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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카와 가쓰미 <‘답을 내지 않는’ 견식> (야간비행) 서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7. 10. 15:25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 존경해왔던 선배의 망한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 불륜을 해도 됩니까? / 자녀의 진로에 부모는 어디까지 개입할까 / 제도를 한계까지 이용해먹으려는 인간이 껄끄럽다 / '차도남'은 몹쓸 놈입니까? / 길어지는 연명치료를 관둬야 하는가? / 꿈을 포기 못하겠습니다
히라카와 군의 책을 서평했던 일은 그다지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닮은 사람>에는 서평을 썼던 것도 같아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결국,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히라카와 군의 글에 나는 비평적인 말을 썼던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히라카와 군의 글을 객관적으로 비평한다는 건, 정말로 내게 맡길 일은 아니다. 아무튼, 나와 히라카와 군은 ‘정신적인 쌍둥이’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도 나와 있다시피, 히라카와 군과 나는 11살 때 서로 알게 되어, 그 이래로 60년 여를 사이 좋게 지내왔던 ‘죽마고우’이다. 그렇게까지 끊임없이 만나왔던 것은 아니지만(십대, 이십대 무렵에는 일 년에 한 번 정도였던 적도 있다), 어지간히 서로 영향을 받았다.
아니 ‘영향을 받았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마치 이미 확립된 인격끼리 주거니 받거니 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아직 ‘인격’으로서 확립되기 이전에 친구가 되어버렸으므로,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인격이 ‘질척질척’해져 버린 것이다.
어린 아이는 친구가 넘어져도 ‘아파’ 라고 말하며 우는 경우가 있다. 자타의 구분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이를 정신분석 용어로 ‘전가 현상(transitivisme)’이라고 부른다. 자기 몸에 일어났던 것과, 동연령의 친구의 몸에 일어났던 것을 구별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때려놓고서 ‘맞았다’고 우긴다든지, 친구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아파’라고 울음을 터뜨린다든지 한다.
보통 이런 현상은 3세 미만의 유아한테 밖에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만, 히라카와 군과 나 사이에는 예외적으로 그것이 사춘기 이후에 일어났다.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대단히 농밀한 1년 반을 지냈지만, 그 뒤 각기 다른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때까지 매일,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한패를 이루었던 짝지가 난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으므로, 그 결여감은 상당히 시리어스한 것이었다. 그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아마 우리는 둘이서 ‘친구는 내 안에 있어, 언제나 함께’라는 망상을 키웠다. 그리고, 가끔 만났을 때에, 상대의 변화한 모습을 보고서 놀라면서도(십대 때의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변모해 있었다), 자기 안에 있는 상상적인 친구의 모양과 생김새를 현실에 맞춰 보정함으로써 ‘언제나 함께’ 환상을 가까스로 유지했다. 아마 그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에까지 연장되었던 이 ‘언제나 함께’ 환상 탓에, 그 뒤, 상대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의 구별이 잘 가지 않게 되었다. 물론 ‘곧잘’ 구분이 안되었을 뿐이지, ‘다르다’는 것은 안다. 그저, 두 사람의 생각에 가까운 곳, 경계선상의 아이디어에 대해, 처음에 누가 그걸 떠올려 낸 것인가를 잘 알 수 없다. 히라카와 군이 말하기 시작했던 것에 내가 ‘맞아맞아. 사실은 <나>도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거였어’ 라고 수긍하는 것인지, 내가 말하기 시작한 것에 히라카와 군이 (이하 동일) 인지가 애매한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러한 아이디어는 전부 ‘퍼블릭 도메인’이라든가 ‘커먼(common)’이라든가 하는, 서로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곳에 놓아두고서, 둘 다 멋대로 쓰기 좋게 되어 있다. 따라서, ‘<내> 아이디어를 도용하지 마라’는 식의 추잡한 일은 우리 사이에는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런 것이다. 따라서, 히라카와 군의 주장 전부에 나는 동의한다. 아니 ‘동의한다’는 게 아니다. ‘실은 <나>도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었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부탁받은 이상 서평스러운 문자를 늘어놓지 않을 도리가 없기에, 아래에 여남이나 췌언을 농한다(贅言を弄する).
읽기 시작해 보니 평소와는 조금 어조가 다르다. ‘후기’를 읽고서 그 이유를 알았다.
이 인생 상담은 나카야마 구니코 씨라는 작가 분을 상대로, 히라카와 군이 인생 상담 편지에 대답하고, 그것을 나카야마 씨가 원고로 다듬어, 히라카와 군이 손질하는 식으로 행해진 듯하다.
따라서, 히라카와 군은 상담에 대답하기 앞서,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대답을 하는가에 대해, 우선 눈 앞에 있는 나카야마 씨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눈 앞에 대면하고 있는 사람부터 납득시키지 않으면, 진지한 마음으로 인생 상담을 하러 온 사람을 납득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히라카와 군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아마도).
그러한 연고이므로, 처음 무렵에는 이야기가 비교적 ‘장황하다’. 그것이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잘 흘러가게 된다. 질주감이 나와서, 읽고 있으면 조금 두근두근하다. 분명 듣는 이 나카야마 씨가 히라카와 군의 ‘사고벽(癖)’을 차차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예 예, 그렇네요’ 하고 수긍하는 게 빨라졌기 때문이리라.
맨 처음은 약간 무겁다. 히라카와 군의 이야기는 조금 추상적이고, 딱딱한 설교조이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해도 나카야마 씨는 간단하게는 수긍해주지 않는다. 히라카와 군의 난처해하는 얼굴이 눈에 선하다. 거기서 히라카와 군은 방침을 수정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든지, 다른 사람의 책에서 인용하다든지 하는 방식을 구사하게 된다(인용의 일부는 가필할 때에 ‘이것도 넣어두자’는 후지혜(後知惠)로 떠올린 것이라고 보이는데, 인용은 모두 똑 들어맞는다).
그 방식이 결실을 맺어, 인생 상담의 제(諸) 문제는 제각기 깊이가 종횡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결국, 당신의 문제에 단일한 정답은 없는 것입니다’ 라는 히라카와 군의 대답에 딱 좋게 착지했다.
말하는 게 늦었는데, 히라카와 군의 이 인생 상담에는 ‘대답’이 없다. 답을 내지 않고, 물음을 심화시킬 따름이다.
‘물음을 심화한다’는 것은, 상담하러 온 사람이, 애초에 어떠한 역사적 문맥 가운데, 어떠한 개인적 사정 탓에,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가, 그것을 상담자 자신에게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자세이다. 히라카와 군은 그 취지를 이렇게 쓰고 있다.
“인생은, 문제 해결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질문자 스스로께서도 안이하게 답을 내지 않고서, 물음을 품고서 살아가는 술(術)을 배우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4쪽)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문제의 제기 방식을 변경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껴안은 채로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36쪽)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떠안고 있어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살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를 발판으로 인간적 성숙을 이룬다. 참으로 그러하다. 사람은 갈등을 통해서 성숙한다. 갈등을 통해서밖에는 성숙할 수 없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조우하게 되면, 그만 울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운다든지, 멈추어 선다든지, 머뭇거린다든지…. 그래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실 시간 벌기인 겁니다. 울고 있는 사이에, 어째서 울고 있는가를 알 수 없게 됩니다. 울고 있는 사이에, 마음 속에 비대화되어 있던 문제가, 점차 실제 사이즈로 돌아갑니다. 실제 사이즈로 돌아갔을 때에는, 별 문제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6쪽)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조우하게 되면, 잠시 ‘맥이 풀려있는’ 것이 유효하다고 이전에 정신과 의사인 가스가 다케히코 선생으로부터도 들었다. ‘이걸 어째, 이걸 어째’ 하고 투덜대고 있는 새에, 뜻밖의 일이 일어나서 문제가 ‘사라지고’ 마는 일이 흔히 있다. 정신과 환자의 경우로 따지자면, 환자의 ‘트라우마 유발자(traumatizer)’였던 가족 누군가가 죽는다든가.
그건 그렇고,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증여’와 ‘책임’에 대해 논한 곳이다. 이 부분에서는 히라카와 군도 열띤 목소리로 말한다.
“이 세상 가운데, 실은 등가교환은 생각처럼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등가교환이 아니라, 증여 교환에 의해 성립해 있습니다.” (136쪽)
증여에 관해, 마르셀 모스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증여론이 조술(祖述)된다. 가치 있는 것을 증여받았던 자는 그것을 사장[退蔵]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을 타자에게 증여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 그것을 ‘반대급부 의무’라고 말한다. 증여와 반대급부의 구조를 갖지 않은 사회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전근대에는 ‘하늘이 보고 계신다’라는 신앙의 형식을 취했다. 히라카와 군은 라쿠고 <분시치 못토이(文七元結)>를 예로 증여의 이법(理法)을 설명한다.
“자기는 돈이 없으면서도, 곤란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돕고 싶다>는 생각에 애가 타서, 얼마 안 되는 자신의 돈을 건네고 맙니다. (...) 이 라쿠고에서는, 표층에 있는, 불합리한 선택과 합리적인 선택 둘 중 하나를 사람이 고르느냐 마느냐 하는 배후에, 한층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이 시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남을 도왔다는 것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어서, 그 일에 대해 자신으로서는 의도하지 않은 면에서 보응이 있다는 신앙의 차원입니다. 옛날 일본인은 <하늘이 보고 계신다>라는 말을 곧잘 했습니다만, 이는 최종적인 심판은 하늘이 내려준다는 신앙이지요.” (148-9쪽)
현대 일본 사회에서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이를테면, 인사는 일종의 ‘증여물’이므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받았는데, 그에 답례하지 않으면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백중날이나 세밑 때에 선물을 받아놓고 사례장을 보내지 않으면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근대에도 증여의 주술성에 관한 신앙은 희미하게나마 잔존하고 있다.
조금 설명을 더하건대, 증여 경제의 기점에 있는 것은, ‘나는 증여받았다’는 피증여 감각이다. 그것을 느꼈던 사람이 반대급부 의무에 재촉받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 거기서 엔들리스(endless)한 증여 경제가 시작된다.
침묵교역의 예를 들면, 자신들의 테리토리(territory)와 이족(異族)의 테리토리의 경계선 가까이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을 때, 그것을 ‘증여물’이라고 직감했던 사람이 반대급부로써,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거기에 놓아두게 된다. 다음에 같은 장소에 가보면 전에 놓아두었던 것이 사라져 있고,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이 놓여져 있다. 이것이 침묵교역이다.
처음에 ‘아, 이곳에 내 앞으로 온 증여물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본 것은, 실은 바람에 날려 온 것일지도 모르고, 동물이 물어다 온 것일지도 모르며, 누군가가 버려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내 앞으로 온 증여물이다’라고 느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기점으로 증여경제 사이클이 개시된다.
따라서, 경제 활동에 있어서, 무언가를 보고서 ‘아, 이것은 내 앞으로 온 증여물이다’ 하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세상은 자신에 대한 은총으로 충만하다’는 유형의 다행증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증여경제의 창시자인 것이다. 이해타산이라든가 비용 대비 효과 같은 잠꼬대를 읊는 인간은 경제의 본질과는 무연(無緣)한 것이다.
히라카와 군은 책임에 대해서도 참으로 중요한 말을 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는 범위가 커지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몇 번이나 말씀드립니다만,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것에 책임을 지는 자세야말로 중요하며, 설령, 전혀 상관 없는 타인이 했던 일마저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자신이 그 책임을 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성숙과 결부지어지는 것이라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222쪽)
“이웃의 약자에 대해, 거기에는 어느 정도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자각하고, 자신이 타자의 경우에 대해서까지 그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이러한 형태로, 사람은 성숙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지요. 자신이 획득한 것의 비중이 아니라, 부채로 느끼고 있는 것의 비중을 감득하는 감성이야말로, 사람을 성숙시킵니다.” (223쪽)
이는 참으로 히라카와 군이 말하는 대로다. 여기서 히라카와 군은 거의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다르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레비나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저의 유책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 걸까요? 어느 정도까지, 저는 타자에 있어서의 악에 대해서는 자신이 유책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자를 책망하며 괴롭히는 것(他者を責め苦しめるもの)에 대해서도, 타자가 괴로워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유책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적으로는 다른 인간으로부터 방면(放免)받은 적이 없는 것입니다.” (레비나스/포와리에, <폭력과 성성(聖性)>, 우치다 다쓰루 역, 고쿠분샤, 1991년, 135쪽)
히라카와 군은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부채를 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든 돌려주려고 하는 것입니다”(224쪽) 라는 지극히 종교적인 명제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타자의 가난함에 대한 책임을 자신도 나누어 가지려 합니다. 본래는 자신의 책임이 아닌 것에까지, 책임의 범위를 넓히고 맙니다." (226쪽)
한편, 레비나스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자신이 행한 것 이상의 책임을 진다는, 이 유책성의 과잉이 생기(生起)하는 장소가 우주의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필경(畢竟)하는 것이, 『나』 의 정의인 것이다.”
(自分のなしたこと以上の責任を負うという、この有責性の過剰が生起する場所が宇宙のどこかにありうるということ、それがおそらく畢竟するところ、『私』の定義なのである。)
(Lévinas, Totalité et Infini, Martinus Nijhof, 1961, p.222)
자신이 범하지 않은 죄과(罪過)에 대해서조차 유책성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 역설적인 권능 가운데에 주체성은 깃들어 있다. 이것이 주체성이요 ‘선성(善性)’이다. 레비나스는 그렇게 말했다. 이 한 줄에 레비나스 철학은 집약되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조금 과언이지만).
히라카와 군은 이런 레비나스 철학을 독특한 방식으로 혈육화하고 있다. 아마 히라카와 군은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도 <탈무드의 네 강독>도 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구체적인, 시정(市井) 사람으로서의 경험에서부터, 레비나스의 명제와 거의 동일한 결론에 달했다.
나는 ‘레비나스와 똑같은 것을 말하니 대단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레비나스도 또한, 그 자신의 살아 있는 육체[生身]의, 베이면 피가 나올 듯한 경험으로부터, 유책성에 대한 철학을 손수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히라카와 군의 철학과 부합했다. 그만큼 그들의 지견에는 보편성이 있다는 것이다.
(2023-06-29 13:41)
(옮긴이의 한마디: 면목 없는 말씀입니다만, 무슈 레비나스의 텍스트를 제가 중역하는 것은 역부족이었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될 수 있는 한 원전에 가까운 텍스트를 접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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