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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1|30 욕망에 관해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7. 30. 07:59

    버블 붕괴 후 2,3년이 지난 시점이니까 1992년 쯤에 쓴 글일까. 시의성이 부족하네.

     

     

    몇 년 전, 버블 경제가 눈부셨던 시절의 아침, 신문을 펼쳤더니 전단지가 묵직하게 떨어져 나왔다. 그것들을 곰곰이 살펴보고 있자니, 홈쇼핑과 근처 슈퍼 광고를 빼면 남은 광고는 세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부동산 광고, 하나는 에스테틱 살롱의 광고, 하나는 학원 광고이다.

     

    ‘집을 사고 싶어’, ‘아름다운 피부를 갖고 싶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 같은 세 가지 소원에 일본인의 욕망이 집약되어 있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보금자리’는 아버지의 소원이고, ‘미모’는 어머니의 소원이며, ‘학력’은 자녀의 소망이다. 단지 이런 것들 뿐이다. 일본인의 욕망은, 불과 이 세 가지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마련한 단독 주택에서, 아름다운 부인과, 전도유망한 자녀가 모여 산다’는 게 ‘재패니즈 드림’의 궁극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나는 외쳤다.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자녀가 악착같이 공부하고, 어른이 미용실이나 아파트의 대출에 몰두하는 식으로 일본인이 갖고 있는 ‘꿈의 빈곤함’에 내가 놀란 것이 아니다. 이 ‘꿈’의 실현을 위해 가족 구성원이 각자 응분의 부담을 하는 노력에 있어서의 상당한 ‘불공평함’에 놀란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 집을 짓기 위한 노력과 비교해봤을 때, 에스테틱 살롱에 가는 것, 사우나에 있는 것, 다이어트를 하고 제모하는 일을 요하는 노력은 꽤 경미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모친의 노력’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부친이나 자녀들의 노력과 비교해 봤을 때 이렇게까지 적은 것일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자녀가 빛나는 학력을 추구하고, 부친이 떳떳한 주택을 추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도 모친은, 소극적으로 자신의 신체적 아름다움이라는 극히 사소한 것밖에는 바라지 않는다. 일본의 부친들, 자녀들은 자신의 분수를 모른 채 탐욕적인 반면 일본의 모친들은, 거기에 비하면 거의 금욕적이라는 것일까?

     

    그럴 리가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숙고한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놀랄 만한 결론에 이르렀다.

     

    부친이나 자녀의 욕망은, 모두 ‘모친이 갖고 있는 욕망’의 위장에 다름 없다, 는 것이다.

     

    자기 소유 집을 진짜로 바랐던 것은 부친이 아닌 모친이다.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을 정말로 바랐던 것은 당사자인 자녀가 아니라, 모친이다. 부친이나 자녀는, 모친이 갖고 있는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30년 장기 융자로 집을 사고, 매월 30만 원의 용돈으로 버티고 있는 동년배에게 물어봐도 좋다. ‘나는 어떠한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쨌든 집이 필요하다’고 울부짖으며, 부인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융자를 받았다는 남자를 당신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일주일에 4, 5일은 너끈히 학원에 다니고, 10시 넘어서 지친 채로 귀가하는 자녀를 보고 ‘애를 이렇게까지 무리시키다니, 너무해’ 하며 동정의 눈물을 흘리는 모친을 제지하며 ‘반 아이들 모두가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우리 애만 못 가게 할 쏘냐. 우리 애가 나중에 후진 학교 가서 경쟁에 뒤처진다면 당신이 책임 질 건가!’ 하고 격노하는 부친을 본 적이 당신은 있으십니까?

     

    나는, 없다.

     

    그 반대의 사례는 무수히 알고 있다.

     

    ‘원래는 자가같은 걸 마련하기보다도, 좋은 차를 산다든지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간다든지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러 돈을 쓰고 싶었는데…’ 하는 남자를 나는 몇 명이나 알고 있다.

     

    ‘아이들은 그저 건강히만 자라주면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 학원에 보내는 것은 반대했지만 결국, 부인에게 지고 말아서...’ 하는 남자도 많다.

     

     

    일본의 가족은 모친의 욕망을 축으로 움직이고 있다. 모친의 욕망은 압도적으로 실현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 (그래서 땅값이 앙등하고 편차치가 오른다) 한편, 부친이나 자녀가 가진 욕망이 가족의 총의에 의한 지출허가를 득해 실현될 기회는 거의, 없다. (‘가출하고 싶다’ 든가 ‘요트로 팔라우에 가고 싶다’ 든가 ‘아프리카에서 우물을 파고 싶다’든가 ‘뉴욕에서 조지 마이클을 쫓아다니고 싶다’든가 하는 욕망이 가족의 총의에 의한 지출허가를 득한다는 얘기는 우선 존재할 리가 없다.)

     

    사회학자가 어떻게 말하든간에, 일본 사회는 ‘남자 사회’도 ‘젊은이 사회’도 뭣도 아니다. 일본은 ‘모친 사회’이다. 모친의 욕망이 다른 것들을 압도하는 사회이다. 모친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편과 자녀를 통해 손에 넣는다. 그녀들이 타인에게 맡기지 못함에 따라 손에 넣을 수도 없어서, 부득이하게 자신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미모’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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