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자본론 편> 한국어판을 위한 서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8. 10. 10:04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시리즈의 최종권, <자본론> 편의 한국어판을 손에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책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는 마르크스의 주요 저서를 중학생과 고등학생 독자에게 해설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공산당 선언>부터 시작해, 번외편 <마르크스의 마음을 들으러 가 보는 여행>을 포함하면 총 5권으로 이루어진 저희 시리즈는, 이 책 <자본론 편>으로 완결됩니다.

    이렇게 써 놓으면, '어, 나는 중고등학생이 아닌데... 이 책이 상정하고 있는 독자가 아니면 어쩌지' 라고 생각했던 분이 계실 겁니다. 괜찮습니다. 이 책은 '마르크스를 아직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언제 한번 읽어야겠는데' 라는 생각만 있지 이제나저제나 아직 그 기회가 찾아오지 않은 분을 위한 책입니다. 연령 같은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한 가지 더 주의하실 사항이 있습니다. 그건, 이 책을 읽은 분이 '아하, 이 책을 읽어 보니 마르크스가 대충 뭔지는 알겠어. 이제 <자본론>같은 건 읽을 필요가 없어졌는걸' 하고 생각하시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책은 '자, 그럼 마르크스를 실제로 읽어볼까' 하는 기분이 들게 하기 위한, 말하자면 '등 떠밀기' 위한 책이지, 읽고 나서 '마르크스를 이해한 느낌'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응? 이 책 읽고 또 마르크스 원전을 읽어야 한다고? 그럼 일을 두 번 하는 셈이잖아. 애초에 마르크스부터 읽는 게 효율적이지' 라고 생각했던 분도 계시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근데요, 그러면 안 되세요. 마르크스는 거대한 사상가에 속하는데, 그런 사람이 쓴 저작물과 맞붙을 때는, 초심자가 무턱대고 덤벼들려 해도, 무리가 따릅니다. 거대한 벽이 떡 버티고 섰으니만큼, 자연스레 '길 안내인[道案内人]'이 필요한 겁니다. 등반 루트는 무엇무엇이 있는지, 어드메에 험지가 있는지, 어드메에 함정[迷い道]이 있는지, 어드메에서 길을 헛디디면 굴러떨어지는지... 하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 중 하나인 이시카와 교수는, 젊은 시절에 정통적인 길 안내인을 따라서 험지를 헤쳐나가며, 자기 자신도 베테랑 길 안내인이 되었던 분입니다. 제 경우에는 젊은 시절에는 '길 안내인 같은 건 필요 없어' 라고 호언하며, 무모한 마르크스 단독행(單獨行)을 감행하여, 이런저런 상황에서 단단히 혼쭐이 나면서, '역시 길 안내인이 있는 게 좋겠다' 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인간입니다.

    그렇게 유형이 상이한 길 안내인 두 사람이 여러분께 마르크스라는 거봉을 향해 등반하기를 권해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단, 결국에 오르는 건 여러분 자신입니다. 저희는 안내를 할 뿐이지, 실제로 땀을 흘리고, 다리 아파가며 걷는 것은 여러분 각자의 몫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좌우지간, 저 산을 올라 봅시다' 하고 권유드리면서, 그러고 싶어진 사람이 있다면, 등반 루트를 몇 개나마 안내해 드리는 데까지입니다.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론> 이 발간된 시기 사이에는 이십 년 이상의 세월이 존재하는데, 마르크스의 사상 역시 당해 연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상당수 변화하고 있습니다.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시리즈는 마르크스의 주요 저서를 연대 순(順)으로 해설해 드리고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딱히 초기의 마르크스부터 시작해 만년의 마르크스에 이르는 식의 순서로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손에 든 것만으로도 무언가 인연' 입니다. 그러한 고로, 이 책 <자본론 편>부터 먼저 읽으셔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어느 시대의 저술이라 할지라도 마르크스는 각기 깊은 사상을 읊고 있으며, 거기에 복류(伏流)하는 메시지인 '사회는 공정해야 한다'는 신념에 흔들림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해설서가 이리하여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지게 된 점을 저희는 참으로 바람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에는 지금도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률이 있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공산주의를 찬미(讚美)하는 행위 및 그 조짐은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책과 같이 '맑스주의를 찬양·고무'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서적이 당당히 서가에 진열되는 시대가 왔다는 점에 많은 분이 '격세지감'을 느끼고 계실 터이지요. 이는 대체 어떠한 역사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번 번역 출간이 한국과 관련된 마르크스 주의·운동의 재평가가 일어나려는 신호탄이라면, 저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조선공산당은 1925년에 일본의 통치 아래에 있던 서울[ソウル]에서 결성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공산당(1920년 창설), 중국공산당(1921년 창설), 일본공산당(1922년 창설)에 이어 창설된 '터줏대감[老舗]' 입니다. 여러분 나라에서도 맑스주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조선공산당은,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었으므로, 당연히 일본의 관헌에게 격심한 탄압을 받았고,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1945년에 당은 재건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지배하는 한반도 북부에 당 중앙조직을 만들려는 사람들과, 남북이 일체된 조직의 유지를 염두에 둔 사람들이 대립하여, 조직은 남북으로 분열합니다. 남측 조직(남로당)은 한국 정부에 의한 탄압을 받아, 당원들의 많은 수는 북으로 도피했습니다만, 후일 김일성에 의해 거의 전원이 숙청당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을 걸고, 한반도의 통일과 독립,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목표로 싸우면서, 그 대다수는 일정,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북한에 의해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이 선구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 한 명 한 명의 사적에 대한 평가는 역사학적인 검증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벌인 운동의 목표 자체는 옳은 방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합니다만 한반도에서 있었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1950년대 이후 한국의 '정사(正史)'로는 그다지 자세히 언급되어 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많은 수의 마르크스주의자는 '반역자[国賊]' 라든가 '간첩[スパイ]'이라는 딱지가 붙어 단죄되고, 망각되고 말았던 것은 아닐런지요.

    지금, 마르크스를 다루는 책을 한국 독자가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은, 감히 말하건대, 한국 사람들이 자국과 관련된 '맑시즘 100년사'에 관해, 그 암부(暗部)와 영광 모두 포함해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징후가 아닐런지, 개인적으로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여러분의 국민적인 사업에 일조할 수 있다는 점을 저희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2023-08-08 14:5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