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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마기시 료코 선생의 만화는 어째서 이렇게 무서운가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8. 5. 14:00

    야마기시 료코 선생이 그리는 ‘무서운 이야기’는 정말로 무섭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어째서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 것일까.

     

    필자의 가설은, 야마기시 선생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의 ‘악령[]을 만화로 표현함으로써 ‘퇴마 의식을 행하는 것[祓っている]’이다.

     

    ‘퇴마[お祓い]’인 것이므로, 대충 해서는 안 된다. 가장 무서운 곳을 무심코 ‘미처 퇴마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공포가 머리를 다시 쳐들지도 모른다. 고름은 째어내야만 한다. 따라서, 철저하게 무서운 이야기, 이것 이상으로 무서운 이야기는 세상에 없다 하는 정도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을 야마기시 선생은 몸소 사명감을 갖고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무수한 공포담이 있지만, 어떠한 이야기가 가장 근원적으로, 가장 끝도 없이 사람을 무섭게 하는가, 그 생각을 끝까지 추구한 결과, 야마기시 선생이 이르게 된 결론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무섭게 하는 그것 자체’를 이루고 있는 공포담이 가장 한량 없는 것이었다.

     

    외부로부터 귀신 비슷한 것이 찾아오게 되면, 동료를 모은다든지, 혹은 영적 능력이 높은 사람에게 매달리든지 해서, 그것과 ‘싸운다’는 적극적인 대책을 세울 수도 있다. 결계를 쳐서 그 안에 ‘틀어박히는’ 방어책을 강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자기 자신을 공포에 처하게 하는 그 자체인 경우, 즉 ‘공포를 가하는 자’와 ‘공포에 질리는 자’가 동일한 경우, 말하자면 자기를 공포에 못박으면서 그 못박힘을 당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 그 공포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그러한 이야기 형태가 가장 무섭다. <시오의 소리[汐の声]><내 인형은 좋은 인형[私の人形はよい人形]>과 함께 필자가 ‘야마기시 호러 만화의 금자탑’으로 치는 걸작인데, 정말 ‘전형적으로 그러한 이야기’였다.

     

    그것 말고도 야마기시 선생 만화 속 ‘무서운 이야기’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데, 나만이 공포를 느끼고 마는’ 식의, ‘공포를 제공하는 자’와 ‘공포를 느끼는 자’가 하나로 잇대어 꿰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절망감이 주음(主音; 基調音)을 만들어내고 있다. , 쓰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졌다.

     

    (<다 빈치> 9월호)

     

    (2023-08-05 10:2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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