의 수준에서 ‘높은 정보 수신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정보 수신 능력’은 ‘정보 사회’에 있어서의 사회적인 차별화를 가져다주는 기준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어느 것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것은 (‘상징 교환’에 있어서의 무의미한 탕진과 같이) 사회적인 차별을 만들어내기 위한 인류학적 시스템이다.

     

    옛날에는 권력과 재화가 차별화의 지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압도적인 권력자도, 탕진을 마음껏 하는 부호도 사라져 버렸다. ‘킹 메이커’가 가뿐히 체포돼버리고, 그 ‘미나토의 호화저택’이라는 것도 중세 귀족의 저택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쓰쓰미 요시아키는 세계 제일의 부호라는 것 같은데, 그의 관심은 돈을 늘리는 데에만 있는 반면 돈을 물 쓰듯 탕진하거나 가난한 이들에게 줘버리는 것으로 사회적 지위를 한층 높이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같다.

     

    권력도 재화도 이미 사회적 지위를 교환적으로 차별화할 수 없게 된 지금, 아마도 이들을 대신하는 것이 ‘정보’인 것이다.

     

    정보는 권력이나 부와 마찬가지로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과시하고 소비되는’것으로만 그것을 ‘과시하는 것도 소비하는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한 사회적 우위를 가져다준다. 정보를 갖고 있는 자는, 일찍이 권력이나 부를 독점하고 있었던 자들이 한 것과 똑같이, 정보를 과시하고 낭비해야만 한다. ‘나는 요것도, 조것도 알고 있다구’라고 말하는 것으로써 그는 자신의 ‘우위성’을 과시한다. 그렇지만 과시한 것으로 인해 정보는 주지의 사실이 된다. 정보가 공유되면 그는 그가 갖고 있던 ‘정보의 독점’이라는 우위성의 근거 그 자체를 잃어버린다.

     

    사회적 지위를 근거짓는 작동 기제가 그 지위로 하여금 몰락을 준비한다는 점에 있어서, 정보의 과시는 재화나 권력의 상징적 탕진과 실은 많이 닮아 있다.

     

    아마도 그것이 ‘정보’가 새로운 사회적 차별화의 지표로 채용된 이유인 것이리라.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준비해 놓고 사회적 차별화를 행해 왔다. 현대 사회는 때마침 정보에 의한 계층화∙차별화를 행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권력에 아첨했던 인간이 추악한 것과 같이, 수전노가 추악한 것과 같이, 지금 ‘정보사회’의 웅성거림에 놀아나며 신칸센 안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린다거나 레스토랑에서 여봐란 듯이 휴대폰 통화를 건다든지 하는 모습은 똑같이 추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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