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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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애즈 넘버 원 시절의 "PHP 연구소" 인사이더의 사정취재 2023. 7. 10. 18:29
(...) 즉, 거품 붕괴 시점까지는 사람들과 주식회사 사이에 밀월기가 존재했다. 그것은, 회사가 사람들의 '살아감'의 한가운데에 있고, 회사원은 회사에 희생적·증여적인 관계를 이행하며, 그에 대해 회사가 답례해 왔던 시대가 지닌 '회사의 에토스'라는 이야기였다. 여기까지 읽고서, 떠올랐다. (...) (...) 나는 환상의 공동체를 알고 있다. (...) 나는 버블이 터지기 직전인 1989년에 최초의 여성종합직으로서 출판사에 입사했다. 신입 연수는 영업(그 회사에서는 그걸 보급이라고 일컬었다만)부에서 보냈는데, 상사와 주위 사람들이 너무나 다정하고, 나 자신을 좋게 평가해 주는 것에 놀란 나머지,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흥이 나니 자연스레 정말 열심히 일했던 3개월 동안의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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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카와 가쓰미 <‘답을 내지 않는’ 견식> (야간비행) 서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7. 10. 15:25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 존경해왔던 선배의 망한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 불륜을 해도 됩니까? / 자녀의 진로에 부모는 어디까지 개입할까 / 제도를 한계까지 이용해먹으려는 인간이 껄끄럽다 / '차도남'은 몹쓸 놈입니까? / 길어지는 연명치료를 관둬야 하는가? / 꿈을 포기 못하겠습니다 히라카와 군의 책을 서평했던 일은 그다지 없다고 생각한다. >에는 서평을 썼던 것도 같아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결국,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히라카와 군의 글에 나는 비평적인 말을 썼던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히라카와 군의 글을 객관적으로 비평한다는 건, 정말로 내게 맡길 일은 아니다. 아무튼, 나와 히라카와 군은 ‘정신적인 쌍둥이’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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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도쿄대의 맑스주의자를 찾다 (사이토 고헤이 인터뷰)취재 2023. 6. 22. 09:18
일본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36)의 어조는 단호했다. 사이토 교수처럼 ‘당장 성장 자체를 멈춰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하는 학자는 많지 않다. 그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생태주의 관점에 집중했다. 사이토 교수가 2020년 펴낸 는 일본에서만 50만부 이상 팔렸고,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탈성장은 성장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교육은 경제적 성장이 크게 뒷받침할 필요가 없다. 수도시설이나 의료 서비스도 고도의 성장이 필요하진 않다. 이렇게 딱히 성장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사회가 탈성장 사회다.” - 탈성장을 통해 이익이 줄면 결국 세금도 줄고, 복지 예산도 줄어드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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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트 오브 블랙 (장강명 소설 <재수사>)인용 2023. 6. 10. 18:02
"우리 때는요, 대학교 주변에 음악 크게 틀어주고 병맥주 한 병 시키면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어두컴컴한 바들이 있었어요. '주다스 오어 사바스'가 그랬고, 그 근처에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곳도 있었고, '폴리스'라는 곳도 있었고……. 이제 다 문 닫았죠. 우리들은 그런 데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주인공 흉내를 내면서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냈어요. 어려운 소설책을 들고 가서 허세를 부리면서 읽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일부러 어려운 용어 써서 아는 척 하면서 문학이며 철학이며 같잖은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요. (…) 그런데 그러면서 머리가 굵어지는 거예요. 진짜 아이디어도 그런 데서 나오는 거고요. 청년들의 상상력을 북돋워주는 공간이니 창의성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들 다 쓸모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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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기업이 내놓는 '거대 서사'인용 2023. 5. 30. 21:37
최근에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거대 서사를 만드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이들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물질적으로 풍요한 소비자들에게 거대 서사에 참여한다는 고객 경험을 제공해서 큰 수익을 거둔다. 애플은 현대사회가 조악하며, 더 예술적으로 세련된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거대 서사에 넘어간 사람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애플 스토어 앞에 줄지어 서서 새 아이폰을 밤새워 기다리게 된다. 아마존과 테슬라는 현대사회가 지적으로 게으르다고 주장한다. 인류가 달에 착륙한지 50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화성에 가지 못했느냐고 따진다. 그들은 당위에 대한 설명 없이 끝없는 혁신과 외부 세계 정복이라는 이야기를 제시한다. 인류 대다수를 비난하는 뉘앙스라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만, 기승전결을 제대로 갖춘 거대 서사이기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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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망친다> 서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5. 20. 12:56
(칼 로드 저, 니와타 요코 역, 동양경제신보사, 2023년)의 서평을 동양경제온라인에 기고했다.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는 익숙지 않은 단어이다. 본서는 이 ‘익숙지 않은 단어’의 의미를 자세히 가르쳐준다. 하지만, 설명을 들어도 ‘아 이로군’ 하고 무릎을 탁 치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라고 본다. woke capitalism은 일본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woke는 wake(일으키다, 눈뜨게 하다)라는 타동사의 과거분사이다. ‘각성되었다’는 의미인데, 이게 60년대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인종적・사회적 차별이나 불공평에 대해 높은 참여 의식을 가짐’ 이라는 독특한 함의를 갖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로 반세기 정도 쓰여진 뒤, 의미가 역전되었다. 의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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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두렵게 하는 악마였다."인용 2023. 5. 19. 11:44
증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두렵게 하는 악마였다. 도공이나 놋쇠 세공사가 만든 냄비는 뚜껑에 구멍이 나 있었다. 증기가 냄비와 지붕을 들어 올리고 나아가 집까지 날리지 못하게 구멍으로 김을 빼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우스터 후작, 와트, 풀턴은 그런 힘이 있는 곳에 악마가 아니라, 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힘을 잘 활용해야 하고 그냥 버려두거나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신은 증기처럼 간단하게 냄비, 지붕, 가옥을 공중 높이 들어 올릴 수 있을까? 그분이야말로 이 증기기관 발명가들이 찾아다녔던 일꾼이었다. 그분을 잘 활용해 냄비나 지붕보다 훨씬 더 녹록지 않고 위험한 악마들, 가령 엄청난 흙더미, 산등성이, 거대한 부피의 물과 저항, 기계류 등을 단단히 묶어 들어 올릴 수 있었고, 사람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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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사회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5. 12. 11:03
『진료 연구』라는 마니악한 잡지에 표제와 같은 원고를 기고했다. 맨날 하는 얘기기는 하지만, 이러한 얘기는 아무리 반복해도 부족한 것이다. 이제껏 살 만큼 살아봤지만, 일본의 국력이 이렇게까지 낮아진 시기는 과거에는 없었다. 팬데믹, 이상 기후, 우크라이나 전쟁, 인구 소멸... 과 같이 전 지구적 규모의 커다란 문제가 줄지어 있는 판국에, 일본 내부에서는, 정치와 언론의 저급화가 끝없이 진행되고, 경제는 쇠퇴 국면으로 전락하며, 국민 생활의 최후의 보루가 되는 교육과 의료도 빈사 상태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음을 가다듬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일본의 국력에는 아직 여력이 있다. 열도에는 넉넉한 산하(山河)가 있다. 열대 몬순이라는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넘치는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