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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7. 17. 13:39

    学자가 아니라 學자임에 주목. 메이지 시대로부터 연면히 내려온 교양의 향연입니다. 요로(養老) 선생에 의하면, 교양이란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 편집자

    느닷없이 '밥상 뒤엎기'를 하는 것도 미안하지만,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라는 질문의 제기 방식에 '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에 대해 쓰기로 한다. 아마,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될 것이므로, 각오하며 읽어주기를 바란다.

    '배운다'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배운다'는 문형을 필자는 도무지 수월하게 삼켜 넘길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배움'이 진정으로 기동한 경우에는, '나'라는 주어는 이제 동일성을 견지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하아몽(吳下阿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시대 오나라에 여몽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용맹한 무인이었지만, 애석하게도 학문이 없다. 주군인 손권이 '장군에게 학문이 있었더라면' 하고 한탄했던 일에 분발하여, 여몽은 그때부터 학문에 매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 노숙이 오랜만에 여몽을 만나보니, 그 학문의 깊이와 견식의 넓이는 예전의 그와는 다른 이였다. 노숙은 '자네는 참으로 이전에 <오하(吳下)의 아몽(阿蒙)>이라고 불렸던 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네' 하고 감탄했다. 이에 대해 여몽은 '선비는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합니다' 하고 답하였다. 선비 되는 자는 모름지기 사흘 만나지 않으면 다른 이가 되어 있는 것이라오, 라는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무렵에는 때때로 이 이야기를 하는 연장자가 있었지만, 일정 시기부터 사라졌다. 단순히 한서의 지식을 존중하는 기풍을 잃었다기보다는, 인간이 지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다른 이가 되는 것'이라는 지견 그 자체를 잃어버렸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적 성장이라는 것을 현대인은 대개 '지식의 양적 증대'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간으로서는 아무것도 바뀌어 있지 않지만, 뇌내(腦內)의 정보 stock이 늘어나 있는 상태를 '성장'이라고 불러 버릇 하고 있다. 따라서, 며칠 지나 만나보아도 특별하게 '괄목할' 필요는 없다. '그릇(컨테이너)'은 동일하고, '내용(컨텐츠)'이 증가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배움'과는 다르다. 배움이라는 것은, '그릇' 자체가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괄목'하여 대면하지 않으면 동일성을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움이 깊어지면, 말하는 내용이 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정, 목소리, 거조(擧措), 매무새[着付け] 등 모든 것이 바뀐다.

    여몽 장군은 배움을 심화시킨 뒤에도 어쩌면 이전과 다르지 않은 탁월한 무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법은 역사적 지견이 뒷받침되고, 인간성에 대한 통찰에 가득찬 것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단순히 무용(武勇)에 학식이 산술적으로 가산되었던 것이 아니다. 무용의 본질 그 자체가 변한 것이다. 전술은 깊이와 두께가 늘고, 용병은 종횡무진의 것이 되며, 단 한 마디로 병사들의 인심을 장악하는 카리스마성을 몸에 익혔다. 그렇지 않고서야 '괄목한다'고 하기 어렵다. 허나, 지금 '배움'이라는 말에, 우리는 그 정도까지의 전면적인 인간의 쇄신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

     

    질문을 제기한 측에서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라는 명제를 다루는 것을 보아하니, '배움의 주체가 다른 이로 되는 것이 배움'이라는 복잡한 기제와 맞닥뜨렸을 때 나올 법한 당혹감이 (미안하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밥상 뒤엎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심통을 부리려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너른 이해 바란다.

    '우리들'에게 지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을 메꾸고자 한다. 그래서 그 리스트를 작성하려던 것이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라는 발제의 취지였다면, 필자는 그러한 푸닥거리를 '배움'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보충(supply)'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만약 '보충'이라는 관점에 입각한다면, '그릇'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내용물'만이 불어나가는 모양새라는 의미가 바르게 전달된다.

     

     

    교육의 목적이 '배움'에서 '보충'이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1970년대 쯤이었을 것인가.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배우는 프로세스를 통해 아이들은 다른 이가 된다'는 사고방식이 외려 상식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오랫동안 일본의 기간 산업이 농업이었으며, 교육도 또한 농업의 비유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씨앗이다. 땅에 파종되어, 물과 비료를 받고, 햇빛을 쐬며 자란다. 태풍이나 병충해 탓에 시들어버리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가을에 '결실'로서 감사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한 식물적인 비유에 따라 오랫동안 교육은 일컬어졌다. 종자가 잘 익은 열매 되는 것, '다른 이가 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는 점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허나, 기간 산업이 농업에서 공업으로 이전됨에 따라, 교육을 일컫는 말도 또한 공학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낯익은 시스템에 맞춰 현실을 기술하는 존재인 것이다.

    아이들은 공장에서 제조되는 공업제품과도 같은 것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수합된 원재료가 공정표에 따라 가공되고, 거기에 이런저런 부품이 부가되어, 컨베이어벨트의 종점에서 사양표대로의 제품이 납기까지, 주문 개수만큼 마련된다. 그것이 교육이란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다.

    과연 기간 산업의 전이는 교육에 다이렉트하게 반영되는군 하고 실감했던 것은 90년대에 '강의계획서'라는 것이 대학에 도입되었던 때이다. 강의계획서에는 '이 수업의 이수 종료 시점에서 학생은 어떠한 지식이나 기능을 익히게 되는가'가 명기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몇 주차에 교사는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무엇을 습득하는가를 일일이 써야만 한다. 해당 주간에 강의계획서에 쓰여져 있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혹은 강의계획서에 쓰여져 있지 않은 것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공정 관리상의 과오'임으로 페널티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필자는 격노했다. 그것은 필자가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교단에 서고, 그 시간에 떠올렸던 것을 주절주절 얘기하는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피한 것이다. 필자가 교단에 처음 섰을 무렵, 선생 측에서 주도면밀하게 강의 노트를 준비하고 만전을 기해 강의장에 임하면, 어째서인지 학생들은 속속 졸고 만다. 아무리 논리 정연하게 마련한 노트여도, 오히려 준비가 완벽할수록 학생들의 집중력은 떨어진다. 어쩌면 좋겠는가.

    어느 시간, 그날 아침, 니시노미야키타구치 역[西宮北口駅] 승강장에서 목격했던 기묘한 사건에 대해 학생들에게 '있잖아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고 얘기했다. 지금은 내용을 잊어버렸지만, 그때는 서둘러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평소에는 교실 뒷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필자가 교실에 입장한 시점에 이미 '수면 체제'에 들어가 있는 학생들이 벌떡 고개를 들고서, 필자의 이야기에 열중해 주었다.

    옳다거니 했다. 학생들은 '기성 센텐스의 재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즉흥으로 행해지는 라이브 연주'가 듣고 싶었던 것이다. 분명히 수업이니만큼 들어주지 않으면 이야기를 해도 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준비는 적당히 해 두더라도, 그 자리에서 방금 떠올린 '신선한 이야기'로 이끌어나가는 게 학생들의 집중력은 높아지고, 교육 효과도 올라간다. 그것을 알고 나서는 줄곧 그러한 수업만을 해 왔다.

    따라서, 학생들이 제출한 수업 평가 설문지의, '강의계획서대로 수업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항목의 득점은 항상 꼴지였다. 하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최고점이었다. 철저한 공정관리와 수업 만족도 사이에는 통계적인 상관은 없다는 말이다.

    허나, 그 이상으로 격한 분노를 느꼈던 것은, 강의계획서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체결된 교육 상품의 거래에 대한 '계약서'와도 같다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였다. 교육을 상거래의 비유로 이야기하는 것은 최대의 금기이다. 그러한 기초적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교육 제도를 설계하고, 교육 정책을 기안하고 있는 것인가 하여,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상거래에서 소비자는 자기 앞에 놓여진 상품에 대해서는 그 가치나 유용성, 비용 대비 효과를 숙지하고 있다고 상정되어 있다. 설령 알지 못한다 해도,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을 하게 되어 있다. 점원의 소맷부리를 붙잡고서, 상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소비자는 없으며, 설명을 받은 뒤에 '감사합니다' 하고 일읍하는 소비자도 없다. 모두 '그딴 건 진즉에 알고 있어' 라는 얼굴을 한다(알지 못해도, 그런 얼굴을 한다). 도떼기시장[バザール;bazaar]에서 사고 파는 것과 같이, '상품에 대해 욕망을 품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면 파는 이의 양보를 얻게 되어, 그것이 가격 인하를 이끌어내는 데 유효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교육이 상거래라면, 상품은 '이수단위', 화폐는 '학습 노력'에 상당한다. 그렇다면, 교육 상품 소비자가 된 학생은 '최소의 학습 노력으로 단위를 이수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최저가로 상품을 사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요-공급 균형에 기반한 적정 가격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시장 경제는 성립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수업시간에도, 만약 학생들이 현명한 소비자로서 행위한다면, 앞으로 배우는 것에 대해 최대한 욕망을 품고 있지 않음의 현시를 의무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대 장치가 '배움'에 있어서 백해무익하다는 것은 누구든지 알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일정 시기부터 교육을 상거래 용어로 거론하는 게 일반화되었다. 보호자나 학생은 '클라이언트'이고, 대학은 '점포'이며, '시장의 니즈에 맞춰', '소비자가 선호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전개하는 것'이 학교가 할 일이라고 정색하며 말하는 사람들이 학내외에 미어 터지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일본의 학교 교육이 파멸적인 것으로 화했던 사실은 아시는 바와 같다.

     

     

    교육을 상거래의 스킴으로 말하는 것의 최대 문제는, '소비자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경제 활동을 통해 결코 다른 이가 되는 일이 없다. 슈퍼마켓에 들어가는 쇼핑객은 들어갈 때와 나갈 때에 동일 인물이다. 장바구니 안의 상품은 늘어나지만, 구매를 한 인간은 (지갑이 가벼워졌단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를 하지 않는다. 변화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변화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구매를 하기 전에 느꼈던 '결여(want)'가, 상품 구매에 의해 '보전(supply)'되었을 뿐이다. 슈퍼 안에서 몇 시간을 보내도, 며칠을 보내도, 몇 년을 보내도, 소비자는 결코 다른 이가 되지 않는다. 되어서는 안 된다. 입점 시점의 '결여'가 상품 구입에 의해 '보전'되었다는 것 이상의 변화는 있어서는 안 된다. 장바구니에 상품을 하나 던져 넣음으로써 쇼핑객의 표정이 변하고, 목소리가 변하고, 말씨가 변하고, 어휘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욕망의 배치가 변하고... 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서는 안 된다. 따라서 배움을 '상거래의 비유'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우리는 이 세상에 그러한 학적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학문을 '뜻밖에도' 배우고 마는 방식으로 배운다. 적어도 여몽의 경우는 그랬다. 주군 손권에게 '장군에게 학문이 있었더라면'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여몽은 학문이 무엇인가, 그것에 어떠한 유용성이 있는가를 알지 못했다(알고 있었다면 그런 말을 듣기 전에 배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허나, 손권의 그 한 마디를 기화(奇貨)로 하여, 여몽은 배우기 시작했으며, 다른 이가 되었다.

    다시 한번 되풀이하건대, 배움이라는 것은, 배운 뒤에 배우기 전과는 다른 이가 되어 있는 것을 이른다. 배우기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를 알지 못했던 것을, 배움을 마치고 나서 회고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배움의 역동성, 개방성, 풍요성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 '배움이라는 것이 있다'는 원(原) 사실 그것뿐이다.

    필자 자신은 무도나 노가쿠 등 몇 가지 예술을 '배워' 왔다. 배우기 시작한지 아이키도는 반세기, 노가쿠는 사반세기에 이른다. 배우기 시작했던 시점에, 필자는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배우게 되는 것인지를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했었다. 자신이 앞으로 터득하게 되는 기술을 부를 명사를 알지 못했으며, 그 뒤에 조작 가능하게 되는 신체 부위를 이전에는 감지했던 적이 없었다. '기카이 단덴(気海丹田)에 기(気)를 모으는' 것도 '무네(胸) 오토시(落とし)'도 '데노우찌(手の内) 가에시(替えし)'도, 어느날 그러한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 이 가능하게끔 되고자 하는 '결여'가 선행하여, 그것을 '보전'했던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그러한 신체 부위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것을 조작하는 기술이 있다는 것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수련을 쌓아가는 사이에 어느날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수련에는 분명한 교육체계가 있다. 그것은 '선도자[先達]를 따라가는 것'이다. 단, 어디로 가는 것인지, 어떠한 경로를 거치는 것인지, 언제 무엇을 몸에 익히는 것인지, 아무런 정보도 사전에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선도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걸을 따름이다. 자신이 답파해야 할 길의 어디쯤 있는지,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세월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것의 의미를 묘사할 어휘도, 그 가치를 고량(考量)할 판단 기준도 자신에게는 없다. 그로부터 '배움'은 시작된다. 그러할진대, 그것이 무도, 종교, 예능에서 말하는 '수행'인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서구 언어에는 '수행'과 비슷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좌선 지도를 해 온 조동종(曹洞宗)의 선승 후지타 잇쇼 법사에게 예전에 '<수행>에 상당하는 단어가 영어에 있습니까?' 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없다'는 게 후지타 법사의 말씀이었다. training, exercise, practice 모두 아니다. 각각의 단어에는 예외 없이, 그것을 닦음으로써 '무엇을' 달성하는가, 그 목표가 사전에 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행'은 다르다. 답파해야 할 전 행정(行程)을 한 눈에 부감하는 '신의 시점'에 상상적으로 서서, 그로부터 자신의 지금·여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수행자에게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필자는 무도와 노가쿠 외에도 미소기하라에[禊祓]나 다키교[滝行] 등을 '수행' 해 왔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이것이 교육 시스템으로써 더없이 훌륭한 것이라는 점을 깊이 확신하고 있다. 이 세상에 그러한 학지나 기능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학지나 기능을 습득할 수 있다는 개방성·풍요성 가운데 '배움'의 진수[神髄]가 있다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교육자 가운데 필자의 이러한 생각에 동의해주는 사람은 매우 드문 듯하다. 교육 정책을 제언하는 정치가나 정책을 기안하는 공무원 가운데에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앞으로도 같은 주장을 이어나갈 것이다.

    ('學鐙' 여름호)

     

    (2023-07-07 12:0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