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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문제를 둘러싼 의논에 부친 후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7. 4. 14:29
미사고 치즈루(三砂ちづる) 선생과의 '자녀 양육'을 둘러싼 편지 교환을 끝맺었다. 마지막으로 짧은 후기를 요청받았으므로 썼다.
여러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미사고 선생이 시(詩)로 마무리해 주셨으므로, 제가 책 끄트머리에서 군소리를 농(弄)하는 것은 쓸모 없는 짓이겠지만, '뭐라도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라는 요청을 편집자로부터 받은 터라, 인사차 짧게 쓰겠습니다.
오랫동안 제 장황한 이야기를 함께해 주신 미사고 치즈루 선생과 편집자 안도 아키라 씨께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야기가 끝까지 여러 갈래로, 결론다운 것에 손이 닿지 않고서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은, 육아라는 논건이, 얼마나 여간하지 않은 난문인가 하는 점과 함께, 얼마나 허다한 논하기 방식이 있는가 하는 점을 아울러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에필로그'에서도, 뭔가 정돈된 내용을 쓸 것도 궁합니다. 마지막 편에서 미사고 선생이 쓰신 것에 대해, 제가 한 마디만 보태 쓰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육아라는 것은, 미사고 선생이 쓰셨던 바와 같이, 부모 자신이 미숙한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육아를 통해 부모도 점차 성숙해 갑니다. 그러한 동적인 과정입니다. 미숙한 부모이므로, 은연중에 자식에게 상처주고 마는 일도 있습니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고 봅니다.
저는 미숙한 부모로서 아이를 기르다가, 어느 시점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자식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 양자가 있다면, '자식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자식을 사랑할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보다, '어떻게 자식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할까'를 궁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아이 하는 게 걱정돼서',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서' 라는 등의 이유를 들며 자식에게 상처 주는 부모가 실로 엄청나게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적 사실은, 사랑하고 있는 해당 상대에게 상처주는 일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고 있는' 일에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상처 주지 않는' 일을 신경쓰는 게 나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자식에 대해 '경의를 갖기'로 다짐했습니다. 이 애의 내면에는 내 이해나 공감을 초월한 사념이나 감정이 간직되어 있다.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무리를 해서 그것을 이해한다든가, 공감하려 들지 않습니다.
무리한 일은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상대가 슬하의 귀중한 자식이라 해도, 그 애를 위해 무리는 안 하는 게 낫습니다.
무리한 일을 한다 함은, 그게 부모가 자식에게 전가하는 심리적인 '채권'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나 무리를 해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신의 가치판단을 억제해서, 너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해 온 것이다' 라는 식의 말투로 자기의 '자식에 대한 애정'을 (말로는 하지 않아도) 발하게 되면, 그 '노력'을 한 만큼 부모는 자식한테 '받을 돈이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받을 돈'이 있으니, 어떻게 '회수' 하고 싶어집니다.
따라서, '널 위해 이렇게나 노력해 온 것이다'라는 말을 부모는 결코 자식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 정도로 따지자면, '먹여주고 입혀주는데 배은망덕하기는' 같은 말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세간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 감정의 본질로서 최상의 것이라는 둥 여겨지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저는 그보다도 '경의를 품는' 게 감정 생활 면에 있어서는, 중요하기도 하거니와, 곤란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困難なことではないかと思うのです。)
인간은 다른 이로부터 열렬히 사랑받고 있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다른 이가 깊은 경의를 품고 있는데,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는 우선 없습니다. 경의에는 어떠한 감정표현보다도 강한 전달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의는, 애정보다도 분명하게 상대에게 전해집니다. 아마 증오보다도, 선망이나 질투보다도, 분명하게 전해집니다. '귀신은 공경하되 이를 멀리하라'는 말이 <논어>에 있습니다만, 이는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상대였을 '귀신'조차, 인간이 보이는 경의에는 반응한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경의는 '이만큼 경의를 나타냈으니까, 보답을 보여라'는 식의 '채권 독촉' 메시지를 머금지 않습니다. 경의는 있는 그대로의 경의입니다. 아무런 저의도 없습니다. 메시지가 있다면, '나는 널 상처주고 싶지 않다'는 게 전부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미숙한 부모가 자식에게 상처를 입히고 마는 일은 저지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상당히 억제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에 대해 경의를 가지고 접하는 것.
자녀 양육에 대해 논해왔던 말은 무수히 있습니다만, 제가 드린 말씀을 최우선적으로 논하는 사람이 그다지 없는 것 같아서, 자녀 양육에 대해 길게 써 놓고 나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렇게 딱 한 가지만 써두고자 합니다.
다시금, 두 분께 오랜 시간에 걸쳐 제 '두서 없는 이야기'에 함께해 주신 점을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이 책이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에게 무언가 조언이 되기를, '양육 받고 있는' 자녀들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일어났던 것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2023-06-26 09:1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화하는 세상>, <저잣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미사고 저는 자녀로 태어났다는 것의 의미란, 부모님을 용서해야만 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부모는 애초에 용서받기 위해 부모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것이므로, 자녀도 부모님을 전부 용서해야만 뭔가 일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필경 칭찬들을 만한 일들은 아니었지만, 당사자들로서는 가장 나은 선택을 하려고 했다는 식으로요.
우치다 그분들 나름대로의 베스트였던 거다, 인정 못 하겠다면 그건 좀 안쓰러운 일입니다. 부모님이 지하에서 편히 쉬지 못할 거예요.
미사고 그것을 자녀가 모조리 받아들여서 다음 세대에 전해주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취사선택해야만 하는 법인지라, 부모님을 탓한다 해도 별무소득입니다. 아니면 그저 미국식 정신분석이 될 뿐입니다. (https://ogdb.tistory.com/m/161)
나는 '역할을 그만 두고' 고등학교를 자퇴해 집을 나온 뒤, 경제적으로 곤궁해져서 영락한 채로 집에 홀리듯 돌아갔습니다. 정말이지 면목 없는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잠자코 '그랬냐'는 말 뿐이었습니다. 고집불통 아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도, 공감하는 것도 그 시점까지 아버지는 단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소년' 을 다시 가족의 일원으로 맞아들일 것을 결단했어요. 그 당혹스런 표정이 지금도 기억날 정도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50세가 되었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좋은 부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감사해하고 있는 것은, 당시에 '자식을 이해하기를 포기했지만, 좀체 알 수 없는 아들과 서먹서먹 공생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라고 하는 결단을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https://ogdb.tistory.com/m/52)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꽁치의 맛>을 보면, 동급생들이 돈을 모아, 홀랑 영락해버린 중학교 시절의 은사에게 전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모두한테서 맡아둔 돈을 가지고서, 류 지슈가 도노 에이지로에게 전해줍니다. 그때, 선생님에게 결코 굴욕감을 선사하지 않으면서 ‘베푼다’는 지극히 곤란한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장면이 참으로 볼만합니다. 그러한 과제를 떠맡음으로써 인간은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친절하게 군다는 것은 실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예요. 그런데, 친절해짐으로써 사람은 성숙합니다. (https://ogdb.tistory.com/m/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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